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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교수의 헬수업

박성태 지음 | 가디언



미친 교수의 헬수업

박성태 지음

가디언 / 2016년 5월 / 248쪽 / 13,000원





Picture 오리엔테이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쓰라는 과제를 내준다. 나는 이 과제를 통해 학생들이 진짜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 사람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사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쓴 현각 스님은 미국인으로 예일 대학에서 서양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비종교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스승이 던진 “WHO ARE YOU?'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어 자신을 찾기 위해 스님이 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현각 스님처럼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심오한 경지에 이를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책의 제목에서 스스로를 ‘미친 교수’라 칭했다. 나의 지난 삶이 보통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거의 미친 사람처럼 내 목표를 위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내 동년배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 졸업은 물론 박사학위까지 취득했고, 기자를 거쳐 신문사 사장에, 겸임교수까지 하고 그것도 모자라 2015년에 대학 3학년생으로 편입까지 했다. 학생들 강의를 위해 매주 시사 리스트를 정리하고 과제물 첨삭을 위해 매주 토요일 일요일까지 반납하며 지옥 수업을 강행하고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진정한 후학 양성‘을 외치는, 강의에 채점에 미친 교수라고 부른다.

나만의 진정한 목표 세우기

나는 강의 초반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대학에 왜 왔나요, 부모님이 가라고 해서? 남들이 다 다니니까 뒤처지기 싫어서? 어차피 누구나 가는 인생길의 한 과정이니까? 성공한 삶을 위해서? 대학을 안 나오면 사회생활을 못할까봐?”

2012년 2월 21일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기획기사의 제목을 보자. “문턱 낮으니까 일단 진학하고 보자…‘대학울타리’에 안주하다 취업할 때는 막막.” 이 기사에 따르면, 우후죽순으로 난립한 대학에서 부실교육을 받은 56만 명의 대졸자들이 연간 2만 개의 ‘좋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한다. 이들 중에서 인재를 선발해야 하는 기업들은 “전공의 기본도 모르는 지원자가 넘쳐난다.”라고 푸념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초등학생일 때, 그들의 부모는 열심히 공부하면 일명 SKY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점수에 맞춰 원하지 않은 대학, 원하지 않은 학과에 어쩔 수 없이 다닌다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그렇다면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에게 “그만두세요”라고 말한다. 원하는 대학도 아닌데 마치 누군가를 대신해서 다니는 것이라면 당장 자퇴서를 내는 것이 낫다.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는 대학에 비싼 등록금 내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취업을 한다면, 한 달에 150~200만 원은 벌 수 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합쳐 대학 1년간 2,000만~3,000만 원이 든다. 반대로 그 시간에 돈을 번다면, 적어도 2,000만 원을 벌 수 있다.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에게 꿈이 있을 리 없다. 꿈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희망이 없으니 목적도 없다. 목적 없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호러나 판타지 작품에 주로 등장해 부패한 모습으로 영혼 없이 걸어 다니는 산송장이나 다름없다.



Pray 워밍업



간절하고 절실한 목표의 위력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하는 비는 2006년 5월 《타임》의 표지를 장식한 적이 있다. 도대체 그에게 어떤 간절함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마이클 잭슨을 우상으로 삼을 정도로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 춤과 노래에 열정이 가득했던 그는 안양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가수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녔지만 쌍꺼풀이 없고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떨어졌다. 18번째 오디션에 떨어진 후 그는 가수이자 기획사 대표인 박진영을 만나 아이돌 그룹의 일원으로 가수가 되었다. 일단 가수만 되면 돈을 벌어 집안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그룹 활동은 지지부진했고 9년 동안 당뇨를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데 쓰지 않고 아들의 미래를 위해 돈을 모아 두셨다.

그는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꼭 유명한 가수가 되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이를 악물고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 숨이 끝까지 차는 순간에도 “이거 아니면 나는 죽는다. 죽을 만큼 노력하자. 잠은 죽어서 평생 잘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라는 마음으로 연습했다. 그리고 미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2006년 그는 “강렬한 태풍처럼 뉴욕을 휩쓸었다.” 정말이지, 간절하고 절실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인생역전에 성공한 사람들

스티브 잡스: 애플의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양부모에게 입양되었고, 그리 유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대학에 입학했다가 6개월 만에 자퇴를 했는데,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둔 돈을 모두 써야 할 정도로 학비가 비쌌지만, 6개월 후 대학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후 어릴 때부터 절친인 워즈니악과 1976년 애플이라는 퍼스널 컴퓨터 제조회사를 창업해 오늘날의 애플신화의 밑거름을 다졌다. 승승장구하던 잡스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이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리사 프로젝트의 실패로 1985년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최고의 사건이었다.”라고 말했다. 애플에서 나온 그는 넥스트를 창업하고 픽사를 인수했고 최고경영자로서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다시 익혀나갔다. 그리고 1996년 애플이 넥스트 스텝을 인수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다시 애플의 최고경영자로 복귀했다. 이후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풀시, IT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stay hungry, stay foolish(여전히 갈망하라 우직할 정도로)”는 잡스의 명언 중에 명언이다. 세계의 명언설로 손꼽히는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식 치사’에서 그가 한 말을 당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여러분이 만족하는 일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좋은 관계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수잔 보일: 영국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인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한 여인이 등장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시 초라한 외모로 심사위원들과 관객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심사위원들은 그녀에게 노래실력 따위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은 듯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객쩍은 질문만 했다. 그녀는 “47살이다. 작은 시골에 산다. 전문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엘린 페이지 같은 명가수가 되는 것이 꿈인데 여기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라고 당당히 대답했다.

마침내 그녀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 순간 모든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은 심지어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미안했다. 사과한다.’며 전원일치 통과 사인을 보냈다. 그녀는 이 프로그램 사상 첫 심사위원 전원통과라는 기록을 세우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언론에서 그녀에 대해 “세상에 대한 어느 소시민의 아름다운 복수”라고 평가 받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다뤘다. 제 2의 폴 포츠, 여자 폴 포츠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다. 그녀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53세가 되던 2014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열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Pre-Practice 지옥 수업 전반전



혹독한 자아비판

“굿 모닝~” “굿 모닝 교수님!” 나의 인사에 학생들은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그리고 언제나 출석을 부른다. 참고로 내 수업에 대리출석은 없다. 나에게 출석부는 야전에서 하는 점호와 같다. 인생의 전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학생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주말 내내 꼼짝없이 매달려 첨삭한 과제물을 돌려주면서 첨삭내용을 반드시 숙지하라고 일침을 가한다. 아마도 학생들은 내가 첨삭한 내용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것이다. 오탈자, 미디어 글쓰기의 오류, 논리의 부적정성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해놨기 때문이다. 나는 과제물을 받아가는 학생들의 이름과 인상착의 표정 등을 유심히 읽어낸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학기 내내 나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나의 선원들이기 때문이다.

숨겨진 보물을 찾아 떠나는 해적선에 올랐다는 것을 아직 잘 모르는 학생들은 과제물의 분량을 지키지 않거나 출처 명기도 없이 다른 곳에서 퍼온 글을 써서 제출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글에는 가차 없이 최하점을 매긴다. 대개 누구나 범할 수 있는 공통된 실수나 오류가 있을 때에는 공개적으로 지적한다. 나는 이를 ‘자아비판’이라 한다. 나는 이 자아비판을 매주 한다. 아마도 학생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몇 주만 지나면 자기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을 그들도 곧 알게 된다. ‘자아비판’시간을 통해 곧장 점수를 확인할 수 있고, 다음 번 과제를 제출할 때 부족한 점을 채워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학생들의 ‘자아비판’에 대한 평가는 차츰 긍정적으로 변한다.

‘자아비판’ 후 학생들의 과제물 발표가 이어진다. ‘경제력 갉아먹는 좀비기업, 이대로 바라볼 것인가’를 발표한 학생들도 과제를 해내기 전에 용어도 낯설고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 하지만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불과 지난주만 해도 이들의 글은 거칠고 첨삭할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몇 번의 ‘자아비판’ 시간을 통해 점차 나아졌다. 더욱이 ‘경쟁력 없는 기업’은 빨리 구조조정 하여 퇴출하자라고 결론을 내렸을 정도로, 학생들은 선택한 주제에 대해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력 갉아먹는 좀비 기업, 이대로 바라만 볼 것인가?

‘좀비 기업’은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금융지원을 받아 연명해나가는 기업을 뜻한다. 빚을 얻어 간신히 연명하는 것이다. 통상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일 경우 좀비기업에 속하는데, 영업이익으로는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갚지 못함을 의미한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628개 비금융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부채상환 능력을 분석한 결과, 좀비 기업은 2010년 24.7%에서 2015년 1분기에는 34.9%로 크게 늘어났다. 상장 제조업체 3곳 중 하나 꼴로 돈을 벌어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지경이다.

좀비 기업이 늘어난 이유는, 경기가 좋지 않아 상환 능력이 떨어진 일부 기업이 구조조정이나 혁신 같은 성과를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위기 이후 국내 자본시장이 안정되어 위험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차입금으로 생존하게 된 것도 한 원인이다. 이에 국책은행은 좀비 기업을 받쳐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국책은행은 본래 일반 상업금융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잠재력 있는 회사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주먹구구식 설비투자 지원으로 좀비 기업을 양산하고 결국 정부 자금에 의존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자회사를 늘려가며 자기 잇속 챙기기에 눈이 먼 국책은행과 이를 묵인하는 정부로 인해 구조 조정이 지연되면 충당해야 할 국민의 혈세가 늘어나게 된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과감한 구조 조정을 하지 않고 미룬 결과, 20조 원에 가까운 자금을 들여야 했다. 더는 이런 실책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좀비 기업은 자금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시장 수급구조를 악화시킨다. 특히 좀비 기업의 부채가 금융시스템에 부담을 줘 경제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좀비 기업들이 존재하는 한 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 당장 구조 조정에 나서지 않으면 후일을 기약할 수 없다. 정부는 실책을 되풀이하기보다 확실히 금융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좀비기업이라는 말은 1990년대 초에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부실사태에서 비롯됐다. 저축대부조합은 우리나라의 저축은행과 비슷하다. 1980년대 이후 완화된 규제 덕분에 저축대부조합은 일반 대출 및 신용카드를 취급하여 상업용 부동산에도 관여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보험사 등에서 시작한 모기지론이 점차 저축대부조합의 대표적인 상품이 되면서 이들이 일으킨 대출로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일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저축대부조합의 파산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유동성 자금을 지원하면서 이들 저축대부조합들은 회생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당시 에드워드 케인스 미국 보스턴 대학교 교수가 “회계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죽었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군다”라고 한데서 좀비라는 말이 널리 확산되었다. 이후 미국 《타임스》가 2002년 일본의 경제 상황을 다루면서 본격적으로 ‘좀비 기업’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그것이다.

이미 두 나라의 사례를 접했으면서도 왜 우리 정부는 같은 전철을 밟은 것일까? 그리고 왜 이제 와서 좀비 기업을 압박하려는 걸까? 좀비 기업이 도산할 경우 금융권의 부채가 디폴트(국가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은행이나 금융권이 대출을 꺼리고 안전하게 운용하려는 성향이 커지면서 대출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는다. 그러면 일반 우량기업들까지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즉 좀비에게 물리면 또 다른 좀비가 탄생하는 것처럼, 연쇄적으로 좀비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 심지어 좀비 은행이 탄생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와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가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들 부채를 모두 합치면 5,000조 원이 넘는다. 정부 입장에서는 좀비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은행 자금이 성장성 있는 기업에 투자되면 일석 삼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첫째, 좀비 기업을 솎아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경제위기를 차단하고 경제 회복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둘째, 효율성 있는 투자를 유도해 경제 안정성을 확보하고 산업경쟁력을 되살릴 수 있다. 셋째, 일자리 창출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긍정적인 측면만을 본 것이다.

반대로 좀비기업들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어떨까? 분명 그들에게는 위기일 것이다. 직장을 잃고 더는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불안함을 느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좀비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과연 정부의 지령을 받은 은행들은 자신의 몸을 벨 수밖에 없는 칼을 휘두를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미국과 일본 등의 사례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위기를 불러온 정부의 안일함을 파헤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으로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대책으로서 구조조정을 해나갈 수 있는지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청년희망펀드, 정부의 진심이 첫 단추가 되어야

2015년 9월, 정부는 사상 최악의 실업난을 극복하고 청년에게 희망을 주자며 ‘청년희망펀드’를 조성키로 했다. 청년희망펀드는 국민모금을 통해 펀드를 조성하고 이것으로 ‘청년희망재단’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하는 일종의 모금행사다. 각계의 모금을 독려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첫 번째로 펀드에 가입하며 2000만 원의 일시금과 함께 매달 20%의 원금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250억을, LG 구본무 회장은 150억을 기부하는 등 국내 여러 기업이 희망펀드 사업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순조로워 보이는 시작과 달리 시행 한 달이 지나가기가 무섭게, 청년희망펀드의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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