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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윤덕노 지음

더난출판 / 2016년 10월 / 432쪽 / 14,000원





전쟁이 만들어낸 음식들



독일군 각성제 초콜릿 쇼카콜라

2차 세계대전이 치열해지면서 독일 공군은 영국의 주요 도시를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다. 1940년 9월 7일부터 이듬해 5월 21일까지 런던, 리버풀 등 16개 도시에 엄청난 양의 폭탄이 떨어졌다. 집중 목표는 물론 수도 런던이었다. 런던에는 모두 71차례의 공습이 있었고, 57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한밤중에 독일군 폭격기가 날아와 폭탄을 쏟아붓고 돌아갔다. 공습 초기 한 달간, 독일군은 목표물이 분명하게 보이는 한낮에 폭격을 했다. 하지만 공습 효과 못지않게 폭격기 피해도 극심했기에 10월 7일부터는 모든 폭격을 야간에 실시했다.

문제는 폭격기 승무원들의 피로가 쌓여갔다는 점이다. 격추당하지 않고 무사귀환해도 제대로 쉴 틈조차 없이 다시 폭탄을 싣고 공습에 나섰다. 누적된 피로에 계속되는 출격으로 긴장감마저 풀어져 승무원들은 졸기 일쑤였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는 말처럼 한밤중 칠흑같이 어두운 영불해협을 건너서 비행할 때면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보통은 졸음이 밀려오면 진한 커피를 마시지만, 비행 중에는 뜨거운 커피를 끓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졸음이 심해지면 커피도 소용없다. 독일 공군은 이때 폭격기 승무원들을 정신 차리게 만들기 위해 커피, 초콜릿, 콜라를 합쳐놓은 식품을 제공했다. 카페인이 풍부해 각성효과가 높은 식품 세 개를 합쳐놓았으니 졸음을 손쉽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 이름은 쇼카콜라였다. 콜라와 비슷한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관계없는 초콜릿의 한 종류였다. 차이가 있다면 여기에 커피와 콜라의 성분이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이름 역시 초콜릿을 뜻하는 독일어 쇼콜라데와 커피, 그리고 콜라 열매의 앞 글자들로 만든 합성어였다. 쇼카콜라는 구두약처럼 생긴 통에 담겨 지급됐다. 카페인이 풍부해 잠을 쫓아내는 것은 물론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느 정도 긴장감까지 높일 수 있었다. 또 초콜릿, 커피, 콜라를 동시에 먹는 것 같은 효과가 있고 맛도 좋아 전투를 앞둔 장병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주로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지급됐다. 때문에 부러움 섞인 표현으로 ‘조종사용 비상식량’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전쟁이 확대되면서 공수부대와 탱크병을 비롯해 특수작전에 투입되는 병사들에게도 보급이 이뤄졌다. 이렇듯 쇼카콜라는 특수작전에 투입되는 병사들에게만 특별히 지급되는 식품이었기에 일반 병사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독일군 병사들에게 인기가 높은 이 식품도 사실 처음부터 전투식량으로 개발된 것은 아니었다. 쇼카콜라는 전쟁 4년 전인 1935년 처음 만들어져 이듬해 열린 베를린 올림픽에서 스포츠 초콜릿으로 인기를 끌었다. 카카오 함량이 60% 정도인 데다 커피가 2.6%, 콜라 열매가 1.6% 함유되어 에너지 바를 먹는 동시에 진한 커피를 마시는 것 같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선수들은 긴장감을 통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또 학생들은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 쇼카콜라를 애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특수 용도의 초콜릿이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독일군의 효과적인 전투식량으로 탈바꿈했다. 병사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보급 범위도 넓어졌다. 공군과 특수부대에만 지급했던 처음과 달리 대규모 전투를 앞둔 보병들에게도 지급되기 시작했다. 전투에 지쳐 있거나 공격을 준비하는 병사들에게 지급하면 사기를 높이는 데 적지 않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참전 독일군 병사들의 회고록에도 쇼카콜라가 자주 언급되었다. 심지어 전쟁 말기의 치열했던 벌지 전투에서 포로가 된 미군 병사들에게 독일군이 자랑을 하면서 쇼카콜라를 나눠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쇼카콜라는 누구나 먹을 만큼 풍족하지 않았다. 때문에 평소의 일반 병사들에게는 쇼카콜라와 비슷한 일반 초콜릿이 지급되었다.

그 후 독일군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쇼카콜라도 점차 절망의 식품으로 바뀌었다. 최후의 결사항전을 벌여야 할 때 마지막 식품으로 지급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종전 무렵 러시아군의 공격을 앞두고 핀란드 주둔 히틀러 친위부대인 SS 산악유격대원들에게 마지막으로 쇼카콜라를 나눠주었다는 식이다. 그러니 쇼카콜라를 지급받았다는 것은 곧 패배가 뻔한 대규모 전투가 시작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쇼카콜라는 오히려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촉매제가 되고 말았다.



장군의 식탁



넬슨 제독의 마지막 레몬주스

“조국은 여러분이 모두 각자 맡은 바 의무를 다해줄 것을 기대한다.” 1805년 10월 21일, 영국 함대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에 맞서 승리한 트라팔가 해전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영국 함대 사령관 넬슨 제독은 기함인 HMS 빅토리호에서 함대 장병들에게 이 말을 전했다. 곧이어 전함들에서 포격이 시작됐다. 포성이 멎었을 때 30여 척의 프랑스 전함 중 18척이 격침되거나 나포됐다. 영국이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로 영국은 19세기 동안 바다를 제패하며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날 전투로 영국은 최고사령관을 잃었다. 프랑스 함대에서 쏜 포탄의 파편이 넬슨 제독의 가슴을 관통한 것이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장병들에게 내렸던 명령처럼 그는 조국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전사했다. 그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은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

과연 영웅에게 걸맞은 죽음과 유언이었지만, 죽음 자체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는 파편이 가슴을 관통한 지 세 시간 만에 전사했다. 그동안 총상과 과도한 출혈로 고열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채워지지 않는 갈증으로 고생했다. 때문에 수시로 마실 것을 달라고 외쳤고, 이때마다 병사들이 가져다준 것은 레몬주스였다. 왜 레몬주스였을까? 넬슨 제독이 사령관이었기 때문도 아니고 총상 환자에 대한 배려 때문도 아니었다. 함정에서 가장 흔했기 때문이다. 레몬주스는 숨을 거두고 있는 넬슨 제독의 갈증을 풀어준 음료이기도 했고, 영국 해군 장병, 그리고 결과적으로 모든 선원의 생명을 구한 음료수였다.

트라팔가 해전이 벌어질 무렵 영국 해군은 함정에 의무적으로 레몬이나 라임을 선적했다. 수병들도 일정 기간마다 반드시 레몬이나 라임을 먹어야 했다. 1795년 만들어진 규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 해군에서는 영국 해군을 ‘라이미(Limey)’라고 불렀다. ‘라임 먹는 것들’이라는 뜻이다. 레몬이나 라임 먹는 것이 어떻기에 이렇게 조롱을 당해야 했을까? 당시에는 지금처럼 레몬이나 라임을 우아하게 주스로 만들어 먹지 않았다. 덥석 베어 물거나 빨아 먹었는데, 이때 신맛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먹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지 않았다. 그 모습이 결국 영국인을 경멸스럽게 부르는 별명 라이미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영국 해군은 왜 함정에 레몬과 라임을 선적했으며, 왜 의무적으로 먹도록 했을까? 당시 영국 해군에서 총알보다 무서운 것은 질병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1792년부터 1815년까지 23년 동안 사망한 영국 해군은 10만 4,000명이었다. 그런데 그중 전투 중에 목숨을 잃은 전사자는 6.3%에 지나지 않았고, 함정의 파손이나 화재 등 사고로 인해 죽은 비율도 12.2% 정도였다. 절대 다수에 달하는 81.5%, 즉 8만 4,000명이 괴혈병 등의 질병으로 죽었다.

괴혈병은 비타민 C의 결핍으로 생기는 질병이다. 잇몸에서 피가 나는 것으로 시작해 온몸에 반점이 퍼지다 이가 빠지고 염증이 생기며 몸 전체가 썩어 들어가는 증상을 보인다. 그러다 결국 사지가 마비되고 갈증 속에서 고열에 시달리다 사망한다. 증상은 심각하지만 치료법은 간단해서 비타민 C가 풍부한 레몬이나 라임, 오렌지 같은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섭취하면 금방 낫는다. 물론 18세기 당시에도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가 괴혈병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비타민이 무엇인지, 괴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해군 군의관이었던 제임스 린드는 괴혈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환자들을 여섯 그룹으로 나누어 동일한 식사를 제공하면서 단 한 가지씩만 차이를 두었다. 각 그룹에 사과 술, 산성 음료, 식초, 바닷물, 레몬과 오렌지, 보리차와 향신료를 제공한 것이다. 그 결과 레몬을 먹은 환자들에게서 두드러진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제임스 린드는 이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단순한 학술 발표에 지나지 않았던 이 논문을 때마침 영국의 탐험가인 제임스 쿠크 선장이 읽었다. 그는 탐험대를 구성해 태평양으로 떠나면서 레몬과 양배추 절임을 잔뜩 싣고 갔다. 그리고 2년 후 귀환했을 때 괴혈병으로 쓰러진 환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이후 영국에서는 장기 항해를 떠나는 선박들마다 레몬을 싣고 가면서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격히 줄었다. 그리하여 1795년 영국 해군은 의무적으로 함정에 레몬을 선적하고 식사 때 장병들이 의무적으로 레몬이나 라임을 비롯한 과일을 먹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것이 넬슨 제독이 전사하기 직전에 레몬주스를 마셨던 배경이다. 레몬 하나가 죽어가는 넬슨 제독의 갈증을 풀고 많은 해군 장병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유비무환도 때로는 병



도루묵과 잡채에 담은 백성의 원망

힘없는 백성은 분풀이를 할 곳이 없다.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전쟁이 터져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다. 그렇다고 왕이 잘못했다고 욕했다가는 목이 열 개라도 붙어 있기 어렵다. 꼴 보기 싫은 권력자들도 함부로 욕할 수 없었다. 권력을 잡고 있으니 언제 해코지를 당할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러니 만만한 곳에 욕을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음식이었다. 임진왜란이 백성에게 얼마나 날벼락 같은 전쟁이었는지, 그리고 위정자들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속설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 대표 격인 도루묵은 맛없는 생선의 대명사쯤 된다. 오죽했으면 도루묵이라는 이름까지 얻었을까? 맛이 없으니 ‘도로 묵이라고 하라’며 까탈을 부린 주인공은 임진왜란 때 선조로 알려져 있는데, 알고 보면 선조나 도루묵이나 모두 억울하기 짝이 없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북쪽으로 피란을 떠났다. 배가 고팠던 선조가 수라상에 올라온 생선을 맛있게 먹은 후 그 이름을 물었다. ‘묵’이라고 대답하자 선조는 맛있는 생선에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라며 즉석에서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쟁이 끝난 후 환궁한 선조가 피란지에서 맛본 은어가 생각나 다시 먹어보니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형편없는 맛에 실망한 임금이 역정을 내면서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고 해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도루묵에 얽힌 전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루묵이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생선은 아니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루묵에도 나름 특별한 맛과 멋이 있다. 통통하게 살찐 도루묵 구이는 별미다. 얼큰한 도루묵조림과 찌개는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게 만드는 밥도둑이자 막걸리에 소주를 부르는 술 도둑이다. 강원도 바닷가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도루묵회에 도루묵깍두기, 도루묵 식혜가 별미다. 도루묵이 맛없다는 오명은 이름 때문에 생긴 선입견이다. 누명 때문에 형편없는 생선이라는 오명을 쓴 채 몇백 년을 보낸 도루묵의 어원은 과연 진실일까?

도루묵은 주로 강원도와 함경도, 경상북도 바닷가에서 잡히는 생선이다. 그런데 선조는 도루묵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피란을 간 적이 없다. 임진강을 건너 평양을 거쳐 의주로 갔으니 실제 피란길에서 도루묵을 먹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도루묵의 유래가 적힌 조선시대 문헌에도 선조가 도루묵을 먹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도루묵의 유래는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광해군 시절 귀양을 갔을 때 쓴 전국팔도 음식평론서 《도문대작》에 실려 있다. 그는 은어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동해에서 나는 생선으로 처음에는 이름이 목어였는데 전 왕조에 이 생선을 좋아하는 임금이 있어 이름을 은어라고 고쳤다가 너무 많이 먹어 싫증이 나서 다시 목어라고 고쳐 환목어라고 했다.”고 했다. 이 환목어를 우리말로 풀이한 것이 도루묵이다. 허균이 전 왕조라고 했으니 도루묵이라는 이름을 만든 주인공은 선조가 아니라 고려 때의 어느 임금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광해군 때 벼슬을 살았던 택당 이식의 시에도 나오는데, 여기에도 도루묵의 주인공이 선조임금이라는 말은 없다. 그저 임금님이 왕년에 난리를 피해 황량한 해변에서 고난을 겪는 중에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선조가 아니라면 동해안 쪽으로 피란을 가서 도루묵을 먹었다는 임금은 과연 누구였을까? 고려와 조선대에 서울인 개성이나 한양을 버리고 피란을 떠났던 임금은 모두 다섯이었다. 11세기 때는 고려 현종이 거란족의 침입을 피해 전라도 나주까지 피란을 간 적이 있다. 그리고 피란은 아니지만 13세기 고려 고종은 몽고군의 침입에 대비해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14세기에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경상도 안동으로 피신했다. 조선시대에는 16세기 말,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란을 갔는데 함흥으로 갈까 의주로 갈까 망설이다 결국 의주로 떠났다. 그리고 17세기 인조가 세 차례에 걸쳐 한양을 비웠는데,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 그리고 이괄의 난 때는 충청도 공주에 몸을 숨겼다. 그러니 도루묵이 잡히는 고장인 동해안으로 피란을 떠난 임금은 한 명도 없었다.

도루묵의 또 다른 이름인 은어도 그렇다. 배고픈 임금이 너무 맛이 좋아 은빛이 도는 물고기라는 뜻에서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하지만, 조선 후기 정조 때의 서학자 서유구가 쓴 《난호어목지》에는 “물고기의 배가 하얀 것이 마치 운모가루(규산염 광물 중 하나)와 같아 현지 사람들이 은어라고 부른다.”고 적혀 있다. 결국 은어는 임금이 하사한 명칭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부르는 이름이었다. 사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도루묵은 동해안의 특산물이었다. 지금은 경상북도인 울진 이북의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두루 잡히는 생선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정에 공물로 바치는 지역 특산물이었다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전쟁의 와중에도 쓸데없이 음식투정이나 부리던 임금으로 왜 선조가 지목됐던 것일까? 정확한 까닭은 알 수 없다. 굳이 짐작하자면 전란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임금에 대한 원망을 도루묵에 푼 것도 같다. 지도자의 의무는 부하를 제대로 이끄는 것이다. 임금이 된 몸으로 백성을 버리고 피신했으니 역사의 조롱거리가 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처절한 생존의 흔적



가난의 상징에서 명물 요리로, 아귀찜

한국인 모두가 즐겨먹는 아귀찜은 고난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훈장과 같은 음식이다. 2014년 관객몰이를 했던 영화 <국제시장>은 흥남철수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1950년 12월 말, 중공군의 반격에 밀려 철수하는 미군과 국군은 수송선에 실은 장비와 물자를 버리고 피란민을 태웠다. 수송선 갑판 위에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채워진 피란민들. 실제 상황은 영화 장면보다 심했다고 전해진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적의 배’라 불리는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다. 60명 정원의 화물선에 화물 대신 1만 4,000명을 태웠다. 누울 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비좁아 일부는 앉은 채로, 또 일부는 선 채로 28시간 동안 항해해 거제도에 도착했다. 이렇게 흥남을 떠난 피란민이 10만 명이었다. 전쟁의 기적이고 감동의 철수 작전이었다.

그러나 집 떠난 피란민이나 이들을 맞은 지역 주민들이나 곧 현실적인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이때 피란민 대부분은 일단 거제도로 들어갔고, 거제 주민들은 주먹밥과 잠자리를 제공하며 이들을 따뜻하게 맞았다. 당시 거제도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다. 여기에 이와 맞먹는 피란민이 한꺼번에 밀려들자 지역 인구가 급증했다. 게다가 기존의 피란민까지 합하면 피란민 숫자는 모두 15만 명에 이르렀다. 군에서 관리하는 거제 포로수용소의 포로는 제외하더라도 좁은 섬의 인구가 졸지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좁은 땅에 갑자기 사람들이 두 배로 늘었는데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으며 그 긴 전쟁을 견뎌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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