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발렌틴 투른 지음 | 에코리브르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발렌틴 투른,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지음
에코리브르 / 2017년 5월 / 390쪽 / 20,000원
우리는 충분한 먹을거리를 갖게 될 것인가
미래에 인류는 충분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을까? 이 책의 핵심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잠정적인 대답을 한다면, 이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좋은 소식은 있다. 즉 충분한 식량이 있고, 변화할 여지도 있고, 창의적 아이디어도 있고, 새로운 식량으로 공급할 자원도 있고, 세계는 100억 명을 위해서도 충분한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합심해서 약탈적 자본주의를 제어해야 하고, 농업과 식품 산업에 한계를 정해줘야 하며, 공평한 세계 무역과 정당한 분배를 확고히 자리 잡게 해야 하며, 동일한 교육 기회를 정착시키고 여성에 대한 억압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런 말은 오로지 세계 정부라야 밀어붙일 수 있는 불가능한 과제처럼 들린다. 하지만 정반대일 수도 있다. 즉 강력한 지역과 지방의 구조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위에서부터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최고로 좋은 방법은 정치적ㆍ문화적 차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요컨대 육류에 대한 소비를 건강한 수준에서 제한하고, 음식물을 덜 버리고, 지역에서 생산하는 재료로 요리하는 즐거움을 갖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이미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제 나쁜 소식도 전해야 한다. 요컨대 우리는 전 세계가 붕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 남작의 수준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렸다. 많은 지역에서 지하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바다는 곧 고기를 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인간에 의해 발생한 기후 변화로 농업은 끔찍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즉 가뭄과 홍수로 수확해야 할 곡식을 망치고 가축이 굶어 죽을 것이다.
전 세계를 장악한 식량 산업의 주장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배불리 먹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식량 생산을 2배로 늘려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유전자 기술이라는 미명 아래 제2의 녹색혁명을 요구한다. 그런가 하면 비관주의자들은 분배 전쟁을 경고하고 심지어는 문명사회가 붕괴할 것이라 예언한다. 유럽은 이런 사건을 경험하지 못했으나, 2007/2008년 발생한 엄청난 식량 위기는 40개국 이상에서 무시무시한 폭동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수년 동안 세계는 때때로 생산한 양보다 더 많이 소비했다. 전 세계의 식량 비축량은 1980년대부터 감소해 위기가 발생할 경우 겨우 2개월간 공급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70억을 넘어섰고, 이는 1960년 이래 2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모든 사람은 먹을 수 있어야 하며, 자신과 아이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동일한 기회와 삶을 영위할 권리도 당연히 주어져야만 한다.
식량에 대한 권리
유엔은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적극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언제 어디에서든 안전해야 하며 식량을 공급받을 기본 권리를 갖고 있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식량에 대한 권리는 오늘날 다른 권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짓밟히고 있다. 전 세계 농업이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굶주리고 있는 형편이다. 전 세계 사망 건수 가운데 절반 이상이 기아와 잠재적 기아의 직접적 결과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와 같은 사망의 주된 원인은 결코 자연에 있지 않고, 사람의 손에 의해 생겨났다. 이와 동시에 ‘발전한’ 국가에 살고 있는 인류의 나머지 절반은 지나치게 배불리 먹고 엄청난 양의 멀쩡한 식품을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통에 버린다.
기아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 세계농업보고
미래 세대가 어떻게 살지는 현재 우리의 농업 상품과 식습관 형태에 달려 있다. 핵심적 요구 사항은 이러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농업에 관한 지식과 연구와 기술을 만들어내고, 전파하고, 이용하면서 굶주림과 기아를 줄일 수 있으며, 시골에서의 삶을 향상시키고, 정당하고, 생태를 위하고, 경제적이면서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을까?” 2003년 세계은행과 유엔이 주도해 열린 국제 학술 프로젝트는 바로 이와 같은 질문을 초반에 내걸었다. 이름하여 “발전을 위한 농업에 관한 지식, 과학과 기술의 국제 평가(IAASTD)”, 줄여서 ‘세계농업보고’라고 한다. 전문가들이 모여 4년 동안 집중적으로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한 결과 2008년에는 「전 세계 농업, 그것의 역사와 미래에 관한 지식의 상태」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식량 주권
세계농업보고는 유엔의 논의 과정에서는 처음으로 ‘식량 주권’이라는 정치적 개념을 사용한다. 이 개념은 1996년 국제 소농 및 농장 일꾼들의 운동이던 라 비아 캄페시나에서 비롯한 것인데, 이들은 국제 무역 기구의 무역 규정과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의 신자유주의적 대출 부과금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그와 같은 개념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식량 주권이란 식량 생산의 민주화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발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개념은 정당한 무역 관계와 공정한 가격 책정, 생존을 확보해주는 소득, 단체를 조직할 수 있는 자유, 교육, 국가의 채무 상환, 비옥한 토지, 물과 종자, 천연 자원을 손질하고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과 같은 수많은 측면을 포함한다.
식량과 소비를 정치적 행동으로 파악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모든 사람은 이미 식량 주권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고 있다. 다시 말해, 채식주의와 천연 재료로 만든 식품 선호, 공정 무역, 식량의 대량 생산을 막는 행동, 식량 공동 구매, 협력 농업이라는 발상, 학교 및 이웃 정원, 교환 시장과 지역 화폐 등은 산업화한 농업과 식량 그리고 식량의 무역을 쥐락펴락하는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출발점이다.
종자 독점
‘종자’라고 하면 우선 몬산토를 떠올리는데, 우리는 이 대기업의 회장 휴 그랜트와 인터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인터뷰에 대해 허락도 거절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새로운 질문만 던지고 있다. 또 우리는 몬산토의 지사인 ‘도널드 댄포스 식물과학센터’와도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댄포스 센터는 내 요구를 이렇게 거절했다. “우리 프로젝트를 공개하면 신랄한 논쟁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1년 뒤에 다시 와주시길 바랍니다.”
다행히 종자를 다루는 업체 중 세계 7위의 대기업인 바이엘 크롭사이언스와 미팅 날짜를 잡았다. 홍보 대변인 리하르트 브로임은 나를 그의 상사인 슈테펜 쿠르차바에게로 안내했다. 나는 홍보실의 두 사람에게 내 영화는 유전자 변형 기술을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으며, 다만 바이엘이 왜 자사의 현대적 종자가 기아를 퇴치할 수 있다고 믿는지 보여주려 할 따름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바이엘은 국내의 부정적 분위기로 말미암아 독일에 있는 유전자 기술을 포기했고, 그 때문에 우리는 외국에 있는 바이엘 연구소 가운데 한 곳에서 촬영을 해야만 했다. 참고로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작물은 바로 쌀이다. 인류의 절반이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는 까닭이다. 바이엘은 쌀 분야에서 오늘날 세계 시장의 선두 주자이며, 오래전부터 유전자 변형 기술을 사용해(혹은 유전자 변형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수확량이 많은 품종을 개발하는 중이었다. 브로임은 이렇게 말했다. “농부들이 우리의 하이브리드 쌀을 재배하면 20퍼센트 더 많이 수확할 수 있습니다. 소농들에게는 정말 이득인 셈이죠.”
2개월 후 우리는 벨기에의 겐트에 있는 바이엘 연구센터와 약속을 잡았다. 바이엘 건물 입구에서 안전 검사를 한 뒤, 요한 보테르만 박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보테르만은 말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6억 톤의 쌀을 생산하고 있어요. 그런데 2020년까지 7억 8000만 톤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쌀 수요가 15억 톤에 이를 것입니다. 해결해야 할 과제치고는 정말 어려운 문제죠.” 해결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보테르만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만일 우리의 지식을 동원해서 농업에 적용한다면 가능합니다. 제발 저희 제품을 유전자 기술로 재배했는지 전통적 방식으로 재배했는지에 따라 판단하지 마시고,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로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현재 널리 퍼져 있는 유전자 기술 혐오에 대해 언급했다. “사실 우리는 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는 유전자 기법에 의한 농업을 받아들이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견해는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굶주리는 사람들이 10억 명에 달하는 지금 환경에 안전한지 여부를 모른다는 이유로, 혹은 장기적인 효과를 검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하나의 기술을 배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보테르만 박사는 회사의 대표와 똑같은 입장을 취했다.
바이엘 사장 리엄 콘든의 메시지는 아주 분명했다. “혁신만이 힘든 과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100억 명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도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농부들에게 건강하고 튼튼한 식물로 자라는 종자를 제공하는 한편, 해충과 잡초 그리고 박테리아로부터 농작물을 지켜줄 수 있는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 등의 화학제품도 제공합니다.” 농약은 바이엘이 중점을 두고 있는 제품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화학 물질로 만든 ‘몽둥이’의 성능이 점점 나빠졌다는 사실을 회사 홍보용 카탈로그도 숨길 수는 없었다. 그사이 제초제에 내성이 생긴 잡초가 217종이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바이엘에 결코 해로운 일이 아니다. 그럴수록 농업에는 또 다른 새로운 제초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콘든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생산성을 올리려면, 하이브리드 종자를 널리 보급하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이 종자를 사용하는 농부들은 완전히 반해버렸죠. 수확이 엄청 늘었거든요.”
농부의 손에 달려 있는 다양성
인도 오리사의 주도 부바네스와르 공항으로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은 운전기사 산토시였다. 우리의 심정은 복잡했다. 일주일 전에 태풍 파일린이 이곳을 초토화시켰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대부분 지역을 덮쳐 60만 명이 대피하고 가옥과 농작물이 황폐화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과연 촬영을 할 수나 있을까? 산토시는 우리의 질문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능해요.” 마침내 우리는 발라소레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을 작은 호텔 앞에 쿠숨 미슈라와 아쇼크 파니그라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둘은 이 지역에서 나브다냐라는 종자 보존 사업을 지도하는 부부였다. 이들은 농부가 아니고 대외적으로 농부들을 대표할 따름이었다.
이 사업은 원래 인도 북부에서 반다나 시바가 시작했다. 나는 몇 달 전, 이 카리스마 넘치는 행동주의자 여성을 지인의 생일 파티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인도에 한 번 와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그녀는 태풍이 올 것이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여행을 거절하려는 우리의 결정에 반하는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14년 전 마지막 태풍이 불어 닥친 다음 그곳에서 나브다냐를 시작했습니다. 농부들의 들판이 완전히 황폐화되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면, 우리 시스템이 대기업 시스템보다 훨씬 안정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입니다.”다음 날 아침, 우리는 출발했다. 논에는 물이 손목 깊이 정도 차 있었다. 쿠숨이 논 가장자리에 서서 태풍이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농부 락스미다르에게 물었다. “엄청난 재난이었지요. 물은 지난주만 하더라도 6피트 정도, 그러니까 제 목덜미까지 찼습니다.” 식물은 흙이 잔뜩 묻은 채 논에 넘어져 있었다. “이 벼 품종은 스와르나(Swarna)라고 하는데, 정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구입한 하이브리드 품종이지요. 유감스럽게도 이 식물은 완전히 죽어서 종자 한 톨도 수확할 수 없을 겁니다.”
옆에 있는 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쪽 벼는 똑바로 서 있고, 녹색 창연한 벼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이건 데시(Desi)라고 하는데, 홍수에도 잘 견디고 곧 꽃을 피울 겁니다. 수확도 좋을 것 같아요.” 데시는 이 지역의 토종 종자였다. 락스미다르가 말했다. “앞으로는 데시만 심을 작정입니다. 하이브리드는 절대 심지 않을 거예요. 데시는 씨앗이 여물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홍수에도 끄떡하지 않는 장점이 훨씬 중요하니까요.” 하이브리드가 더 많은 수확을 가져다준다는 말도 믿을 수 없다고 농부는 말했다. “하이브리드는 습기가 너무 많지 않고 또 너무 건조하지 않아야 해요. 게다가 비료를 충분히 줘야만 10~20퍼센트 더 많이 수확할 수 있습니다.” 락스미다르는 말했다.
“내 논은 0.5헥타르 정도 됩니다. 수확을 하면 보통 우리 가족 전체가 1년을 먹을 수 있지요. 하지만 올해는 홍수로 수확할 쌀의 80퍼센트를 잃어버렸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린 쌀을 구입해야 해요. 지금도 빚이 많은데 말입니다.” 쿠숨은 돈을 얼마나 손해 봤는지 물었다. “100파운드(50킬로그램) 당 종자는 1800루피, 비료는 7500루피를 지불했죠.” “그러면 데시는요?” “돈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죠. 작년에 모아둔 종자니까요. 게다가 데시는 인공 비료를 줄 필요가 없거든요.”
저녁이 되어 우리는 피곤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얘기하던 농부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의 집을 꼭 들러야 한다고 고집했다. 피탐바르 테나는 우리에게 자신의 특별한 보물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건 바로 종자를 보관하고 있는 여러 개의 작은 통이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20가지 종류의 벼 품종을 소개했다. 각각의 통에는 품종의 이름도 붙어 있었다. 농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하이브리드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종자들을 계속 보관했죠. 다른 농부들한테서 얻은 새로운 종자들도 모아두었고요.” 쌀알은 건조한 상태에서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에 농부들은 필요할 때 종자를 서로 나눈다. 이때 그들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호박을 비롯해 다양한 채소 종자도 보관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보관하기 가장 좋은 종자를 고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농부들이 수천 년에 걸쳐 증대 및 개선시킨 종자는 그 지역의 기후와 토질의 조건에 가장 적합하다. 반대로 늘 평균적인 토질과 평균적인 강수량에 맞춰 개발한 하이브리드 종자는 그렇지 않다. 조금이라도 조건이 달라지면 수확이 줄어들기 때문에 고향에서 전통적으로 심던 품종이 대부분 더 많은 수확을 낸다.
쿠숨과 아쇼크 부부는 우리를 그들의 고향 마을인 만갈푸르로 초대했다. 그들의 보물은 논에 숨어 있었다. 멀리서 보면 다른 논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논이었다. 아쇼크가 울타리를 개방하자 논으로 가는 좁은 길이 나왔다. 작은 간판으로 논을 구분해놓았다. 어떤 구간은 이미 수확을 한 상태이고, 또 어떤 곳은 벼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 종자를 담는 통에는 반짝이는 쌀알이 가득 찼다. 대부분의 벼가 진한 녹색을 띠고 있는 가운데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 잎사귀의 벼도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곳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벼 품종이 모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쿠숨이 말했다. “이 논에는 727종의 다양한 품종이 자라고 있지요. 이곳이 오리사 주에 있는 최초의 지역 종자 은행을 위한 터전입니다.” 내가 말했다. “마치 학자나 실험실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자 쿠숨이 미소를 지었다. “기술 따위는 필요하지 않아요. 지식은 수천 년 동안 농부들이 잘 보관 및 전수하고 있으니까요. 학자야말로 이곳 농부들로부터 배워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사람이 바로 나브다냐를 세운 반다나 시바다. 1991년 인도의 인권 운동가 반다나 시바가 설립한 지역 공동체이자 단체인 나브다냐(‘새로운 종자/씨앗’이라는 뜻)는 사적인 특허 사업과 가장 반대되는 발상으로 설립되었다. 이 단체의 목표는 토종을 보호하고, 생물학적 재배 방식을 확대하고, 특허권 있는 종자나 하이브리드 종자에 농부들이 종속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시민들에게 건강한 식품을 제공하며 지역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