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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사랑한 클래식

최영옥 지음 | 다연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



최영옥 지음

다연 / 2016년 06월 / 288쪽 / 14,000원





귀여운 여인을 울린 오페라

_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와 <귀여운 여인>



아름다운 여성의 불행한 모습을 그린 영화 속 장면은 언제나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역경에 처한 여성은 이내 불행을 딛고 관객의 바람대로 행복해진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런 패턴의 영화들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가 보다.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했던 게리 마샬 감독의 1990년 작 영화 <귀여운 여인>. ‘아직도 순수한 사랑과 그런 환상을 믿어?’ 하는 생각을 들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파국으로 끝날 것만 같았던 남녀 주인공이 기어코 자신들의 사랑을 이루어내면서 사뭇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멋진 부호와 거리의 여자가 나누는 사랑 그리고 해피엔딩이라는 단순한 스토리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전 세계 많은 이가 비록 거리의 천한 여자지만 귀엽고 아름다운 ‘비비안’과 그런 그녀를 따스하게 품는 완벽한 조건의 남자 ‘에드워드’에 열광하고 또 한숨지었다. 하지만 정작 왜 에드워드가 비비안을 받아들였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여러 정황이 이어졌지만 영화 속에서 에드워드가 비비안을 진정한 자신의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가 이끌었던 오페라 관람을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 난생처음으로 오페라를 보게 된 비비안. 평생 한 번 타볼까 말까 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오페라 극장 안에는 온통 품위 있고 우아한 상류층 사람들이 도열(?)해 있다. 겁먹은 그녀에게 에드워드는 오페라를 알아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며 “오페라는 처음에 좋으면 끝까지 좋고, 처음에 싫으면 끝까지 싫은 것”이라는 알쏭달쏭한 말까지 덧붙인다.

물론 그 장면에서 에드워드는 정말 비비안이 오페라를 제대로 즐길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절부절못하던 비비안이 이내 오페라에 빠져들고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눈물을 글썽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워드. 그가 그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만든 그 오페라. 바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다. 동백꽃을 머리에 꽂은 병든 창부와 청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동백꽃 여인 La dame aux Camelias>은, 파리 사교계의 코르티잔(고급 창녀) 마리 뒤플레시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파리 남성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고 전해지는 그녀가 스물셋의 꽃다운 나이로 폐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나자, 뒤플레시를 사모했던 알렉상드르 뒤마는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동백꽃 여인>을 썼다. 이 작품은, 한 달의 25일은 흰 동백꽃, 나머지 5일은 붉은 동백꽃을 가슴에 꽂고 밤마다 파리의 5대 극장 중 한 곳의 특별석에 나타나는 고급 창녀 마그리트와 귀족 청년 아르망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

<동백꽃 여인>을 토대로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가 <라 트라비아타>라는 오페라를 만들면서 탄생시킨 인물이 비올레타다. 루이 14세 때, 파리 상류사회의 코르티잔 비올레타는 어느 날 파티에서 젊은 귀족 알프레도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렇게 신분 차가 역력한 남녀관계가 순조롭게 이어지기가 어디 쉽던가! 결국 이들의 사랑은 주위의 냉랭한 시선과 특히 알프레도 아버지의 반대에 밀려 헤어지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알프레도는 뜻하지 않은 비올레타의 냉대에 원망을 품고 떠나지만, 폐결핵에 걸린 그녀에게 다시 돌아와 숨을 거두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통곡한다. 주옥같은 아리아들로 채워진 이 오페라는 1853년 3월 베네치아에서 초연된, 3막 4장의 비극이다.

귀여운 여인 비비안을 울린 것은 바로 이러한 오페라 스토리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할뿐더러 자신의 모습이 될지도 모를 비극적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쏠렸을 터! 그러니 처음 경험하는 오페라임에도 그녀의 마음이 요동칠 수밖에……. 비비안은 오페라 감상을 묻는 귀부인에게 늘 해왔던 말버릇대로 한마디 날린다. “오줌 쌀 뻔했어요!” 일순간 점잖은 귀부인을 당황시키지만 그로 인해 귀여운 여인 비비안은 사랑을 얻었다. 인생의 깊이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결국 고색 찬연한 비극의 오페라에서 이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당연히 불행해야 할 여성도 거뜬히 그 장애물을 뛰어넘고 행복을 움켜쥔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규정하는 엄숙주의자들을 마치 조롱하듯이……. <귀여운 여인>은 그러한 인생의 반전을 신선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귀여울 수밖에 없는’ 영화다.



꿈결 같은 자연과 자유 속으로의 회귀

모차르트와 <아웃 오브 아프리카>



한창 바쁜 와중에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 날씨가 너무 좋고, 싱그러운 꽃향기가 자꾸만 콧속으로 날아들어 마음이 어지럽다나 어쩐다나. 누구 약 올리나, 이건 완전 고문이네 어쩌네 투덜대며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창문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 따스한 햇발이 마치 처음 뻗친 양 눈부시게 펼쳐져 있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며 누가 등 떠밀어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여의치는 않고, 대신 떠올린 장면 하나! 푸르고 푸른 대초원과 석양이 장엄하기까지 한 아프리카의 하늘, 그 위로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경비행기, 바람처럼 자유로운 남녀의 운명적 사랑과 모험, 그리고 모차르트……. 이쯤 되면 사소한 일상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고 상상 속의 낙원이 현실처럼 눈앞에 펼쳐지게 마련이리라.

시드니 폴락이 감독하고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1985년 작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아프리카 대륙과 사람들, 그 속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 데니스를 사랑했던 카렌 블릭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현실 탈출’이 가능한 영화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이자 이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했던 여주인공의 실제 모델 이삭 디네센의 본명이 바로 카렌 블릭센. 디네센은 28세 때 보로르 폰 블릭센 남작과 결혼해 아프리카 케냐에서 커피농장을 경영했던 여성으로, 영국인 사냥꾼 데니스 핀치 해튼과 사랑을 나누었으나 연인과 농장을 모두 잃은 뒤 글쓰기에 나섰다.<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1937년에 출간된 그녀의 동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히 아프리카의 풍광이 생생하고 유려하게 펼쳐질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열정과 모험이 뛰어난 문학적 대사와 더불어 지난 시대의 삶의 너비와 깊이를 공감케 하는 수작이다.

마치 풍경과 인간을 함께 담아놓은 웅장한 스크린이라고 할까? 현대 영화의 흐름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깊은 감정의 세계 또한 보는 이를 압도하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장엄함과 낭만을 주도하는 중심에 모차르트의 선율이 있다는 점 또한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덴마크에 사는 카렌은 많은 재산을 소유한 독신 여성이다. 그녀는 친구인 블릭센 남작과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을 꿈꾸며 무작정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고는 케냐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결혼식의 기쁨도 잠시, 둘은 이내 커피 재배 문제로 언쟁을 벌인다. 이후 남편은 영국과 독일 간의 전쟁에 참전해버리고, 그녀는 홀로 남겨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초원에서 사자의 공격을 받는다. 그때 데니스가 나타나 그녀를 도와준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밀착된다.

데니스와 사랑에 빠진 카렌은 기어코 남편과 이혼한다. 그녀는 데니스와의 결혼을 바라지만 그는 결혼이라는 구속을 바라지 않는다. 결국 커피 농장이 도산하자 카렌은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바래다주겠다고 약속한 데니스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녀에게 온 것은 비행기 추락으로 인한 데니스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녀는 데니스와의 추억을 가슴에 담은 채 쓸쓸히 덴마크로 돌아간다.

자유로운 영혼 데니스와 평생 다시 경험하지 못할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되지만 그를 잃고 아프리카에 대한 추억과 데니스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는 카렌. 그녀의 추억 속에서 아름다웠던 남자 데니스는 아프리카에 축음기를 가져와 모차르트 선율을 펼쳐 보일 정도로 모차르트를 사랑했고, 더불어 아프리카를, 자유를 사랑했다.

데니스의 모차르트는 경비행기를 타고 파란 창공을 날아가며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맞잡을 때도, 아프리카 초원 한가운데서 데니스가 카렌의 머리를 감겨줄 때도 아련히 퍼진다. 카렌에겐 데니스로 기억되는 모차르트 선율이 바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이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인 1791년 10월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곡은 그가 남긴 두 곡의 클라리넷 작품 중 하나다. 당시 그리 사랑받는 악기가 아니었던 클라리넷을 모차르트는 유난히 좋아했다. 주로 피아노 협주곡에 치중했던 모차르트가 모처럼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를 위해 만든 흔치 않은 클라리넷 협주곡이라는 점과 그가 남긴 최후의 협주곡이라는 점이 이 곡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빈 궁정악단의 클라리넷 주자 안톤 슈타들러에게 바치고자 했다고 한다. 안톤 슈타들러가 만년의 삶을 불우하게 보내고 있던 자신에게 물심양면의 도움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곡은 클라리넷이 지닌 음색의 특성을 잘 살렸을 뿐 아니라 악기 음역을 극한까지 넓혀 연주상의 기술을 충분히 잘 살리고 있다. 또한 모차르트 특유의 영롱하면서도 아련한 선율이 뛰어나게 아름다워 많은 이가 불후의 명곡으로 꼽는다.

특히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삽입된 2악장은 이 영화를 위해 모차르트가 미리 준비해둔 것으로 생각될 만큼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는데, 그러다 보니 영화보다 음악으로 더 유명해진 특별한 경우이기도 했다.비록 맺어지진 못했지만 대지에 발을 붙이기를 거부하고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던 카렌과 데니스와 영혼이 클라리넷의 영롱한 선율과 함께 날아오르는 느낌이란……. 무구하지만 덧없는 희망이 가슴을 울리고, 대지 안에 자기의 안식처를 정하지 않았거나 정하지 못한 영혼들을 따스하게 위로해주는 선율로 가슴 속 깊이 차오를 것이다. 카렌과 데니스의 사랑도 태고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아프리카의 자연과 하늘과 함께 영원으로 이어질 것만 같다.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과 음악이다. 번잡한 도시의 숨 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이 영화와 음악만큼 환히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용감하게 떠나자.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모차르트가 부드럽게 어루만져줄 테니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할 수 없는 것들

_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투게더>



<패왕별희>로 유명한 천카이거 감독은 어느 날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아들의 스승을 찾아 북경으로 무작정 상경한 부자가 나오는 TV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소박하고 평범해 보이는 아버지는 아들의 연주를 듣는 이들에게 “들어보세요, 제 아들의 연주랍니다.” 하며 자랑스러워하는데, 그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이후 천카이거 감독은 2002년에 <투게더>를 발표했다.

영화는 개봉 후 중국 대륙을 눈물로 적셨으며, 프랑스의 거장 뤽 베송 감독은 이 작품을 놓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연주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영화는 시골뜨기지만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샤오천과 가난하지만 어떻게든 아들을 밀어주려는 아버지 리우청의 부성애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아들은 성공의 문턱에 오르지만, 아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아들 곁을 떠나고자 하는 리우청, 그런 아버지를 위해 보은의 연주를 펼치는 아들이 모습이 무척 인상 깊다.

게다가 리우청은 샤오천의 친아버지도 아니다. 어릴 때 우연히 북경역에서 바이올린과 함께 버려진 아이를 맡아 키운 것이다. 의붓아들임에도 모든 것을 바쳐 아들의 미래를 열어준 아버지를 샤오천은 외면할 수 없다. 결국 ‘연주를 위해선 사적인 감정을 버리고 냉혹해져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불사하고 샤오천은 아버지를 위해 유명한 연주회장이 아닌 복잡한 역사 안에서 눈물의 연주를 한다. 굳이 토를 달 필요가 없는 ‘말 없는 응변’이다.

자식에게만은 내가 걸어왔던 가난이나 패배를 물려주기 싫다며 발버둥 치는 부모들의 모습이 한국의 여느 부모 못지않은 풍경이기도 해 많이 익숙하다. 재능 있는 아들을 마음껏 뒷바라지해주지 못하는 <투게더>의 아버지는 오직 아들의 성공을 위해 무작정 북경행을 감행하고 24시간 내내 고된 일을 한다.

이런 아버지의 헌신과 희생은 이미 우리의 부모님에게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가슴 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가 그렇듯,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겐 그런 아버지가 때로 속물처럼 비친다. 결국, 아버지가 떠나려는 순간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행동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

한편으론 정신없이 밀려오는 자본주의 물결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중국인들의 오늘이 그려지기도 한다. 현재 자신들이 처한 가치관의 충돌 속에서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던 중국의 따뜻함, 정치와 사회 상황의 급변에 따라 달라진 자신들의 모습을 기교 없이 담담하게 그려낸 이 착하고 소박한 영화는 당시 중국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샤오천의 남다른 의지다. 샤오천의 이러한 각오를 절절히 표현했던 음악이 바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다. 이는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의 것과 함께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불리는 명곡이다. 특히 강렬한 러시아적 색채 덕분에 유럽 작곡가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슬라브 특유의 독특한 서정성과 아련히 배어 나오는 슬픔 같은 것들이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878년, 동성애자였던 차이콥스키가 38세쯤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심한 우울증에 빠져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에서 요양생활을 하던 와중에 작곡되었다. 그래서인지 음악은 우울하면서도 강렬한 비상으로 요동친다.

재미있는 것은 차이콥스키가 이 곡을 작곡했을 당시, 너무 어려워 연주가 불가능한 곡이라는 혹평을 받아 크게 낙심했다는 점이다. 하필 그가 헌정했던 당대의 거장 레오폴드 아우어로부터 ‘기교적으로 보아 도저히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초연이 거부되었던 것이다.

이에 크게 실망한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3년 동안이나 발표하지 않고 묻어두었다. 그러던 중 아돌프 브로드스키라는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곡을 칭찬하면서 발표할 것을 적극 권하였다. 결국 1881년 12월에 빈 필하모닉과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브로드스키에 의해 초연되었다. 하지만 역시 ‘싸구려 보드카의 냄새가 나는 작품’이라는 혹평에 또다시 절망하고 만다.

그러나 이 곡의 가치를 굳게 믿은 브로드스키는 유럽 각지에서 이 곡을 계속 연주하여 결국 청중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후일 아우어도 이 곡의 가치를 인정하여 자신의 레퍼토리로 연주함으로써 대성공을 거두고 그의 제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참으로 사연 많은 이 작품을 차이콥스키는 당연히 브로드스키에게 헌정했다.

자칫 빛을 보지 못할 뻔했던 이 곡의 ‘싸구려 보드카 냄새’는 바로 오늘날 이 협주곡을 사랑받게 한 ‘진정한 러시아의 냄새’였고, 그 강렬한 민족적 냄새야말로 이 곡의 자랑이라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곡절 많은 사연을 떠올리노라면, 탕윤이라는 실제 중국의 신동 바이올리니스트가 샤오천으로 연기하며 실연하는 모습에(오늘날에는 신예들도 자유자재로 연주한다) 무덤 속에서라도 차이콥스키는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한편 흐뭇해지고…….

천카이거는 영화 속에서 중국 서민들의 꿈인 고급 주택과 최신 가전제품을 소유하고 있는 유 교수로 분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돈’과 ‘예술’ 사이의 어떤 무게중심을 얘기하려 했던 것일까? 마치 작품성을 추구하면서도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감독의 자화상을 보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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