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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란 무엇인가

안경환 지음 | 홍익출판사



남자란 무엇인가

안경환 지음

홍익출판사 / 2016년 11월 / 304쪽 / 14,800원





Part 1. 남자의 본성



남자의 뇌, 여자의 뇌

남자들이 좋아하는 두 가지: “남자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두 가지, 그것은 위험과 놀이다.” 니체가 한 말이다. 물론 남자가 좋아하는 두 가지에 언어로 하는 놀이는 들어 있지 않다. 남자는 여자만큼 말을 잘하지 못한다. 부부가 말로 싸우면 대체로 아내가 이긴다. 여자는 남자보다 빨리, 정확하게 말한다. 말로 이길 수 없는 남자는 화를 내거나 일방적으로 싸움에서 물러난다. 학문적 분류로서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를 나누기도 한다. 논리로 행동하는 남자 대 감각으로 행동하는 여자, 말하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하는 남자 대 느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여자, 결론을 중시하는 남자 대 과정이 더욱 중요한 여자, 남을 탓하는 남자 대 자신을 탓하는 여자 등등 남녀의 뇌 대비는 아주 풍부하다.

잠을 잘 때 꾸는 꿈도 남자 뇌와 여자 뇌 사이에 차이가 있다. 남자 뇌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는 꿈이 많고, 여자 뇌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꿈이 많다. 결혼식 꿈을 꾸어도 여자는 자신이 신부가 되는 꿈을 꾸지만 남자 뇌는 결혼식을 중계하는 카메라맨의 관점에서 꾼다고 한다. 또한 남자 뇌는 ‘전유’, ‘독점’과 같은 특성이 있어 자신을 개방하는 일에 무척 서투르다. 또한 남자 뇌는 ‘자기 완결형’이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라는 생각이 강해서 누가 소곤거리는 장면을 보더라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지나친다. 그러나 여자 뇌는 다르다. ‘혹시 내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신경이 곤두선다. 언어 능력과 습관 또한 뇌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여자 뇌는 기억을 좌우하는 해마와 공감을 만들어내는 뉴런 영역들이 모두 활성화되는 반면에 남자 뇌는 대부분 본인의 기억만을 기반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따라서 남자는 여자에 비해 공감능력이 뒤떨어진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남자는 알고 있는 지식을 말하고, 여자는 즐거운 일을 말한다.” 루소의 말이다.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여자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이야기한다는 말도 있다. 남자는 자신의 지배력을 드러내고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데 대화의 의미를 둔다. 자신이 먼저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자르기도 한다. 남자는 대화를 일종의 게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남자는 동사 없이는 대화가 안 되지만 여자는 명사만으로 충분히 대화가 된다. 남자는 ‘나’를 이야기하고 여자는 ‘우리’를 이야기한다. “남자들은 아직도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그리고 내가 알고 그들은 모르는 일에 대해서 내게 잘못된 설명을 늘어놓은 데 대해 사과한 남자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 미국의 여성학자 리베카 솔닛이 자신의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쓴 체험적 고발이다.

남자의 눈물: “여자들은 모두 여자로 태어난다. 그러나 남자는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진단이다. 고대 중국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말로 남자아이들에게 감정을 억제하라고 가르쳤다. “강한 남자는 피를 흘리기 전에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눈물로 감정을 조절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감정을 처리하거나 다스린다. 여성 작가 김형경은 이렇게도 말한다. “남자들은 언어나 눈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은 행동으로 감정을 표출한다.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듯 끊임없이 달리는 그들의 행위 속에 감정의 모든 요소들이 표현되고 있다. 남자가 눈물을 보일 수 있는 상황은 일생에 단 세 차례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첫째는 태어났을 때, 둘째는 부모가 죽었을 때, 셋째는 나라가 망했을 때다. 우리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듯 비장함을 강요받고 자랐다. 울지 않는 훈련에 습관이 들면 눈물을 아주 잃어버린다.

다음은 한 유명작가의 솔직한 고백이다. 평소 몸가짐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범적인 가장으로 살았던 그가 중년에 들어 단 한 차례 애인을 두었다. 둘 사이가 깊어지면서 심각한 내적 동요가 일었다. 그는 장성한 아들에게 털어놓았다. 야속하게도 아들은 아버지의 세계를 용납할 수 없었다. 남은 문제는 어떻게 헤어질 것인가였다. 혼자서 고심을 하다가 여자 문제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그 방면의 도사인 선배 문인 두 분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한 사람은 소설가였고, 다른 한 사람은 연륜이 더 깊은 시인이었다. 둘이 내놓은 처방은 각기 달랐다. 소설가의 처방은 서사적이었다.

“진지하게 설득해라. 상대도 이미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니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경험이 많은 시인의 처방은 달랐다.

“아무 소리 말고 그저 울어라. 왜 우느냐고 물어도 답하지 말고 그냥 울기만 해라.”

가히 시적인 처방이라고 할까? 둘 중 누구의 처방을 따랐는지, 그 처방이 효험을 보았는지, 궁금한 독자는 직접 시험해보시기를.

섹스 그리고 남자의 허풍: “섹스와 관련된 질문에는 거짓말을 해도 좋다.” 탈무드의 잠언이다. 또한 작가 김정운은 그의 저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사내들이 군대생활 중에 주고받는 성 경험 이야기는 100% ‘뻥 & 구라’라고 장담한다. 사내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무한한 해방감과 행복감을 느낀다면서, 그게 바로 군대의 속성이자 남자의 속성이라고 김정운은 덧붙인다. 진화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더 방어적이라고 한다. 남성들의 유전자 속에는 항상 주위를 경계하는 특성이 만들어져 있다.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남녀가 함께 호텔에 들어갔을 때 양성이 판이하게 다른 행동을 한다고 한다. 여자는 욕실을 점검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안락함을 점검한다. 반면 남자는 복도의 비상구를 확인하고 객실 창을 열어 바깥을 살피며 비상시의 퇴로를 생각한다. 또한 산책을 나가면 호텔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사위를 경계한다. 그들은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항상 방어 상태에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남자의 거짓말도 곧잘 사용되는 방어기제다. 남자들은 상대방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연인을 두고 다른 여성을 만날 때, 아내가 싫어하는 지인과 등산이나 골프를 치러 갈 때 남자들은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연인은 떠나려 할 테고, 아내는 잔소리를 할 것이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Fight or Flight)’는 경쟁을 기본 원칙으로 살아가는 남자들이 의존하는 생존법이다. 김형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자들은 경쟁사회에서 자기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것을 전장에서 갑옷과 투구를 벗는 행위쯤으로 생각한다. 자기가 털어놓는 비밀과 사생활이 언젠가는 경쟁자에 의해 자신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될지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무난한 사회생활을 하려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 필요하고 타인의 거짓말도 적절히 눈감아주는 아량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거짓말은 약자의 생존법이다. 남자는 항상 불안 속에 사는 약자다.

남자, 권력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히다

권력은 사람의 뇌도 바꾼다: 권력욕은 남자의 상징이다. 나이가 들어 다른 욕망은 쇠퇴해도 권력욕은 쇠퇴하지 않는다. 욕망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신체나 다른 욕망이 줄어들면 권력욕은 오히려 강해진다. 남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의 끈에 매달린다. 노욕이나 노추로 비판받으면서도 권력의 끈을 놓기 힘든 것이다. 어떤 종류의 권력이든 권력은 매력을 넘어 마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직책에는 그 직책으로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됨과 동시에 이에 상응하는 책임이 부과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모든 직책에는 ‘직격’이 있다. 직격에 맞는 처신이 따라야만 존경받는 관리자가 된다. 권력 그 자체에는 선과 악이 없다. 사람이 쓰기 나름이다. 청백리도, 탐관오리도 같은 자리에서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권력을 쥐면 재물도 저절로 따랐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권력의 핵심이다. 돈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권력은 드물다. 언제 어느 사회에서나 돈과 권력의 결합이 가장 전형적인 악이다.

제도 권력은 공적 활동을 위한 힘이다. 부국안민이든 창업, 수성이든 그 어느 단계에서든 국가의 권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힘이다. 공적 직위에서 도모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이 있다. 만약 공적 권력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면 악이 된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풍부한 사례를 담아 비참한 백성들의 삶을 그리고 참된 목민관의 책무를 강조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탐관오리에 대한 혐오는 민중예술의 전형적인 소재가 되었다.



Part 2. 남자와 결혼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남자, 결혼을 관성과 체념으로 채우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행복하다.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부부를 ‘도반정려(道伴情侶)’라 부른다. 함께 삶의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정으로 뭉쳐진 사이라는 뜻이다. 단순히 함께 밤만 먹고 잠자리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사실 많은 욕망을 접고 사는 것이다. 오래전에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살아남으려면 마누라와 아이만 빼고 다 바꿔라!”라고 비장한 수사를 던졌을 때 많은 삼성의 임원들이 회장의 구호가 잘못되었다고 불평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김정운이 『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에서 말했듯이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바꾸고 싶은 것이 다름 아닌 마누라이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에게 누군가 결혼 생활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내가 살아 있는 이상 내겐 진실을 말할 자유가 없다오.”

철학자 니체 역시 결혼제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열정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일이다. 잠깐 동안 불타오르는 사랑으로 결혼한 두 사람에게 영원한 사랑, 영원한 정열의 의무를 지우는 결혼제도는 열정의 본질에 어긋난다. 돌발적이고 일회적인 약속에서 영원한 의무를 창조해낸 제도와 풍습에서 위선과 거짓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현대사회의 가장 슬픈 합의 가운데 하나가 결혼이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결혼이 실제 이상으로 끔찍한 것처럼 표현되는 까닭은 결혼이 원칙적으로 행복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세상 사람들의 가정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한마디로 침대 시트와 비슷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네 귀퉁이가 반듯하게 펴지지 않는다. 한쪽을 제대로 펴놓으면 다른 쪽이 더 구겨지거나 흐트러져 결코 완벽을 추구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랑의 시작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알면서도 어떻게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다. 결혼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수한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말하면 결혼 생활의 본질은 ‘관성’과 ‘체념’이다. 관성이란 부부 사이에 축적된 편한 상태다. 둘 사이가 편해지려면 서로 양보해야 한다. 함께 이룬 것이 많으면 안정에 도움이 된다. 함께 가꾸어야 할 자식이 있으면 섣불리 헤어지기 쉽지 않다. 헤어질 경우 감당해야 할 부담이 싫어서라도 부부가 서로 양보하게 된다. 결혼 생활을 혼자서 참아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정상적일 수도 행복할 리도 없다. 결혼 생활은 둘이서 함께 참아낼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남자는 왜 여자의 순결에 집착할까?

『데카메론』을 다시 읽으며: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금서로 낙인찍혀 민중의 접근이 금지되었던 작품 중 하나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이 작품은 모든 금서가 그러하듯이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작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데카메론』은 시대의 제도적 윤리와 보편적 이성을 넘어선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거리낌 없이 그리고 있다. 기독교와 남성의 지배 체제가 공고하던 시절에, 이 작품은 신의 이름으로 남성이 주도하는 권력구조로부터 인간과 여성을 해방시킨다는 주제를 관철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여성해방의 수단으로, 여성을 남성의 성행위의 단순한 개체가 아닌 당당한 독립적 주체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수많은 여성 주도의 일화 중에 단연 압권은 ‘제6일 제7화’인 필리파 부인의 이야기다.

절세미인인 젊은 귀족부인 필리파가 간통 현장을 남편에게 발각 당한다. 법에 의하면 사형감이다. 그러나 필리파 부인은 당당하게 자신이 간통한 사실을 인정한다. 그녀의 항변은 보다 근본적인 주장으로, 즉 이렇듯 여성을 속박하는 법은 남성이 자의적으로 제정한 악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작 이 법은 처벌 대상이 될 여성의 동의 없이 제정된 것이므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것이다. 필리파 부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약 아내에게 남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다면 자신은 결코 이 의무를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한 번도 남편의 성적 요구를 거절한 적이 없고, 오로지 그런 일을 다 하고도 힘이 남아 애인에게 몸을 베풀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남편이 자기의 필요에 의해 아내를 쾌락의 도구로 삼는다면 아내도 마찬가지로 남편이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경우에는 ‘개에게 던져주느니보다’ 다른 사내를 택하는 것이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효용의 관점에서도 더욱 합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판사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필리파 부인을 석방한다. ‘파는 사랑’만이 범죄가 될 뿐 ‘베푸는 사랑’은 죄가 아니라는 판결이다.

오늘날 육체적 순결은 과거처럼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혼전 섹스가 증가했고, 젊은이 사이의 관습은 애무에서 성교로 바뀌었고 여성의 가치가 성적 도덕과 결부되었다는 사실은 망각되었다. 성 혁명은 남녀가 결혼제도와 무관하게 성적으로 애정을 표현할 권리를 의미하고 여성의 가치를 정조와 동일시하는 태도를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성 혁명은 술집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섹스를 하고, 다음 날 책임감 없이 헤어질 권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건강한 남녀가 연애할 때 섹스가 수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각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지고, 결과에 대해서는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임신은 여성의 축복이다. 하늘이 여성에게 내린 가장 큰 축복이 어머니가 될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은 남녀의 합의에 의해 그리고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라야만 비로소 축복이 될 수 있다.



Part 3. 남자와 사회



한국, 한국인의 운명

군대, 의무라는 이름의 천형: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진다(헌법 38조 1항)’고 규정한다. 병역법에서 사병은 징병제를 원칙으로 삼고 예외적으로 각종 대체복무를 허용한다. 물론 여성은 징집에서 면제된다. 또한 헌법은 ‘누구든지 병역 의무의 이행으로 불이익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제39조2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징병된 군 복무자에게 엄청난 불이익이 주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한창 인생과 장래를 설계하며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는 청년들에게 군복무는 별도의 계획을 세울 것을 강요한다. 그것은 꿈의 유보, 사회적 관계와 경력의 단절이다. 사회생활과의 단절, 바깥세계로부터의 격리, 소외되는 것 자체가 불이익이다. ‘군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기성세대가 강조하는 전래의 경구도 신세대 청년들에게는 괜한 헛말에 불과하다.

이제 모병제를 논할 때다: 자유와 자율, 양대 덕목은 자유민주주의의 삶의 본질적 가치다.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군대는 국가의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필수 조직이 되었다.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강건, 청렴, 효율의 상징이 되는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 나라는 결코 선진국 자격이 없다. 군대의 구성과 운영에 자유민주주의 헌정 원리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 것인가? 이는 많은 나라에 공통된 과제다. 그리고 핵심 주제의 하나가 ‘징병제냐, 아니면 모병제냐’이다. 병역을 의무로 강제하는 징병제를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과 자율적인 책임을 바탕으로 삼는 모병제를 채택할 것인가?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사실 시대가 변하면서 오래전부터 모병제가 선진국의 추세가 되었다.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한 후에도 여전히 미국 군대는 세계 최강이다. 일본의 자위대 역시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업이다. 유럽은 거의 예외 없이 모병제다. 요컨대 군인이 합당한 대접을 받는 나라야만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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