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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인문학의 거짓말

박홍규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7년 5월 / 492쪽 / 19,000원





제1부 첫 인문 이야기



첫 사람 이야기

최초의 인류를 말하다: 나는 인문이 죽었다고 말했다. 어떤 인문학자가 과격한 이야기라고 비판 했지만, 언제나 낡은 것은 죽고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것이 이치이니 전혀 과격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새로운 인문으로 말한 자유-자치-자연의 삶도 언젠가는 없어지고 또 새로운 것이 나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새로운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내 뒤를 잇는 사람에게는 첫 사람이고 내 앞 사람에게는 마지막 사람이다. 이 글에서 첫 사람이란 최초의 사람, 최초의 인류를 말한다. 종래 그를 원시인, 미개인, 야만인, 선사인 등으로 불러온 것은 차별적이고 모욕적이어서 적절치 않다. 특히 그 후손인 우리 인류를 모독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나 이 글을 읽는 독자를 모독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부류가 수천만 년 전의 초기 인류나 아프리카 또는 아마존 등의 밀림에서 벌거벗고 사는 사람들만 일컫는다고 생각하지만, 수십 년 전까지는 우리도 그들처럼 그렇게 불렸다. 17세기의 헨드릭 하멜은 물론 19-20세기 서양인도 조선인을 그렇게 불렀다. 마찬가지로 원시문화, 원시사회, 원시 예술 등도 첫 문화, 첫 사회, 첫 예술 등으로 부르도록 하겠다.

간디가 젊어서 애독한 책인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요컨대 모든 인간은 하나의 인류임을 뜻한다. 알베르 카뮈의 유작 『최초의 인간』도 순우리말로 ‘첫 사람’으로 옮길 수 있지만, 그 ‘사람’은 카뮈의 백인 조상을 말하므로 이 글에서 말하는 첫 사람과는 다르다. 카뮈와 그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그 식민지인 알제리로 건너온 백인들의 후손이다. 카뮈는 그들을 첫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알제리의 첫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검은 알제리인들이고, 프랑스인은 그의 첫 소설처럼 알제리인을 죽인 이방인이다. 카뮈가 죽기 몇 년 전부터 알제리에서는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알제리의 독립에 반대한 카뮈는 그 땅이 자신의 아버지가 가난하게 살다 묻혔고, 자신이 그 아들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기에 『이방인』을 집필했다. 일제강점기 말의 일본인 작가가 조선 땅에 묻힌 선조를 생각하며 그런 책을 썼다고 생각해보라.

카뮈는 한국에서도 상당히 유명하지만 그의 작품은 읽기가 쉽지 않고 별 느낌을 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한국 문학인들이 그를 왜 가장 좋아하는지 의문이다. 그는 알제리를 비롯한 아프리카나 중동 등 비서양 대부분에서는 인기가 없다. 카뮈에 열광하는 비서양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뿐인데, 일본은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의 인기가 약하다. 카뮈가 아프리카에 살았던 시절을 잘 보여주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20세기 초 유럽 여성이 아프리카에 살면서 힘들게 커피 농장을 경영하고 멋진 사랑도 하다가 유럽에 돌아온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유명한 백인 남녀 배우가 나오는 러브스토리이지만,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 침략을 극단적으로 미화하여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메릴 스트리프가 연기한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드넓은 커피 농장은 오늘날 아프리카의 식량 빈곤을 낳은 원흉으로 식민지 착취를 상징하고, 꽃미남, 로버트 레드퍼드가 연기한 무소유 사냥꾼의 상아는 동물 살육 등 자연 파괴를 상징한다.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반식민주의적인 발언들이 두 주인공의 입에서 가끔 흘러나오지만, 이는 고상한 백인의 취미를 보여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사랑도 우정도 대화도 흑인과 백인 사이가 아니라 백인 사이에서 생길 뿐이다. 흑인은 백인을 섬기는 하인이나 노동자, 백인이 가르치고 치료해주는 무지한 인간일 뿐이다.

이 영화는 서양이 비서양을 다루는 문학이나 영화 등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의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아프리카를 떠나’ 혹은 ‘아프리카 탈출’이다. 더는 식민지 착취가 불가능해지자 유럽인이 아무런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유럽의 식민지 지배가 극성을 부린 20세기 초의 이야기를 1986년에 영화로 만들었고, 그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휩쓴 것은 서양의 식민지 환상이 여전히 왕성함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럼에도 똑같은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에서 그런 점이 지적된 적은 없다. 아프리카와 우리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우리는 흑인이 아니라 백인에 가깝다고 생각해서일까? 아프리카나 남미 등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 대한 백인 중심의 이야기들은 식민지 시대는 물론 그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상당수는 대부분 무비판적으로 소개된다.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이 특히 그렇다. 아프리카나 남미 등 원시사회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성적인 흥미 중심으로 그 기이한 야만성을 강조하는 것들에 불과해 이제는 우리가 남을 미개니 야만이라고 부르며 모독하고 있다.

한국인의 조상은 흑인인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비롯한 아프리카 이야기의 압권은 역시 그 광활 한 대자연이다. 배경인 케냐는 물론 에티오피아까지 펼쳐진 대평원은 이곳이 세계의 배꼽, 인류의 발상지, 인간의 진화가 진행된 곳임을 실감케 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최초의 인류가 수십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몇만 년 전부터 전 세계로 퍼져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20세기 후반에야 밝혀진 사실이어서 그 영화 속의 백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놀라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조상이 노예나 하인인 아프리카인이라니 말이다.

지금은 아프리카 기원설이 옳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다지역 기원설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즉, 한반도와 만주 등 주변에서 살며 구석기 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신석기 문화를 만들었고, 그들 중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으며 그 후손들이 삼국(고구려, 신라, 백제)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최초의 인류가 여러 경로로 한반도에 정착한 자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민이라는 것이고 한국인의 조상도 그 하나라는 점이다. 즉, 우리도 모두 이주민이다.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민이다. 지금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보다 우리가 좀 더 빨리 이주했을 뿐이다. 그러니 어떤 이주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인류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진화했음을 화석을 통해 설명한 책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30~50억 년 동안 생물은 수없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가운데 자연환경에 잘 적응한 종들만 살아남았다. 다윈은 화석을 찾는 5년간의 여행 중 남미에서는 노예들이, 호주에서는 원주민들이 처참하게 착취당하는 것을 보고 인간이 동물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그렇다고 식민지 착취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야만인의 삶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학설은 기독교의 천지창조설의 부정일 뿐 아니라 플라톤 이래 고정 된 위계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즉, 신을 정점으로 하는 대영 제국이나 백인 제국의 세계 지배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윈은 30년 동안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지 않았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1859년에도 그가 인간을 원숭이의 자손으로 떨어뜨렸다고 하는 등 맹비난이 쏟아졌지만, 1세기가 더 지난 지금도 그의 주장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고 인간 외의 동물은 모두 하등으로 여기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들이 다윈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대부분의 유럽인처럼 자신들을 흑인은 물론 원숭이일 거라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대다수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 로널드 레이건은 임기 말년에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진화론을 믿는 사람보다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 이는 기독교도가 많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으나, 더 큰 문제는 진화론을 알지만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진화론은 인류가 원숭이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첫 제국 이야기

중국과 한반도 제국과 주변의 권력 관계: 중국을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국에 대한 정의에 따라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제국의 의미는 문화적ㆍ민족적으로 전혀 다른 영역과 구성원에게까지 권력을 확장하는 국가를 말한다. 제국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불완전한 것이기는 하나 여기서는 정치적 차원의 제국-식민지 관계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경제-문화적인 차원까지 포괄적으로 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런 경우에는 제국이라는 말보다 제국주의라는 말이 적합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란 식민지 등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만이 아니라 간접적인 지배까지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국이 세계사에서 처음 나타난 것을 이집트나 페르시아 등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중국을 꼽는다. 특히 한반도와 관련된 최초의 가장 강력한 야만의 침략 제국은 중국이다. 기원전 2세기의 위만을 비롯해 수, 당, 요, 금, 원, 청 등 중국은 왕조가 바뀔 때면 한반도를 침략해 약탈했다. 130년에 걸친 원의 고려 지배, 청의 침입으로 인한 삼전도의 비극, 임오군란 이후 위안스카이의 횡포, 6ㆍ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침입 등은 일본에 의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보다 훨씬 장기간일 뿐만 아니라 극도의 착취를 야기했다. 송이나 명이 다스리던 시대처럼 우호적인 시대도 있었지만, 이는 당시 중국의 북방을 침략한 민족이 있어서 한반도에 무력을 행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강대국으로서 언제나 우리에게는 침략국이었고, 앞으로도 그 어떤 나라보다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리고 베트남 등 중국의 다른 주변 국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국은 2,000년 이상 한족을 중심으로 한 여러 민족이 제국을 형성했고 지금도 한족이 56개 민족을 지배하고 있다. 그중에는 티베트족 등과 같이 독립을 외치는 민족도 적지 않으니 그야말로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끝난 가장 야만적인 제국주의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사실 중국(中國)이라는 이름 자체가 제국적이다. 중국인은 우주를 중심과 주변으로 이해하고 중국과 중국인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부해왔다.

독도 문제를 따질 때에 흔히 고지도가 등장하는데, 고지도를 볼 때마다 곤혹스러운 점은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다. 1894년에 시작된 청일전쟁에서 1895년 일본이 승리해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가 완전한 독립 관계로 될 때까지 사대니 조공이니 책봉이니 하는 종속 관계가 지속되었다. 1897년 조선은 대일본제국이라는 이름과 유사하게 대한제국이라고 국호를 정하고 중국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1980년대 말까지 우리에게 중국은 당시의 중공이었던 지금의 중국이 아니라 지금의 타이완, 즉 자유중국이라고 부른 나라였다. 우리가 우리를 자유대한이라고 부른 것도 자유중국을 따른 것이었다. 타이완의 독재자인 장제스는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 가장 숭상된 위인으로 타이완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숭상되었을 것이다. 그는 1953년 한국 최고의 훈장인 건국훈장을 받았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조선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되지만, 실제로는 임시정부에 대해 소극적이었고 광복군을 국민정부 휘하에 두려고 했다는 등의 평가도 있다. 특히 1942년 카이로회담에서 미국이 제안한 중국의 한반도 신탁통치안을 지지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랫동안 장제스나 쑨원을 대단한 위인으로 받들었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장 장제스는 1928년부터 1975년 죽을 때까지 무려 47년간 독재를 했다. 물론 1948년 타이완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남한을 승인하고 남한이 최초로 수교한 나라가 타이완이었으며 6ㆍ25전쟁 때에도 지원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도 미국이라는 제국의 대아시아 전략의 일부였을 뿐이다.

권력 사회의 인간과 생태 파괴: 전통 사회 중국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사는 장소와 입는 옷, 먹는 음식이 제한받았다. 황제는 황제에게 맞는 예가 있고, 제후에게는 제후로서 지켜야 할 예가 있으며, 서민은 남을 먹여 살려야 할 의무가 있었다. 자신의 본분을 뛰어넘는 행위는 비례(非禮)로 취급되어 처벌 되었다. 관리와 귀족 등 지배계층은 특권적 권리를 보장받으며 대대로 부귀를 누릴 수 있었고 평민이나 하층민들은 신분적 제약과 가난의 대물림으로 인해 굴종적 삶을 살았다. 중국에서 문명이 발생한 이래 계속되어 온 신분 차별 의식은 예(禮)라는 개념으로 포장되어 위정자들의 통치 이념으로 활용되었다. 그 근간이 되고 있는 충효 이념은 동아시아 제국 백성의 의식 세계를 수직적 명령과 복종이 당연시 되는 가치 체계를 형성하도록 했다.

평민 계급은 신체의 자유를 누리면서 성 밖에 살며 농사를 짓거나 성안에 살며 공상(工商)에 종사했으나, 차차 귀족의 압박을 받게 되어 노예와 같이 되어 지배자들을 증오했다. 하왕조부터 수많은 노예가 존재했으나 노예제도가 가장 발달한 시기는 상왕조였다. 노예주인의 사유재산인 수천만 명의 노예는 노예주인이 죽으면 함께 생매장되었다. 은허에서 발굴된 상왕조의 무덤은 1기에 400명의 노예가 순장된 비참함을 보여준다. 살아서 노예는 주인의 명절맞이나 제사에 소, 양, 개, 돼지처럼 희생물로바쳐졌는데 노예 값이 동물보다 훨씬 싸서 그 희생자 수는 동물보다 많았다. 갑골문에는 한 번에 노예 2,656명을 죽였다는 기록도 나온다. 당연히 노예들은 이런 비인간적인 사회에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직접 반란 노예들을 추격하고 진압했음이 갑골문에 여러 번 기록되었다.

중국 권력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생태 파괴였다. 그 기본적인 요인은 인구 과잉으로 인한 무한 벌목과 농경이었다. 마오쩌둥은 물론 현 정권까지 이르는 수천 년에 걸친 자연 파괴로 중원의 코끼리가 멸종했고, 지금도 세계에서 오염도가 극심한 도시 중 6개 도시가 중국에 있다. 전국 3분의 1의 토지가 산성비로 침식되었고, 전국 도시를 흐르는 하천의 4분의 3이 인간이 마시기는커녕 물고기가 살기에도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수중의 납 함유량이 세계보건기구 WHO가 정한 표준의 2,400배에 이르는 곳도 있다. 그러니 중국이나 동아시아에 대한 허위 중 가장 심각한 것이 그곳에서는 자연을 사랑하고 숭상하며 자연 속에서 살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흔히 이러한 주장은 서양에 반대되는 것으로 주장되지만, 적어도 지금의 서양과 비교할 때 생태 파괴는 서양에서보다 동양에서 훨씬 심각하다.

또한 중국은 그 문명의 시초부터 마지막까지 기근이 문제였다. 1961년에는 1,000만 명이 아사했지만, 당시 미국의 곡물 원조 제안을 거부했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은 인류 역사상의 대기근은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지 못한 중국 같은 독재국가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인터넷 등으로 인해 기근에 관한 정보가 유통되지 않을 수 없지만, 얼마 전까지도 중국은 정보 유통에 제약이 많았다. 지금 북한이 그런 문제를 안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시는 제국 식민지가 아닌 자유와 평등의 땅이기를: 제국을 단순하게 막강한 나라라고 한다면, 이제 그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곳에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중국이 조만간 최대의 정치대국, 군사대국, 경제대국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한반도에는 커다란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과거의 호란(胡亂)보다 무서운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그런 일이 생길 수 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이 과거보다 얼마나 문명적인지 아니면 야만적인지 알 수는 없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중국을 문명적이라거나 야만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중국을 상대적으로 문명국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 중국을 형성하는 56개 민족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을지 아니면 언젠가 독립을 요구할지는 알 수 없지만, 각 민족이 그 자결권을 주장한다면 인정해야 한다. 지금 타이완이나 티베트에는 독립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지역의 주민 다수가 독립을 요구한다면 독립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 결과가 56개 민족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중국은 56개의 나라로 나누어질 수도 있다. 그것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제국의 침략이나 지배의 논리인 유교나 도교 등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고, 그 반대인 초기 신화나 묵가의 겸애(兼愛)나 비공(非攻) 사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필요하다.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에 더는 제국주의가 창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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