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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와 문화

얀 네데르베인 피테르서 지음 | 에코리브르



지구화와 문화

얀 네데르베인 피테르서 지음

에코리브르 / 2017년 4월 / 238쪽 / 16,000원





지구화 - 공감과 논란들

남반구와 북반구의 분석가들과 정치인들은 적어도 지구화에 대한 몇몇 양상에 합의한 바 있다. 지구화는 기술 변화들 때문에 형성되며, 국가의 재구성을 내포하고, 지역화와 궤를 같이하며, 비균질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지구화는 시공간의 압축이라는 점에도 합의에 이르렀는데, 이런 인식은 논의를 촉발하기에는 너무 모호하고 일반적이다. 지구화는 더 강화된 상호작용이 이전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그리고 넓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주장인데, 다른 말로 하면 압축된 시계에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이 견해는 너무 단순하고 평면적일 수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지만, 지구화와 관련해서 합의와 논란 사이에 선을 긋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지구화는 합의보다는 논란을 더 많이 초래하고 있는데, 논란에 비해 동의의 영역은 좁다.

지구화에 대해 논란들은 무엇이 지구화인가, 지구화는 얼마나 중요한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서 지구화의 방향이나 정치에 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제를 포괄한다. 그런데 근원적인 것에 대한 논란은 일상적인 지구화 정치와 얽혀 있다. 그리고 지구화는 다차원적인가? 지구화는 복합적이고 다차원적 과정이라는 생각은 널리 확산되어 있지만 이는 불분명하다.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사회적 역동성은 단일한 지구화의 다양한 양상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다. 이들은 서로 섞이고, 관통하는 각각의 프리즘인데, 이를 통해 지구화가 각기 다르게 꼴을 갖추고, 경험되고, 발견된다. 따라서 개별 사회과학은 지구화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견지한다.

한편 경제적 지구화는 종종 “기업의 글로벌리즘”으로 지칭되지만, 가치관 영역의 지구화는 “글로벌 인문주의”로 불리고 있다(Gurtov 1994). 정치의 지구화는 다원주의의 연장 또는 “후기국제주의 정치”로 지칭되고 있다(Rosenau 1990). “위로부터의” 지구화는 “아래로부터의” 지구화와는 다르다(Falk 1994). 이런 용어들이 죄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다차원적 과정으로 정의되는 지구화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다. 지구화를 실제로 재현해보면 경제학의 국제적인 무역 통계나 경영학 잡지의 열성적인 견해보다는 후기입체파 회화에 더 가까울 것이다. 또 다른 논란은 지구화에 대한 정량적, 정성적 시각 사이에서 일어난다. 다수의 경제학자는 지구화를 본질적으로 경제 현상으로 파악하며, 이는 통계수치를 통해 증명하거나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에서 주도적인 생각은 지구화를 “객관적”이고 “실재”하는 지구화인 무역, 투자, 그리고 재정 통계로 국한하고, 나머지는 환상이나 신화라고 치부한다(이를테면 Krurgman 1996, Sachs 1998). 이런 접근법에 따르면 지구화의 구역을 제한하거나 지구화의 발생이나 의미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나는 이런 실증적 접근의 유효성을 두고 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지만, 글로벌 의식과 글로벌 프로젝트 같은 지구화의 차원들을 고려한다면, 이는 부분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지구화에 대한 좀 더 복합적인 평가는 국제정치를 비교할 때 두드러진다(이를테면 Palan 2000, Woods 2000). 지구화는 본질적으로 다층적 시각과 총체적 접근을 요구한다. 비록 지구화에 대한 교과서들이 있지만, 지구화에 대한 표준 교과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합의된 바가 없다. 또 기존 교과서는 자신들을 분과 학문의 특성과 시각들 속에 가두고 있다.

지구화는 최근 또는 오랜 기간의 역사적 과정인가? 연구자들은 지구화의 시기에 대해서도 매우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대부분 경제학자처럼 지구화를 최근 30여 년간 진행된 과정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장기간의 역사적 과정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지구화에 대한 공통 정의가 없으며, 이 질문은 매듭이 지어질 수 없다. 이 논의를 중단하고, 현재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화라는 말로 1970년대 이후의 지구화 과정을 특징지어 타협할 수 있다. 지구화란 무엇인가? 지구화는 경제와 정치의 연결성이 강화되는 객관적ㆍ실증적 과정이다. 또 더욱더 긴밀해지는 글로벌 상호 연결성에 대한 집단적 인식으로 의식 속에 펼쳐진 주관적 과정이고, 글로벌 조건들을 구체화하려는 특정한 글로벌 프로젝트들의 숙주이다. 어떤 지구화가 논의되고 있는지는 항상 불분명하다.

그리고 지구화는 관리할 수 있는 것인가? 부와 권력의 불평등은 매우 크고 지금도 심화되고 있다. 현재 권력 상황은 민주적 개혁이나 다원주의보다는 전쟁을 유발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화를 관리하고 조정하고 형성하는 몇 가지 형식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글로벌 자유방임주의는 몇몇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지 모른다(Soros 1998, 2002 비교). 선진국은 투자와 무역, 금융에서 새로운 글로벌 규칙들을 선호한다. 스펙트럼의 또 다른 끝에 위치하고 있는 “계획된 지구화”는 세계 사회주의의 추종자들 사이에서만 호응을 얻고 있다. 광범위한 중간층은 관리 가능한 지구화를 선호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개혁이 현존하는 구조 안에서, 그리고 새로운 기구들을 통해 실행되어야 하는가?

좋은 예는 국제적 금융 체제의 구성인데, 이를 위해 적절한 조정이 필요한가? 아니면 새로운 금융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가? 폭넓은 개혁 동의안에 대해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그리고 미국 재무국은 “투명성”과 회계 제도의 표준화와 관련해서 아주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이런 보수적인 태도는 자본주의의 조정에 대한 워싱턴 컨센서스에 부합한다. 세계은행과 OECD는 중도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높은 지불 준비금 비중, 역외은행 이용에서 높은 장벽 설치, 국제기구들에 대한 적절한 개혁 등을 요구한다. 한편 유엔과 글로벌 사회운동들은 가장 강력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들은 국제적 탈세와 “핫 머니”(단기투자성 자금)를 제한할 수 있는 글로벌 중앙은행 같은 새로운 국제기구들을 선호한다(UNDP 1999 비교).

지구화에 대한 주요 논란을 검토하면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과 학문이 지구화의 범위, 특성, 시기 구분 등을 매우 다르게 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튼 지구화와 문화에 대한 질문들을 두고 여러 논란이 있는데, 이 책은 이중 일부에 초점을 맞춘다. 이어 지구화의 시각에 대한 맥락을 논의한다. 간략히 이야기한다면 지구화에 대한 비판적ㆍ다차원적ㆍ장기적 접근은 주류 사회학 또는 다른 분과 학문보다는 역사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그리고 글로벌 정치경제학에 더 가깝다.



지구화와 인류 통합 - 우리 모두는 이주자다

인류 통합 경향과 지구화가 관련 있는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상호 연계성 또는 “수축되는 세계(shrinking world)”,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는 폭넓은 추세가 이런 방향을 시사한다. 하지만 현재의 지구화는 전 세계적으로 비균질적 발달과 불평등 심화라는 양극화 현상 또한 초래했다. 협력 확대와 불평등 심화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새로운 조합이 아니다. 따라서 지구화에 대한 장기적이고 진화론적인 시각을 통해 이 문제를 극복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목적론적 사고나 진화론적 변화로 귀착되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목적론과 관련해서는 그다지 좋은 경험이 없는데, 이는 통상 문화적ㆍ이데올로기적인 편견에 젖어 있고 지배 담론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구화가 인류 통합과 관련 있다면, 이 문제들은 다룰 필요가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전제로 지구화가 인류 통합의 추세와 관련 있다고 주장한다. ① 지구화를 장기간의 역사적 과정으로 간주할 것이다. ② 인류 통합 경향은 직선적이 아니라 변증법적 과정으로 간주할 것이다. ③ 이런 시각은 권력 및 계층 분석과 병행해 고수할 것이다. ④ 인류 결속(unity)에 대한 유토피아적 비전은 가능한 한 손쉬운 해답이 아니라 조언으로 간주할 것이다. ⑤ 지구화는 구체적인 과정들, 변화하는 주체성들, 그리고 특정한 지구화 기획들과 관련돼 있으며, 이를 포함하는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일련의 과정이다. 이 때문에 인류 통합을 향한 운동 또한 상이한 분야나 차원들을 횡단하면서 비균질하게 전개된다. ⑥ 디아스포라와 이주는 인류 통합으로 나아가는 추세의 일부이다. ⑦ 이런 평가를 기반으로 전 세계적 평등을 위한 정책이 입안되고 추진되는데, 이것이 없다면 인류 통합이라는 아이디어는 이용 대상이 되기 십상이고, 의미 없거나, 신랄하게 비판적이거나, 수사에 그치기 쉽다.



지구화와 문화 - 세 개의 패러다임

문화적 차이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온 방식은 지금도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이는 국가적 특성이나 정체성에 대한 친숙한 논의에서처럼 국가적 차이의 형식을 취하곤 했다. 현재 젠더와 정체성 정치, 종족과 종교 운동, 소수자 권리 그리고 토착민과 같은 차이에 기초한 다양한 양샹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또 다른 논점은 우리가 “문명의 충돌”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적 차이는 불변적이고, 경쟁과 갈등을 계속 유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시에 세계적으로 상호 연결성이 강화되면서 소비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듯이 문화적 표준화와 균일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맥도널드화이다. 이전의 두 가지 문화 사이의 관계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셋째 태도에 의하면, 위치들과 정체성들을 횡단하는 혼종화나 문화적 혼합 과정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메타 이론을 반영한 것인데, 이에 따르면 문화적 차이에 대한 시각은 단 세 개뿐이다. 문화적 차별주의 또는 차이의 지속, 문화적 수렴 또는 문화적 동일함 그리고 문화적 혼종화 또는 혼합의 진행이다. 개별 입장들은 특유의 이론적 수칙과 관련돼 있는데, 이를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이들은 각기 특정한 차이의 정치학을 재현하는데, 영속적이고 불변하거나, 지울 수 있거나 지워지거나 혼합된 것으로, 이 과정에서 지역을 초월해 차이의 새로운 양상을 빚어낸다.

이것들은 또 서로 다른 주체와 더 큰 시각과 관련돼 있다. 첫째 시각은 이와 관련한 가장 오래된 시각인데 문화적 차이가 불변한다는 것이다. 둘째 시각은 문화적 수렴 논지인데 세계 종교와 마찬가지로 보편주의의 초기 형태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이 두 가지 시각은 모더니즘의 변형으로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버전으로 각기 다르게 재생되거나 갱신되었다. 셋째 시각은 혼성화인데, 이는 여행하는 문화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감수성을 가리킨다.

미래들: 이런 세 가지 패러다임에 의해 환기된 미래들은 극적으로 다르다. 맥도널드화는 승리에 도취된 미국화와 세계 차원의 “철장(iron cage)”에 대한 우울한 이미지 그리고 세계적인 문화적 각성을 모두 환기시킨다. 마찬가지로 문명의 충돌은 철의 세계라는 지평을 열어주는데, 이는 문화적 분할이라는 매우 염세적인 정치학이며, 저주이고, 인간성을 지속적인 갈등과 경쟁으로 몰아간다. 다시 말해 형언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진 군도 같은 세계, 전쟁의 대화나 다름없는 인간의 대화, 영속적인 전장인 글로벌 에쿠메네를 낳는다. 정치학자인 벤저민 바버는 『지하드 대 맥월드』(1995)라는 저서에서 제3의 선택인 혼합이 존재하지 않는 이 두 가지 시각의 충돌을 보여주고 있다. 혼합 또는 혼종화는 이론과 마찬가지로 경험의 차원에서도 결말이 열려 있다. 이것의 새로운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향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이는 현존하는 매트릭스나 기성 패러다임과는 맞아들어가지 않으며, 이것 자체가 패러다임의 이동을 뜻하기 때문이다.

좀 더 깊은 층위에서 본다면, 각 패러다임은 특정한 감수성과 우주론과 공조한다. 카스트 제도에서의 제의적 순수성과 마찬가지로 차별주의 패러다임은 순수성의 원칙을 추종한다. 재정복 이후 에스파냐에서 피의 순수성과 귀족들의 혈통에 대한 집착은 나중에 “인종”과 계급에 대한 사고로 번역되었다(Nederveen Pieterse 1989: chaper 11). 수렴의 패러다임은 발산 이론을 추종하는데, 이에 따르면 현상은 존재들의 궁극적이고 신비한 영역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다. 영지주의에서처럼, 이것의 신성한 버전에는 영적 힘의 중심에서 외부로 발산한다는 신학과 우주론이 반영된다. 발산, 보급, 갈라짐의 사이클 이후에는 “집합”의 사이클 또는 수렴의 과정이 존재한다.

이런 우주론의 일시적 반영은 고대 제국 체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서 제국은 세상의 둘레이고, 황제는 이것의 중심이다. 이집트 파라오와 중국의 황제, 그리고 로마제국 황제는 모두 다 세상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왕위의 신성함은 왕이 자신의 백성과 영토를 체현한 존재라는 관념에서 온다. 서구의 제국주의와 이것의 문명화 사명 또는 백인의 책무는 이런 시각의 또 다른 변형이었다. 탈식민화 이후, 제국의 중심에서 외부로 뻗어나가는 방사의 원리는 기존 구조를 존속시켰지만, 이제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 이는 종속 이론 그리고 문화제국주의와 유럽중심주의 비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제3의 시각은 종합으로서 이런 양극단의 시각들 사이에서 용매로 작용한다. 보통 이 시각은 앞선 두 가지 원칙에 힘입어서 만들어졌으며, 이들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이는 순수성과 발산, 지역과 글로벌 사이의 긴장을 변증법적으로 해결하는데, 이에 따르면 지역들은 글로벌 안에 있고, 글로벌은 지역 안에 있다. 이런 종합적 움직임이 작동하는 사례를 크리스마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축제는 지구화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이는 혼합주의라는 특질에서 유래한다. 혼합주의는 개별 장소에서 특정한 관습들과 전통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보호자 역할을 하는 지역주의에 승리를 안기고 있다”(Miller 1993: 25).

각 패러다임은 지구화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문화적 차별주의에 따르면, 지구화는 단지 표층적 현상이다. 즉 진정한 원동력은 지역화 또는 지역적 블록의 형상인데, 이는 문명적 클러스터들과 상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지구화의 미래는 지역 간의 경쟁이다. 수렴 원리에 따르면, 현재의 지구화는 뚜렷한 서구화 또는 미국화이며, 고전적 제국과 근대화 논지의 할부금을 납입하는 것이다. 혼합적 접근방식에 의하면, 지구화 과정의 결과는 열려 있고, 현재의 지구화는 서구화만큼이나 동방화되는 과정이며, 다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처음에 이야기한 두 가지가 충돌하는 경향, 즉 문화적 차이와 지구화에 대한 자각의 증대가 단순한 모순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 현상이라는 점이 마침내 드러났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자각의 증대는 지구화의 기능이다. 증가하는 문화 횡단적 커뮤니케이션, 이동성, 이주, 교역, 투자, 관광 등으로 인해 문화적 차이를 자각하게 된다. 차이의 정치학의 또 다른 측면은 인정 추구인데, 여기에는 평등, 평등한 권리, 동등한 대우에 대한 요구가 담겨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차이의 공동 우주에 대한 요구이다.

이런 견해들은 각자의 틀 안에서 지지자들을 끌어들이며, 이들의 논쟁은 모든 영역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이론의 여지없이, 문화적 자기 이해와 경험에 따른 증가는 제3의 시각이 다른 두 개의 시각보다 더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동서양 융합의 아이디어는 지배적인 동기로 작용한다. 아프리카에서는 현지와 외국의 실천을 재조합한다는 생각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혼합주의와 크레올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패러다임이 깊은 자국을 남겼기 때문에 정체성과 의미를 둘러싼 논쟁은 어디에나 편재하며, 혼종성의 의미와 역동성에 대해서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다.



혼종화로서 지구화

구조적 혼종화: 필자는 지구화를 세계적 뒤범벅을 탄생시키는 혼종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문화적 형식들에 관한 한 혼종화는 “형식들이 기존 관행을 떠나 새로운 관행 속에서 새로운 형식들과 재결합하는 방식들”(Rowe and Schelling 1991)로 정의된다. 이러한 원칙은 사회를 조직하는 구조적 형식들에도 적용된다. 국민국가의 형성이 지구화의 표현이자 기능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주장은 이제 익숙하다(Greenfield 1992). 동시에 지구화의 현재 국면이 국민국가들의 상대적 약화를 수반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졌다. 예컨대 경제적 글로벌리즘의 맥락에서 “국가 경제”는 약화되고 문화적으로는 애국주의가 쇠퇴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역시 단방향성을 넘어선다. 요컨대 인구학적 지구화를 형성하는 이주의 움직임들은 정치적으로 친연성이 있는 아일랜드인, 유대인,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들과 망명당하거나 추방된 토론토의 시크교도들, 런던의 타밀인, 독일의 쿠르드인, 인도 티베트인들의 경우에서처럼 부재(不在) 애국심과 원거리 민족주의를 야기할 수 있다(Anderson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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