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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과 PR의 선구자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자기계발과 PR의 선구자들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7년 6월 / 308쪽 / 13,500원





PR은 ‘대중의 마음에 해악을 끼치는 독’인가? -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이벤트 혁명’



PR은 이벤트의 창조

호텔이 너무 낡아 장사가 잘 안돼 고민하는 호텔 주인이 있다. 문을 닫아야 하나? 그 주인은 그렇게 고민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느 PR 전문가를 찾아가 하소연했다. PR 전문가는 호텔 개관 30주년 행사를 거창하게 열라고 조언을 해준다. 그 조언에 따라 각계의 지역 유지들을 참여시킨 축하위원회가 구성된다. 축하 행사장엔 기자들이 초청되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인다. 유명 인사들이 참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축하 행사는 뉴스가 되고 새삼스럽게 그 호텔이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예찬된다. ‘낡음’은 순식간에 ‘전통’으로 둔갑해, 그 호텔은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로 널리 인식되었다. 호텔의 매출이 크게 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역사가 대니얼 부어스틴이 『이미지』라는 책에서 ‘의사사건(pseudo-event)’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사례다. 어느 언론학 교재에서나 등장하는 ‘의사사건’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보도되기 위해 꾸며진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가짜’는 아니다. 그래서 ‘의사(실제와 비슷한)사건’이다. 의사사건은 PR의 전부는 아닐망정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PR의 핵심수단이다. 이 사례는 부어스틴이 ‘현대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L. Bernays, 1891-1995)의 책에서 빌려온 것이다. ‘의사사건’이란 말은 쓰지 않았지만, 버네이스는 의사사건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PR 전문가는 뉴스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뿐만 아니라 뉴스가 일어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벤트의 창조자이다.” 오늘날 뉴스를 만들기 위해 이벤트를 창조하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상식이 되었지만, 버네이스가 활동하던 시절엔 혁명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를 ‘현대 PR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선전과 교육의 차이점

버네이스는 1923년 『여론의 구체화Crystallizing Public Opinion』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PR 전문가라는 직업은 수년 내에 서커스단이 곡예를 대리하는 하잘것없는 지위에서 세계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위치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당시 PR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판매량이 미미했지만 궁극적으론 PR 연구의 고전이 되었다. 버네이스는 이 책에서 “선전과 교육의 유일한 차이점은 실제로 관점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을 주창하는 것은 교육이고, 믿지 않는 것을 주창하는 것은 선전이라고 한다.”며 선전의 가치를 열정적으로 주창했다. 그는 자신이 조작자(manipulator)로 불리는 것도 개의치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PR 전문가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클라이언트의 사적인 이익과 사회의 공적인 이익을 조화시키는 것이 PR 전문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버네이스는 1928년에 출간한 『선전Propaganda』에서도 선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상이 있다면, 그건 바로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 또는 질서정연에 대한 갈망이다. 이 책은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는 말로 시작해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선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선전은 생산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현대적 도구라는 점을 직시한다.” 버네이스는 “선전 전문가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갈수록 중요한 위치와 기능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활동은 새로운 용어를 요구한다……. 현대 생활이 날로 복잡해지면서 대중사회의 어느 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을 다른 분야에도 알려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PR이라는 직업이 새롭게 부상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버네이스는 PR 전문가로서 자신의 이런 생각들을 실천에 옮겼는데, 몇 가지 주요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헤어넷ㆍ쿨리지ㆍ아이보리ㆍ베이컨 PR

1920년대 초 여성들이 머리를 짧게 깎는 바람에 위기에 처하게 된 머리 그물망(hair net) 업체인 베 니다 헤어넷(Venida Hair Net)을 위한 처방은 무엇이었던가? 버네이스는 사회적 저명인사들로 하여금 긴 머리를 좋아한다는 발언을 이끌어냈고, 다음에 보건 전문가들로 하여금 공장이나 레스토랑에서 단정치 못한 긴 머리는 위생상 좋지 않다는 발언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 결과 일부 주에서는 공장이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헤어 넷을 착용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버네이스에게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PR과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PR은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각종 선전, PR 기법을 정치인들이 활용하지 않는 것을 개탄했다. 그런 점에서 1924년, 재선을 노리고 있던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후원자들이 버네이스에게 도움을 청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쿨리지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격이 차갑고 내성적이어서 유권자들에게 비호감이었다는 점이다. 버네이스는 쿨리지를 유권자들이 백악관 주인으로 앉히고 싶어 하는 서민적인 소박한 인물로 바꾸는 데에 캠페인의 목표를 두었다. 버네이스의 치밀한 연출에 따라, 선거를 약 3주 앞둔 어느 날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공연이 끝난 가수 알 졸슨 등 40명의 공연단은 워싱턴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탔다. 백악관 입구에서 쿨리지 대통령과 영부인이 그들을 맞았다. 모두 차례대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었고 공식 만찬을 가졌다. 다음 날 아침식사를 하고 난 뒤 대통령은 손님들을 백악관 잔디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졸슨은 “쿨리지로 계속 가자(Keep Coolidge)”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영부인과 브로드웨이 대표단이 후렴을 같이 불렀다. “쿨리지로 계속 가세! 쿨리지로 계속 가세! 4년도 두려움 없이 살아보세!”

다음 날인 10월 18일 자 신문들은 앞다투어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 제목은 “배우들, 쿨리지와 케이크를 함께 들다. 대통령, 거의 웃을 뻔하다.”였고 《뉴욕리뷰》의 기사 제목은 “졸슨,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공식석상에서 웃게 하다.”였다. 《뉴욕월드》는 “워싱턴 사회 지도자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했고, 그간 2년 반 동안 의장으로 있었던 상원에서도 하지 못했던 일을 뉴욕 연기자들이 3분 만에 성공했다. 그들은 대통령이 이빨을 보이고, 입을 열어서, 웃게 만들었다.”라고 썼다. 3주 뒤 쿨리지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1920년대 중반 미국은 주스, 토마토, 커피 등으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는 추세로 급속히 돌아서고 있어서 베이컨 제조사인 비치넛 패킹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버네이스에게 자문을 했다. 그러자 버네이스는 미국인들의 식습관을 바꾸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의사들을 설득해 넉넉한 아침식사가 건강에 좋다는 증언들을 끌어내면서 ‘베이컨과 달걀’을 강조했다. 베이컨 판매고가 급상승했다. 나중엔 동맥경화를 부른다고 비판받지만, 이 베이컨과 달걀은 이후 미국인의 아침식사 테이블은 물론 미국 어휘사전에 나란히 붙어서 등장하게 되었다.

‘간접적 수단의 매력’

버네이스가 ‘책략’이라는 단어를 한 정치학 책에서 찾아낸 건 사실이겠지만, 그건 동시에 그의 평소 소신이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의 완고함에 대한 나름의 이론을 갖고 있었다. “때때로 수백만 명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존경 받는 권위자를 내세우거나 자신의 견해에 대한 논리적 틀을 설명하고 전통을 고려하여 설득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더 쉽다.”

이와 관련, 국내에서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에게 권했다는 책 가운데 하나가 눈길을 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 쓴 『넛지Nudge』다. 넛지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는 뜻이지만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넛지의 이데올로기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인데, 이는 좌도 우도 아니고 초당파적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넛지’가 새로운 건 아니다. 그 원조는 버네이스가 역설한 간접적 수단의 매력이라는 개념이다. 넛지는 공익을 추구하는 반면, 버네이스의 간접적 수단의 매력은 대기업을 위해 봉사하기도 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본질에선 같다. 누구에게든 어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말하면 “감히 누굴 가르치는 거냐?”고 반발하지만, 교묘하게 이벤트나 엔터테인먼트의 형식을 취해 주입시키면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이다. 즉, 문제는 포장술이다. 그런데 포장엔 돈이 많이 든다. 버네이스의 이벤트 연출 묘기는 모두다 대기업의 금전적 물량 공세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금력과 권력을 가진 쪽의 포장술은 갈수록 세련되어가는 반면, 그걸 갖지 못한 일부 개혁ㆍ진보주의자들은 계몽에 들러붙은 엘리트주의 딱지를 떼면서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얻어내기 위해 독설과 풍자 위주로 카타르시스 효과만 주는 담론에 집착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시대의 계몽과 설득이 처해 있는 딜레마다.



예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인가? - 브루스 바턴의 ‘복음 상업주의’



현대 비즈니스의 창시자

“그는 비즈니스의 밑바닥에 있던 12명을 골라 조직을 만들어 세계를 제패했다.” 그는 누구일까? 바로 예수다. 광고업자 브루스 바턴이 1925년에 출간한 『아무도 모르는 남자: 참 예수의 발견』에서 그렇게 말했다. 역사가들이 이 책을 논할 때에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다. 미국의 1920년대 시대정신을 논할 때에 꼭 거론되는 이 역사적인 책의 국내 번역판은 두 권이 나와 있다. 『예수, 영원한 광고인』과 『예수의 인간경영과 마케팅 전략』이다.

예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이라는 게 바턴의 주장이다. 오늘날에야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며 이 책을 포용하는 게 쉽겠지만 1925년의 미국에선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바로 그해 여름 테네시주의 작은 마을 데이턴에선 고교 생물학 교사 존 스콥스가 수업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은 이른바 ‘원숭이 재판’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바턴은 그간 기독교인들에 의해 묘사되어온 예수, 즉 나약하고 불행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하는 양의 이미지에 불만을 느껴 이 책을 쓰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전혀 새로운 예수 이미지를 제시한다. 예수는 건강하고 체력이 매우 좋은 활동파였으며, 사교에도 뛰어났고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아주 많은 남성적 매력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또 바턴은 예수를 ‘현대 비즈니스의 창시자’로 간주하면서, 예수의 모든 언행을 비즈니스와 광고의 전략ㆍ전술 차원에서 분석했다. 예수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무엇을 했을까? 전국적인 광고인이 되었으리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바턴은 무엇보다도 예수의 비유법을 높이 평가했다

“비유를 잘해야 광고가 뜬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던 사람이 강도의 습격을 받아 쓰러져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갔지만 사마리아 사람만이 그를 구해준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핵심 사상을 비유한 최고의 광고 문안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예수의 비유법은 카피라이터가 연구해야 할 교과서이다.” 예수의 광고 마케팅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철저히 압축된 문장. 둘째, 단순한 언어 선택. 셋째, 성실한 묘사. 넷째, 반복 또 반복. 이 4가지가 예수의 광고 마케팅 전략의 비결이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써야 효과적인가를 꿰뚫고 있었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찰스 대너는 뉴욕의 신문 《선》지의 신입 기자에게 기사를 더 짧게 줄여 다시 써오라고 명령했다. 지면이 넉넉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입기자는 기사 내용이 중요해서 더 줄일 수 없다고 반발하자 대너가 대꾸했다. “성서를 가져와 창세기 제1장을 읽어보게. 천지창조가 육백 단어로 기록돼 있다 이 말이네.” 바턴은 예수가 반복의 중요성을 터득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평판은 반복에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아무리 중요한 내용이라 해도 단 한 번 말해가지고는 많은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없다. 예수가 널리 펼치려 한 사고방식은 매우 간결했지만 혁신적이었다. ‘하나님은 너희 아버지다. 인간의 아버지이므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행복이다. 하나님의 법은 사랑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이것뿐이었으나 이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을 예수는 알았다.

‘광란의 1920년대’를 강타한 ‘노바디 신드롬’

바턴이 광고에 대한 호전적 신념의 실천을 하는 가운데 쓰게 된 책이 바로 『아무도 모르는 남자The Man Nobody Knows』다. 바턴은 책을 출간하기 전 윈고를 부모에게 보냈다. 목사인 아버지가 반대하면 책을 내지 않겠노라고 했는데 그의 부모는 책의 출간을 허락했다. 그는 다른 지인들에게도 원고를 미리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이 책의 핵심인 ‘세일즈맨으로서의 예수’ 개념이 큰 논란을 부를 거라며 그걸 빼자고 했다. 그러나 바턴은 원래대로 밀어붙여 책을 출간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 책은 1925년과 1926년 2년간에 걸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1926년엔 영화로 만들어졌다. 할리우드 최초의 ‘성경 스펙터클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세실 데미의 <왕 중의 왕King of Kings>이 바로 그 영화인데, 바턴은 이 영화의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이렇게 뜨거운 화제가 된 가운데 이 책을 둘러싸고 격렬한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목회 활동을 하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예수의 복음은 분명한 성공의 복음이 아니라 분명한 실패를 통한 궁극적인 성공의 복음”이라며 바턴을 비판했으며, 대부분의 개신교ㆍ가톨릭 성직자들이 바턴을 신성모독을 저지른 자로 거세게 비난했다. 특히 근본주의자들의 분노가 거셌다.

종교적 우파뿐만 아니라 문화적 좌파도 비난에 가세했다. 그러나 대중은 바턴의 편이었다. 독실한 기독교인들도 바턴의 책을 보고서 예수를 더욱 가깝게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일부 리버럴 크리스천 지도자들도 호의적이었다, 갈수록 세속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신앙을 유지하는 게 복잡해지고 어려워진 환경에 대한 지침서 역할을 했다는 점이 『아무도 모르는 남자』가 누린 인기의 비결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남자는 ‘노바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책 제목에서 슬로건에 이르기까지 The Man Nobody Knows를 흉내 낸 표현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노바디 신드롬’으로 바턴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바턴 붐은 196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남자』는 바턴이 그 속편으로 쓴 성경 해설서 『아무도 모르는 책The Book Nobody Knows』과 함께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1956년에도 100만 부 이상 팔려나갔으며, 1965년엔 《리더스다이제스트》가 이 책들의 축약본을 연재하기도 했다. 독일, 스칸디나비아, 이탈리아, 일본 번역판까지 출간되었다. 바턴 붐이 최초로 조성된 1920년대는 부자가 존경받는 시대였다. 버튼 맬킬은 “사람들은 사업가를 경건한 선교사처럼 좋아했고 거의 숭배하다시피 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돈 버는 데 관심을 쏟아 제조업 생산량은 10년간 64퍼센트나 늘어났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에서는 17초마다 승용차가 1대씩 굴러 나왔고, 미국인 5명당 1대꼴로 자동차를 가지면서 교외 거주자들이 늘어나 건설업이 폭발적 호황을 맞았다. 경제와 사업은 번성했고, 주식시장은 급등했다. 실업률은 감소했고 생활수준은 높아졌다. 이렇듯 미국에서 1920년대는 ‘광란의 20년(Roaring Twenties)’ 또는 ‘재즈시대(Jazz Age)’라고도 할 만큼 번영과 즐거움이 솟구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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