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하바 요시타카 지음 | 더난출판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하바 요시타카 지음
더난출판 / 2016년 10월 / 284쪽 / 14,800원
나와 책 이야기 1
좋은 책을 읽으면 잠이 달다
『풀베개』 나쓰메 소세키 / <골드베르크 변주곡> 바흐, 연주: 반다 란도프스카, 글렌 굴드
사람들이 서점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책을 가지고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을 한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세상에서 몰랐던 책과 우연히 만나는 기회를 일상 속 여기저기에 흩뿌리고 싶어서다. 북 디렉터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최근 음악 감상과 독서의 관련성을 느낀 적이 있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죽었을 때 머리맡에 있던 두 권의 책이 『성서』와 『풀베개』였다는 것은 꽤 알려진 이야기다. 요코다 쇼이치로의 『「풀베개」 변주곡』을 보면, 굴드는 연주활동을 그만둔 지 삼 년이 지난 1967년에 윌리엄 폴리라는 대학교수가 보내준 그 소설을 세상을 떠난 1982년까지 여러 차례 읽었다.
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폴란드 출신 쳄발로 연주가 반다 란도프스카의 연주로 처음 들었는데, 굴드의 연주 CD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서도 묘하게 끌려 내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약동하는 것을 느꼈다. 1955년에 녹음된 그의 데뷔 앨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양식으로 J. S. 바흐가 울린다. 템포가 빠른 것은 물론이고 페달을 적게 사용해서인지 매끄러우면서도 밝고 발랄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굴드는 『풀베개』의 무엇에 자신을 일치시킨 걸까? 이 소설은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서양화가가 무릉도원 같은 시골의 온천 여관에 묵으면서 그림을 그려야 할 순간을 찾는다는 아련한 이야기다. 인간의 정을 초월한 나쓰메 소세키의 ‘냉담’이 잘 표현되어 있고, 그의 예술론을 보여주는 책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혜로 움직이면 모가 난다. 정에 편승하면 휩쓸려 간다. 오기를 관철시키려 하면 옹색하다. 아무튼 사람 사는 세상은 살기 힘들다.’라는 도입부를 소리 내서 외웠던 국어 시간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둘의 관계를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속적인 모차르트를 싫어한, 철저히 ‘비인정’의 음악가였던 굴드는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풀베개』를 낭독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굴드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의 어디에 공감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알 수 없음이 독서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백 명 있으면 각기 다른 백 가지 독서법이 있다. 책의 어디에 영향을 받고 공감하는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그렇다. 독서법에 정답은 없다. 독자는 책의 책장을 편 순간, 작가가 쓴 문장에 깃든 신비한 힘을 이해하는 자유를 얻는다.
물론 스스로 책과 마주하는 것이 전제다. 최근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책의 줄거리와 결말, 골자는 물론 미스터리소설의 경우 범인(!)까지, 상세히 정리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책을 읽은 기분을 느끼기도, 책을 읽은 척하기도 편한 세상이다. 그렇지만 독서는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일대일 관계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고 마음속의 무엇이 움직였는지가 중요하다.
독서는 몊 시간 공상 속을 여행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읽은 책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라도 마음에 깊이 꽂혀서 피와 살이 되고 하루하루 실제 생활에 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빠르게 많이 읽어서 많은 정보를 접하는 효용만 강조하는데, 그건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침에 십 분 일찍 일어나려는 마음이 들었다거나 저녁 반찬 레시피를 떠올렸다고 하는 사소하지만 일상을 만드는 조각에 책이 관계하면 좋겠다.
책을 읽고 무언가를 ‘아는 것’이 ‘사는 것’과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자주 한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책을 읽으려고 노력은 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답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외부기억장치가 발전할수록 만물박사인 인간은 필요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 외부기억장치에 의존하는 인간은 단편적인 답만 즉각 얻을 수 있는 대체 가능한 존재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책을 읽는 것은 작가의 인생을 더듬어가는 터무니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독서라는 일대일의 정신적 교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를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길러내는 유일한 수단이다. 결국, 책이 없는 상태에서도 몸이 무엇을 기억하느냐가 중요하다.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와서, 자신의 무언가를 흔드는 음악을 들었을 때도 나는 정신의 교류를 느낀다. 작곡자, 연주자, 그들로부터 울려 나오는 소리 이상을 전달받은 느낌이다. 음질이나 재생 미디어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음악에 무엇을 느끼고 마음의 어느 곳이 움직였는지, 마음의 어느 곳이 일격을 당했고, 그래서 어떤 상처가 자신에게 남았느냐 하는 문제다.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 나쁘지 않다. 음악 감상이 취미인 것처럼. 하지만 지식을 위한 독서, 교양을 위한 음악은 이제 멈추어도 되는 시대가 아닐까. 외부기억장치로는 발견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체험을 주는 독서와 음악 감상의 기회. 이런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방대한 데이터만 나뒹구는 세계가 되어버린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낄 것. 그 감촉을 기념사진처럼 장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에 스며들게 할 것. 좋은 음악을 들으면 밥맛이 난다. 좋은 책을 읽으면 잠이 달아난다. 이런 생활이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겨지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
요즘은 책을 안 읽는다는 분에게
“요즘엔 거의 책을 안 읽어요.” 자주 듣는 말이다. 육아, 간병, 직장, 노안, 이런저런 바쁜 일, 책을 안 읽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하나같이 절실한 이유라서, 안타깝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써도 책을 읽지 않는 분에게는 쉽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히 읽을 것이다. 독서가나 애독가의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책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읽는 사람은 읽는다. 조금만 노력하면 스스로 책을 찾을 수 있다. 책은 과하다 싶을 만큼 넘쳐나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읽지 않는 사람은 철저히, 전혀 읽지 않는다. 책을 떠올릴 여유도 없다. 오락거리는 세상에 넘쳐나고 시간쟁탈전은 격렬하다. 책이라는 콘텐츠는 그런 치열한 싸움에서 항상 연전연패.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보자. 드물게 발견한 날은 멸종위기종을 만난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줄어든 뱀장어도 계속 먹고 싶고 책도 읽고 싶다.
최근 나는 책에서 멀어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흥미롭다. 물론 난다 긴다 하는 독서가와 호사카 가즈시의 『미명의 투쟁』을 두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도 즐겁다. 술잔을 나누며 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을 잃어버린 장소에 책이 스며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병원과 노인 돌봄 기관 등 지금까지 책이 없었고, 없어도 별문제 없이 기능해왔던 장소에 서가를 만드는 일이 늘었다. 나이가 들면서 마조히스트(?) 기질이 강해지는 건지 모르지만 책 따위 흥미 없다며 가차 없이 말하는 사람들과 왜 책을 읽지 않는지를 두고 대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큰 공부가 된다. 책이 무겁다, 글자가 작다, 읽을 가치 있는 책이 없다, 지구력이 없다, 도움이 안 된다, 읽어봤자 득 볼 게 없다 등등 책을 멀리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이야기는 필자의 회사 바흐가 도서 코너를 만든 한 맨션에서 책 소개 워크숍을 열었을 때 일이다. 책을 놔두기만 하고 손을 떼는 무책임한 서가 꾸미기를 싫어해서 최근에는 완성 후에도 개입할 수 있도록 서가 이용자들을 초대해 책의 내용과 책을 선정한 의도를 설명한다. 내가 고른 몇 권을 손에 들고 볼 만한 장면과 도입 부분을 설명하는데 참가자 중에 한 분이 말했다. “옆집 OO엄마는 읽을 만한 책이 없다던데 볼 만한 게 있네. 관리비 낭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야.”
네, 다행입니다. 옆집 OO엄마의 말은 정말 충격이었다. 솔직히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책을 고르는 일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실패면 본전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얼른 다른 책을 내민다. 그 책도 아니면 또 다음 책. 우울해지기 전에 다음 책. 이것이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염두에 두어야 할 마음가짐이다. 또 기억해둘 점. 당신이 추천한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하고 그 일로 인정받으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책을 고르게 된다. 그리고 운이 나쁘면 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 책을 사랑하듯이 눈앞의 누군가도 무언가(많은 경우 책과는 다른 것)를 사랑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자신이 추천하고 싶은 책과 눈앞의 누군가에게 권해야 할 책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것. 나는 그런 위치를 찾으면서 매일 일하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책 읽기를 좋아할 이 책의 독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당신 주변에서 ‘책은 안 좋아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한 권을 선물해주자. 물론 마음에 새겨둔 한 권도 좋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대화에서 번득여 열어본 자신의 서랍 속 책을 소개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책을 고민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행위다. 여행지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엽서를 쓰는 것과 같다. 오랫동안 책을 멀리한 사람도 먼 곳에서 보내주는 엽서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보낸 한 권이 요즘은 책을 안 읽는다는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독서라는 즐거움으로 이끌 수 있을지 모른다.
창작자의 시선
한 사람을 향한 순수한 마음
영화 <바람이 분다> 미야자키 하야오
『바람이 분다』, 『나호코』 호리 다쓰오
『제로센, 탄생과 영광의 기록』 호리코시 지로
『인간의 대지』 생텍쥐페리
영화 <바람이 분다>를 봤다. 지금까지의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달리 실존 인물을 토대로 만든 첫 작품이다. 판타지 요소는 극중의 꿈속으로만 한정한, 지극히 현실적인 성인용 지브리 작품이 완성되었는데 실로 아름다운 영화다. 이 작품은 제로센이라는 전투기의 설계사로 알려진 호리코시 지로 그리고 영화와 같은 제목인 『바람이 분다』와 『나호코』 등 담백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문학가 호리 다쓰오의 인생을 섞어 새롭게 ‘호리코시 지로’라는 주인공을 만들어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의 일본 관동대지진과 세계공황, 빈곤과 결핵이 만연하는 암울한 시기다. 재해와 폐색이라는 시대 분위기는 그대로 2010년대에도 일치하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아름답게 바람처럼’ 비행기를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진 주인공이 호리코시 지로였다. 비행기를 만들면서 그가 겪는 고투가 세로축, 비행기에 홀린 그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성 나호코와의 러브스토리가 가로축이 되어 얽히는 구조다.
지로와 나호코의 연애가 영화의 골자다.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공기술의 온갖 지식과 기술, 제로센 비행기와 일본의 기술력 예찬을 기대하고 영화관에 가서는 안 된다. 그렇다. 변천하는 기술과 사회적 배경과는 별개인 변하지 않는 감정.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사람과의 추억. 그것이 <바람이 분다>라는 영화 속에 의연하게 드러나 있다.
바꿔 말하면, 지로가 꿈꾼 비행기는 후대 역사가들이 고쳐 쓸 수 있는 허무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생텍쥐페리가 직업 비행사였을 때의 체험을 소설로 만든 명작 『인간의 대지』. 신초샤 문고판의 표지와 후기를 맡은 미야자키 하야오는 ‘비행기의 역사는 흉포하다.’라고 말했다. ‘속도야말로 20세기를 몰아낸 마약’이라는 미야자키의 말대로 비행기 제작에는 사회적 요구와 정치적 의도가 겹쳐져야 하는, 절대 혼자만의 꿈으로 달성 가능한 순수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꿈에 내포된 독(毒)도 전부 껴안으면서 호리코시 지로는 필사적으로 전투기 설계를 계속한다. 『제로센, 탄생과 영광의 기록』에서 실존 인물인 호리코시 지로가 말하는 예견과 부단한 노력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보조 날개의 밸런스 태브 하나가 비행기 기능에 미치는 작용에 놀라게 된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그런 기술력의 세부 내용은 맛보기 정도로만 사용되는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투기라는 살육병기를 만드는 그를 규탄하지도, ‘사실은 민간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고 지로를 두둔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만의 일관된 공평성. 정치와 이 작품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브리의 기관지 《열풍》에 실린 미야자키의 인터뷰가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존 라세터는 <바람이 분다>를 반전 영화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데 순수한 충동에서 시작된 그의 비행기 꿈은 전쟁이라는 현실의 침범으로 혼탁해진다. 그와는 반대로 무엇에게도 침범당하지 않는 절대 영역이 지로와 나호코의 사랑이다.
호리 다쓰오가 그린 작품 속에서 나호코라는 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 『바람이 분다』가 아니라 『나호코』라는 장편 작품이다. 결혼을 후회하는 나호코가 시어머니와 떨어지지 못하는 남편과의 생활을 답답하게 느끼면서 찾아간 요양소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려 한다는 이야기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등 외계와 차단된 요양소를 무대로 한 스토리에는 반드시 그곳에 머무는 자에게 정신적 고조가 찾아오는데 『나호코』에서는 결핵 요양 중인 그녀가 요양소를 빠져나와 신주쿠행 차표를 사서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에 응축되어 있다. 기차 안에 감도는 담배 냄새를 고통스럽게 느끼면서도 나호코는 이를 ‘앞으로 자신에게 되돌려질 삶의 정겨운 냄새를 예고’한다며 밖의 세계를 느낀다.
이 충동은 영화 속에서 지로와의 만남을 갈망하는 장면으로 그려지는데, 어느 쪽이든 삶을 되찾으려는 행위임에는 변함이 없다. 『나호코』에 나오는 탈출극이 ‘자신이 아닌 존재 속에서 사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새로운 탐구의 출발이었던 만큼 훨씬 순수한 형태로 관객에게 전해진다. 참으로 직선적인 그들의 마음.
모든 것이 대체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지고 효율과 이익을 사람에게 가져다준다고 모두가 믿어 의심하지 않는 시대. 그렇기 때문에 이 대체 불가능한 한 개인에 대한 희구는 감상자의 가슴에 울림을 준다. 특히 세상의 순수성을 믿을 수 없게 된 사람(어른인 경우가 많다)에게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책
된장국과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도쿄 오징어 클럽 - 지구를 방랑하는 방법』 무라카미 하루키, 쓰즈키 교이치, 요시모토 유미『잃어버린 세계』 코난 도일
그저 우연일 뿐이지만 나고야 근교 출신으로 서른여섯 살인 주인공에게 묘하게 끌렸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의 만남.
발매 당일 늦은 밤, 서점에 수많은 팬이 줄을 늘어섰다는 떠들썩함과는 관계없다. 우연히 그날 신칸센을 타기 위해 시나가와역에 갔는데 매점에 쌓여 있는 소설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나고야 방면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읽기에 정말 어울리는 이야기일 줄 몰랐다. 페이지를 펴보니 늘 그렇듯 무라카미 작품 특유의 고독한 주인공이 있었다.
서른여섯으로 도쿄에 있는 철도회사의 역사설계관리부문에서 일하는 다자키 쓰쿠루는 자신의 일에 긍지와 열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상처를 메우지 못하는 남자다. 그의 큰 상처는 스무 살 무렵 고등학교 시절 친구 네 명으로부터 이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절교를 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