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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 비즈니스북스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6년 4월 / 272쪽 / 14,000원





제1장 책을 읽으면 어떤 이득이 있을까



책을 읽느냐 안 읽느냐에 따라 수입이 달라진다.

여러분은 자신이 한 시간에 얼마를 ‘버는 힘’을 가졌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비영리법인에서 일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시간당 보수가 가장 낮은 직종은 음식점이나 편의점 등의 아르바이트(시간제 일거리)일 것이다.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이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본에서는 평균적으로 대략 800~1,000엔 정도다. 그리고 이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자층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나이에 따라 폭이 넓어지지만, 정규 회사원이나 공무원 연봉을 연간 총 노동시간으로 나누어 시급으로 환산해 본다면 대략 2,000~5,000엔 사이가 된다. 과장이나 부장 등의 관리직이 되면 수입이 늘기는 해도 회사에 있는 시간 외에 접대를 하는 등 실질적인 노동시간이 길어진다. 따라서 시급이 이 범위를 크게 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 단계에 기업에 고용되지 않은 전문가가 있다. 예를 들면 인기 있는 변호사급이 3만 엔 정도, 대형 외국계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앤드컴퍼니의 시니어 컨설턴트가 8만 엔 정도다. 그러고 보니 일본인의 일반적인 시급은 프리터(자유와 아르바이터를 합성한 신조어로, 주로 시간제 일거리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가 받는 800엔에서부터 맥킨지의 시니어 컨설턴트가 받는 8만 엔에 이르기까지 100배 범위 안에서 형성되고 있다. 나는 시간당 보수가 1만 엔을 넘는다는 점에서 스스로가 ‘전문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험상 변호사, 컨설턴트,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책을 안 읽는 사람을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식과 정보는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최신정보를 습득해야만 고객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 급여는 인격과는 별도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또한 순수하게 일과 보수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매뉴얼 이외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급 2,000~5,000엔을 받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라면 또 다르다. 책을 읽느냐 안 읽느냐에 따라 보수의 우열이 가려진다. 책을 읽고 전문가의 보수 수준에 가까워질 것이냐, 책을 읽지 않고 프리터의 보수 수준에 가까워질 것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기 때문이다. 한편 다양한 업무 중에서 시간당 보수의 효율이 가장 높은 것은 강연이다. 빌 클린턴과 같은 역대 미국 대통령이라면 1회 강연으로 수천만 엔을 벌 수 있다. 대통령이나 수상과 같은 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어도 강연은 경제적인 효율이 매우 높다. 일본의 유명 인사 가운데 시간당 100만 엔 정도의 강연료를 받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류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은 말하는 것만으로도 시간당 100만 엔을 번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여러분은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그만큼의 고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청중을 만족시키는 지식이 존재한다. 그들은 그러한 지식을 얻기 위해 분명 많은 책을 읽을 것이다. 물론 청중이 기대하는 것은 강연자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 아니라 누구한테서도 들어본 적 없는 그 사람만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다양한 체험담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삶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사쿠라이 요시코가 강연에서 일본의 영토 문제를 언급했다고 치자. 센카쿠제도나 독도 또는 북방영토 등 화제가 되는 모든 장소를 일일이 찾아가 직접 모든 것을 체험하고 강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자료를 읽거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책이나 논문을 읽거나 믿을 만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얻고 거기에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보태서 말했을 것이다. 즉, 한 시간당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총량을 얻기 위해서는 독서를 빼놓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독서를 통해 익히는 인생에서 중요한 두 가지 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독서가 정말 중요하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두 가지 힘을 익힐 수 있다. 그것은 ‘집중력’과 ‘균형 감각’이다. 이 두 가지 자질은 가능하면 고등학생 때까지는 갖추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하루라도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남은 인생에서 찾아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먼저 ‘집중력’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는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나 유능한 회사원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만나 봤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남과 다른 독특한 아이디어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람은 예외 없이 집중력이 높았다. 그런데 집중력은 수험 공부를 포함해 매일매일 꾸준히 하는 공부를 통해서 익힐 수 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일정량의 지식을 기억하거나 다양한 문제를 푸는 것은 집중력을 단련하는 효과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공부 말고도 집중력을 단련할 수 있는 기회의 수단은 있다. 바로 독서를 들 수 있다. 시간이 가는 것을 잊을 만큼 또는 남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올 만큼 무아지경에 빠져 책을 몰두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독서를 즐기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집중력이 단련된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힘인 ‘균형 감각’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주변 사람을 칭찬할 때 곧잘 균형 감각이라는 말을 쓰지만, 이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균형 감각에 대한 내 나름의 정의는 이렇다. 여기서 말하는 균형 감각이란 자신과 지면(지구), 자신과 가족, 자신과 타인 등 세상 전체와 자신이 얼마나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지의 능력을 말한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제대로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젊은이들에게도 퍼지고 있다. 예를 들면 자신과 지면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넘어질 때 바닥에 손을 짚지 못해 얼굴부터 떨어져 코뼈가 부러지는 아이, 축구공을 찰 때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뼈가 부러지는 아이들이 그렇다. 내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실제로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사례들이다.

우리 생활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콘크리트로 메워진 도시에서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흙이나 잔디가 깔린 공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연히 걱정이 많은 부모는 아이가 넘어져서 다칠까 봐 한시도 손을 놓지 못한다. 이렇게 아이들이 넘어질 수 있는 기회마저 극단적으로 줄어들면서 주변 사물과 자신과의 적절한 거리감을 몸으로 부대끼며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많은 것을 배우러 다니느라 시간에 쫓겨 뛰어놀 기회가 줄어든 것도 또 다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원흉은 바로 TV나 게임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에서도 TV나 게임에 빠져 지내는 것은 물론,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도 스마트폰이나 게임기기의 화면만 쳐다본다. 요즘 아이들은 밖에 나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소꿉놀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균형 감각은 TV나 게임으로는 절대 길러질 수 없다. 나는 균형 감각이 몸을 사용하는 놀이를 통해 비로소 몸에 배게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몸을 쓰는 놀이를 하지 않으면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안전한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위험한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준을 익힐 수 없다. 모래판에서 뛰어놀거나 들판에서 씨름이나 레슬링을 하면서 놀았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넘어지면서 몸을 보호하는 방법을 기억할 수 있다.

자연을 포함한 주변 사물과의 관계성이 결여될 경우, 이는 대인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바꿔 말하면 주변 사물과의 공간적 감각이 인간관계에서의 거리감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자녀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이 되면 스마트폰을 선물로 주는 가정이 많다. 그 연령대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주면 단번에 거기에 푹 빠져 하루에 몇 시간이고 게임을 하고 각종 SNS로 수백 통의 문자를 교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로는 왠지 허전하고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끊임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이때 조금이라도 SNS로 소통하는 그룹에 끼지 못하면 친구라고 믿었던 상대로부터 인신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때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주변 친구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한다. 아이는 자신이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워서 끊임없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SNS에 매달린다.

0 아니면 1, 흰색 아니면 검정, O 아니면 X인 것이다. 미묘한 틈이나 어중간한 거리감과 같은 애매한 상태는 없어지고 극단적인 양자택일의 인간관계밖에 성립하지 않는다. 공부나 독서를 통해서 얻은 집중력도 균형 감각이 없으면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열 살 정도까지는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균형 감각을 익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열 살이 넘으면 균형 감각을 키우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균형 감각은 열 살이 지나서도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독서는 자신의 세계관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독서를 통해 다른 사람이 체험하거나 습득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자신의 내적 세계관을 넓히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세계관이 넓어지면 당연히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이나 타인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시점을 가지게 되면 균형 감각이 향상되고 더불어 인격적으로 타인에 대한 포용력이나 관용의 기초도 다질 수 있다.



제2장 독서는 작가의 뇌와 자신의 뇌를 연결하는 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답을 찾아내는 레고형 사고

이제 우리 사회는 20세기형 성장 사회에서 21세기형 성숙 사회로 전환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퍼즐형 사고’에서 ‘레고형 사고’로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퍼즐의 경우,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등의 완성 그림(정답)이 미리 설정되어 있다.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퍼즐은 몇십 조각으로 이루어진 쉬운 단계부터 몇천 조각으로 나뉘는 어려운 단계까지 다양하지만, 본질은 원래 상태로 되돌려 맞추는 놀이다. 퍼즐 조각 하나하나는 이미 정해진 자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조각을 갖다 놓을 수도 없다. 혹시라도 퍼즐조각을 잘못 놓으면 본래 그곳에 들어가야 할 조각은 갈 곳이 없어진다. 그럴 경우 당연히 퍼즐을 완성할 수도 없다.

일본의 20세기 교육은 단 하나의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 누구보다 먼저 퍼즐을 완성하는 아이들을 양산하는 목표를 지향했다. 이로써 일본이 서구 여러 나라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전후 GHQ(연합군 총사령부)나 외국 TV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풍요로운 사회 ‘미국’을 표본으로 삼아 동경심을 전면에 드러내며 성장했던 발전 단계에서는 그런 교육이 정답이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사이 일본 사회는 퍼즐을 빨리 정확하게 완성해 내는 사람으로만 가득 차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퍼즐형 인간이 못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처음에 설정된 정답 화면밖에 만들 수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완성되는 그림을 변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일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한다. 과거 일본인에게 정답과 같은 삶의 모습은 미국적인 라이프스타일이었다. 미국처럼 풍요로워지고자 전후 50년간 미국을 모델로 한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가히 필사적이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좋았다. 그 결과 1980년대까지 일본이 추구하는 정답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다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관, 새로이 지향하는 그림 모양의 재설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성숙사회에서는 스스로 비전을 내세우고 그에 맞는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여전히 새롭게 그림을 만들 생각을 못하고 퍼즐만 맞추고 있었다. 거기에서부터 일본인들의 불행이 싹트고 있었다.

반대로 레고 블록을 쌓는 방법은 머리를 쓰고 아이디어를 내기만 하면 무한으로 확장된다. 만드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집을 만들 수도 있고 동물원을 만들 수도 있다. 또 웅장한 거리 풍경을 만들거나 지구를 떠나 우주 정거장을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모두 각자 원하는 대로 만들면 될 뿐, 정해진 정답은 없다. 각자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답을 찾아낼 수 있느냐 아니냐가 전부다. 퍼즐과 레고 블록, 이 두 게임이 상징하는 차이가 20세기형 성장사회와 21세기형 성숙 사회 간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레고형 사고를 기르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는 책이 있다. 소설이든 저자의 체험을 담은 에세이든 범죄의 이면을 캔 논픽션이든 한 권의 책에는 저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서 조사하고 고심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작업은 그야말로 저자의 뇌 안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다름없다.

타인의 뇌 조각을 연결하면 뇌는 무한대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나의 뇌를 ‘후지하라 뇌’라고 부르기로 하자. 뇌 안에서 레고 블록을 자유자재로 조합하려면 후지하라 뇌를 확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타인이 획득한 뇌 조각을 후지하라 뇌에 연결하면 더욱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전혀 다른 뇌 조각을 연결하면 자신의 뇌에서는 수용하지 못했던 정보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소 후지하라 뇌를 타인의 뇌 조각이 달라붙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후지하라 뇌에 무수히 많은 훅과 같은 장치를 만들어 두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타인의 뇌 조각이 쉽게 걸려들 것이다. 훅이란 무언가를 걸어 놓는 데 사용하는 돌기처럼 생긴 고리를 말한다. 그 훅은 독서를 통해서도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독서는 책을 쓴 사람의 뇌 조각을 자신의 뇌에 연결해 주는 도구가 된다. 이를테면 뇌 과학자 모기 겐이치로의 작품을 읽으면 모기 겐이치로의 뇌 조각이 후지하라 뇌에 달라붙고, 작가 하야시 마리코의 작품을 읽으면 하야시 마리코의 뇌 조각이 후지하라 뇌에 달라붙는다. 뇌에 달라붙는다고 해도 깔끔한 형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예를 들어 뇌에 무수히 많은 구멍이 질서정연하게 뚫려 있고, 그 구멍 안으로 타인의 뇌 조각이라는 둥근 형태의 공이 쏙 들어가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어떤 장소에서는 뇌 조각이 꽂히는 형태로 달라붙기도 하고, 또 다른 장소에서는 뇌 조각이 뭔가에 걸린 것처럼 덜렁거리는 모습일 수도 있다.

똑같은 체험을 해도 그 체험을 통해 뭔가를 배우는 사람과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가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이 훅과 같은 장치의 개수나 훅 그 자체의 구조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훅 자체가 적어서 뇌에 다른 뇌 조각이 붙는 경우가 적을 수도 있고, 훅의 연결고리가 너무 약해서 들러붙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은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거나 좋은 체험을 했음에도 그것을 흡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 훅과 같은 장치를 생물학적인 표현으로 ‘수용체’라고 한다. 수용체가 복잡한 구조일수록 다양한 종류의 뇌 조각을 걸기 쉽다. 일상생활의 여러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동그라미보다 삼각, 매끈매끈한 모양보다 까끌까끌한 모양, 한 개보다 두 개, 한 방향보다 여러 방향, 단순한 형태보다 복잡한 형태 쪽이 효과적이다. 평소에 단련해 두지 않으면 타인의 뇌 조각과 자신의 뇌를 연결하기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모기 겐이치로의 뇌 조각과 하야시 마리코의 뇌 조각의 형태가 애초에 같지 않다. 단순한 형태의 훅으로는 한 사람의 뇌 조각은 잡을 수 있어도 또 다른 사람의 뇌 조각은 붙잡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또 모기 겐이치로나 하야시 마리코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들의 뇌 조각이 갑자기 달라붙는다고도 단언할 수 없다. 지식수준이나 경험의 질이 다르므로 무조건 자신의 뇌에 달라붙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간신히 수용체에 걸렸다고 해도 오다가다 쉽게 떨어지기도 한다. 같은 시기에 같은 작가의 책을 읽어도 독자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법이나 상태가 다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수용체를 복잡한 구조로 만들기 위한 지름길은 다양한 저자의 많은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 다양한 뇌 조각이 축적되고 수용체의 형태가 다양화하여 달라붙기 쉬워진다. 가령 ‘뇌’ 연구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가정해 보자. 모기 겐이치로의 책을 읽어도 그의 뇌 조각이 자신의 뇌에 달라붙지 않는데, 『해마』 등의 저서로 유명한 도쿄대학대학원 교수 이케다니 유지의 책을 읽고 나서 모기 겐이치로의 책을 읽었더니 그의 뇌 조각이 순조롭게 달라붙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바로 독서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수용체를 획득한 결과이며, 다양한 뇌 조각을 축적한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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