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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도널드 트럼프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6년 8월 / 398쪽 / 19,000원





머리말 - 트럼프는 왜 ‘불사신’이 되었는가?



[‘테프론 현상’을 능가하는 ‘트럼프 현상’] 다른 정치인 같았으면 무너져도 수십 번 무너졌을 무지막지한 발언을 해놓고서도 사과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옳다고 큰소리를 쳐대는데도 오히려 인기가 올라가는 사람, 이 정도면 ‘불사신(不死身)’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그는 미국 정치, 아니 세계 정치의 불사신이 되었다. 정도도 덜하고 유형은 좀 다를망정 지도자들 가운데 이런 불사신 유형의 원조는 로널드 레이건이었는데, 그를 묘사한 표현이 ‘테프론 대통령’이었다. 테프론(Teflon)은 먼지가 붙지 않는 특수섬유의 상표 이름인데, 레이건이 온갖 실책을 저질로 놓고도 그 실책의 책임에서 면제되는 기이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트럼프가 온갖 막말을 해놓고도 무사한 걸 가리켜 다시 ‘테프론’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트럼프는 ‘테프론 돈(Teflon Don)’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천장이 무너졌는데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당당히 걸어 나오는 건 물론, 비판자의 수에 필적하는 지지자들의 뜨거운 박수까지 받는다는 점에서 ‘테프론 현상’을 능가한다. 아무래도 불사신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트럼프가 누린 특별한 기회, 미디어 혁명]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말하는’ 정치인은 트럼프가 최초인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트럼프가 이전 인물들보다 그 점에선 유능하긴 하지만, 미국 정치사에 트럼프와 유사한 인물은 여러 명이 있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누린 특별한 기회는 무엇인가? 그건 바로 대중의 정보 획득과 입소문 전파에서 신문과 텔레비전 등 전통 미디어가 모바일에 압도당하는 ‘미디어 혁명’이 트럼프의 대선 도전 시기에 성숙 단계 또는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1946~1979년 “저는 뉴욕 부동산업계의 왕이 되고 싶습니다”



[왜 독일 출신이면서도 스웨덴 출신 행세를 했나?] 도널드 트럼프는 1946년 미국 뉴욕시 퀸스에서 프레드 트럼프와 메리 트럼프의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도널드의 할아버지 프레더릭 트럼프는 1885년 독일에서 뉴욕으로 이민을 왔다. 건축에 관심이 많던 프레드는 목수 일을 배워 1923년 독립주택을 지었고, 그 뒤 날로 번창해 1930년대 후반 2,500채의 주택을 지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트럼프는 자서전에서 할아버지는 스웨덴 출신이라고 썼지만, 이는 아버지가 임대아파트 사업의 주요 고객층인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기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스웨덴 출신으로 행세했던 것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는 나중에 독일 출신이라고 실토하고, 독일계 미국인의 행사에 적극 참여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망나니 /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스쿨’이라는 후광] 트럼프가 자란 뉴욕 퀸스 자메이카의 동네 웨어햄 플레이스는 백인 이외는 거의 살지 않는 동네였다. 소수 인종은 아예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오늘날 트럼프의 배타적 이민 정책의 뿌리는 여기서 시작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트럼프의 집은 부유하긴 했지만 가정교육은 매우 엄격했다.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과 근검절약을 하는 건 필수였고, 집안에는 엄격한 귀가 시간과 그 밖의 여러 규칙이 있었다. 가정교육은 엄격했지만, 트럼프는 초등학교 시절 사고뭉치였다. 부친 프레드는 트럼프의 이런 망나니 성격을 우려해 13세가 되던 1959년 트럼프를 뉴욕군사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곳에서 놀라울 정도로 적응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야구팀의 주장을 맡는 등 제법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1964년 뉴욕군사학교를 졸업한 트럼프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부동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집에서 멀리 않은 뉴욕 브롱크스에 있는 가톨릭계 대학인 포드햄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2년이 지난 뒤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파이낸스 스쿨에 편입했다.

[“저는 뉴욕 부동산업계의 왕이 되고 싶습니다” / 트럼프의 ‘거대건축 콤플렉스’ / 트럼프, 꿈에 그리던 맨해튼에 진출하다] 와튼 스쿨에 편입하자마자 수강한 부동산개발과 과목 첫 시간에 교수가 별 생각 없이 “왜 이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뉴욕 부동산업계의 왕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목표에 따라 트럼프는 친구들이 신문의 만화나 스포츠 기사를 읽고 있을 때, 연방 주택관리국의 저당권 상실 명단을 살펴보았다. 그는 그런 취미 덕에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있는 1,200가구의 아파트 단지인 스위프튼 빌리지를 찾아냈고, 아버지와 함께 이 파산한 아파트 단지를 600만 달러(현재 기준 약 68억 원)에 구입해 각종 리모델링을 거쳐 1년 반 만에 1,200만 달러(약 136억 원)에 되파는 ‘천부적 자질’을 보여주었다.

한편 1968년 대학 졸업 후 트럼프는 곧장 아버지의 사업에 참여해 임대료를 수금하러 다니는 일을 시작했는데, 이런 일에 영 흥미를 느낄 수 없어 독립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1년 뉴욕 맨해튼에 아파트를 임대함으로써 맨해튼 진출의 거점을 마련했다.

[《뉴욕타임스》와 ‘TV 아침 토크쇼’에 데뷔하다] 1976년 트럼프의 인생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아직 이렇다 할 사업 실적을 낸 것도 아닌데 《뉴욕타임스》의 기자 주디 클렘스러드가 트럼프를 흥미롭게 보고 그에 관한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쓴 것이다. 전반적으로 매우 호의적인 기사였다. 클렘스러드는 트럼프가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퍼드와 닮았다고 했는데, 이는 2년 전 레드퍼드가 주연을 맡아 개봉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염두에 둔 것이어서 트럼프는 졸지에 제이 개츠비(Jay Gatsby)와 같은 인물로 ‘격상’된 셈이었다. 이 기사가 나가고 나서 트럼프는 TV(채널 7) 아침 토크쇼에까지 출연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 토크쇼를 진행한 스탠리 시겔은 단지 토크쇼의 흥미성을 위해 트럼프를 ‘부동산 거물’로 부르는 과장을 범함으로써 트럼프를 우쭐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제 트럼프가 미디어 스타로서 나아가는 문이 열리기 시작한 셈이었다. 나중에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개츠비 흉내도 본격화된다.

1980년대 “나쁜 평판은 평판이 전혀 없는 것보다 낫다”



[‘트럼프’라는 이름을 알린 그랜드 하얏트호텔과 트럼프타워] 1970년대 초 뉴욕시 42번가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주변 지역은 음침한 우범 지역으로 전락했다. 그 지역에 있는 유서 깊은 코모도호텔은 흉물스러웠고 폐허를 방불케 했다. 트럼프가 맨해튼에서 벌인 최초의 대형 사업은 이 26층짜리 코모도호텔을 34층으로 높이고 호화스럽게 완전히 새 건물로 탈바꿈시키는 그랜드 하얏트호텔의 건설이었다. 이 사업은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트럼프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사업은 1979년에 공사를 시작해 1983년에 완공시킨 58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트럼프타워였다. 완공 후 이곳은 매주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드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 사업과 ‘위대한 개츠비’ 흉내] 트럼프타워 건설 기간 중 트럼프는 뉴저지 주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 사업에도 눈을 돌렸다. 1984년 5월 14일 ‘트럼프플라자의 하라스’가 오픈했는데, 이 카지노는 나중에 트럼프플라자 호텔 카지노로 이름을 바꿔 영업을 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1985년 6월 제2의 카지노인 트럼프캐슬을 개장했고, 1988년엔 타지마할 카지노를 인수하게 된다. 또한 트럼프는 1985년 플로리다 팜비치에 있는 마라라고(Mar-a-Lago)라는 초호화 별장을 800만 달러라는 헐값에 사들였는데, 트럼프는 이 별장의 구입을 통해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제이 개츠비(Jay Gatsby)처럼 자신의 부와 화려함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록펠러를 능가한 트럼프의 꿈] 1987년 9월 이제 41세인 트럼프는 9만 4,800달러를 들여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보스턴글로브》 등 3대 신문에 실은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형식의 광고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실패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수십 년 동안 일본과 다른 나라들은 미국을 이용해왔다. 미국은 원유 공급 과정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페르시아만을 미국이 지키는 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과 다른 나라들은 원유 공급 과정에서 미국이 지키는 수송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들 나라는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감수하고 있는 막대한 비용과 인명 피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가.”

트럼프는 이어 “미국 손에 존립 자체가 달린 사우디가 걸프만을 지키는 데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썼다. 트럼프는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미국이 일본의 방위비용을 공짜로 제공함에 따라 방위비에 대한 부담 없이 유례없이 엄청난 흑자를 기록한 덕에 강하고 활기찬 경제를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상황이 이런 만큼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방위비용 부담 능력이 있는 여러 나라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게 하자. 그 돈으로 엄청난 재정 적자를 타개하자. 그 돈으로 미국 농민들을 돕고 병든 사람과 집 없는 사람들을 돕자”며 미국 방위 정책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이 광고를 게재할 당시 트럼프는 뉴욕시장, 주지사, 상원의원 등 다양한 선출직 자리에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지만, 아직 ‘경량급’이었기에 그의 광고는 이렇다 할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트럼프의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 1987년 11월 출간된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은 출간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거래의 기술』은 32주간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미국에서만 최소 500만 부 이상 팔렸으며, 대선 출마 이후 다시 잘 팔려나가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도 “ 『거래의 기술』의 저자 트럼프입니다”라고 자신을 즐겨 소개했다. 그런데 공동 저자인 저널리스트 토니 슈워츠가 거의 30년간의 침묵을 깨고 2016년 7월 18일 공화당 전당대회 개막일을 맞아 트럼프에게 일격을 가하는 ‘양심선언’을 하고 나섰다.

그는 온라인판에 먼저 공개된 주간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와 ABC News의 〈굿모닝 아메리카〉 인터뷰에서 “책 내용은 완전히 허구”라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책 제목을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지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가 사실을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일삼았던 것을 상기하며 “거짓말은 그에게 두 번째 본성”이라고 주장했다. 돈이 필요해서 집필에 참여했다는 슈워츠는 이 인터뷰에서 “잔혹한 재벌보다는 호감 가는 캐릭터가 책 판매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긍정적인 빛깔로 트럼프라는 인물을 칠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슈워츠는 “ 『거래의 기술』은 내 손으로 썼다”며 “트럼프는 원고에 빨간 줄을 몇 개 그은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뉴요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책은 내가 썼다. 내 책”이라며 “나는 그(슈워츠)가 주머니에 2센트도 없을 때 그를 도왔다”고 말했다. 그는 슈워츠가 ‘엄청난 배신’을 저질렀다며 “자기 홍보를 위해 그랬겠지만 그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너무 탐욕스럽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트럼프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시작한다.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캔버스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또 훌륭한 시를 쓴다. 그러나 나는 뭔가 거래를 하는 것이 좋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그 예술의 11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크게 생각하라.”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혀라.” “발로 뛰면서 시장을 조사하라.” “지렛대를 사용하라.” “입지보다 전략에 주력하라.” “언론을 이용하라.”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라.” “희망은 크게, 비용은 적당히.” “사업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라.”

그런데 솔직의 관점에서 보자면, 트럼프가 말한 11가지 원칙은 슈워츠가 지어낸 것 같고, 핵심 원칙은 11가지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다. 트럼프는 점잖게 말했더니 듣는 척도 안 하던 사람들이 거칠게 나갔더니 태도가 확 달라져 고분고분해지더라는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사람이란 가끔 거칠게 나갈 필요가 있을 때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게 가장 중요한 원칙 아닌가? 트럼프가 가장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원칙도 바로 이것 아닌가? 가끔 거칠게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늘 거칠게 나가면서 가끔 부드럽게 구는 게 트럼프의 기본 처세술이자 거래 방식이 아니냐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트럼프의 전기를 쓴 그웬다 블레어는 트럼프의 평소 행동을 통해서 본 그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무슨 일이든 반드시 이겨라.” “뻔뻔해지는 것에 인색하지 마라.” “어떤 일이든 자기 자신을 홍보 수단으로 삼아라.” “결과에 상관없이 이겼다고 우겨라.” “언제나 과대포장을 해라.”

2015년 1~8월 “아메리칸 드림을 복원시킬 것을 맹세한다”



[“미국을 진정으로 다시 위대하게 만들 유일하나 사람”] 2015년 1월 트럼프는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열린 ‘자유 서밋’ 행사에서 자신이 2012년 공화당 경선에서 중도 포기하지 않고 후보가 되어 오바마를 상대로 승리했어야 했다면서 5월까지 대권 도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밋 롬니와 젭 부시가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서면 민주당에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복원시킬 것을 맹세한다”] 2015년 6월 16일 트럼프는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 로비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밝히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는 역사상 최고의 강력한 군대를 갖겠다고 했으며, 이란의 핵 보유를 막겠다고 했다. 또 그는 중국, 멕시코, 일본이 가져간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20명에 육박하는 공화당 후보들 가운데 “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트럼프는 멕시코를 겨냥, “그들은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이들은 성폭행범이고 마약, 범죄를 가져오고 있다”며 “남쪽 국경에 거대한 방벽을 쌓고 돈은 멕시코에게 내도록 하겠다”고까지 말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트럼프는 “나는 진짜 부자”라며 선거에 남의 돈을 끌어다 쓸 필요가 없다고 재력을 과시했다. 그는 대선 출마 선언과 더불어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 현금, 채권ㆍ채무 등 92억 4,000만 달러(10조 3,386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신고했는데,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그의 순자산으로 추정했던 41억 달러의 배가 넘는 규모였다. 트럼프의 연설 전 트럼프 소개는 딸 이방카가 맡았는데, 이방카의 소개는 아빠에 대한 애정과 극찬으로 가득 차 있을망정 한 가지 핵심을 찌르는 이야길 했는데 그건 바로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것이었다. “저의 아빠는 ‘정치적 올바름’의 정반대입니다. 아빠는 자신이 생각하는 걸 말하고 말하는 걸 생각합니다.” 사실 바로 그게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서 인기를 누리는 최대 이유였다. 그 첫 번째 시험대라 할 수 있는 트럼프의 멕시코 관련 발언은 일파만파를 불렀다.

[“트럼프의 토론은 오하이오 주에 굉음을 울렸다”] 2015년 8월 6일 밤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폭스뉴스가 주최한 공화당 대권 주자 텔레비전 토론이 열렸다. 미국 언론들은 이 텔레비전 토론을 보도하면서 “막말과 기행으로 끌어올렸다는 ‘트럼프 거품’은 전혀 꺼지지 않았고, 2위와 3위를 달리는 젭 부시와 스콧 워커는 왜소해 보였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선두”라고 했고, 특히 CNN은 “트럼프의 폭발적인 토론은 오하이오 주에 굉음을 울렸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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