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우리들 각자의 영화관

한상철 지음 | W미디어



우리들 각자의 영화관

한상철 지음

W미디어 / 2016년 5월 / 270쪽 / 13,800원





그들 각자의 영화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영화의 바다에 풍덩 빠지기 위해 호기심으로 가득 찬 많은 분들이 모였군요. 오늘 개강으로 첫 강의가 시작됩니다. 첫 출항은 많은 위험과 두려움이 있긴 하지만 선장도, 선원도 모두 설렙니다. 모두 한 마음으로 영화의 바다로 항해를 시작합시다.

2007년, 칸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해 조직위원장 질 자콥은 ‘영화관’이란 주제로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 35인에게 3분짜리 영화를 의뢰했습니다. “당신 인생에 있어서 영화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질 자콥이 감독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올리비에 아사야스, 첸카이거를 비롯해 이름을 듣기만 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35인의 감독은 3분이라는 제한시간 내에 그들이 생각하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모두 모은 작품이 바로 <그들 각자의 영화관>입니다.

나는 영화관이라는 주제가 모두 동일한 데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그들의 작품을 보며 명장들에게조차도 그들이 느끼는 영화란 이렇게 저마다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특히 장이머우 감독의 3분짜리 작품 <영화 보는 날>은 내 어린 시절 추억과 비슷해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의 깊은 산촌 마을에 영화를 상영하는 사람들이 도착합니다. 동네 공터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자리를 준비하느라 부산한 외지인들을 보며 소년은 영화 상영만을 기다립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골에서 마을 사람들은 날이 어두워지도록 기다리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고대합니다. 해가 산 너머로 떨어지고 막상 영화가 상영되지만 하루 종일 두근두근 영화를 기다렸던 소년은 이미 의자에 앉은 채 곤하게 잠에 빠져 있습니다. 장이머우가 만든 <영화 보는 날>의 줄거리입니다. 비록 잠이 들었으나, 가슴 두근거리는 종일의 기다림만으로도 소년은 두고두고 행복한 날로 기억할 것입니다.

프랑크의 지성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사전’에서 영화를 정의하면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주요한 기술적 오락, 외출과 여행, 공상, 모험과 아름다움, 전복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로서 새로운 형태의 가상 유목과 경쟁하게 될 영화는 점점 더 엄청난 규모의 볼거리를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유목 도구들을 이용하여 유목 모험을 체험하는 유목민 영웅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1894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처음 만든 이후, 세월이 흘러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다양한 뉴미디어가 발달해도 영화는 꿋꿋하게 우리에게 각자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마음속에 남아 삶에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자크 아탈리의 예견처럼 21세기에도 영화는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 아래 영화를 어떻게 고르고, 어떻게 보며, 어떻게 즐겨야 할까 하나하나 공부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영화 감상_ 왜 좋은가?



사람들이 영화를 즐겨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아마도 TV프로그램으로는 쉽게 표현할 수도, 제작할 수도 없는 영상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2013년 작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작품 <그래비티>를 3D 아이맥스로 보신 분들 있죠? <그래비티>는 단순히 보는 영화에서 관객이 우주를 유영하게 하는, 중력을 체험하는 영화였습니다. 칠흑과 같은 우주 공간을 떠도는 우주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를 보며 우리는 절박감, 공포, 인간의 숭고한 의지를 무한정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영화 감상이 좋은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영화는 풍부한 시각 소재의 집합체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흘러간 과거의 풍경과 그림, 사진, 인물, 의상 등이 전문적인 고증을 통해 재현되는가 하면, 한 번도 우리가 경험하거나 가보지 못한 미지의 장소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만들어 마치 눈앞의 현실처럼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에이브럼스 감독의 <스타 트렉: 더 비기닝>에 나오는 우주 신, 비행선, 전투 신 등을 보는 것만으로 도 우리의 오감과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1962년 코믹 북에 등장한 이래 수없이 많은 버전을 만들고 할리우드 영화로 4편까지 나온, 키덜트의 영원한 우상 중에 하나인 스파이더맨은 그 날렵한 모습과 복장으로 뉴욕의 고층 빌딩 숲을 마음껏 날아다니죠.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왔을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을 감독은 스크린 속에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이보그들은 또 어떤가요?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통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봐온 사이보그와는 많이 다른 모습과 캐릭터에서 우리는 충격과 함께 시각적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둘째, 영화는 우리에게 다양한 아이디어의 소스를 제공해줍니다. 내 인생 첫 번째 직업이기도 했던 광고인들은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노심초사하고 정신적으로 압박 받는 것이 일상사입니다.

미국 뉴욕의 매디슨 애비뉴는 광고회사들이 밀집해 광고인의 거리로 유명했는데, 과거에는 ‘위장병 골목’이라고 불린다는 속설이 있었죠. 그만큼 광고인들의 아이디어 스트레스가 격심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또 어떤 광고 콘셉트로, 또 어떤 비주얼로 시장을 선점할 광고를 만들어야 할까? 한없이 높아만 가는 클라이언트의 냉정한 요구 수준에 도달할까? 광고기획을 하는 AE든 카피라이터든 시간에 쫓기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쫓기게 되면 흔히 낭만적인 표현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워도 보지만 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본 것이나 경험한 것이 적으면 아이디어도 결국 나올 게 없고요. 아이디어를 소진하기만 하면 결국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나를 포함한 광고장이들은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예전에는 다양한 디자인 북, 해외CF, 아카이브, 잡지, 만화 등 닥치는 대로 봐 왔지만, 여전히 풍부한 아이디어의 공급처로 영화만한 게 없습니다. 영화 속 대사를 패러디한 광고를 몇 개쯤은 여러분들도 기억할 것입니다. 무명의 배우가 영화 한 편으로 갑자기 CF 벼락 스타가 되는 것도 영화에서 아이디어 소스를 찾아 헤맨 광고인들의 고심이 낳은 결과 중에 하나입니다.

007시리즈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1965년 8월 20일, 007시리즈의 첫 편인 테렌스 영 감독의 <007 살인번호>로 시작한 이 영화는 2012년 개봉한 샘 멘데스 감독의 최고 흥행작 <007 스카이폴>에 이어 2015년의 <007 스펙터>에 이르기까지 50여 년 동안 시리즈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아마 007시리즈는 계속 될 것입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조금 편차가 있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 007이 사용한 신무기로 등장했던 것들은 세월의 차이가 있을 뿐 현실 속에서 대부분 이뤄져 왔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미니카메라, 휴대용 비밀 녹음기, 수륙양용차 등이 그 사례입니다. 과학이 먼저인가 상상이 먼저인가를 말하기 어렵지만 영화감독이 상상으로 구현한 영화적 현실은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영화가 아이디어의 소스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의 소스를 영화 속에서 찾아내 잘 활용한다면 새로이 개발하게 될 제품 개발의 소재는 물론 드라마, 광고, 개그의 소재로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무단차용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여러분들이 이제 영화를 볼 때 팝콘과 콜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아이디어 소스들을 꼼꼼히 유심히 봐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입니다.

2007년 마이클 베이 감독에 의해 시작된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아이디어 소스는 도대체 얼마인지 생각해볼까요? 영화평론가들도 인정하듯이 <트랜스포머> 시리즈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로봇 영화는 획기적인 제작과 표현 기법의 변화가 왔으며, <트랜스포머> 속의 변신 로봇은 다양한 CF에 패러디되어 시각적 즐거움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 영화가 케이블 TV에 방영될 때마다 여전히 신나하며 반복해 봅니다.

우리가 신과 같은 전지적 통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업무에 그 능력을 쓰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화를 열심히 꼼꼼히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저렴하게(영화는 여전히 가장 싸게 종합예술을 접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신인감독부터 거장에 이르기까지 수개월 혹은 수년간 고심해 만들어낸 놀랄 만한 아이디어의 바다로 풍덩 빠져들 수 있습니다.

셋째, 대리만족과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우리가 전혀 가보지 않았던 미답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줍니다. 슬플 때나 우울할 때, 세상살이가 막막할 때, 실연당했을 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해 안타까울 때 어두운 객석에서 혼자 흐느껴본 경험이 있는 관객이 주위에 적지 않을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아들과 단둘이 사는 엄마 역을 맡은 김혜자의 연기를 보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자식을 위한 모정? 섬뜩한 살인범? 어느 쪽이라도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으로 이입되어 그의 고통과 생각을 공감하게 됩니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에서 은희를 뿌리치고 떠났던 주인공 영수가 낙향하는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은 영수와 은희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해서 함께 안타까워하거나 눈물지었을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 출연했던 변희봉의 한강 둔치 연기 신을 기억해봅시다. 괴물에게 잡혀간 손녀를 찾기 위해 나선 한강에서 마지막 총알이 없음을 안 후 괴물의 습격 전에 처연하게 손짓하던 그 모습을 말입니다. 아버지로서의 부정과 삶에 대한 체념이 모두 담긴 원로 연기자의 내면 연기에서 우리는 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뜨거운 사랑에 감동하게 됩니다.

이해준 감독의 영화 <김씨 표류기>속의 주인공 김씨는 또 어떤가요? 삶에 쪼들려, 죽는 것도 쉽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며 스스로 도시에서 표류해 버린 김씨의 삶은 알고 보면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이 아닐까요?

넷째, 영화를 통해 우리는 휴식과 정서적 이완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만 영화관에 들어가 있는 두 시간 동안 스크린 속으로 빠져들어서 공부, 시험, 복잡한 업무, 각종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감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영화가 많은 관객을 대상으로 상영하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대로 일대일 리프레시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함께 보는 관객이 존재하긴 하지만 영화는 늘 관객과 일대일로 존재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동일한 장면이라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즐거움, 슬픔, 쾌락, 만족감 등을 느끼며 우리는 휴식과 안정을 되찾고, 가족과 연인, 친구들과 함께 대화할 거리를 만들고 정서적 공감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이충렬 감독의 영화 <워낭소리>를 떠올려봅시다. 몸이 불편한 최노인의 40년지기 늙은 소가 해질녘 최노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교감을 느끼게 되고, 그 속에서 편안한 마음의 안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섯째, 영화는 새로운 문화의 도입과 수용을 용이하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과거 아버지, 할아버지 시절에 제작된 영화를 보면 지금은 매우 촌스러워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영화 속 배경, 풍경, 관습, 어법 등이 주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최근의 영화를 보면 미래를 주제로 하든 과거를 주제로 하든 당대의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혹은 앞으로 닥쳐올 미래사회의 가치관, 문화, 장비, 색상, 패션 등을 통해서 우리는 간접적으로 가상현실, 과거, 미래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가치관과 유행, 미래사회에 대해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면 영화 한 편이 우리를 얼리어답터가 되는 지름길로 인도해줍니다. 디지털 시대에 모든 정보가 평등한 것 같지만 받아들이기에 따라 매우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보기만 해도 매일 쏟아지는 디지털 정보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그 정보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것이겠지요.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한때 국내 남성 관객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영화배우 제시카 알바의 패션, 토니 스콧 감독의 <탑 건>에서 톰 크루즈가 착용했던 선글라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13>에서 세련된 도둑 러스티 라이언 역의 브래드 피트의 정장은 영화 개봉과 함께 동시대 일반인들에게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을 만큼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는 유명인사로부터 시작해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하나의 문화 코드로 형성됐지만, 요즘은 상영 이후 여화의 인기몰이와 동시에 일반인들이 바로 실시간으로 유행을 따르고 창조하는 경향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여섯째, 영화의 사회적 기능입니다. 사회적 기능이란 영화로 인해 사회의 공동 가치가 유지되거나 때로는 급격하게 변화하는데 일조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 주제나 스토리들이 도덕의 전파나 사회결속(미풍양속, 가치관, 애국심)등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조 라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심리적 이해관계의 충돌은 근대 영국 남녀 간의 결혼관에 대한 사회적, 성별 격차와 충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2>,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의 경우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배경과 역사 속 현실의 벽을 확연히 알 수 있어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 속 사회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새롭게 대중의 관심을 유도한 홍기선 감독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도 마찬가지 경우라 하겠습니다.

마더 ? 모정과 광기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전작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에서 이룩한 성과들이 많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개성적인 캐릭터를 등장시켜 갈등과 긴장을 빚어내고, 극적인 반전을 통해 관객의 마음속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연출력은 <마더>에서 전작보다 진일보한 느낌입니다. 특히 영화의 전체 흐름을 끌고 간 배우 김혜자의 존재로 인해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이 더욱 돋보이게 된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특정 공간을 차용해 ‘어둠의 미궁’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스토리 자체의 신비함과 괴이함을 자아내는 기법 역시 <마더>에서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이 사라지던 검은 굴이나 <괴물>에서 괴물이 살고 있는 한강 다리 밑 어둠 속이 <마더>에서는 어두운 골목길 안쪽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검은 미궁의 실체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주제와 결부시키는 그의 능력은 천부적입니다. <마더>에서의 어두운 골목 안길은 사건의 핵심 열쇠이지만 관객은 영화가 끝날 무렵까지 골목길의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마더>를 보면 영화비평을 공부하지 않은 관객이라도 당연히 몇 가지 의문에 빠지게 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그리고 끝나면서 넓은 풀숲이나 버스 안에서 펼쳐지는 엄마의 춤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날 밤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위는 무엇일까? 엄마를 돕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한 진태와 형사 제문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결론적으로 영화 속 엄마를 어떻게 봐야 할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중의적인 캐릭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외아들이지만 제 앞가림조차 못하는 아들 도준에게 모든 걸 걸고 있는 엄마는 아들 앞에선 한없이 약하지만 아들의 범죄를 주장하는 세상을 향해선 한없이 표독합니다.

바보처럼 보이는 아들 역시 가끔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현실적인 대사를 던져 그녀를 자지러지게 만듭니다. 도준의 유일한 친구인 진태 역시 이중적인 캐릭터입니다. 친구를 이용해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도 하지만, 사건조사에 협조하는 진태의 모습을 보면 그의 의도가 헷갈리기만 합니다. 도준을 살인범으로 단정 지은 제문 역시 그 속을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객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봉준호 감독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물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음으로써 캐릭터나 인간들을 더 확연하게 표출시키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