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조건
레이몬드 A. 벨리오티 지음 | 지금이책
권력의 조건
레이몬드 A. 벨리오티 지음
지금이책 / 2017년 5월 / 432쪽 / 22,000원
지배하는 힘이란 무엇인가
힘의 일반적인 개념: 우리는 보통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보다 더 개괄적으로 말하자면 힘은 어떤 결과물을 창출하거나 그 결과물을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 힘은 딱히 어떤 관계에 얽매어 있지 않다. 상대적으로 한쪽이 우월한 두 개의 다른 행동 주체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힘이 의미를 갖거나 힘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딱히 사회적인 상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적 혹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상반된 이해관계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힘을 행사하기 위해 계획된 어떤 의도도 필요치 않다.
배가 난파되어 작은 유리컵과 함께 무인도에 남겨진 머핀이라는 한 여자를 예로 들어 보자. 머핀은 무인도에 도착하기 전에도 많은 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걸을 수 있는 힘, 얼마만큼의 무게를 들 수 있는 힘, 언어를 사용하고 노래를 부르고 쓰고 생각하고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힘 등이 그것이다. 무인도에 머무르는 동안 머핀이 뾰족한 물체에 발가락을 찧어서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머핀은 자신이 무인도에 함께 난파된 컵을 깨뜨릴 만큼 엄청난 성량의 높은 ‘도’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새로운 힘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힘이라면 무생물에도 힘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허리케인은 원치 않는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머핀은 여러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무인도에 살면서 환경의 힘에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비사회적인 힘은 우리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아마도 힘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 중 가장 상위의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힘에 대해 몇 가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힘은 능력 혹은 기질이므로 누군가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힘은 지배, 억압 혹은 종속 등과 동의어가 아니며, 세상 모든 생물 및 무생물은 생산하는 능력이라든가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 등 어떤 의미로든 힘을 가지고 있다.
지배하는 힘의 개념: 힘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 주체가 다른 주체에게 지배하는 힘을 행사하는 양자관계에서의 힘이나 주요 기관이 개인이나 개인으로 구성된 단체에 힘을 행사하는 보통의 사회적 권력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지배, 억압 그리고 사회적 종속 등 힘이 만들어내는 효과에 집중하며, 힘을 행사하는 사람과 강제적인 힘의 행사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대상을 연구한다.
수동적인 힘과 영향력: 원하는 결과를 얻기에는 힘이 부족한 특정 주체가 의도하지 않게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수동적인 힘’이라 한다. 수동적인 힘은 참을성과 같은 타고난 기질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운과는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능력보다 풍족한 삶을 얻기도 한다. 딱히 어떤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자원을 얻을 힘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 환경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행운이지만, 일단 그 상황에 놓이게 되면 특정 결과를 얻기 위해 애쓰지 않고도 이득을 얻는다. 사회적 상황이 그들의 수동적인 힘과 함께 작용하여 원하는 자원을 얻게 하는 것이다. 다섯 명의 고등교육 관련 종사자들이 모여 있는 위원회에서 나 혼자 교직원이고 두 명은 학교 관리자 대표, 나머지 두 명은 교수 대표인 상황을 가정해 보자. 교직원과 교수가 대립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나의 의견이 결과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다섯 명의 위원들은 모두 같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상황에 따라 나에게 더 많은 힘이 부여된 것이다. 만약 나머지 네 명의 위원이 이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어 동맹을 맺기로 한다면 나의 권력은 소멸될 것이다. 나의 자원은 그대로지만 권력은 한없이 약해진 것이다.
힘과 영향력의 차이는 미세하다. 영향력은 최소 두 개의 주체를 필요로 한다. 존스가 스스로에게 영향력을 미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존스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향력은 할 수 있는 힘보다는 지배하는 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존스는 힘을 사용하지 않고도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아주 더운 여름날 존스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여행객 주변을 걸어갔다고 생각해 보자. 존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행객이 그 옷을 구매하는 데 영향을 준 것이다.
사회적인 힘: 우리는 흔히 ‘지배하는 힘’에 대해 그것을 행사하는 우월한 자와 지배를 받는 자 사이, 즉 양자관계로 이해하지만 사실은 보다 넓은 사회적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힘’을 구성하는 넓은 관계가 양자관계로 이어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힘은 양자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학생과 교사는 사회적 상황에서 형성된 양자적 힘의 한 예이다. 이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지만 일단 가장 핵심적으로 교사는 학생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다. 교사는 학생에게 점수를 매기고 학생 간의 경쟁을 부추긴다. 점수는 교사가 학생에게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매개이다. 졸업이나 더 높은 교육기관으로의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나, 장래희망을 가지고 있는 학생, 혹은 부모의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등의 어떤 이유에서든 학생들에게 점수는 중요하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과의 관계에서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교사와 학생 사이의 지배하는 힘 관계는 교육 체제의 사회 구조에서 나온다.
지배하는 힘의 주된 사용: 지배하는 힘을 정의할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문제점은 각자 다른 원인과 목적으로 사용된 지배하는 힘을 하나로 정의하려 하는 것이다. 지배하는 힘은 누군가를 억압하려고 사용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다양하게 사용하는 지배하는 힘을 하나로 정의하려는 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지배하는 힘의 세 가지 주요 사용을 모두 포함하는 중립적인 정의를 통해 지배하는 힘을 이해해 보자. 물론 중립적인 개념으로부터 이 세 개념을 따로 구분해내기 위해서는 따름 정리를 설정해야 한다. 우월한 주체가 종속된 주체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의 정의는 우월한 주체가 종속된 주체에 지배하는 힘을 가졌음에도 그 힘을 행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찌 됐든, 지배하는 힘이란 종속된 자의 선택 권한을 다양한 방법으로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정의이다. 이 경우에 우월한 자는 종속된 자의 행동반경을 제한한다.
지배하는 힘의 보편적인 정의는 지배하는 힘이 주로 사용되는 억압적, 온정주의적, 전환적 사용, 이 세 가지 상황에서의 따름 정의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배하는 힘의 보편적인 정의가 그렇듯, 지배하는 힘을 행사하지 않아도 이 세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이 세 가지 지배하는 힘의 ‘사용’을 설명하기 위해 따름 정의를 구체화할 것이다.
첫 번째는 ‘억압’이다. 우월한 자가 종속된 자의 행동 선택 범위를 통제하거나 제한하여 종속된 자의 행동에 악영향을 미칠 때, 우월한 자가 종속된 자를 억압한다. 억압은 지배하는 힘 사용의 가장 흔한 유형이다. 억압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압박이나 협박, 속임수, 사적인 유혹, 허위의식을 기르는 이데올로기 확산, 사회적 토론의 장 최소화, 정보나 지식의 힘을 이용해 심리적ㆍ감정적인 약점 공략, 권력을 사용한 종속된 자에 대한 판단력 약화 등을 포함한다. 그런데 억압은 양자적이거나 사회적이다. 의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 특정 사회 계층이 이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계층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하면서 일어나기도 한다. 또 반복적이고 제도적으로 일어날 수 있고, 단발적으로 끝나거나 개별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아울러 억압은 고정적이지 않고 가변적이다. 종속된 자의 저항은 미비하다. 억압의 강도와 범위는 다양하다. 억압의 강도는 우월한 자의 권력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고 범위는 우월한 자가 조종하고 있는 분야나 주제를 말한다. 전체주의 체제 같은 가장 강력하고 분명한 억압도 있지만 보다 부드러운 억압도 있다.
온정주의는 지배하는 힘의 두 번째 사용 예이다. 우월한 자가 종속된 자의 행동 선택 범위를 통제하거나 제한하여 종속된 자의 기호나 관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우월한 자가 종속된 자에게 온정주의적으로 행동한다고 할 수 있다. 우월한 자는 종속된 자가 스스로 진정한 관심을 찾고 행동하기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할 때 온정주의를 사용한다. 나이가 어리거나 정신적, 신체적 결함이 있거나 심리적 불안감 등의 이유로 다양한 관심 속에서 진정한 관심을 찾을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 대상이 성인이라 할지라도 극심한 고통을 겪었거나 특정 환경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신을 파괴하는 부정적인 선택을 할 때, 장기적인 흥미를 찾지 못하고 당장의 욕구에만 집중하는 등 심신이 미약할 때, 이런 다양한 상황에서 온정주의적 힘을 사용한다.
온정주의적 힘의 사용은 종속된 자의 행복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온정주의의 대표적인 예로는 정부의 규제가 있다. 노동자들은 사회 보장 제도에 기여해야 하고 운전자들은 안전벨트를 착용해야 한다. 종속된 자는 온정주의적 힘에 저항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순응한다. 처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월한 자가 온정주의적 행동을 할 때에는 종속된 자를 올바른 내면으로 이끌려고 노력한다. 진정한 관심을 구별하여 온정주의적 행동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지배하는 힘은 ‘역량 증진’이다. 우월한 주체가 종속된 주체의 행동 선택 범위를 통제하거나 제한하여 관심이나 행동의 결과를 호의적으로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역량 증진이라 한다. 역량 증진은 온정주의의 일환으로 종속된 자를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목표를 이루는 수단은 다른 두 지배하는 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오직 역량 증진을 위한 행위들로 제한된다. 그러므로 강압적인 유형의 지배하는 힘은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역량 강화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양자적이거나 사회적일 수도 있지만, 거의 모든 경우가 의도적으로 이루어진다. 역량 강화는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역량 강화는 우월한 자와 종속된 자의 현재의 관계를 초월하여 변화를 가져올 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종속된 자가 발전하거나 진정한 관심을 찾고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역량 강화는 무의미하다. 이런 경우에는 온정주의적 지배하는 힘의 행사가 영구적으로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지배하는 힘의 사용 예시들은 완벽한 분류 체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힘의 사용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억압이라고 표현한 지배하는 힘의 다양한 사용이 다른 힘으로 분리되어 또 다른 힘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지배하는 힘을 강압적이거나 허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사용하는 권력이라든지 개인의 매력을 이용하여 타인을 지배하는 힘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지배하는 힘이 종속되는 자의 관심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도 않고 단지 자유를 제약하거나 행동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역할만 한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나의 지배하는 힘 사용의 분류법은 필연적이거나 완전하지 않다. 무수히 많은 분류법 중 하나일 뿐이다. 예를 들면 나는 불평등과 억압을 사회적 단계에서의 지배하는 힘이라고 분류하였으나,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힘을 합의된 개념이라 설명했다. 그녀는 사회 주체가 모여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규정할 것인지 합의에 도달했으며 상호 간의 협조가 이루어진 것이라 보았다.
아렌트의 주장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 정치적 힘은 특정한 부분에 관련된 사람들의 합의로부터 나올 수 있다. 나는 힘이 이전에 사용하던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양도될 수 있는 물건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우월한 자나 종속된 자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양자의 의미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회적 힘은 미셸 푸코의 주장과 같이 여러 사람으로 구성되며 관계로서의 기능과 사회 연결망의 상호작용을 통해 분산된다고 본다. 하지만 모든 양자의 힘이나 사회적 힘이 복잡하고 보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론가들이 그렇듯 힘의 이론에는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여 타당성을 설명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이론과 비교하여 타당성을 설명한다. 이 경쟁의 승자는 가장 타당한 이론이 된다. 이 경쟁에서 요구되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현상과 결과, 그리고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설명하는 힘, 알려진 현상과 그 이유를 현상과 독립시켜 설명할 수 있는 독립적인 원인, 내면적, 논리적인 일관성이 바로 그것이다. 해석의 구조 없이 이론의 경쟁상대를 평가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 해석의 구조가 특별한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곧 권리인가 - 트라시마코스와 소크라테스
보다 심오한 이론이나 현실의 문제에서 지식과 힘은 사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사회학 개론에서 사실이라고 일컬어지는 지식은 억압적으로 사용된 힘의 결과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일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동안 삶의 정의로 여겨지던 규범적 기반이 억압적인 힘의 관계에서 우월한 주체가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물에 불과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억압당하는 자는 어떻게 그리고 왜 이 규범에 충성했던 것일까?
이 문제를 둘러싼 개념과 논쟁을 풀어내는 것은 중요하다. 타인을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것과 공익을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을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 관계의 근원과 역동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과 지식에 관한 사회적 담론과 정서를 막론하고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의 연관성을 분석해야 한다. 플라톤(BC 427-347)은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트라시마코스와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이 문제와 직면했다. 역사적인 인물인 트라시마코스는 칼케돈의 시민으로 궤변가이자 수사학자이다.
정의의 본질에 대한 대화에 트라시마코스가 뛰어든다. 그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강한 자, 곧 지배자만이 법 체제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 지배자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법을 만든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의미에서 ‘정의’는 가장 강한 사회 주체의 이득을 위해 만들어지고 강요되는 규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정의’는 가장 강력한 자의 욕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권력(힘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은 권리(규범적으로 옳다고 이해되는 행위)가 된다.
트라시마코스는 지식과 힘의 연관관계를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몇 가지 주제를 더 도출해 낼 수 있다. ‘주장을 사실로 만드는 것은 내면화에 결정적인 요소이다. 우연적이고 관습적인 것이 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명령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보편적 규범이라 이해되고 받아들이는 ‘정의’를 만들어 낸 특권층의 작품이다.’
요약하자면,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를 ‘정의’라 하지 않는다. 특정 사회에서 ‘정의’라고 부르는 것이 그 사회의 지배층에 의해 만들어진 규범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의 순응의 효과로 지배층의 관심이 고양된다고 보았으며, 지배층, 혹은 강한 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사회에서 ‘정의’라고 불리는 것은 ‘타인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 하였다. 더 위험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정치적 선동에 의해 은폐된다는 것이다. 지배자는 ‘정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일반 시민에게 강제한다. 정의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공익을 위한 초월적이고 영광스러운 것처럼 과대 포장해서 일반 시민에게 보여주며 지배자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정의는 진짜 ‘정의’가 된다. 오직 소수의 관심만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필요한 충성심을 얻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