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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착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생각과 착각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6년 9월 / 392쪽 / 15,000원





인지적 한계와 함정



왜 우리는 “내가 맞아, 편견이 있는 건 너야!”라고 생각할까? 소박실재론



혹시 정치적 논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상대편이 어떤 강한 편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걸 넘어설 수 있는 실증적 증거들을 나열하면서 설득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있다면 아마도 ‘설득은 절대 불가’라는 결론을 한 번쯤은 내려보았을 것이다. 물론 정작 편견을 가진 건 나 자신일 수도 있겠지만, 그 누구의 편견이건 편견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미국 심리학자 리 로스와 에밀리 프로닌은 사람들에게 편견에 대해 가르친 후 “좋아요, 이제 이런 편견을 알게 됐으니 여러분은 방금 자신에 대해 말한 내용을 바꿀 생각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조너선 헤이트의 설명을 들어보자. “많은 연구에서 결과는 똑같았다.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이기적인 편견에 대해 배우고 그 지식을 다른 사람의 반응을 예측하는 데 적용하는 일은 매우 즐겼다. 하지만 그것도 그들 자신을 평가할 때는 별 효과가 없었다. 아무리 우리가 그들의 옷깃을 잡고 흔들어대며 ‘내 말 들어봐요. 대다수 사람들은 스스로를 과대포장해요. 현실을 직시하세요’라고 해도, 그들은 수용을 거부하며 ‘맞아요. 남들은 편견에 물들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보통 이상의 리더십을 갖고 있단 말입니다’라며 씩씩댄다.”

로스와 프로닌은 이렇게 거부적인 태도의 원인을 가리켜 ‘소박실재론(naive realism)’이라고 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바라본다”는 잘못된 가정, 즉 “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내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현실 사이에는 어떤 왜곡도 없다”고 믿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보는 사실은 모두가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들이 관련 사실을 접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사적인 이익이나 이데올로기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해 버린다. 따라서 소박실재론에 사로잡힌 사람(소박실재론자)에게 이 세상은 선과 악으로 가득한 세계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소박실재론은 우리의 지각이나 경험을 통한 인식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계의 실재가 있는 그대로 비친 것이라는 입장을 뜻하는 철학 용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상식적인 견해와 일치하기에 ‘소박’이라는 형용사를 곁들여서 부르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의 소박한 일상적 실감은 모든 사상의 원점이 되기도 하지만, 실생활의 필요에서 생기는 많은 편향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이 20세기 중반부터 그 점을 지적함으로써 소박실재론은 심리학 용어로 편입되었다. 소박실재론은 심리학에서 타인의 행동 원인을 행위자의 내적 특성 탓으로만 돌리는 ‘기본적 귀인 오류’, 내 문제는 ‘세상 탓’을 하고 남의 문제는 ‘사람 탓’을 하는 ‘행위자-관찰자 편향’,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자”는 등 남들도 내 생각과 같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허위 합의 효과’ 등과 같은 인지적 편향의 이론적 근거다.

미국 유명 코미디언이자 사회비평가인 조지 칼린은 “자기보다 느리게 운전하는 사람은 전부 멍청이고 자기보다 빠르게 운전하는 사람은 모두 미친놈이라는 걸 알았나요?”라고 꼬집었는데, 이는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소박실재론자라는 걸 말해준다 하겠다. 그 누구건 “내가 맞아, 편견이 있는 건 너야!”라는 생각이나 말을 한두 번쯤은 하지 않았을까?

‘나’는 쉽게 ‘우리’로 바뀔 수 있다. 소박실재론자에게 어떤 말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게 누구에게서 나왔느냐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 협상가들이 제시한 평화안을 팔레스타인의 제안이라고 속이고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평가를 요청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에릭 제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제시한 것이라고 속인 이스라엘 평화안보다 이스라엘이 제시한 것이라고 속인 팔레스타인의 평화안을 더 좋아했다. 자신의 제안을 상대편에서 내놓는다 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상대편의 제안이 실제로 상대편에서 나올 때 그것이 마음에 들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소박실재론과 비슷한 개념으로 ‘순진한 냉소주의(naive cynicism)’이 있다. ‘순진한 냉소주의’는 다른 사람이 실제보다 이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향이나 편견을 가리키는 말로, 심리학자 저스틴 크루거와 토머스 길로비치가 1999년에 제시한 개념이다. 냉전 시대에 소련의 군축 협상 제의를 미국이 거절한 것이나 정치에서 상대편에게 무슨 속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상대방의 제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등을 악화시키는 효과를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내가 맞아. 편견이 있는 건 너야!”라는 생각과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상대에 대한 불신이라는 점에선 소박실재론과 순진한 냉소주의는 상통한다. 특히 한국 정치는 그런 사례들의 보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권 여당일 땐 자기들이 했던 주장들을 야당이 되면 180도 뒤집는다든가, 반대로 야당일 때 했던 주장들 역시 집권하면 180도 뒤집는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런 작태들에 대해 모든 유권자가 크게 분노하거나 응징하지 않는 것은 유권자들 역시 자신의 당파성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일 게다. 우리 인간의 원초적 속성으로 받아들이기엔 그로 인한 비용과 희생이 너무 크니, 그게 문제다.



기만과 자기기만



왜 “먹고 싶은 요리 다 시켜! 난 짜장면”이라고 말하는 직장 상사가 많은가? 이중구속



‘catch-22’라는 말이 있다. “딜레마, 함정, 꼼짝할 수 없는”이란 뜻으로 쓰이는 말인데, 원래는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대표적인 반전 소설인 미국 작가 조지프 헬러의 『캐치-22』(1961)에서 나온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 공군 폭격 비행대대에서 폭격기 조종사로 일했던 헬러의 경험담에 근거한 이야기다.

계속 늘어나는 의무적인 출격 횟수 때문에 점점 죽음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칠 지경이 된 폭격기 조종사들은 전투 임무에서 면제되기를 바라는데, 군법에서는 catch-22가 바로 그 면제 조건에 관한 조항이다(catch에는 ‘항’이라는 뜻도 있다). 제22항은 군대를 퇴역하려면 미쳐야 한다는 조항이다. 그런데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알 정도라면 그는 미친 사람일 리가 없다. 따라서 ‘제대 불가’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다. 그게 바로 전쟁의 본질은 아닐까?

그런데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면? 그런 상황 또는 상태를 가리켜 ‘더블 바인드(double bind)’라고 한다. 우리말로 ‘이중구속’이라고 하는데, 한 사람이 둘 이상의 모순되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그 모순에 대해 응답을 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문화인류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1956년 조현증(정신분열증)에 관해 말하면서 제시한 이론이다. 정신분열증을 앓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상호 모순된 메시지를 받으면서 자랐다는 것을 밝힌 베이트슨의 이론은 심리학계에서 엄청난 호응을 받았고, 이후 의사들은 정신분열증을 진단할 때 환자의 가족력에 집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정신분열증의 발병 원인을 가족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게 하는 등 적잖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래서 이후 정신분열증에 관한 유전적 요인들에 주목하는 이론이 부상했다.

이중구속은 주로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과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이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예컨대,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무표정하거나 초조한 표정을 짓는다면 아이는 자신이 정말로 사랑받고 있는지 진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심리적 갈등을 일으킨다. 브레네 브라운은 서로 경쟁하는 모순된 기대치에 부응하려 들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 빠진다고 말한다.

(1) 완벽해져라. 그러면서도 완벽해진답시고 호들갑을 떨거나 가족이나 배우자, 일 등 뭐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정말 뛰어나다면 완벽해지는 게 어려울 리 없다.

(2) 아무도 화나게 하지 말고 감정을 상하게 하지도 마라. 그러면서도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아라.

(3) 성적 매력을 한껏 발산하라. 물론 아이들 챙기고, 개 산책시키고, 집 안 청소 끝내고 나서. 그러면서도 학부모 회의에 나가서는 성적 매력 발산은 금물. 섹시함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학부모 회의에 야하게 하고 오는 여자들이 뒤에서 욕먹는 거, 뻔 하지 않은가.

(4) 나답게 행동하라. 그러면서도 쑥스러워하거나 자신 없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자신감이 충만한 것보다 더 섹시한 게 어디 있겠는가.

(5)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초연해서도 안 된다. 지나치게 감정적이면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고, 지나치게 초연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다.

이런 이중구속은 특히 경쟁에 대한 태도에서 많이 나타난다. 입으로는 협력을 미화하고 장려하면서 실제로는 경쟁을 부추기는 식이다. 이에 대해 존 실리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경쟁을 해야 하지만, 경쟁적인 사람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학교는 겉으로는 협력을 ‘증진’하고, 은밀하게는 경쟁을 ‘묵인’함으로써 이러한 딜레마에 대처한다.”

일본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마음을 지배하고 행동을 설계하는가』(2012)에서 조금 응용된 버전의 세일즈 기법을 제시한다. 상대방이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랄 때, 그 일을 ‘할 생각이냐, 아니냐’ 하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선택지를 준비해 질문하는 방법이다. 복수의 선택지가 제시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국 같은 결과로 유도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를 살까 말까 갈등하는 고객에게 ‘이 장치를 달아놓을까요?’ 아니면 ‘자동차 색깔은 흰색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검은색을 좋아하세요?’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법이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을 전제로 하면 그다음 선택사항에 고객의 관심이 향한다. 이렇게 하면 살까 말까 고민하던 것을 멈추고 세세한 취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어느새 구매는 기정사실로 되고 만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더블 바인드는 함의라고 불리는 기법 중 하나다. 인간의 마음은 불가사의해서 뭔가를 하도록 직접적으로 말하면, 명령받았다고 받아들여 마음속에서 저항이 생긴다. 하지만 뭔가를 하도록 간접적으로 넌지시 말하거나, 하는 것을 전제로 놓고 말하면 저항이 생기기 어렵다. 가령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이 공부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을 때 아무리 공부를 하라고 독촉해도 소용없다. 하지만 ‘내년 이맘때에는 이렇게 가족이 모두 모여 한가하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겠네. 대학교는 1학년 때가 가장 바쁘다고 하니 말이야’와 같이 말해보자. 이 말은 본인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비난도 명령도 아니기에 마음에 저항이 생기기 어렵다. 그대로 마음에 와 닿기 쉽다.”

이중구속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난다. 박권일은 “‘기탄없이 비판해주기 바란다’고 해놓고 정작 기탄없이 비판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조직, ‘먹고 싶은 요리 다 시켜! 난 짜장면’이라고 말하는 직장 상사 등이 흔히 볼 수 있는 이중구속의 주체다. …… 이런 이중구속은 ‘논리적인 모순이기에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암묵의 명령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답정너’의 이중구속 상황은 인간 정신을 파괴한다기보다 알아서 기도록 길들인다. …… 정치는 정치인 개인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이벤트로 협소해진 반면 공동선을 위해 시스템의 치부를 고발한 윤리적 주체, 이를테면 내부고발자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지난 50년 동안 황망한 재난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때마다 사회는 ‘안전 불감증’을 반성하며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떠들어댔다. 사실 우리의 ‘답’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돈이 의리인기라. 억울하면 출세하든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곧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해서 자문한다. 우리는 정말로 이 사회를 그리고 돈의 욕망과 공포에 굴복한 스스로의 규칙마저 바꿀 용기가 있는가.”

그러나 알고 보면 “먹고 싶은 요리 다 시켜! 난 짜장면”이라 말하는 직장 상사도 다른 이중구속 상태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이중구속의 먹이사슬이라고 할까. 한국은 전형적인 ‘이중구속 사회’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중구속은 우리의 일상적 삶 전반에 위아래를 막론하고 철철 흘러넘친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가 전쟁의 본질이라면, 우리의 삶도 형식을 달리 한 전쟁이라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답정너’의 독재에 지레 굴복할 필요는 없다. 심각한 이중구속 상황에 처해 고민하게 되면 미국의 신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라인홀드 니부어의 ‘평온을 비는 기도’를 읊조려 보는 게 어떨까?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제게 주시옵소서.”



충격과 회복



왜 어떤 사람들은 슬픔이나 분노를 잘 극복할 수 있는가? 회복 탄력성



트라우마 연구 전문가인 미국 컬럼비아대학 임상심리학자 조지 보나노는 1990년대 초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들의 정서 반응을 연구했다. 그 당시 일반적인 통념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죽게 되면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는다는 것이었지만, 보나노는 실험을 통해 그런 통념과 달리 사별한 사람들에게서 마음의 상처가 생긴 흔적을 찾아낼 수 없음을 확인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별 이후 몇 달 만에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으며 놀라울 정도로 환경에 잘 적응했다는 것이다. “상실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역경 속에서도 번영해온 인류의 좀 더 보편적인 능력의 한 예인지도 모른다. …… 우리가 상실에 잘 대처하는 것은 그럴 수 있도록 돕는 일련의 선천적인 심리 과정이 마치 내부 설계라도 된 것처럼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보나노는 그렇게 원 상태로 돌아가는 걸 가리켜 resilience라고 했다. 우리말로 탄력성, 회복 탄력성, 심리적 건강성, 절대 회복력, 탄성력 등으로 번역되는 개념인데 여기선 회복 탄력성으로 쓰기로 하자. 휘었던 대나무가 되튕겨 일어나듯, 눌렸던 용수철이 금방 튀어오르듯, 슬픔과 고통에서 신속하게 벗어나 삶의 페이스를 되찾는 모습을 개념화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하버드대학 의대 교수 조지 베일런트는 『행복의 조건』(200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복 탄력성을 지닌 사람은 신선하고 푸른 고갱이를 지닌 나뭇가지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 나뭇가지는 휘어져 모양이 변형되더라도, 힘없이 부러지는 일 없이 금세 다시 제 모습을 찾아 계속 성장한다. 유전자와 환경은 모두 회복 탄력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들과 교제하면서 유머 감각이나 이타주의와 같은 적응적 방어기제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끄는 능력은 많은 부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능력, 즉 타고난 성격이나 외모에 좌우될 때가 많다.”

미국 심리학회는 회복 탄력성의 특성을 다음 4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 한 걸음씩 수행해나가는 힘(목적성과 인내심), 둘째, 자신의 강점과 능력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와 확신(경험 중시), 셋째, 의사소통과 문제 해결의 기술(관계의 기술), 넷째, 감정에 대한 이해와 조절 능력(평정심). 회복 탄력성을 예찬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회복 탄력성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슬픔을 견뎌내기 위해 인위적 노력을 가하는 것은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탄에 잠긴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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