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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을 바꾼 한글자

이강석 지음 | 멘토프레스



내 운명을 바꾼 한글자

이강석 지음

멘토프레스 / 2017년 4월 / 320쪽 / 16,000원





flower 나를 낮추면 꽃처럼 향기가 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은 겸손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항상 떠올리는 말입니다. 겸손한 사람을 만나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그의 인격이 느껴지고 그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점점 더 겸손한 사람을 보기 힘든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특히 지위와 학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겸손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아집이 강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강합니다. 그래서 말이 많아지고 상대를 업신여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어떻게 해야 겸손함이 몸에 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을 낮추는 자가 가장 겸손한 사람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어 겸손이 몸에 배게 하라는 뜻이겠지요. 중세의 성인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딴 프란치스코 교황은 리무진 대신 버스를 타고 다니고, 무릎을 꿇고 여인의 발을 씻겨주는 행동 등을 보여주며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어 가난한 자들 가운데 서고 있습니다. 그러한 겸허함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재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를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종교와 이념을 넘어 바티칸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또 우루과이의 전직 대통령인 호세 무히카는 관저를 노숙자들이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월급의 90퍼센트를 가난한 자들에게 기부하는 등 항상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겼습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었지만 그의 재임기간 동안 국민들은 가장 잘 살았습니다.

동서양 모든 성인의 가르침의 핵심에 겸손함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만함’이란 뜻의 pride라는 글자에 ‘제거하다’라는 뜻의 rid가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오만함은 꾸준한 수행을 통해서 없애야겠지요. 겸손한 사람은 남에게 비굴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겸손한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을 여러 번 진정으로 죽였기에 겸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죽여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겸손할 수 없습니다. 또 깊은 시련과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도 겸손한 자세를 지니기 어렵습니다. 운동장에서 시소를 타보면 알겠지만, 내가 내려가야 상대가 올라갑니다. 시소의 원리처럼 겸손은 결국 나를 낮추고 진정으로 상대를 드높이는 일입니다. 나를 죽이고 상대를 드높이는 것이 몸에 밴 사람만이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가장 차가운 마음도 녹이는 겸손한 마음과 태도를 가져보는 건 어떤가요? 내가 진정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존중하고 귀히 여기면 내 겸손의 향기는 사람들 마음속에 스며들어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항상 나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내 마음과 항상 주파수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겠습니까? 이때 중요한 것은 겸손하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한 척하면서 마음속에는 오만한 마음을 품거나, 겸손한 것이 비굴함이 된다면 진정한 겸손함이 아닙니다. 조화가 향기가 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일상에서 겸손을 훈련하기 위해 flower를 떠올리기 바랍니다. ‘꽃’이라는 뜻의 flower에는 ‘낮은’이라는 의미의 low가 들어 있습니다. 두 개의 한글자를 서로 연결하여 ‘나를 낮추면 꽃처럼 향기가 난다’라고 항상 훈련해보세요. 나를 낮추다 보면 어느새 나는 꽃처럼 향기가 피어나는 사람이 됩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되겠지요. 하지만 평소 flower를 볼 때마다 자신을 낮춰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상에서 겸손을 실천해보기 바랍니다.



Chocolate 초콜릿처럼 달콤한 일은 나중에 온다

미국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 박사가 스탠포드 대학에 교수로 재직할 당시인 1966년 653명의 4살 아이들에게 했던 ‘마시멜로 실험’을 아시나요? 당시 아이들에게 마시멜로가 한 개 놓여 있는 접시와 두 개 놓여 있는 접시를 보여주고 지금 먹으면 한 개를 먹을 수 있지만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먹지 않고 있으면 두 개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고는 마시멜로가 하나만 있는 그릇을 아이 앞에 남겨놓고 방에서 나갔습니다. 아이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이 아이들을 15년이 지나 다시 만난 후 그들의 삶을 연구한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일수록 학업과 인생에서 좋은 성취를 이루어냈고, 인내하지 못한 아이들은 마약중독, 사회부적응 등 삶의 질이 한참 떨어지는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속담이 실제로 맞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켜보는 가마솥은 더 늦게 끓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빨리 얻으려고 조급한 마음을 내면 원하는 것을 오히려 더 늦게 얻거나 못 얻는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목적지에 빨리 가려고 신호를 위반하고 주행하다 사고가 나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볼품없는 나무도 오랫동안 자라면 큰 대들보가 됩니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느릿느릿 천천히 옵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싫증이 나게 마련입니다. 좋은 것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노력하는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더라도 그 과정에서 기쁨을 얻는 것이 내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노력이라는 과정을 즐기면서 얻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기다림과 안내를 일상에서 훈련하기 위한 한글자로 chocolate을 제시합니다. chocolate 안에는 ‘늦게’라는 뜻의 late가 들어 있습니다. ‘마시멜로 실험’이 상징하듯, 맛있는 초콜릿은 나중에 먹어야 정말 맛있습니다. 달콤한 초콜릿을 볼 때마다 절제하는 힘을 길러보기 바랍니다.



Part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삶은 예술이 된다

사람마다 제 나름의 직업이 있습니다. 교사든 군인이든 회사원이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동체를 이끌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분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자신의 본분을 찾는 일’이라는 뜻이겠지요?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고(그래서 ‘선생은 학생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teacher 안에 ache가 들어 있는지 모릅니다), 군인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그래서 ‘군인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Soldier 안에 die가 들어 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행위들을 두고 본분을 다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수행자라면 ‘치열한 구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일’이 바로 본분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대학동기들로 구성된 합창단에 초대받아 난생처음 화음을 같이 맞춰가며 합창연습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앞에서 합창을 지도하는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혼자 튀면 안 돼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같이 호흡을 맞춰가며 노래를 하면서 불현듯 ‘연습’과 ‘공연’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실제 그 합창단은 정기공연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연습할 때 최상의 화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과 동시에 ‘조화’라는 뜻의 harmony에는 ‘해로움을 주다’라는 뜻의 harm이 들어 있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혼자만 잘하려 하거나 나 하나쯤 대충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은 조화에 해로움을 주는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의 최선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깨뜨리지 않는 자세가 합창단은 물론 기업이나 정부든 어느 조직에나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과 조직이 이렇게 최상의 조화를 이룬다면 그 조직은 비유하자면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되어 대중들에게 멋진 공연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orchestra라는 말에는 ‘가슴’을 뜻하는 chest가 들어 있습니다. 최상의 조화를 이룬 오케스트라가 청중들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는 훌륭한 공연을 보여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한 사회를 단단히 지탱해주고 그에 속한 일개인을 아름답게 성숙시켜 줍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것처럼 자기 분수를 정확히 아는 것이야말로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본분을 바르게 해냈을 때, 세상은 톱니바퀴처럼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질서 있게 돌아갑니다. 그렇게 나는 사회공동체를 원활히 운영하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부분’과 ‘역할’이라는 뜻을 지닌 part에는 ‘예술’을 의미하는 ‘art’가 들어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 이루어냈을 때, 그것이 바로 삶을 한 차원 높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이러한 성실한 행위가 스스로를 귀한 존재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이나 직분에 귀천이나 높고 낮음은 없습니다. 다만 맡은 바 각자 할 일, 도리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의 ‘직위’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더라도 그에 걸맞은 인격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지탄’을 받을 것이고, 아무리 말단에 있더라도 당당하게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면 ‘찬탄’을 받을 것입니다.



Seat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거친 바다로 가라

‘모험의 시험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의 말입니다. 일상에 안주해 있는 자신이 아닌, 모험을 겪으면서 자신의 실체를 똑바로 대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한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안정된 삶에 길들여지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편안함에 안주해 있다가는 자신에게 예고되는 위험의 신호탄, 즉 ‘위기의 잉태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말 겁니다. 결국 안일했던 자신의 삶에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되겠지요.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편안한 삶을 박차고 나와 이상을 좇아 새로운 삶 속으로 뛰어든 사람은 지금보다 나은 발전된 모습의 자신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삶에 안주하는 것은 스스로를 초침이 멎은 고장 난 시계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내 삶을 모험 속에 내던지는 것은 움직이는 시계추처럼 심장을 박동케 하는 일입니다.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면 삶이 부패합니다. 반면 모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감’이라는 내면의 결실을 얻습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한 대학총장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무릎을 탁! 하고 친 적 있습니다. 그 대학의 목표는 학생들을 ‘모범생’이 아닌 ‘모험생’으로 만드는 것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학총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험심을 가지라고, 학생을 지원하고 독려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학생들이 졸업하고 앞으로 사회에 나가 자신감 있게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내 안’에 갇혀 있을 때는 절대 알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험은 ‘안’에서 나와 ‘저 너머’로 가는 길입니다. 저 너머에 있는 미지의 것들에 대한 동경과 설렘이 끊임없이 모험대상을 찾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미지의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호기심의 대상이 됩니다. 행한 일에 대한 후회보다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더 큽니다.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깨달음은 오로지 모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편안한 삶은 ‘지루함’을 주지만, 모험은 ‘짜릿함’을 안겨줍니다. 그러니 일상의 지루함에서 잠시 벗어나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모험의 세계로 길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더 늦기 전에 짜릿한 모험의 삶을 즐겨보길 바랍니다. 모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설렘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좌석’이라는 뜻의 seat에는 ‘바다’를 뜻하는 sea가 들어 있습니다. 좌석에 앉아 있으면 편안합니다. 좌석은 지금 자리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거친 풍랑이 이는 바다는 ‘새로운 도전’을 상징합니다. 또한 ‘고요한 바다는 훌륭한 어부를 만들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으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리(seat)에 안주하지 않고 거센 바람과 파도가 있는 바다(sea)로 나가야 새로운 삶과 조우하며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소설 『모비 딕』의 주인공 이스마엘이 고래를 잡으러 거친 바다로 나가 인생의 의미를 찾은 것처럼 모험은 삶을 무한대로 확장시켜 줍니다.



Place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인으로 살아라

‘수처작주’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조주 남화 출신의 임제선사가 한 말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그곳의 주인이 되라’는 뜻이겠지요. 자신이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임하면 직원으로 일해도 주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곳을 최고의 공간으로 만들고 정성을 다해 고객을 대하면 그 공간은 최고의 장소, 손님이 가고 싶은 최적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어떤 혼탁한 곳에 있더라도 자신이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진리는 그 어떤 회유에 휘말리거나 물들지 않습니다. ‘임금 왕’에 점 하나만 찍으면 ‘주인 주’ 자가 됩니다. 나를 우주의 중심에 세우고 바라보는 것, 그게 바로 내 인생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지금 이 순간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면 앞으로 어느 곳에서 일하더라도 내가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답게 사는 삶’을 뜻합니다. 외부의 어떤 대상이 바뀌길 바라기보다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나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어디에 있든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항상 최고의 삶, 주인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세요. 여러분은 잠시 머무는 호텔 객실이 아닌, 스스로 책임져야 할 집에 살고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소에게는 코에 뚜레를 뚫어주고, 말에게는 머리에 굴레를 씌워 사람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몸속 장기 중에 쓸모없는 것을 지닌 사람은 하나도 없듯 어디에 있든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러진 크레용으로도 그림은 그릴 수 있고, 몽당연필로도 멋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자신이 항상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인이 되는 ‘수처작주’의 정신을 가지면 주인의식을 충분히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융합할 수 있는 ‘화이부동’ 정신도 함께 유지할 수 있습니다. ‘화이부동’이란 사람들과 화합하되 자신의 영역은 지킨다는 뜻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지키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화이부동이지요. 어울리지만 주체성을 잃지 않고,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정체성도 인정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슬픈 자화상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진 풍경화 속의 한 사람이 되겠지요.

채우려 하지 않고 구하려 하지 않으면 어디에 있어도 당당합니다. ‘장소’를 뜻하는 place라는 한글자에는 ‘최고’를 뜻하는 ace가 들어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남의 눈치도 보지 말고, 남의 시선에도 구애받지 않고 항상 최고의 상태로 존재하라는 의미로 place에 ace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heart 상대의 말을 귀가 아니라 온 마음으로 들어라

우리는 상대와 대화할 때 상대방이 하는 말을 소리로만 듣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진심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남의 말을 건성건성 듣는 사람을 삶도 상투적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의 마음은 내가 열 수 없습니다. 손잡이가 상대방 쪽으로 나 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상대의 말을 경청할 때에만 상대의 깊은 마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청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진심으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그 어떤 충고보다 가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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