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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가, 운명을 묻다

조철선 지음 | 지혜로울자유



전략가, 운명을 묻다

조철선 지음

지혜로울자유 / 2017년 1월 / 367쪽 / 16,600원





1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미래를 알고 싶은 사람들

점집을 기웃거리는 사람들: 현대인들이 점집을 배회하는 이유는 뭘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처도 아니요, 근기가 높은 수행자도 아닙니다. 언제나 과거를 후회하고,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중생들로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지혜를 가지기보다는 어떻게든 미래를 알고 싶어 점집을 배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운명의 벽을 마주하게 되자, 자연스레 점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첫 직장에 입사하고 난 뒤 황당한 상사 밑에서 지옥 같은 회사 생활이 이어지자, 다른 회사로 이동할 기회를 알아볼 겸 사주 철학관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저는 28살이었는데, 점쟁이는 제 사주를 풀어보더니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이 힘들다고? 에이. 이제 막 시작했는데, 이것 같고 뭘 그래? 38살까진 죽었다 생각하고 아무 것도 하지 마. 옮겨봐야 다 거기서 거기야.”

‘제 사주에 파란만장한 인생이 들어 있다’는 점쟁이의 말에 이미 제 마음은 점집을 떠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은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38살까지가 아니라 48살까지 좋지 않았다는 게 다르긴 합니다. 38살에 빚더미만 남긴 채 사업을 접었고, 39살부터 강사 일을 시작하며 빚을 갚아 나갔으니까요. 어쩌면 그 점쟁이가 48살까지 안 좋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알고 싶은 건 다가올 미래가 아니다 / 정말로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솔직히 당시 점집을 찾아간 이유는 다가올 미래가 알고 싶은 게 아니었습니다. 좀 있으면 고난의 시절이 끝나고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거라는 말을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점집을 기웃거리는 이유 역시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어서입니다. 그렇다면 점집에서 말하는 운명이라는 건 한낱 위로의 거짓말일 뿐일까요? 운명의 실체에 다가가려면 개인적인 경험 차원을 넘어 총체적인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이에 먼저 동서양의 선각자들이 말하는 운명론에 관심을 기울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양 철학에 운명을 묻다

플라톤 ? 이데아와 에르 신화: 운명론 하면 대개 동양 철학을 떠올립니다. 수천 년 동안 동양에서는 천명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 속에서 사주팔자나 관상, 수상 등을 통해 운명을 예지하는 기법들이 발달하여 운명론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습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보편화되며 운명론이 설 자리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중세를 지나 교회의 독단적인 권위에 대한 저항으로 기존의 존재론 중심 철학에서 벗어나 인식론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인식의 출발점을 경험으로 보는 영국의 경험론이나 이성을 중시하는 유럽 대륙의 합리론이 주류로 자리 잡으며, 존재론 성격의 운명론은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운명론이 완전히 무시되었던 건 아닙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인간의 운명은 철학의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탈레스 등 초기 철학자들의 관심은 주로 자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소크라테스 이후 자연스레 자연에서 인간 탐구로 시선이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철학자들이 삶을 좌지우지하는 운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운명을 철학적 주제로 삼은 건 아니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이 그렇듯이, 고대 그리스에서도 운명은 신들만이 주관하는 불가지 영역이었죠. 그런데 신들의 권한으로만 여겨졌던 운명을 철학의 주제로 삼은 사람이 바로 플라톤입니다. 특히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변론하며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인 스승 소크라테스에게 감명을 받은 플라톤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의 의미를 깊이 탐구해 들어갔습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운명론을 계승해 이데아 이론을 접목시킨 자신만의 운명론을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신화 형식으로 풀어 설명했는데, 그것이 바로 『국가』의 말미에 실린 에르 신화입니다. 에르 신화를 통해 플라톤은 영혼과 윤회, 운명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세계를 이데아계와 현상계의 이원론적으로 보았듯이, 플라톤은 인간 역시 영원불멸의 영혼과 현상으로 보이는 육체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영원불멸의 영혼과 한시적인 한계를 지닌 육체를 상정한다면 윤회론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영혼이 상주할 곳이 육체라고 한다면, 윤회를 통해 삶을 거듭하는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플라톤에게 운명이란 저승에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자, 완전한 이상향인 이데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동굴 속에서 태어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며 동굴 밖의 이데아를 향해 가야 하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는 겁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데아에도 계층이 있으며, 가장 최상위에는 ‘선의 이데아’가 있다고 합니다. 결국 모든 영혼은 선의 이데아로 가기 위해 윤회를 통해 성장하는 운명을 선택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보면 운명은 일방적으로 정해진 숙명이 아니라, 선의 이데아로 가기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자 능동적인 행위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니체 ? 니힐리즘의 끝, 아모르 파티: 15세기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다시금 철학이 권위를 되찾긴 했지만, 영국의 경험론과 유럽 대륙의 합리론이라는 인식론 범주에서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전히 운명과 존재에 대한 논의는 신의 고유 영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반기를 들고 과감하게 운명을 말한 이가 바로 니체인데, 그야말로 고난으로 점철된 운명마저도 사랑한 철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자비로 출판할 정도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숱한 질병에 시달리다가 말년에는 10여 년 넘게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산 니체이기에 그의 말이 더욱 와 닿습니다. 그의 철학적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에는 다음과 같이 그의 운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인식의 모든 모험이 다시 허락되었다. 우리의 바다가 다시 열렸다. 너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인다면, 너의 삶은 오늘 이 순간부터 새로운 가능성의 바다로 열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내 정식은 아모르 파티, 운명애다. 필연적인 것을 단순히 감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은폐는 더더욱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는 것.’

동양 철학에 운명을 묻다

공자 ? 경천외명의 길: 동양 철학에서의 운명론을 논한다면 유가와 도가의 운명관을 살펴보는 게 당연한 수순일 겁니다. 먼저 공자는 하늘을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도덕천(道德天)으로도 자리매김함으로써, 하늘과 사람 간의 관계를 설정하려고 했습니다. 즉, 하늘은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인간에게 ‘덕’이라는 보편적 품성을 부여했으며, 그 ‘덕’의 핵심이 바로 ‘인’이기에, 이를 실천하는 것만이 천명에 따라 사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하늘이 정한 운명의 길은 거부할 수 없기에, 자신에게 내린 도덕적 명령을 깨달아 실천하는 것만이 올바른 삶이라는 겁니다.

노자 ? 천망회회 소이불실: 이제 동양 철학의 또 다른 축인 도가의 운명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가는 춘추 시대 노자가 주창해 형성된 학파입니다. 노자에게 운명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도덕경』에는 운명에 대해 별도로 논한 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도덕경』에는 노자의 운명관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긴 합니다. 바로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실(疎而不失)이 그것입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엉성한 것 같지만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는 의미로, 하늘의 이치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일이든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게 보일지라도, 실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흘러가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닥쳐오는 운명 역시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이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에, 자신의 운명 역시 하늘이 정해준 길일뿐입니다. 노자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애를 실천하라고 말합니다.



2부 운명을 예지하는 기법들



사주 명리학에 운명을 묻다

태어난 시간만으로 예측할 수 있다: 예부터 운명적인 미래를 예지하려는 기법들이 존재해 왔습니다. 주술사나 무당과 같은 영매를 통해 미래를 보려는 방식에서부터 학구적으로 접근한 서양의 점성술과 동양의 사주 명리학에 이르기까지 그 기법들도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태어난 시간으로 운명을 예측하는 사주풀이에 친숙합니다. 하지만 몇 날 몇 시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자신의 평생 운명이 정해진다는 것만큼 황당한 논리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최첨단 21세기에도 버젓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주 명리학이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는 귀신같이 미래를 예측한 대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태어난 시간만으로 한 사람의 전체 인생을 예측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단 한 번이라도 사주팔자로 운명을 정확하게 예측했다면, ‘사주팔자로 운명을 예측할 수 없다’는 명제는 거짓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점에서 대가들의 성공 사례가 바로 블랙 스완인 셈입니다. 결국 사주팔자로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운명을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아무튼 자신의 운명을 알고 싶어 철학관을 방문하더라도 명리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얼치기들을 가려내거나 대가와의 심도 깊은 상담이 될 것은 자명합니다.

문제는 사주팔자의 해석에 있다: 사주팔자란 태어난 시간을 음양오행에 따라 풀이한 것으로, 생년과 생월, 생일, 생시를 네 개의 기둥으로, 각각의 기둥에 두 글자씩 배치한 여덟 글자의 조합을 말합니다. 이때 각 기둥마다 두 글자를 배정한 것은 삼라만상 모두 음양의 법칙을 따르기에, 그 시간에 적용되는 하늘의 기운인 천간(天干)과 땅의 기운인지지(地支)를 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도식화하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이 사주팔자에서 생일의 천간에 놓인 글자인 일간(日刊)을 본인으로 보고, 나머지 7개의 글자가 본인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분석하는 게 바로 사주풀이입니다.

‘당신은 나무인데, 주위에 칼과 도끼들이 많아 매우 불안해. 그러니 불을 이용해 쇠를 녹여야 해.’라는 식이죠. 이런 해석이라면 자신의 사주팔자에 불이 있다면, 좋은 사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불의 기운이 들어오는 해에 잘될 것입니다. 반면에 칼과 도끼들이 난무하는 해를 만난다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우 흉할 거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음양오행으로만 풀이하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와 닿지 않습니다. 나무니, 불이니 하는 것보다 재물복이나 승진운이 있는지, 처복이나 자식복은 어떠한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사주팔자 속의 음양오행을 알고 싶은 코드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십신(十神)입니다. 십신이란 10가지 음양오행 기운을 재물, 배우자복, 명예운 등 10가지 성분으로 바꾼 것을 말합니다. 결국 10가지 음양오행을 십신으로 풀이할 수 있다면, 언제 재물을 모을 것인지, 언제쯤 승진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주풀이가 참 쉽다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철학관에 가서 물어보면 틀리는 경우가 적지 않는 건, 사주팔자에 숨어 있는 복잡한 상호 작용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사주팔자 해석의 어려움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사주 명리학의 근간인 음양오행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죠.

음양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서로 대립하는 음양이 서로 의존한다는 상보성 원리입니다. 상극이면서도 서로 상생합니다. 상반되면서도 서로 보완합니다. 서로 모순이면서도 조화롭게 하나가 됩니다. 결국 상극과 상생은 다르면서도 같습니다.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가 존재하기에,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상생의 길을 가고 있듯이 말입니다. 두 번째로 음양의 기운은 서로 교차되며 끊임없이 순환적인 변화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 주기적으로 바뀌고, 춘하추동의 계절이 순환되는 것이 음기와 양기의 성쇠에 따라 변화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음양의 변화는 음기가 극에 달했을 때 양기가 발현되고, 양기가 극에 달했을 때 음기가 발현되는 방식으로 조화와 균형을 찾아갑니다.

그럼 이제 오행 이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오행이란 삼라만상을 이루는 5가지 기본 요소로,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의미합니다. 명리학에서는 이 오행의 다섯 요소가 얽히고설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구현한다고 말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성질이란 그런 물질로만 특정하는 게 아니라, 그런 특성을 지녔다는 의미입니다. 일례로 화를 빛, 불꽃으로 본다는 것은 화가 빛이나 불꽃과 같은 성질을 지닌 오행 요소라는 뜻이지, 빛과 불꽃만이 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인체의 심장을 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행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상생과 상극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입니다. 목은 화를 생(生)하고, 화는 토를 생하고, 토는 금을 생하고, 금은 수를 생하고, 수는 목을 생합니다. 물이 자양분이 되어 나무가 되고, 나무를 재목으로 불을 피우듯이 말이죠. 또한 목은 토를 극(剋)하고, 토는 수를 극하고, 수는 화를 극하고, 화는 금을 극하고, 금은 목을 극합니다. 물이 불을 끄고, 쇠도끼로 나무를 쓰러뜨리듯이 말입니다.

수와 목이 만나면 수가 목을 생하고, 목과 금이 만나면 금이 목을 극하는 것처럼 오행의 상생 상극 작용은 명료합니다. 문제는 사주팔자는 여덟 글자로 이루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오행의 두 요소만 보면 간단하지만, 사주팔자 여덟 글자가 얽혀 있을 땐 복잡함이 가중됩니다. 게다가 다가오는 세월의 운을 판단할 때에는 사주팔자의 음양오행에 운에서 만나는 음양오행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머리에 쥐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사주 명리학은 오행을 음양에 따라 또다시 나눴습니다. 즉, 목을 양목(陽木)과 음목(陰木)으로, 화를 양화(陽火)와 음화(陰火) 등으로 나눈 겁니다. 이것이 바로 10개의 천간, 십간(十干)입니다.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이 십간이 사주풀이의 근간이 되는 요소인 셈입니다. 참고로 사주 명리학에서 십간을 말할 때에는 흔히 오행을 뒤에 붙여 갑목, 을목, 병화, 정화, 무토, 기토, 경금, 신금, 임수, 계수라 부릅니다. 오행 5개가 서로 얽혀 있어도 복잡한데 10개로 확대했으니, 그 복잡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거기에 지지의 복잡함까지 더해집니다. 지지는 땅의 자리라 순수한 음양오행 기운이 구현된 모습으로 배정되므로, 천간이 얽히고설킨 형태로 배치됩니다. 즉, 10개의 천간이 이합집산해 십이지(十二支)를 만듭니다.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가 그것입니다. 흔히 쥐띠, 원숭이띠처럼 12개의 띠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 속에서 사주팔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결국 물고 물리는 음양오행의 상호 작용을 분석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기준을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떤 기준을 정하느냐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명리학계는 여러 학파로 나누어집니다. 대표적으로 본인인 일간을 중심에 두고 일간의 강약에 따라 일간을 도와주거나 억제해야 한다는 억부론(抑扶論)과 생월의 지지인 월지(月支)를 중심에 두고 분석해야 한다는 격국론(格局論)이 그것입니다.

사실 사주팔자의 기본 시스템은 명료합니다. 음양오행으로 한눈에 파악됩니다. 그래서 처음엔 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머리 싸매는 일이 많아집니다.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처음 명리학을 접할 땐 쉽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복잡해졌습니다. 풀이가 틀릴 때마다 왜 틀렸는지 분석하면 할수록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어느 순간 풀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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