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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 콘서트 - 핵, 과학이 만든 괴물

공공인문학포럼 지음 | 스타북스



잡학 콘서트 - 핵, 과학이 만든 괴물



공공인문학포럼 지음

스타북스 / 2016년 10월 / 368쪽 / 15,000원





맨해튼 계획 - 원자폭탄의 탄생



대통령의 결단



원자폭탄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는 아인슈타인에게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하는 편지를 쓰도록 요청했다. 당시 독일에는 원자폭탄 제조에 있어서 기술적으로 한발 앞선 물리학자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의 편지를 읽은 루스벨트 대통령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그날 저녁 ‘원자핵분열을 이용한 폭탄 개발’의 가능성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이로써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원자폭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연구는 극비 프로젝트로서, 소수의 과학자와 관리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부통령 해리 트루먼도 이 연구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1941년 12월 원자폭탄 제조 계획을 담당한 미국 정부의 ‘과학연구개발국’은 기구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강화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듬해 8월에는 미국 육군 공병단 내에 ‘맨해튼 관구’라는 암호명의 원자폭탄 제조 담당 부서를 설치하였다. 과학연구개발국과 육군의 공동 관리는 1942년 5월에 종료되고, 그 후부터는 새로 신설한 육군의 ‘맨해튼 관구’가 관리하게 된다. 1943년 7월에는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를 뉴멕시코 주에 설립하고, 1944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이 모든 계획에 미국 정부는 22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었다.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미국의 국가 프로젝트는 ‘맨해튼 계획’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아서 콘프턴, 엔리코 페르미, 어니스트 로런스, 해럴드 클레이턴 유리 등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모두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죽음의 상인’이라는 세상의 비판을 두려워한 노벨이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하기를 소망하며 창설하였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파괴력이 큰 원자폭탄 제조에 관여한 과학자들이 그 상을 받은 것이다. 또 노벨상 수상자는 아니지만 당시 미국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로 평가받던 존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계획 연구기관은 물론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소장으로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였고, 지난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로 불리는 요한 폰 노이만도 참여하였다.

원자폭탄 투하와 맨해튼 계획 주역들의 반응



오펜하이머의 지휘 아래 미국의 우수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총동원되어 연구 개발을 진행한 끝에, 마침내 1945년에 인류 역사를 바꿔 놓게 될 무기인 원자폭탄이 완성되었다. 이어 그해 7월 16일에 뉴멕시코 주 앨라모고도 서북쪽 60마일 지점에서 ‘트리니티 테스트’라는 암호명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폭실험이 실시된다. 이때 사용한 것은 플루토늄 239였고 위력은 18.6킬로톤 정도였다. 킬로톤은 원자폭탄의 위력을 측정하는 단위로서 1킬로톤은 다이너마이트 1000톤이 폭발할 때와 같은 폭발력을 뜻한다. 그러니까 인류 최초로 실험한 핵폭탄의 위력은 다이너마이트 1만 8600톤의 위력에 해당하는 셈이다.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이 원폭 실험이 성공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맨해튼 계획’이라는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의 3대 주역은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로 평가받은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페르미 세 사람이다. 이들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터뜨리기 전에 네바다 주 사막에서 진행된 원폭 실험에 참가하였다. 그들은 원자폭탄의 위력이 자신들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엄청난 데 놀랐다. 그래서 이 자리에 동석한 군 관계자들에게 권고하였다. “이 폭탄을 만약 일반 시민이 거주하는 지역에 투하하면 최소 몇천 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선 사람이 살지 않는 일본의 무인도에 투하하여 일본 정부에 경고를 보내고 그 결과에 따라 사용할 것을 권고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할 경우 100만 명 이상의 미군 피해가 예상된다고 설명하였다. 이 설명을 들은 미국 정부는 일본 본토에 핵무기를 투하하기로 결정하고 원폭을 투하할 도시를 고르기 시작했다. 오펜하이머가 “그래도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 도쿄만은 안 된다”라고 반대를 하여, 결국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최종 결정되었다.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 오펜하이머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으로 몇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페르미는 머리를 감싸 쥐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만 연발했다. 아인슈타인은 “우리는 철모르는 어린애에게 다이너마이트를 장난감으로 주었다”라고 탄식하였다.



NPT가 인정하는 핵보유국



미국을 제외한 4개국 상황



중국, 구소련(지금의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서 핵보유국으로 공인된 나라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4개국의 현재 상황과 문제점을 살펴보자. 중국은 날이 갈수록 핵전력 증강에 힘쓰고 있고, 러시아는 핵 관리 체제에 틈이 보이며, 프랑스도 핵보유국 특권을 고집하고 있다. 그중 영국은 여론의 동향에 따라 핵을 가장 먼저 포기하는 핵보유국이 될지도 모른다.



중국의 핵미사일은 어디를 향하나



중국은 1964년 10월 신장 위구르에서 첫 핵실험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곧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이어 다섯 번째로 핵클럽에 가입했다. 이어 1966년 10월에는 미사일 발사 실험에도 성공했다. 중국의 핵무기 개발 동기는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 1954년과 1958년 두 번에 걸쳐 타이완과 벌인 전투에서 미국의 핵 공격 위협과 동맹국 소련에게서 받은 냉담한 반응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때는 맥아더 UN군사령관이 핵무기를 사용하여 만주를 공격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핵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을 염려한 트루먼 대통령이 이 시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 중국은 간신히 핵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핵 공격의 위협에 대해 소련의 스탈린이 중국과 북한을 지켜 주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모택동과 김일성에게 독자적인 핵 개발 결단을 내리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핵실험에 성공하기 전년도에 중국의 외상 진의는 외국 기자들을 상대로 한 인터뷰에서 “중국인이 바지를 입지 못하게 되더라도 핵무기를 만들어 보이겠다”며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핵 개발에 착수한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가 “풀을 먹더라도!” 하며 다짐한 결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스탈린이 죽고 흐루쇼프가 새로운 소련의 지도자로 등장한 다음인 1950년대 후반부터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이 무렵 북한의 김일성은 이른바 ‘주체사상’이론으로 무장하여 자주독립 노선을 걸으면서도 중국이 핵무장을 한 1960년대 후반에는 모택동에게 핵우산을 씌워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모택동은 미국과의 핵전쟁을 두려워하여 이 요청을 거절했다.

미국, 소련, 중국의 어떤 지도자든 자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만드는 핵무기를 사용해 가면서 다른 국가 국민을 지킬 의사는 전혀 없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을 믿은 것이 착각이었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강대국의 핵우산이란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을 액면 그대로 믿고,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위협하는데도 태평하기만 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북한 김일성과 중국 모택동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들은 북한이 남한에 핵 공격은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나, 자국의 안전보장을 다른 나라에 위탁하고 있는 건 바보다.

중국은 1968년에 간신히 턱걸이로 NPT에서 핵보유국으로 공인받았다. NPT는 제9조에서 ‘1967년 1월 1일 전에 핵무기 또는 핵폭발 장치를 제조하고 폭발시킨 나라를 핵보유국’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NPT가 공인하는 핵보유국은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받는다. 핵 확산 금지에 협력하는 한 자국의 핵 시설에 대해 사찰 받을 의무가 없는 것이다. 핵 전문가들은 2013년 현재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는 250여 개, 이 가운데서 130여 개가 지대공미사일, 잠수함 발사 미사일, 폭격기 탑재용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추정했다. 한편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는 중국에 대해 2700개 이상의 핵탄두 제조 능력이 있다고 추정했다.

따라서 핵탄두 300개 이상인 프랑스와 200개 이하인 영국과 비교하면 중국의 핵전력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에 이어 세계 4위이다. 핵탄두의 운반 수단인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핵을 선제공격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어디까지나 억지력을 갖추고자 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공동개발한 MD(미사일 방어시스템)에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MD는 원래 방어적인 성격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핵 억지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가상의 적은 당연히 미국이다. 또한 독립 시도를 멈추지 않는 타이완도 가상의 적국이다. 한때 중국과 러시아 관계가 악화된 적도 있지만 냉전 시대가 끝난 이후부터는 유일한 최강대국 미국에 맞서 두 나라는 다시 공동 행동을 취할 기회가 많아졌다.

저명한 국제정치 전문가이자 금융 전문가로 알려진 이토 칸이 저술한 책 『중국의 핵이 세계를 지배한다』를 보면 중국의 국방 예산이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해마다 15퍼센트씩 두 자릿수 팽창을 기록하여 5년간 2배, 10년간 4배라는 성장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까지를 목표로,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핵전력을 축으로 국력을 쌓아 아시아 최강 패권 국가가 되어 대중화제국 건설 야망을 달성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핵우산에 기댄 일본과 한국은 자주적 핵 억지력을 갖추지 않는 한 이 중화 세력권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리라고 단언했다.



북한의 핵실험



북한 5차 핵실험의 충격



2016년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68주년 기념일에 맞춰 제5차 핵실험이 실시되었다. 대외적으로는 2016년 9월 4~5일 제11회 G20 정상회의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직후이며, 같은 해 9월 8일 라오스에서 개최된 EAS(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첫 북핵 규탄 성명’이 채택된 직후이다.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여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rnse) 한국 배치를 두고 한ㆍ미ㆍ일과 중ㆍ러 간의 갈등, 또한 2016년 11월 18일의 미국 대선 등 전방위적 상황을 보며 핵실험 날짜를 결정한 듯한 모습이다.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단행한 9월 9일, 15개 이사국이 참가한 가운데 비공개 긴급회의를 열어 5차 핵실험을 강도 높게 규탄하고, 새로운 대북 결의안을 즉시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언론 성명을 채택했다. UN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로 불린 2270호(2016년 3월) 이행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북한이 역대 최대급의 핵실험을 단행하였음은 국제적 제재의 효력 여부에 의문을 갖게 하는 면이 있다. 북한의 행보는 제재로서 자신들을 막을 수 없으며, 핵 개발 실험을 멈출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천명한 것과 같다.

김정은 위원장은 국제사회의 계속되는 핵 포기 압박에 대해 자신을 지키고 상대를 도발하는 최고 최대의 수단이 핵무기라는 생각을 굳힌 모양이다. 또한 핵무기를 협박 수단으로 두고 국제사회로부터 북한 정권의 체제를 보장받겠다는 심사가 깔려 있다. 이번 5차 핵실험은 4차 핵실험 단행 2개월 만인 2016년 3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빠른 시일 내에 핵탄두 폭발 시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도 로켓을 발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지 6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이날 기상청에 의해 확인된 규모 5.04의 인공지진 강도는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 때의 2배 강도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터진 원자폭탄의 67~80퍼센트 수준으로 TNT 약 10킬로톤의 폭발력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탄두’ 실험을 발표하면서 ‘표준화’와 ‘규격화’를 언급하였다. 실제로 핵탄두의 표준화와 규격화가 이루어졌다면 모든 유형의 미사일에 실을 수 있는 다량의 핵탄두를 제작하고, 개발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실으면 무기로서 완성이 되는데, 북한의 운반체 기술은 이제 확인이 된 상태이다. 문제는 북한의 짧아지는 핵실험 주기를 감안해 보았을 때 2~3년 내에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여 실전 발사에 성공할 가능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마음먹은 대로 한반도는 물론 미국,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미국 전략 거점인 괌에도 핵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 탄두화가 실현되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만약 북한이 기습적으로 핵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그것을 막아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으로 북한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은 물론 국제사회의 대응이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우리 군은 만약 북한의 핵무기 사용 징후가 포착되면 평양 일부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응징 포격을 한다는 작전을 세워 놓았으며, 이 비밀 작전은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인해 처음 외부에 드러났다.

북한 핵폭탄의 위력과 우리의 대응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2009년 5월 25일, 2013년 2월 12일, 2016년 1월 6일과 같은 해 9월 9일 총 5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장소는 모두 함북 길주군 풍계리 인근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김정은 집권 기간인 4년 9개월 동안 세 차례나 이루어졌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의 집권 기간 17년 5개월 동안 2차례 실시한 것과 비교해 보면 그 촉박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권의 대내외적 정황이 그만큼 위태롭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위기론을 타개하기 위해 정권 수립일을 자축하며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9월 9일 9시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핵실험 성공에 이토록 열심인 이유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자 함이다. 과거 다섯 차례의 핵실험 끝에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파키스탄의 전례가 있기에 김정은은 내심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핵무기 위력은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으며, 우라늄 및 플루토늄 등의 핵 물질 보유량이 상당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 개발은 완성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남은 단계는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과정만 남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재 단계에서의 북한의 핵탄두 보유 개수는 10~12기 정도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지금의 속도라면 2020년까지는 핵탄두 기술을 완성하여 100기 가량의 핵탄두를 제작할 수 있는 핵분열물질을 보유하게 될 것이며,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게 되리라는 지적이다. 북한 5차 핵폭탄 실험 규모에서의 양이 만약 서울 상공에서 폭발한다면 통합 40만~5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반경 약 1.7킬로미터 이내에서 13만 3000여 명이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그중 90퍼센트가 즉사할 것으로 추측된다. 나아가 핵폭발에 따른 2차 피해의 참혹성은 더욱 끔찍하다.

우리 군은 특히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한국형 3축 체계 제1축은 킬체인으로, 북의 미사일 공격 징후가 명확한 경우 이동식 발사대와 관련 고정 시설 등을 북의 발사 이전에 타격하는 체계다. 제2축은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로써 북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지상에 도달하기 전 요격하는 대(對)탄도미사일 체계이다. 제3축인 KMPR(한국형 대량응징보복)은 북한이 핵무기로 위해를 가할 경우 북한의 전쟁 지도본부를 포함한 지휘부를 직접 겨냥하여 응징하는 보복 체계이다. KMPR은 북한 전역에 흩어져 있는 800여 개의 핵과 미사일 기지를 한꺼번에 제거하는 일이 불가능하고, 핵미사일을 탑재한 SL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등을 24시간 추적 감시하는 일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김정은 및 그 지휘부를 선제 제거하여 핵 지휘통제권을 비롯한 국가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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