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따라 어원 따라 세계 문화 산책
이재명, 정문훈 지음 | 미래의창
단어 따라 어원 따라 세계 문화 산책
이재명, 정문훈 지음
미래의창 / 2016년 3월 / 264쪽 / 13,800원
buck 벅_ 달러 대신 부르는 이름
모비딕의 일등항해사, 스타벅스
‘스타벅스’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일등항해사의 이름이다. 1970년대 초 시애틀의 영어교사였던 제리 볼드윈이 교직을 그만두고 ‘스타벅스’라는 커피전문점을 차렸다. 이렇게 시작된 고전문학의 주인공이 오늘날 전 세계 곳곳을 항해하며 커피의 대명사로 떠오르고 있다. 초록색으로 그려진 로고의 여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인어, 사이렌이다. 그녀는 소설에서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홀리는 존재다. 기업의 로고로 다시 등장한 사이렌은 이제 커피 향으로 전 세계인을 유혹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명칭에 들어가는 ‘벅스’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달러를 대신하는 화폐 단위로 쓰이기도 한다. “그거 얼마예요?”라는 물음에 가격이 10달러라면 그 답은 “텐 달러스”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텐 벅스”라고 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달러와 벅, 둘 다 같은 의미인데 일상에서는 ‘벅’이 더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하나의 슬랭으로 실제의 생활 회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런던의 또 다른 언어 ‘코크니’
미국에서는 돈을 빵 반죽을 뜻하는 ‘도우’라 부르기도 한다. 흔히 사용하는 ‘롤 인 도우’라는 표현은 우리말로 ‘돈 방석에 앉는다’는 말이다. 또한 돈을 ‘다시’ 또는 ‘브레드’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다시’는 “코를 통해 지불한다”는 의미로 현금을 말한다.
화폐는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고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도 사용한다. 인류의 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수단으로 우리의 삶에서 화폐, 즉 돈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돈맛, 돈의 노예, 돈의 화신 등은 돈에 얽힌 부정적 표현이며, 돈에 대한 끝없는 욕망은 인간을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의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하거나 송금할 때 ‘잉글리시’ 또는 ‘코크니’ 둘 중 하나의 언어를 선택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럼 코크니는 어떠한 언어일까? 코크니에서 5파운드는 ‘레이디 고다이바’라 부른다. ‘고다이바’가 5파운드의 ‘파이바’와 유사한 발음인 데서 붙여진 것이다. 30파운드는 ‘서타’ 대신 ‘더티’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명칭들은 런던 노동자 계층 특유의 사투리인 코크니에서 유래했다. 특정 단어의 앞 음과 끝 음을 변형하는 압운 속어다.
‘레이디 고다이바’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담겨 있다. 11세기경 영주의 부인인 고다이바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겨 그들은 피폐하고 고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세금 감면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녀는 긴 머리카락으로 알몸을 가린 채 코번트리 거리로 말을 타고 나갔다. 백성을 위한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은 결국 세금을 경감시켰고 농민들은 좀 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고급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는 이 여인의 숭고함을 기려 탄생한 것이다.
화폐와 관련된 속어 중에 ‘죽은 대통령’을 뜻하는 ‘데드 프레지던트’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의 화폐에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이 그려져 있듯 달러와 센트에도 링컨, 워싱턴 등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이를 ‘죽은 대통령’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폐는 국가와 경제의 상징인데 물건 값으로 죽은 대통령을 지불한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긴 하다.
피오나 공주님이 주문한 커피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벅스는 그에 걸맞게 여러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벅’으로 불리고 있지만, 세계인들에게는 ‘포벅스’로 불린다. 커피 가격이 다른 커피보다 비싼 4달러라는 이유로 붙은 핀잔 섞인 별명이다. 나라에 따라 팁까지 더하면 그 가격은 더 올라간다. 포벅스라는 별명은 터무니없이 높은 커피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냉소가 반영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별명으로는 ‘여피벅스’가 있다. ‘여피’는 도시나 주변 지역을 기반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 인텔리를 지칭한다. 이 용어는 젊은, 도시적인, 전문직의 머리글자를 딴 ‘엽’에 ‘히피’를 더한 합성이다. 여피는 한마디로 문화를 즐기는 부류이자 명품, 사치품 등 스타일과 패션에 많은 돈을 지출하는 물질주의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피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가 바로 스타벅스인 것이다.
미국 스타벅스에서는 주문 후 진동벨 대신 이름을 부른다. 관광객으로 북새통인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스타벅스 1호점만은 예외다. 한국에도 진동벨 대신 고객의 이름을 부르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콜 마이 네임’이란 서비스다.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별명을 미리 등록하면 매장에서 대기번호 대신 별명을 불러준다. 몇몇 사람들은 ‘경찰청창살’, ‘간장공장장’, ‘피오나 공주’ 등으로 등록하여 서빙하는 이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우리와는 좀 다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콜 마이 네임’ 서비스를 하면서 점원들은 컵에 고객의 이름을 적으면서 의도적으로 틀리게 등록한다. 예를 들면 제시카라는 이름은 ‘게시카’, ‘사라’는 ‘사러’, 폴은 ‘포울’로 하나같이 이상하고 엉터리 같은 이름으로. 커피와 음료를 주문한 고객의 이름을 부를 때 주문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이 맞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하지만 이는 실수가 아니다. 업체에서 의도적으로 고객이 당황하도록 만드는 유머 마케팅의 일종이다. 물론 서빙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척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재미로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SNS에 메시지를 전달하게 만든다.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상품이나 서비스에 긍정적인 입소문을 내게 하는 의도적인 마케팅 기법이다.
enfant 앙팡_ 자유분방함으로 무장한 무서운 아이들
프랑스 육아 속 앙팡루아와 라 포즈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언제든 들어주고,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루소의 말이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달리 동화책과 학습용 포스터가 거실을 장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만일 거실에 구구단이 걸려 있거나, 아이들의 책이 나뒹군다면 그들은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앙팡루아’를 외칠 것이다. 중국의 ‘소황제’처럼 과잉보호 속에 떠받드는 왕처럼 자라는 아이를 뜻하는 이 말은 바로 ‘최악의 육아’다. 프랑스에서 부모가 아이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거나 자유분방하게 키우다간 앙팡루아라는 손가락질을 피하기 어렵다. 문화적 차이에 따른 육아법은 조금 다른 게 아니라 확연하게 큰 차이를 드러낸다.
프랑스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하루 4, 5회 정해진 시간에만 분유를 먹인다. 이를 ‘라 포즈’라 하는데, 즉 ‘잠깐 멈추기’다. 프랑스 엄마들은 아기가 운다고 당장 달려가서 안아주지 않는다. 몇 분간 관찰하면서 아이가 그냥 칭얼대는지, 정말로 배가 고픈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지를 유심히 살핀다. 신생아는 밤에 약 두 시간 정도 지속되는 수면 사이클 사이사이에 잠에서 깨어난다. 이를 배고픔이나 스트레스의 신호로 해석해 부모가 곧바로 아이를 달래주거나 젖은 물리면 아이는 두 시간마다 부모가 달래줘야만 잠이 드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부모들은 생후 4개월 내에 아이가 혼자 잠들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인다.
육아 전문가들은 이를 ‘기다림의 미학’으로 설명한다. 프랑스 엄마들은 통화할 때 옆에서 손을 붙잡고 끌거나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기다려’라고 말한다. 마치 송중기, 박보영 주연의<늑대소년>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심지어 신생아들이 젖 먹는 시간도 오전 8시, 정오 오후 4시, 오후 8시로 정해놓고 기다림을 가르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유아기에도 어른과 함께 같은 식단으로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한다.
프랑스어로 ‘간식거리’를 뜻하는 ‘구테’는 오후 4시 30분경인데 프랑스 가정에서 어린이들의 간식은 이 시간에만 허용된다. 군것질을 절제한 아이들은 식사시간이 되면 어떠한 음식이라도 맛있게 먹는다. 누군가가 선물로 준 사탕이나 초콜릿을 집으로 가져왔다 해도 구테 시간이 되어야 먹을 수 있다. 심지어 구테 시간이라 해도 아무거나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훈육한다.
이러한 프랑스식 유아를 ‘카드르’라 하는데 이는 ‘기본’이나 ‘틀’을 뜻하며, 단호한 명령과 엄격한 제한이 동반되는 육아법이다. 그래서 파리의 식당에서는 떼를 쓰거나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프랑스 부모는 아이들에게 현명하게 처신하라는 ‘사쥬’를 강조한다. 아무리 어린아이더라도 그들의 취향과 리듬, 그리고 개성은 당연히 존중한다. 다만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 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육아철학이다.
겁 없는 신인, 앙팡테리블
‘앙팡’은 프랑스어로 ‘아이’를 뜻하는데, 라틴어 ‘인파리’와 그 뿌리가 같다. ‘말을 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뜻의 라틴어 ‘인파리’가 변형되어 프랑스어 ‘enfant’이 된 것이다. 섣불리 잘못 건드렸다가 큰일 날 수도 있는 무서운 아이가 바로 ‘앙팡테리블’이다. 스포츠계나 연예계에서 무서운 신예나 겁 없는 신인을 앙팡테리블이라 부른다. 감탄을 자아낼 정도의 천재성으로 기존 질서를 변화시킬 만큼의 실력을 갖춘 신인에게 따라붙는 표현이다. 예전에 고종수가 약관의 나이에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하고, 왼발 스폐셜리스트로 한창 명성을 날릴 때 그에게 붙었던 별명이기도 하다. 김연아, 손연재, 윔블던에 돌풍을 일으킨 테니스 선수 정현 등이 바로 앙팡테리블이다.
앙팡테리블은 프랑스 작가 장 콕토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장 콕토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유럽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작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문화계의 팔방미인이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동성연애자임을 밝혔으며, 프랑스에서 유명세를 탈 만큼 옷을 잘 입는 패션 리더이기도 했다. 장 콕토는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지만, 평생 동안 사랑한 연인은 두 명의 청년이었다. 그중 장 콕토가 문단에 데뷔시켜준 천재 작가인 레몽 라디게는 10대 후반에 그의 역작으로 꼽히는 『육체의 악마』를 집필했다. 그런데 라디게는 약관 2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장 콕토와 지내며 술과 아편으로 건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후 장 콕토는 라디게의 죽음을 자책하며 자기 학대와 아편으로 시간을 보내다 결국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장 콕토는 투병 중에 집필한 소설 한 편을 발표했다. 이 작품이 바로 『무서운 아이들』이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남매의 근친상간을 사랑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작품의 제목이었던 ‘앙팡테리블’은 기존의 도덕적 관념과 권위에 도전하는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동시에 기성세대가 은근히 느끼는 당혹감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되었다.
나이에 비해 자신이 가진 소질과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는 다크호스 또한 앙팡테리블이라 부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생각해보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걷고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창의성은 기발하게 빛난다.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하고 기발한 언어 표현력과 예측할 수 없는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고란 나이와 관계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 있다. 천재의 특징은 기존의 질서와 전혀 다른 창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
‘유치한 것’과 ‘아이다움을 지닌 것’은 유사한 단어인 듯 보이지만 개념이 크게 다르다.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큐는 네오테니, 즉 ‘자기 안의 어린아이’를 되살린다면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늘 풍부한 호기심, 끝없는 상상력, 그리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는 끝없는 질문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원한다. 어른이라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지만, 진정한 어른이란 어린아이의 티를 벗어난 게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가진 보다 성숙한 아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중세 프랑스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뛰어나게 연기한 음유시인과 곡예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앙팡 상 수사’, 즉 ‘걱정이 없는 아이들’이라 불렀다. 당시 궁정의 어릿광대였던 이들은 익살스러운 유머로 왕과 대립관계였던 교황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이들은 현 세태를 풍자하는 공연을 펼치면서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자신을 스스로 바보라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극본을 작성하고, 연기를 하는 1인 2역을 해낼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바보 역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천재만이 할 수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pan 빵_ 오스만 튀르크를 씹어 먹는 크루아상
날마다, 매일 먹는 빵
‘날마다, 매일’이라는 뜻의 ‘뚜레쥬르’는 국내뿐 아니라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시장 곳곳에 진출한 국제적인 베이커리 업체다. 베이커리를 서구권이 아닌 아시아권에 수출한다니 좀 의아스럽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아시아권에도 브런치 문화와 서양식 요리가 널리 퍼지며 빵이 보편화된 지 오래다. 경제의 발달로 아침 식탁에 빵이 오르면서 소비량 또한 꾸준히 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빵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보급되었다. 즉, 중동 서남아시아 지역이 그 발상지로, 세계 최초의 빵을 만든 곳은 아시아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얇고 바삭한 중동의 플랫브래드나 오랫동안 인도의 식탁을 지켜온 빵들이 아시아가 빵의 기원임을 입증한다. 한국에 빵이 전파된 지는 기껏해야 125년 정도에 불과하다. 1890년경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6ㆍ25 전쟁 이후 확산되었다. 프렌차이즈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1990년대 이후다. ‘빵’이란 이름은 포르투갈어 ‘팡’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다.
서민의 빵, 귀족의 빵
프랑스인들의 빵에 대한 사랑은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유별나기로 정평이 높다. 어느 마을에 가도 빵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사를 하면 제일 먼저 집 근처에 맛있는 빵집이 있는지부터 살펴본다고 한다. 그만큼 빵에 대해 각별한 사랑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빵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들은 프랑스 빵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냉동과 화학 첨가물 등을 엄격하게 배제한 채 전통 제조법을 이어오고 있다. 빵 제조법 중 ‘르방’은 자연발효 과정을 거쳐 제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은 누가 뭐래도 바게트다. 지팡이를 뜻하는 바게트는 길고 미끈하게 빠진 생김새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흔히 바게트를 가장 큰 빵이라 생각하는데 ‘레미제라블’에서 장 발장이 훔친 시골빵, ‘팽 드 캄파뉴’가 훨씬 더 크다. 예전 영화를 보면 장 발장이 웬만한 어린아이만 한 크기의 빵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프랑스대혁명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빵을 먹어야 한다는 이념에서 시작되었다. 빵을 요구하는 분노한 민중과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는 말로 대변되는 지배 계층과의 대립에서 비롯된 만큼 빵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당시 프랑스 정부는 ‘빵의 길이는 80센티미터, 무게는 300그램으로 만들라’는 엄격한 지침을 내렸다. 이 지침에는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프랑스인의 1인당 하루 빵 소비량이 약 800그램이었다. 바게트는 상온에서 쉽게 상하지 않아, 군인과 장거리를 이동하는 사람들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비상식량이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바게트 이야기에 크루아상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로 ‘파리바게트’ 외에 ‘파리크루아상’이란 베이커리가 있다. 두 곳은 같은 기업에서 운영하는데 평균 가격부터 분위기까지 확연히 다르다. 파리바게트가 일반 베이커리라면 파리크루아상은 프리미엄 베이커리다. 과거 프랑스에서 바게트가 일반 사람들이 먹는 빵이라면 크루아상은 상류층이 즐기는 빵이었다. 현재 유럽 어느 지역에서도 크루아상은 1~1.5유로의 가격으로 간편히 먹을 수 있을 만큼 보편화되었다. 초승달 형태의 크루아상은 17세기 전쟁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