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스캔들
박은몽 지음 | 책이있는풍경
인문학 스캔들
박은몽 지음
책이있는풍경 / 2017년 4월 / 240쪽 / 14,500원
자유연애로 평생 사랑을 즐기다 - 니체, 릴케, 프로이트를 천재로 만든 루 살로메의 사랑
어떤 만남은 정신적 만족을 주고 어떤 만남은 육체적 만족을 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만남을 찾기는 힘들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부족을 알고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자 또 평범하기에 더 위대할 수 있는 삶이 되곤 한다. 그런데 그러기를 거부한 삶이 있다. 그녀는 정신적 만족을 주는 남자와 육체적 만족을 주는 남자를 구분하여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최고의 만족을 누렸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제도도 여자에 대한 통념도 넘어섰으며 오직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위해 살았다. 자유연애로 19세기를 풍미하며 많은 남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로 살아간 루 살로메이다.
“남자들이 원하는 것에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의 유일한 주인인 신께서 요구하는 것을 하세요.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루 살로메가 남긴 말은 지금 시대에 들어도 파격적인 면이 있다. 더구나 그녀는 생각만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다. 21세기의 여성에게도 쉽지 않아 보이는 삶이 19세기의 인물인 루 살로메에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건 단순히 외양적인 매력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61년 러시아에서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다섯 오빠와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어려서부터 철학과 종교, 예술에 흥미가 많은 데다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19세기가 되던 해에 당시 여성을 받아주는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였던 취리히 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당대의 석학, 예술가, 정신분석학자들과 상대해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 감각과 지식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그녀의 미모가 더해져 다른 어떤 여자들과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했다. 하룻밤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여자는 많아도 당대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는 내로라하는 천재들과 지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여성은 드물었다. 니체, 릴케, 프로이트 등의 천재들은 자신과 정신적 교감이 가능하고 영혼과 지성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여성에 목말랐고 루 살로메는 그런 천재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여성이었다.
철학자 니체와의 이상한 동거: 1882년, 젊은 철학자 니체는 로마에 머물던 중 성 베드로 성당에 갔다가 한 여자를 발견한다. 니체는 그녀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만나게 된 것은 어느 별이 도운 것일까요?” 21세기의 아가씨는 은빛이 감도는 금발머리에 남다른 총기로 빛나는 눈을 갖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38세의 니체 이외에도 여러 명의 남자들이 구애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이는 바로 파울 레라는 철학자였다. 그는 니체의 친구이기도 하여 니체가 살로메를 만나기 전부터 친구인 니체에게 보내는 편지에 살로메에 대한 숭배의 글들을 적어 보내곤 했다. 그러니 니체는 루 살로메를 만나기 전에 이미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보자마자 첫눈에 그녀에게 빠져들고 만 것이다.
하지만 루 살로메는 남자들의 인기에 우쭐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단순한 여자가 아니었다. 파울 레가 사랑 고백을 할 때도 루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왜 남자들은 여자들과 우정을 나눌 수 없는 건가요? 남자들과 단순하게 우정만 나누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나 파울 레는 자신의 사랑을 쉽게 접을 수 없었다. 루 살로메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여자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가 되는 여자도 아니었다. 파울 레의 구애가 계속되자 루는 아주 특별한 제안을 하게 된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있어요. 그것은 지적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이에요.” 파울 레, 그의 친구 니체, 루 살로메, 이렇게 세 사람이 지적 삼위일체를 이루고 한 집에서 함께 살자는 것이었다. 결코 평범한 제안은 아니었다. 한 남자로서 여자의 사랑을 구하는 파울 레에게 루 살로메는 소유하지 않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랑, 성적 결합 없이 정신적인 합일을 이루는 관계를 요구했다. 두 남자는 루의 뜻을 받아들였고 세 사람의 특별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세 사람은 이를 기념하여 사진을 남겨놓았는데, 흔히 루 살로메와 니체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명한 사진이다. 여기에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얼마나 숭배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루는 수레 위에 앉아 있고 레와 니체는 수레를 끌고 있다. 수레 위에 앉은 루의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다. 이때 사진이 니체의 운명을 예언한 것인지, 훗날 루 살로메에게 거절당한 후 니체는 “여자를 이해하려 하는가, 그렇다면 채찍을 잊지 마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니체는 루 살로메에게 잔인하게 거절당한 후 죽을 때까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루 살로메에 대한 니체의 사랑은 단순히 성적 호기심이나 호감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니체는 살로메에 대해 “늘 놀라우리만치 내 사고방식과 사상에 꼭 들어맞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루 살로메는 니체에게 영혼과 철학의 동반자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쉽게 포기할 수 있었겠는가.
처음 니체가 사랑을 고백했을 때 살로메는 즉각 거절하면서도 그에게 키스를 퍼붓는 모순된 행동을 보였다. 니체는 더욱 혼란스러워하면서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었지만 끝내 그녀의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두 번씩이나 청혼을 했으나 거절을 당한 그는 홧김에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고, 레와 루가 동거를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을 멀리서나마 접하고 분노했으며(결국 레도 루에게 버림받게 되지만) 평생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실연의 아픔에 빠진 니체에게 한 가지 할 일이 있었다. 1881년부터 구상하기 시작하여 루 살로메를 만나는 동안에도 그녀와 여러 번 토론을 했던 책을 집필하는 것이었다.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그는 루와 헤어진 해 겨울 제네바로 가서 집필에 몰두했다. 상처는 그를 고독하게 했고 고독은 그로 하여금 모든 세상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며 집필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니체를 대표하는 역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렇게 탄생했고, 니체 스스로도 이 작품은 루 살로메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 인정한 바 있다.
역작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니체의 말년은 행복하지 못했다. 그는 고독한 생활을 하다가 정신이상으로 인해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그곳에서 “나는 그때도 그녀를 사랑했고, 지금도 그녀를 사랑한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장미의 시인 릴케를 만나다: 1897년, 36세의 루 살로메 앞에 22세의 무명 시인 릴케가 나타났다. 아니, 릴케의 인생에 루 살로메가 나타났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리라. 루 살로메의 삶에서 릴케는 일부분일지 모르지만 릴케의 삶에서 루 살로메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저 지나가는 인연 정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젊은 시인은 루 살로메의 마력에 금세 빨려들었다. 당시 루 살로메는 법적으로 유부녀였다. 니체와 헤어진 후 레와 (섹스 없는) 동거를 지속하다가 안드레아스라는 중년의 남자와 결혼을 했던 것이다. 물론 루가 사랑해서 한 결혼은 아니었다. 안드레아스가 칼로 자해를 하며 결혼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엄포를 놓는 바람에 이뤄진 결혼이었고, 그나마 루 살로메다운 조건이 붙은 평범하지 않은 결혼이었다. “섹스는 불가! 일체의 구속을 거부하며 다른 남자와의 자유연애를 허락해야 한다.”
루는 이 조건을 몸으로 실천해 보였다. 결혼은 했으나 남편에게 구애받지 않았다. “결혼이란 서로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결혼은 구속이 될 수 없었고, 릴케는 유부녀인 루 살로메의 자유연애에 정점을 찍은 인물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릴케는 루에 대하여 뜨거운 격정과 설렘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루 살로메의 에세이 『유대인 예수』를 읽고 작가인 루를 흠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루의 미모와 지적이면서도 활달한 매력은 릴케의 마음을 더욱 세차게 흔들어놓았다. 루 역시 릴케에게 끌렸다. 니체 등과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고 파울레와 2년 동안 동거하면서도, 또 법적인 남편 안드레아스와 살면서도 성관계를 허락하지 않았던 루는 릴케를 만난 그해에 릴케의 아이를 임신하고 낙태시술을 받게 될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릴케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었다. 갓 태어난 딸을 잃은 충격으로 아들인 릴케에게 여자 옷을 입혀 키우고, 남편과 헤어진 후에는 지나친 군사교육까지 강요하는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었던 이 젊은 시인에게 14세 연상의 루 살로메는 따뜻한 품을 가진 어머니와도 같았다. 또한 해박한 지식과 예술적 통찰력을 지닌 그녀는 시인에게 멘토이자 코치가 되어주기도 했다.
“르네 마리아 릴케는 여자 이름 같아.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필명을 바꾸는 게 어때?”
“필체가 싸구려 같아. 좀 더 반듯하고 우아한 필체로 바꿔야겠어. 그래야 시인의 품격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사람들은 당신을 여자 같고 연약한 시인이라고 오해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당신은 강철처럼 견고하고 진정 남자다운 매력으로 가득한 예술가야. 당신의 감정을 깨워봐.”
릴케는 루의 조언에 따라 이름을 바꾸었고, 필체도 바꾸었다. 그리고 루가 데리고 간 두 번의 러시아 여행은 릴케의 감성을 깨우고 정신적 지평을 놀랍도록 넓혀주었다. 릴케는 루를 통해 그동안 숭배해온 레오 톨스토이를 만날 수 있었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닥터 지바고』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될 인물)와 알게 되어 평생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는 인연을 맺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릴케는 작가 지망생이나 마찬가지인 무명 시인에 불과했지만 루와 함께한 4년 동안 이 풋내기 시인은 위대한 감성을 지닌 시인으로 성장해나갔다.
그러나 루와 릴케에게도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릴케는 대단히 예민하고 병적인 신경질을 보였는데 그런 릴케를 루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루가 정신과 의사 피넬레스에게 릴케의 상태를 의논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릴케의 상태는 정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사실 피넬레스는 루 살로메에게 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릴케에게는 다소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여하튼 루 살로메는 릴케를 떠났다. 그러나 루 살로메와의 4년 동안 인식의 지평을 넓힌 릴케는 이 무렵부터 마치 날개를 단 듯 걸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릴케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안주하지 않고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루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두 사람은 완전히 인연을 끊지 않고 평생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릴케는 언제나 자신의 속내를 루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곤 했다.
내 눈빛은 지우십시오.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십시오. 나는 당신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루 살로메>라는 시를 노래하던 릴케. “운명에 따라 그가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고 말하던 루 살로메. 두 사람의 뜨거웠던 사랑은 그렇게 우정으로 이어졌다. 릴케 역시 루 살로메의 남성 편력 중 한 사람에 불과했을까? 스쳐지나간 인연임은 분명하지만 다른 만남과는 밀도가 달랐던 것 같다. 루가 회고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당신의 아내였습니다. 왜냐하면 내게 당신은 첫 실재였으며 당신을 통해 육체와 정신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면서 한 말 ‘당신만이 진실입니다’ 하는 바로 그 말을 나도 그대로 당신에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훗날 릴케는 1926년 51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다. 니체는 이미 1900년에 정신병원에서 임종을 맞았고 그다음 해인 1901년, 파울 레가 루와의 추억이 깃든 인(Inn) 강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자살한 지 2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매료시킨 여인: 1911년, 50대에 접어든 루 살로메는 바이마르의 국제정식분석학회 회의에서 55세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만났다. 당시 루 살로메는 여러 편의 소설과 평론으로 알려진 작가였고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 분야에서 절대 권위를 지닌 인물이었다. 빈의 상류층 사람들이 말러의 음악을 듣고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 프로이트의 상담실을 찾는 것을 최고의 고급스러운 생활로 받아들일 만큼 프로이트는 자기 인생의 최고 전성기에 있었다. 그런 프로이트 역시 루 살로메의 자신감과 지적 통찰력에 매료되었다. 물론 그도 루 살로메가 마녀로 불릴 정도로 남성 편력을 가진 여성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염문에 프로이트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정신분석학에 매료된 루 살로메는 이미 50줄의 나이였음에도 지적 호기심에 눈을 빛내며 프로이트에게 말했다. “나는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프로이트는 제자를 받아들이는 데 무척 까다로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애제자로 받아들였다. 말이 제자였지 프로이트는 루를 동반자적 파트너로 여겼다. 그리고 그의 애정은 스승으로서의 감정이나 인간적 호의를 넘어 연애감정으로까지 발전한 것이 분명하다. 루 살로메는 정신분석학을 좀 더 폭넓게 알기 위해 프로이트뿐 아니라 아들러와도 교류를 가졌는데, 프로이트는 이런 루 살로메의 행동을 질투 없이 무심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 그의 질투와 아쉬움이 묻어났다. 프로이트는 루 살로메를 “이해하는 여자”라고 불렀다. 이는 니체가 루에 대해 “세상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여자”라고 칭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프로이트가 루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는 동안에도 루 살로메는 프로이트의 제자와 염문설을 뿌리는 등 남성 편력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이트와 루의 정신적 교제와 동반자적 관계는 평생에 걸쳐 이어졌다. 그녀는 니체에게서 천재성을 끄집어내고, 릴케에게 위대한 시적 감성을 깨워주었던 것처럼 프로이트 안의 천재성에 더욱 영감을 불어넣었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점은 그토록 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니체, 릴케, 프로이트 외에도 숱한 저명인사들과의 염문이 있었다), 특히 프로이트는 얼마든지 물질적으로 루 살로메를 부유하게 해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자들의 경제력에 기대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도움을 거절하는, 그러나 결코 부유하지 않은 그녀를 남몰래 돕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루 살로메의 이런 면은, 애인이 바뀔 때마다 애인의 도움으로 한 단계 성장하면서 샤넬 브랜드를 만든 디자이너 코코 샤넬과는 다소 차별화되는 모습이다. 루 살로메는 언제나 지적 교제, 사랑 그 자체에 집중했을 뿐이다. 비록 그녀는 “일단 사랑이라는 폭풍우가 지나가면 더 이상 휩쓸리지 않아야 해요, 그게 사랑의 속성이에요.”라고 말하며 매달리는 연인을 매몰하게 차버릴 정도로 열정이 식은 사랑에 시간을 낭비하길 거부하며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자유롭게 넘나들었지만 말이다.
루 살로메는 1937년 76세의 나이로 숨졌는데, 죽기 며칠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생각을 바꿨더라면 아마 아무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겠지.” 그녀도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러한 천재를 발견하도록 만들었음을 알고 있던 것일까? “루와 사랑을 하면 9개월 만에 대작을 쓸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남자들의 천재성에 불을 지펴주었던 그녀 역시 그들과의 관계에서 영감을 받고 많은 작품을 썼다. 니체, 릴케, 프로이트 등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인생을 배워나가면서 『작품에 나타난 니체』, 『하얀 길 위에 릴케』,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감사』, 그리고 프로이트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편지』 등의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사랑의 대상이 되었던 그 남자들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평상시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정신적 도약과 창조를 이뤄주는 에너지가 바로 사랑이라는 비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