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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최낙언 지음 | 행성B잎새



맛 이야기

최낙언 지음

행성B잎새 / 2016년 10월 / 336쪽 / 17,000원





‘맛’을 발견하다



맛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일까

스시의 매력은 맛일까 향일까: 많은 사람이 생선초밥을 좋아하고 예찬합니다. 그런데 스시의 구성은 참 단순합니다. 밥, 생선, 와사비와 간장 정도가 전부입니다. 초밥을 집어서 입에 넣으면 순식간에 여운을 남기고 목구멍 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한 입 먹거리가 주는 즐거움은 절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식가들의 예찬이 끊이지 않습니다. 스시의 매력은 과연 맛일까요, 향일까요? 향 자체는 정말 미약하고 단순한데 어떻게 그렇게 화려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세상에 향이 없다면 우리가 느끼는 맛은 고작 5종일 것입니다. 물론 5종을 섞으면 여러 맛이 나겠지만 제아무리 다양한 변형을 한다고 해도 수십 종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맛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맛에서 미각이 10~20퍼센트, 후각이 80~90퍼센트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이 말은 사실일까요? 사실이 아닙니다. 일반인은 미각과 후각을 구분하지 못해 후각의 역할을 착각하지만, 과학자들은 후각의 종류에 현혹되어 미각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설탕, 탄수화물, 소금, 고기 중독 같은 맛의 중독은 있어도 향 중독은 없습니다. 판다는 원래 초식과 육식을 같이 했지만 약 400만 년 전 감칠맛 수용체의 유전자가 고장 나 고기 맛을 모르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대나무 잎을 먹고 삽니다. 반대로 호랑이 같은 고양잇과 동물은 단맛 수용체의 유전자가 고장 나 고기만 먹고 삽니다. 맛이 운명을 결정한 것이죠.

인간은 단맛과 감칠맛 수용체가 모두 온전한 잡식성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해서 풀뿌리에서 벌레, 상어지느러미까지 먹어댑니다. 아찔한 절벽에 매달린 야생염소는 소금에 목숨을 거는 것이고, 하루에 자기 체중의 절반만큼의 단물을 먹는 벌새는 설탕에 중독된 것입니다. 이처럼 맛 중독은 흔해도 향 중독은 없으니 우리는 맛의 의미를 정말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쓴맛에 유독 예민한 이유

맛과 향, 무엇이 더 중요할까: 본래 쓴맛은 동물에게 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자료였습니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쓴맛=독’으로 보고 쓴맛이 나면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미각에도 쓴맛을 독으로 생각하고 피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점점 쓴맛에 둔해져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커피도 잘 마시고 술도 좋아하게 됩니다. 최근 유전자 연구에 의하면 다른 영장류에 비해 인간의 쓴맛을 느끼는 유전자는 많이 퇴화했다고 합니다. 뇌가 발달함에 따라 미각으로 독을 판단할 필요성이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경우에도 맛이 향보다 중요합니다. 다이어트를 하면 먹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참 괴롭습니다. 맛의 즐거움의 80~90퍼센트가 향에서 오는 것이라면 칼로리가 있는 맛을 포기하고 향만 사용해도 우리는 상당한 맛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향미수처럼 향만 사용한 제품에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칼로리를 빼서 성공한 제품은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제로 칼로리 제품은 항상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집니다. 결국 우리가 그 역할에 비해 가장 무시하는 것이 소금 설탕 같은 가장 단순하면서 위대한 맛 성분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달거나 짠 음식을 바라면서도 단순한 설탕물이나 소금 맛만 나는 음식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대신 맛과 향 그리고 식감이 절묘하게 조화된 음식을 좋아합니다. 향은 맛 성분의 바탕 위에서 빛나는 것이지 향 자체로는 금방 싫증나고 의미가 없습니다.



단맛 이야기



설탕 이야기

설탕, 천덕꾸러기가 되다: 요즘 설탕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건강에 나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제2차 당류 저감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하루 섭취량이 50그램 이내가 되도록 관리하겠다고 합니다. 설탕 사용량을 줄인 조리법을 개발하고 대체 감미료도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중국에서 처음 설탕을 수입했습니다. 1900년대 조선의 개화론자들은 서구인처럼 설탕을 많이 먹어야 문명화된다고 주장했고, 갓난아기에게 주는 모유나 우유에 백설탕을 첨가할 것을 권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던 설탕이 지금은 식약처가 소비를 줄이자는 운동을 할 정도로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인류가 모유에 이어 단맛을 경험한 것은 아마 과일을 통해서였을 것입니다. 대추야자처럼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과일의 당도는 무려 60퍼센트에 이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연에서 가장 당도가 높은 음식은 꿀로서 당도가 80퍼센트인 것도 있습니다. 꿀은 벌이 식물의 달콤한 즙에서 뽑아낸 것이고, 인간도 식물에서 달콤한 즙을 채취해 설탕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아시아의 야자나무, 북미 숲의 단풍나무와 자작나무, 아메리카 대륙의 용설란과 옥수숫대들이 달콤한 즙을 공급해왔습니다. 그 가운데 사탕수수만큼 넉넉한 것은 없었습니다.

알수록 재미있는 설탕의 역사: 오늘날 설탕은 평범해졌지만 12세기 유럽인은 설탕을 거의 알지 못했으며, 18세기까지도 사치품이었습니다. 최초의 주된 설탕 원료는 사탕수수였습니다. 사탕수수는 줄기의 세포액 속에 약 15퍼센트의 높은 설탕 함량을 지닌 볏과 식물입니다. 남태평양 뉴기니가 원산지인 사탕수수는 선사시대에 아시아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아시아에 전파되었습니다. BC 500년 이전에 인도 사람들은 압착해 짜낸 사탕수수 즙을 졸여서 원당을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그로부터 400년 후 인도의 의학서적들은 사탕수수로 만든 다양한 시럽과 설탕을 구분하고 있는데 당시에 이미 백설탕이 개발되어 있었습니다.

6세기경 사탕수수의 설탕 제조 기술이 인더스 강 삼각주로부터 서쪽으로 이동해서 페르시아 만까지 전해졌고, 7세기에 아랍인들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사탕수수는 북아프리카, 시리아, 더 나아가서는 스페인과 시칠리아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서구인들이 처음 설탕을 만난 것은 십자군 원정대가 성지를 찾아 떠났던 11세기입니다. 그 후 베네치아가 아랍에서 서구로의 설탕 수출 중심지가 되었고, 영국에 설탕이 대량으로 들어온 것은 1319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설탕을 후추나 생강 같은 이국적인 수입품들처럼 약재로 다뤘습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에게 설탕은 식품이라기보다 약품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설탕을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생각은 아라비아에서 십자군들이 돌아올 때 함께 들어왔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성 영양불량에 시달리고 있었던 만큼 칼로리가 높은 설탕은 어떤 경우에나 즉효가 있는 약품이었습니다.

늘어나는 소비, 발전하는 기술: 15세기에 들어 유럽의 부유층들은 음식의 풍미를 보완하고 맛 자체로서의 즐거움을 주는 설탕의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17세기가 되자 궁정의 당과 제조자들은 설탕을 녹여 대형 장식물을 만들었고, 설탕 사탕이 흔해졌고,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설탕은 더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특히 설탕을 많이 이용했는데 노동자 계급의 에너지원이었던 차와 잼에 다량으로 소비되었습니다. 19세기에는 사탕무를 이용한 설탕 생산의 증가와 요리 기술의 발전으로 설탕의 활용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설탕이 일반사람들에게도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인데 이것은 차와 커피의 보급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영국인들은 홍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17세기 초 설탕과 차는 약국에서 취급될 만큼 귀중한 ‘약품’이었습니다. 따라서 병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그것들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신사나 귀족, 그리고 부유한 무역상인들뿐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영국의 상인계급들은 자신의 재력을 뽐내기 위해 동일한 무게의 은과 비슷할 정도로 값비싼 향신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일환으로 비싼 홍차에 설탕을 넣어 마셨던 것입니다. 마치 고급술에 금가루를 뿌려 마시는 것과 비슷한 심리였죠.

달콤함 속에 숨겨진 잔혹한 노예제도: 설탕의 생산과 소비는 급격히 늘어 19세기에는 교도소 수감자들에게도 홍차가 배급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의 잔혹한 욕망의 역사가 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에서 대량으로 공급된 흑인 노예들로 구성된 중남미 설탕 플랜테이션 산업이죠. 16~19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이 끌고 간 아프리카 흑인 노예는 1,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설탕산업은 노예제도가 대폭 확대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고 이어서 남미의 식민지들과 면화 플랜테이션에서 노예제를 도입하도록 하는 데 큰 몫을 합니다. 또한 사탕수수 농장 소유주들이 축적한 거대한 부는 산업혁명 초기 돈줄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18세기 무렵 영국인은 프랑스인보다 설탕을 10배 가까이 소비했고 이와 함께 차 수입도 급증했습니다.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은 밀크티는 영국 서민들의 생존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싼 맥주와 버터 대신 설탕을 넣은 차와 과일잼이 훨씬 더 경제적이었기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에게 설탕은 힘과 위안을 주는 최고의 건강식품이었던 것입니다.

단맛에 대한 착각과 진실

설탕은 안전한 감미료다: 설탕의 부드럽고 풍부한 맛은 감미료 중에서 최고이지만 안전성에서도 최고입니다. 물론 꿀도 안전하고 장점도 많지만 설탕보다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세상의 어떤 감미료도 사탕수수의 생산성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당의 가격이 너무나 저렴한 것이죠.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기에는 원당의 판매가격이 너무 저렴하기 때문에 모든 사탕수수는 유기농일 수밖에 없고, 단지 정식으로 인증을 받았느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가장 맛있고,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재료임에도 설탕이 비난받는 이유는 아마도 너무나 가격이 저렴해 쉽게 많이 쓸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설탕은 인간을 위해 아낌없이 준 고마운 작물인데 인간이 과용해놓고, 그 죄를 설탕에 물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짠맛 이야기



소금 이야기

왜 소금을 갈망하게 되었을까: 소금은 정말 단순합니다. 나트륨 원자 하나가 염소 원자 하나와 결합한 결정체에 지나지 않고 사람에게 필요한 양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하루에 3그램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소금의 역할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 몸에 들어가면 각기 나트륨과 염소 이온으로 나뉘어 수많은 생리 대사 작용에 관여합니다. 소금이 없으면 우리의 몸은 생리 대사 작용이 일어날 수 없고 심장이 뛰지 않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설탕도 한때 귀한 약으로 대접 받았지만 소금에 비할 바는 못 됩니다. 설탕은 그저 욕망의 문제지만 소금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설탕 대신 탄수화물을 충분히 섭취하면 되지만 소금은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금을 별도로 챙겨 먹는 것입니다.

사실 소금은 수렵 위주의 원시적 생활을 하던 시대에는 중요한 자원이 아니었습니다. 동물의 고기에는 피나 내장에 염분이 포함되어 있어 따로 섭취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인간이 수렵 대신 농경생활을 하면서 별도로 소금을 섭취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정착을 시작한 농경은 바닷가 인근의 강 하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강 하류에는 비옥한 퇴적층이 쌓여 농사짓기가 좋았고 주변에 소금물이 포함된 지하수가 올라와 소금 구하기가 수월했기 때문입니다.

도시와 문화를 탄생시키다: 그렇다면 소금은 바닷가에서 쉽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닷가에서 천일염을 얻기 위해서는 갯벌과 조수 간만의 차, 덥고 건조한 기후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또한 천일염의 제조법이 개발된 것은 최근의 일이고 예전부터 지금까지 가장 흔한 소금은 암염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문화나 도시의 생성은 소금과 관련이 깊었죠. 일반적으로 바다의 염분 농도가 3.5퍼센트인 데 비해 사해는 자그마치 25퍼센트이기 때문에 사해 근처는 소금을 구하기 쉬워서 인류 최초의 도시가 생기기에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소금이 만들어지면 사방에서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부르는 게 값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소금을 가진 자는 돈과 권력을 손에 쥐었죠. 로마가 소금으로 일어났고, 중국 진시황의 천하통일도 소금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바닷물에서 소금을 얻는 것이 최초의 제조업이었던 것입니다. 소금이 흔해진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07년에야 인천 주안 염전에서 최초의 천일염이 제조되었고 소금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진 것은 1955년입니다.

염장 청어로 부를 쌓은 네덜란드: 로마 초기에는 소금이 화폐 역할을 했습니다. 관리나 군인에게 주는 급료를 소금으로 지불했고, 이를 ‘살라리움’이라고 했습니다. 봉급을 뜻하는 샐러리, 봉급생활자를 일컫는 샐러리맨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말입니다. 12세기에 가나에서는 소금이 금값으로 교환되었으며 노예 한 명이 그의 발 크기만 한 소금 판과 맞교환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소금은 정말 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는 염장 생선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청어는 한번 떼가 몰려오면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을 만큼 잡혀 근대 이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주된 식량원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청어의 어획량은 해류의 변화에 따라 변동폭이 극히 심했습니다. 세계사를 보면 청어 어획량은 들쑥날쑥해서 청어가 잡히는 지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곤 했습니다. 특히 14세기부터 청어가 네덜란드 연안 북해로까지 몰려와 네덜란드인들은 너도나도 청어 잡이에 나섰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총 인구가 약 100만 명 정도였는데 청어 잡이에 연관된 사람이 3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잡은 청어들은 내장에 지방이 많아서 금세 상해버렸기 때문에 먼 바다에 나가 조업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14세기 중엽 네덜란드의 어부인 빌렘 벤켈소어가 작은 칼을 하나 개발했는데 그것이 네덜란드의 운명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는 배 위에서 그 작은 칼로 단번에 청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머리를 없앤 다음, 바로 소금에 절여 통에 보관하는 염장법을 고안했습니다. 육지로 와서 이것을 한 번 더 소금에 절이면 1년 넘게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어선들은 먼 바다까지 나갈 수 있었고 포획량도 엄청 늘었죠. 결국 청어 잡이는 네덜란드에 큰 부를 선사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지금도 매년 청어축제를 벌이고, 어부 빌렘 벤켈소어를 기념하는 행사도 열고 있습니다.

소금의 역할

소금을 줄이기가 쉽지 않은 이유: 소금은 아마 인류 최초의 식품 첨가물이자 최후의 첨가물일 것입니다. 소금만큼 적은 양으로 요리에 강력한 효과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소금은 음식에 짠맛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전반적인 풍미를 높여 맛있게 해줍니다. 또한 쓴맛을 없애주고 냄새를 줄이며 단맛을 강하게 하고 향을 더 풍부하게 만듭니다. 음식에서 짠맛이 나는 것은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소금이 요리에서 가장 강력한 맛 물질인 것은 그만큼 생존에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생명활동의 근원입니다. 우리 몸에서 나트륨이 부족하면 신경전달에 필요한 전위차가 발생하지 않아 몇 분 안에 사망하게 됩니다. 과도한 탈수 후에 급격히 물을 많이 마시면 치명적일 수 있는 이유는 체액의 나트륨 농도가 낮아져 신경전달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소금, 특히 나트륨을 소중하게 아껴서 사용합니다. 우리 몸은 소금의 99퍼센트를 재흡수해서 사용하므로 소금 소모율이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소량씩 끊임없이 손실되기 때문에 꾸준히 섭취해야 합니다. 그래서 동물의 몸속에는 항상 소금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에는 소금이 너무 흔하고 저렴해지면서 하루 섭취량이 10그램이 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작용도 심각합니다. 보건당국은 소금 적게 먹기를 강조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소금이 단지 짠맛이었으면 아주 쉽게 해결될 문제이지만 온갖 요리의 핵심적인 맛 성분이라 맛 경쟁을 하는 한, 줄이기 쉽지 않습니다. 무작정 소금을 줄이면 맛의 중심이 사라져 다른 모든 맛과 향이 시들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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