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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재발견

배길몽 지음 | 프리윌



과학의 재발견

배길몽 지음

프리윌 / 2017년 3월 / 290쪽 / 15,000원





인간에 대하여



인간은 단일 생명체가 아니다

규칙적으로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단순하고 지루한 우주의 물질운동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 생명이다. 그리고 인간은 최근 생명을 복제하는 기술을 터득하기도 했으며 그 복제품에 자신의 기억을 모두 주입할 수만 있다면 내세가 아니라 현세에서 영생하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잘못하면 종교 단체에서 아우성이겠지만 그래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누군가가 용기 있게 외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생명의 기본조직은 세포다. 생명체는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까지 다양하다. 생명체의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서 우선 다세포 생물이 하나의 독립 생명체인지 아닌지 단세포 생물의 연합체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으므로 판단에 참고가 될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해 보겠다.

1. 나의 신체 장기가 남의 몸속에 이식돼서 잘 살 수 있다.

2. 혈액은 위생 팩에 담아두면 몸 밖에서도 독자적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3. 정자와 난자는 냉동해서 보관하면 주인이 죽은 후에도 언제든지 살려내서 생명으로 자라날 수 있다. 물론 일반 세포도 가능하다.

이와 같이 사람의 신체는 모두 분리돼도 독자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다. 동물의 장기 이식이나 성형수술은 식물의 꺾꽂이나 접붙이기와 똑같은 원리다. 모든 생명은 일부를 잘라 내서 에너지만 잘 공급하면 죽지 않고 산다. 위와 같은 사실들을 볼 때에 세포 하나하나 자체가 독립된 생명이며 따라서 다세포 생물은 생명의 연합체임을 알 수 있다. 단세포 미생물은 2개의 세포로 분열하면 2개의 생명체가 되며 또다시 분열하면 생명체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모두 독자적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인간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하나의 세포를 형성한 후에 계속 다른 세포로 분화하지만 그들은 미생물처럼 흩어져서 살지 않고 함께 뭉쳐서 협조하면서 산다는 것이 미생물하고 다른 점이다.

생명의 기본단위는 ‘에너지(영양, 온도, 습도 등)가 공급될 수 있는 세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단세포 생물은 스스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소위 숙주에 의존해서 생활한다. 이런 불완전한 점을 극복한 것이 연합 생명체인 고등 생물이다. 고등 생물은 세포 각각의 역할에 따라서 분업화된 기능을 발휘해서 공동으로 에너지를 획득하고 연합 방위를 하면서 하등 생물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생명 활동을 유지한다. 우리 몸 안에 있는 각각의 세포는 모두 독립된 생명체이기 때문에 같은 몸 안에 있는 다른 세포의 사망과 상관없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다. 국민이 모여서 국가를 이루고, 필요한 각종 행정 기관을 만드는 것처럼, 세포도 모여서 몸(국가)을 이루고 필요한 오장육부(행정기관)를 구성해서 소위 세포들의 국가를 이루고 함께 사는 것이 고등 생물이다. 우리 몸의 장기들은 각자가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한다. 뇌는 오감을 통해서 인식되는 상황을 분석해서 외부 환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다른 장기들은 신체 내부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한다. 국가에 비유하면 뇌는 외교와 국방을 전담하고, 다른 장기들은 내치를 담당하며 서로 협조해서 공동 운명체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것과 같다. 뇌와 심장도 여러 장기 중의 하나이며 인간 생명의 일부에 불과하다.

바이러스나 단일 세포 생물은 좋은 환경에서는 죽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산다. 그러나 고등 생물의 세포는 연합 생명체로 뭉쳐서 살다가 심장이 멈추면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함께 굶어 죽는다. 그러나 심장이 멈춘다고 다른 조직이 금방 죽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토막토막 잘라도 1~2시간은 살아 있다. 사람의 신체 일부도 영양과 온도만 유지하면 몇 시간에서 며칠도 살아 있으며 다른 생명체에 이식하면 계속 살아간다. 식물은 뿌리째 뽑아서 며칠간 방치했다가도 다시 심으면 대부분 살아나고 큰 나무의 밑동을 잘라도 가지는 수개월간 살아서 잎도 자라고 꽃도 핀다. 사람도 심장이 멈추고 몸이 죽어도 머리칼이나 손톱은 상당 기간 살아서 자라난다.

인간은 아무리 병이 안 걸리고 사고가 나지 않아도 궁극적으로 혈관에 불순물들이 쌓이게 되고 그러면 심장이 혈액을 순환시키는 데 어려움이 발생하면서 다른 장기들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 기능이 저하된 장기가 다시 노폐물을 생산해서 혈액과 혈관을 가속적으로 악화시키면 결국은 심장이 멈추게 돼서 사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혈관의 노화만 막으면 인간도 나무처럼 수백 년 동안 잘 살 수 있다.

진정한 존재성은 그 이름의 기억에 있다

인간이 살면서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인간은 아무 흔적도 없이 평범하게 살다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만이 가지는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성을 세상에 높고 넓게 드러내려고 한다. 맹수들도 자신의 소변 냄새나 체취 등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와 존재를 주변에 노출 혹은 과시한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또 자신의 존재성을 세상에 드러낼까?

인간이 동물들과 다른 점이 많지만 그중 가장 큰 차이점은 자유로운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사람이 처음 어떤 단어를 만들 때, 특히 명사를 만들 때는 그 단어의 대상이 되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가 실체의 확인 없이 막연히 그런 것이 있으리라고 상상을 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영혼이라는 추상명사이다. 존재 여부를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영혼’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어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집착하고 매달리며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왔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어떤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 그 단어의 실체를 창조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노자의 말대로라면 ‘영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결과적으로 ‘영혼’을 창조한 것이 된다. 어떤 제조업자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그 제품에 이름을 붙인 것과 같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학도 인간의 영혼이 우리 신체의 어디에 존재하는지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의 이론을 빌려서 영혼을 분석해 보면, 영혼은 에너지양자로 구성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에너지양자는 부피는 있으나 질량이 없는 존재이다. 질량이 없으면 관성이 없고, 관성이 없으면 무한소의 힘에도 무한대로 이동하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 자신을 보호하려면 상대에게 저항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능력이 바로 관성과 관성력이다. 만약에 힘은 매우 강하지만 몸무게가 적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 자신이 상대를 밀려고 하면 오히려 자신이 밀려나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면 물에 떠 있는 어른과 땅에 있는 어린이가 줄다리기를 하면 오히려 힘센 어른이 아이에게 끌려오는 것과 같다. 능력이란 저항력과 함께 존재할 때에 유효하다. 그런데 영혼은 저항력이 없는 존재이므로 다른 개체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물리학적으로만 볼 때 영혼은 인간의 육체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능력이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의 육체, 그 사람의 정신, 그 사람의 영혼, 그 사람의 기억… 단지 육체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면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영혼이나 정신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면 너무 추상적이다. 그렇다면 기억은 어떤가? 기억은 영혼이나 정신과 연관이 있으면서 좀 더 구체적이다. 물리학적 시간개념으로 볼 때 과거는 어디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나의 과거에 대한 모든 기억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면 현재의 나는 다만 숨 쉬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화두로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에 대한 물리학적 대답은 이렇다. 나에 대한 기억이 바로 나다.

컴퓨터와 텔레비전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가? 컴퓨터에는 기억장치가 있고 텔레비전에는 기억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처럼 일반적인 기계는 유사한 다른 제품과 교환해서 사용해도 별문제가 없지만 컴퓨터는 여러 가지 데이터가 축적(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것과 함부로 교환할 수 없다. 최근에 일어난 국정농단 사건에서 특정 개인이 사용한 컴퓨터 한 대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었다. 만약에 컴퓨터가 텔레비전처럼 특별한 정체성이 없는 일반적인 기계였다면 국정농단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같이 사람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자료)에 의해서 남들과 다른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사람도 나의 육체가 태어나면서 처음부터 정신적인 내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름이 정해지고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면서 나의 정신적인 존재가 형성되는 것이다. 시장에서 처음 사 온 컴퓨터는 남의 컴퓨터와 똑같지만 그 컴퓨터에 나만의 프로그램과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나 자신만의 컴퓨터가 되듯이, 사람도 태어나서 이름이 지어지고 그 이름에 나만의 데이터와 프로그램이 축적되어서 진정한 내가 된다. 육체라는 하드웨어(조합)에 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순열)가 프로그램화되면서 나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컴퓨터가 자신만의 데이터에 의해서 정체성이 확립되듯이 인간의 정체성도 자신에 대한 기억(정신)에 의해서 확립되지만, 자신의 존재성이나 존재가치는 타인이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인식에 의해서 확인되므로 타인이 자신에 대한 자료를 어떻게 저장하고 인식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도 타인을 인식하는 방법은 컴퓨터와 비슷하다. 컴퓨터가 어떤 자료를 축적할 때에 그 파일의 이름을 정하고 그 속에 자료를 저장하듯이 사람도 타인에 대한 자료를 저장할 때에 그 사람의 이름으로 된 파일 속에 저장한다. 사람은 자신의 이름으로 타인에게 저장되어 있는 자료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성이 인식되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다른 사람들 앞에 떳떳하게 내놓을 수 없다면 육체의 생명이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고, 자신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그의 육체는 비록 죽어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과 같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이름을 아름답게 기억한다면 그의 존재성은 여전히 가치를 가지고 살아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살아 있듯이 어떤 사람이 학자로서 이론을 남기거나, 실천가로서 모범을 보이거나, 예술가로서 작품을 남겨 후세들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그의 이름을 기억할 때 혹은 그렇게 유명인이 못 되더라도 성실한 사람으로, 따뜻한 이웃으로, 멋있는 선배로 그 사람의 이름을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리워한다면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며 그의 존재성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다.



우주에 대하여



우주 탄생, 빅뱅도 창조도 아니다

만유인력이 성립되려면 우주의 모든 만유인력을 합해놓은 만큼의 힘이 우주 밖이나 혹은 내부에서 반대로 작용해 주어야 가능하다. 그러지 않으면 우주는 한없이 수축해서 모두 한 덩어리가 돼버려야 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궁여지책으로 암흑에너지가 만유인력에 대항해서 우주의 수축을 막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팽창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만유인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조작된 이론이다.

과학자들이 중력이나 암흑에너지 그리고 시간의 실체를 알면 빅뱅이론 같은 것은 주장하지도 않겠지만, 설혹 그런 것을 모른다고 해도 단 5분만 생각하면 모순이 드러나는 이론을 주장한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과학자들의 빅뱅이론은 암흑에너지로 가득 찬 우주를 창조주가 물질세계로 바꾸어 놓았다는 기독교의 천지창조이론보다 훨씬 비과학적이다. 아인슈타인이 물질은 에너지로 바뀔 수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역으로 암흑에너지가 물질로 바뀌는 역현상도 가능할 것이며, 따라서 기독교의 창조론은 에너지 보존 법칙도 유지하면서 위대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의 에너지이론에도 부합하므로 빅뱅이론보다는 훨씬 더 과학적이라고 봐야 한다.

만유인력이론의 모순처럼 우주에 관한 이론이 큰 틀에서 성립되지 않고 부분적으로 성립된다면, 그것은 부분적인 현상과 우연의 일치가 있는 것일 뿐이며 합리적인 이론은 아니다. 빅뱅이론도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빅뱅 이전에 우주 전체를 하나의 점으로 수축시키고 있던 힘이 외력이었는지 아니면 내부의 응집력이었는지 밝혀야 한다. 그리고 외력이었다면 텅 빈 우주의 외부에서 어떻게 외력이 작용했으며, 그 외력이 왜 갑자기 사라져서 폭발(빅뱅)이 시작됐는지, 그리고 자체적인 응집력으로 우주를 수축시키고 있었다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던 점으로 된 우주가 어떻게 외부의 도움 없이 그 엄청난 응집력을 극복하고 스스로 팽창을 시작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안정을 취하고 있는 어떤 물체를 팽창시키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힘도 필요하지만 그 물체보다 더 강한 물질로 충격을 가해야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약한 물질로 충격을 가하면 오히려 상대보다 자신이 먼저 파괴되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보다 수억 배 강하게 압축돼 있던 우주의 핵(씨앗)을 깨트리려면(빅뱅하려면) 그보다 더 강한 물질로 충돌해야 가능하다. 우주 전체의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가진 능력자가 우주의 외부에서 우주의 압축이나 팽창을 돕지 않으면 우주가 스스로 팽창하거나 수축할 방법이 없다.

과학자들은 빅뱅의 시점이 시간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언젠가 시간의 끝(우주의 정지 혹은 소멸)도 와야 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빅뱅 이전에 실제로 시간이 없었을까? 아니면 정지해 있던 시간이 빅뱅과 함께 작동을 시작했을까? 어떤 존재가 있는데 시간이 없거나 역으로 시간이 있는데 아무런 존재가 없다면 서로 모순이 되므로 존재와 시간은 함께 발생하고 함께 사라져야 옳다. 어떤 존재가 있는데 시간이 없다는 것은 그 존재가 아무런 변화를 하지 않고 정지 상태로 있음을 의미하며 그렇다면 그 존재는 운동에너지나 열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런 물체가 어떻게 스스로 운동(팽창)을 시작할 수가 있겠는가? 운동을 하지 않던 물체가 스스로 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왜냐하면 어떤 물체나 우주가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운동을 시작한다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깨어지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기독교의 창조론은 빅뱅이론처럼 완전히 무에서 유가 됐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창조(빅뱅) 이전에도 이미 하나님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시간의 정체를 알면 창조론과 빅뱅이론의 모순이 모두 해결된다.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빅뱅이론이 옳은지 아니면 창조론이 옳은지 그도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는지 깔끔하게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우주가 계속 가속팽창하려면 새롭게 팽창된 공간에 암흑에너지가 다시 채워져야 팽창력이 유지돼서 팽창을 계속할 수 있다. 암흑에너지가 팽창된 공간에 계속 채워지지 않으면 팽창은 등속운동으로 바뀌고 그러면 만유인력이 작용해서 감속되기 때문에 우주는 팽창을 그치고 다시 수축해야 한다. 자연에는 상대를 가속시키면서 동시에 자신도 가속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작용과 반작용에 의해서 상대를 가속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은 감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번 상대를 가속시킨 물질은 다시는 같은 상대를 가속시킬 수가 없고, 따라서 팽창력은 한 번으로 그칠 뿐 계속되지 않는다. 쉽게 설명하면 총이 총알을 한 번은 가속시킬 수 있지만 계속 가속할 방법은 없다. 빅뱅도 초기 속도가 결정되면 그 이후에는 가속을 시킬 방법이 없으므로 등속팽창은 성립되지만 가속팽창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등속팽창은 만유인력에 의해서 감속돼야 하므로 등속팽창도 성립되지 않고 실제로 빅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오직 감속팽창만이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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