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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담대함

조너선 체이트 지음 | 성안당



오바마의 담대함

조너선 체이트 지음

성안당 / 2017년 7월 / 314쪽 / 14,000원





미국의 원죄



오바마 임기 동안에 인종 문제라는 미국 사회의 원초적 상처가 전면으로 부각되면서, 공적 논의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새롭게 등장한 소셜 미디어 덕분에 인종 갈등은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안이 되었다. 게다가 스마트폰 동영상 촬영이 보편적인 기술이 되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경찰 폭력이 종종 일면 기사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여론은 인종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좌파 진영은 사회적 경계심을 늦추게 될 것이라는 걱정에 인종 문제와 관련된 개선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고, 우파는 오바마를 향한 절대적 불신의 차원에서 어떠한 개선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오바마 임기 동안 미국 사회에서 인종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더욱 심각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반적인 상황은 더 나아졌다.

2012년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원인 세스 골드먼은 인종 문제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이 오바마의 첫 번째 선거운동 기간 동안, 그리고 그가 대통령으로서 재임하는 동안에 진보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 혹은 범죄와 빈곤을 떠올리게 만드는 흑인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 대신에, 오바마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하게 심어주었다. 골드먼은 이렇게 평가했다. “언론이 조장한 흑인에 대한 백인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대단히 드문 경우였다. 오바마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흑인의 모범이 되었고, 동시에 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을 완화시켰다.” 백인들의 인종 편견은 지난 20년 세월에 비해 오바마 임기 동안 다섯 배나 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그 이듬해에 한 논문은 보다 극적인 현상을 보고했다. 매사추세츠 앰허스트 대학의 태티시 은테타와 브랜다이스 대학의 질 그린리는 오바마의 첫 번째 선거운동 기간 동안에, 혹은 그 이후로 성인이 된 백인 젊은이들이 기성세대 백인들보다 인종에 대해 더욱 진보적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물론 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은 지속적으로 진보했지만, 두 사람은 특히 오바마 시절에 뚜렷하게 드러난 차이점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오늘날 젊은 유권자들에게 역사적인 혁명이었다.” 미국 정치 무대에서 오바마의 등장은 인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추상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차원에서 바꾸어 놓았다. 오바마의 열성 팬들이 품었던 첫 번째 희망, 즉 흑인 대통령이라는 상징적 존재가 인종 편견을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하더라도 상당 부분 치유해줄 것이라는 희망이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로 드러났다.

이러한 오바마 현상은 미국의 정치에서 인종이라는 요소를 부각시켰고, 또한 인종에 대한 사회적 정서를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정치학자 마이클 테슬러는 이러한 흐름이 향후 수십 년에 걸쳐 미국의 정치 지평을 새롭게 재편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민주당이 ‘오바마 정당’으로 변해가면서 백인 집단이 인종에 대해 당파주의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양극화 현상은 미국의 정치 상황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며, 그 흔적은 오바마가 자리에서 물러나도 한참 동안 남을 것이다.”



두 번째 대공황



오바마는 대통령 임기 중 상당 기간, 완전 고용으로 접어들어 번영을 이룩한 빌 클린턴이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성과와 자신이 이룩한 경기회복의 성과 사이의 비교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건 공평한 비교로 볼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바마 임기 당시 금융 위기는 일반적인 경기 침체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피해를 몰고 왔다. 보다 공정하게 평가하려면, 2008년과 같은 시스템적 위기를 겪었던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비교해야 한다. 2008년 시스템적인 금융 붕괴를 겪은 12개국 중 2014년 말까지 정상적인 수준으로 GDP를 회복한 나라는 독일과 미국밖에 없었다. 2014년 12월에 워싱턴포스트 경제 칼럼리스트 캐서린 램펠은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의 경제 회복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더욱 나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특히 심각한 금융 위기를 겪었던 ‘전 세계 다른 나라들’처럼 될 수도 있었다.” 2015년에 유럽연합의 실업률은 미국의 두 배에 달한 반면, 2014년 미국은 1999년 이후로 그 어느 해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2012년 5월에 오바마의 정책 실패로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공화당 후보 및 롬니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8퍼센트를 넘는 실업률을 자신의 임기 말에 6퍼센트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만약 롬니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2016년 말에 실업률을 6퍼센트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면, 그는 분명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크게 선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롬니가 패한 뒤 2014년 가을에 미국의 실업률은 이미 6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게다가 2016년에는 5퍼센트로까지 낮아졌다. 공화당 내부에서 롬니의 반대파가 제시했던 증거로 보더라도, 오바마의 경제 정책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미국인들은 번영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으며, 그러한 느낌은 단지 착각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해서 중산층의 소득과 안정된 연금을 보장받던 전후 블루 컬러 전성시대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사라졌다.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텅 빈 마을을 이렇게 노래했다. “철길 건너 섬유 공장이 문을 닫았다. 현장 주임은 이제 그런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 말한다.” 이는 오바마가 취임하기 사반세기 전에 이미 시작되던 흐름이었다. 지역의 공동화 현상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고, 어떤 점에서는 더욱 심각해졌다.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경제적 정체 상황은 그 어떤 대통령도 단번에 돌이키기를 바랄 수 없는 규모의 문제였다. 오로지 당파적인 계산 때문에 긴축 재정을 반대하던 공화당의 집착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공화당 하원은 대중교통 제반시설을 개선해야 한다는 오바마의 요청을 묵살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똑같은 아이디어에 더욱 많은 돈이 드는 정책을 제시했을 때, 그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케인즈식 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민주당 집권 시에 공공연히 그러한 정책을 반대했던 공화당은 경제적인 불만을 항상 무기처럼 활용했다.

경기 침체 속에 사라진 일자리를 다시 만들어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전반적인 실업률 상승은 근로자의 평균 임금을 떨어뜨렸다. 오마바 임기 중 임금 상승은 대부분 부유층에 국한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실업률이 정상 수준을 회복하면서 근로자들은 협상권을 되찾았고,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2015년에 중산층 근로자 소득은 5퍼센트 넘게 올랐다. 소득 상승은 하위 계층 근로자에게서도 나타났다. 소득 기준 십분위 분류에서 최하위 계층의 소득은 7.9퍼센트 상승했고, 바로 위 계층 역시 6.3퍼센트 상승했다. 또한 중간층은 5.2퍼센트, 바로 그 위 계층은 3.9퍼센트 상승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세제 개혁과 규제 정책이 기업을 힘들게 했고, 근로자 임금 상승을 장기적으로 정체시켰다는 주장은 이러한 실질적인 경제 상황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물론 블루컬러 계층의 임금 상승은 수십 년간 이어진 경기 침체를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균적인 미국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했던 광범위한 경제적 번영의 시기가 마침내 돌아온 것이다.



오바마케어



오바마케어의 개혁안은 병원과 의사, 보험사, 환자들로 구성된 의료 시스템 전반을 다양한 차원에서 자극했으며, 이러한 시도 모두 애초에 의도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물론 개별적인 방안들이 보여준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들이 하나로 모여 변화가 필요한 의료보험 산업 전반에 의미 있는 혁신으로 누적되었다. 또한 비용 상승률을 억제하겠다는 행정부의 계획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타당성도 입증해주었다. 물론 오바마케어만으로 의료보험의 비효율성을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할 것이며, 의료보험에 가입할 경제적 능력이 안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을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케어는 역사적인 흐름에서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오바마케어는 미국 역사상 가장 야심차고 성공적인 사회 개혁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에 뛰어들면서 오바마케어를 ‘재앙’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를 ‘멋진 무언가’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훨씬 적은 예산으로 전 국민의 의료 수요를 얼마든지 충족시킬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에, 트럼프는 이미 공화당에서 내놓았던 다양한 방안들을 그대로 읊어댔다. 공화당의 정책은 보험사들이 건강한 가입자를 선별해서 받도록 허용하고, 중증 환자나 경제적 능력이 안 되는 저소득층이 양질의 보장을 받지 못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 이러한 트럼프의 모습은 오바마케어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든 국민에게 양질의 보장을 제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기초적인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트럼프는 당선 후 기자들에게 환자들을 동일한 환경에서 보호하기 위해 오바마케어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오바마케어의 다양한 방안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오바마가 걸어갔던 길을 그냥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속임수를 썼거나, 아니면 오바마케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을 하는지, 어떤 타협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쪽이 진실이든지 간에 트럼프는 명백한 정치 논리는 이해하고 있었다. 즉, 오바마케어 덕분에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게 되었으며, 이제 그들에게서 혜택을 빼앗으려다가는 심각한 정치 역풍에 맞닥뜨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을 실현하고자 했던 많은 공화당 인사들 또한 머지않아 그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당시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기 위해 이미 수십 가지의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지지층의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동시에 그들은 오바마가 그 법안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며, 그에 따른 혼란이나 피해는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안심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한 공화당 인사는 케이틀린 오웬스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법안들을 활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린 바보가 아니거든요.” 대신에 그들은 보험 상품의 요건과 연령차별 규정을 수정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보험사가 고령 가입자의 보험료를 인상하고, 젊은 층의 보험료를 인하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하고, 불충분한 보장을 제공하는 상품도 판매가 가능하도록 허용하고자 했다. 이러한 변화는 건강한 가입자에게 보다 관대하고 질환이 있는 가입자에게 보다 가혹한 조건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바마케어의 핵심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바마케어를 끊임없이 비판해왔던 공화당 상원 의원 라마 알렉산더는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오바마케어의 핵심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알렉산더는 오바마케어를 즉각 폐지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렇게 경고했다.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고, 모두가 접근할 수 있고, 오바마케어의 오류를 모두 제거한 훌륭한 의료보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수년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간에 공화당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절박한 국민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제하는 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절벽 아래”란 오바마케어가 실시되기 이전의 가혹한 의료보험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케어의 완전 폐지라는 애초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하지만 공화당은 그들이 이전에 내세웠던 공약을 실행에 옮기기를 주저했고, 이러한 공화당 지도부의 태도는 오바마가 의료보험 시스템을 얼마나 철저하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입증하는 것이다. 아무튼 오바마케어는 의료보험에서 소외되었던 2,000만 명의 미국인들을 수혜자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의회가 개혁안을 폐지할 경우, 이들은 모두 그 혜택을 잃을 수 있다. 공화당은 정부 프로그램에 돈을 쓰는 일을 싫어하지만, 관공서에 몰려든 성난 피해자들, 또는 의회가 의료보험 보조금을 폐지하는 바람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다룬 지역 신문의 기사도 마찬가지로 싫어한다.



해수면 상승



오바마가 남긴 유산에서 이후의 공세에 가장 취약한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아마도 기후변화 정책이 될 것이다. 지금 트럼프는 노골적으로 기후 과학을 조롱하고 있다. 그의 주변은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자문들로 가득하다. 파리 기후 협약으로부터 탈퇴하고, 청정전력계획을 중단하고, 온실가스 오염에 대한 연방정부의 모든 규제를 철폐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있다. 트럼프가 보인 극단적인 입장들과 더불어, 미국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게 될 심각한 문제는 기후변화에 대한 모든 정책적 대응에 대해 그가 앞으로 계속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밀고 나갈 것이라는 전망에 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피해의 영향이 자신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한참 뒤에야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에게는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할, 혹은 국민의 요구에 주목해야 할 동기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오바마의 환경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더욱 확장하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오바마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 등장하기 시작했던 희망의 시나리오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절망의 시나리오로 변질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경을 되살려내기 위한 우리의 도전을 절망의 나락으로 완전히 밀어 넣은 것은 아니다. 오바마는 연방정부의 규제와 외교적 자원을 기반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적 대응 방안을 이미 마련해 놓았다. 미 정부가 기후 과학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어간 상태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주도권은 다른 곳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미 여러 주정부와 시정부, 특히 캘리포니아는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을 뛰어 넘어 배출가스를 감축하려는 노력을 자체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에너지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각국 정부들 또한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오바마는 미국에서 친환경 에너지 혁명을 처음으로 주도한 대통령으로,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최초로 국제적인 협력을 조직화한 지도자로 남을 것이다.



피 흘리는 세상



이란과의 협상을 제외한다면, 오바마의 외교 정책이 혁신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바마 외교 정책의 대부분은 기존 정책을 수정한 것이었다. 오바마는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이념적인 행정부를 냉철하고 끈기 있는 실용적인 행정부로 대체했다. 물론 전면적으로 이념적 공세를 거두어서 대통령의 세계관을 국민의 의식 속에 깊숙이 각인시키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념을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해 먼로 독트린이나 루스벨트 빅스틱(Big Stick)과 같은 개념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오바마는 다만 ‘아시아로의 전환’을 실행에 옮겼다.

아시아로의 전환이란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집착해온 중동 지역에 대한 관심을 낮추는 대신, 중국과 인도가 새로운 슈퍼파워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동아시아 지역으로 국가적인 관심을 집중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거시적 계획을 위한 슬로건이었다. 오바마는 특히 기후 변화를 주제로 인도와 중국과의 관계를 조율해 나갔고, 그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혁신적인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론적인 측면에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전환 전략’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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