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사소한 것들의 과학

마크 미오도닉 지음 | MID



사소한 것들의 과학

마크 미오도닉 지음

MID / 2016년 4월 / 326쪽 / 17,000원





이상한 재료나라의 미오도닉

1985년 5월이었다. 런던의 지하철에 막 올라탄 순간 문이 닫혔고, 나를 공격했던 사람은 간발의 차이로 열차에 타지 못했다. 나는 그 사람이 열차에 타지 못하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등 뒤에서 팔을 휘두르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상처는 따끔거렸는데, 그때는 그게 얼마나 심각한 상처인지도 몰랐다. 나를 공격한 사람은 플랫폼에서 돈을 요구하며 접근해 왔고 칼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열차의 문이 막 닫히려는 순간 그를 밀치고 뛰어올라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가 갖고 있던 무기는 테이프로 감싼 면도날이었다.

칼부림 사건 이후로,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재료에 사로잡힌 채 보냈다. 옥스퍼드대에서 재료과학을 공부했고 제트엔진 합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소에서 재료과학자와 공학자로 일해왔다. 그러는 가운데 재료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져갔고, 특이한 재료를 모은 수집품 목록도 점점 늘어갔다. 이렇게 모은 재료 시료는 동료와 함께 세운 재료 라이브러리에 모두 있는데, 여기에 있는 내용물로 우리의 문명을 다시 세울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훨씬 더 큰 재료 라이브러리가 있다. 우리가 아는 가장 큰 라이브러리이며,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인류가 만든 세상 자체다.

재료의 기본적인 중요성은 우리가 문명화의 단계를 분류할 때 쓰는 이름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는 인류가 새로운 재료에 의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음을 의미한다. 나는 우리가 건설한 재료의 세계를 해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재료들이 어디에서 탄생했고 어떻게 기능하며, 우리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재료과학에 숨은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미시적인 규모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거시적인 규모에서 일어나는 재료의 특성 변화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미경이 없어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상들은 청동이나 강철 같은 새로운 재료를 발견하는 성취를 했다. 당신이 금속 한 조각을 때린다고 해보자. 당신은 금속의 모양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부 구조까지 바꾸게 된다. 비록 이유는 몰랐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지식의 축적은 재료의 구조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도 전에 우리를 석기 시대에서 20세기로 이끌었다.



불굴의: 강철(steel)

나는 브라이언을 한 시간 전에 처음 만났다. 당시 내가 일하던 곳에서 가까운 펍에서였다. 내가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의 기계공학과에서 합금을 연구한다고 밝히자, 브라이언은 자신이 무뎌진 면도날을 날카롭게 하는 전자기기를 발명했다고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면도 사업 분야에 혁명을 불러오는 일인데, 이 기계를 쓰면 사람들이 평생 면도날을 딱 하나만 가지면 됐기 때문이다. 면도날은 내게 아주 민감한 주제였다. 등에 생긴 큰 상처가 떠올라 불편한 기분이 됐다. 하지만 그에게 마저 이야기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계속 들었다.

의아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강철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선 이후다. 그 이전 수천 년 동안, 강철 제조는 기예의 일종으로 세대를 거쳐 전수되었다. 석기 시대에 금속은 지극히 드물고 귀했다. 지구에서 찾을 수 있는 금속이라고는 드물게 지각에서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구리와 금뿐이었다(다른 대부분의 금속과 달리, 이들은 원석에서 추출한다). 철도 일부는 지각에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하늘에서 운석의 형태로 떨어졌다. 구리와 금 그리고 운석에서 온 철이 없던 구석기 시대에 선조들의 도구는 부싯돌과 나무, 뼈로 만들어졌다.

금속의 발견은 선사 시대에 일어난 중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금속이 주변에 별로 없다는 근본 문제를 풀어주지는 못했다. 대안 중 하나는 분명했다. 하늘에서 더 많은 운석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인데, 그러자면 인내심이 엄청나야 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인류는 석기 시대를 끝내고 재료를 거의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세계의 문을 열었다. 매우 뜨거운 불에 넣으면 붉은색 잔화에 둘러싸인 채 빛나는 금속 조각으로 변하는, 녹색의 돌을 발견한 것이다. 이 녹색의 돌은 공작석이고, 금속은 당연히 구리다. 기원전 5,000년쯤부터 인류는 시행착오를 통해 구리 생산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구리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다시 철기 시대로. 문명사는 이렇게 점점 더 강한 합금으로 향하는 계승의 역사다. 구리는 약한 금속이지만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고 제련하기 쉽다. 청동은 구리의 합금으로, 적은 양의 주석이나 비소를 함유하고 있고, 구리보다 훨씬 강하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구리를 갖고 있고 제대로 다룰 줄만 안다면, 추가 힘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구리보다 열 배는 더 강하고 단단한 무기와 면도칼을 만들 수 있다. 유일한 문제는 주석이나 비소가 매우 귀하다는 점이다.

현대의 면도칼도 합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면도칼은 우리 조상들을 수천 년 동안이나 혼란에 빠뜨린 아주 특별한 종류의 합금이었다. 강철, 그러니까 철과 탄소의 합금은 청동보다 강하고 성분은 자연에 훨씬 풍부했다. 그러나 조상들은 강철이 합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탄소는 숯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철을 가열하고 모양을 가다듬기 위한 연료로만 여겨졌을 뿐, 철 결정 안에 들어가는 재료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날에는 양자 역학 지식 덕분에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있다(강철 안의 탄소는 결정 속 철 원자를 대체해 들어가 있는 게 아니다. 철 원자 사이에 끼어들어갈 수 있고, 따라서 결정을 쭉 늘릴 수 있다).

합금 공정이 처음으로 온전히 설명된 20세기 이전까지는, 왜 어떤 강철 제조 공정은 되고 다른 것은 되지 않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강철 제조 공정은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었고, 이렇게 완성된 제조 공정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비밀리에 전수됐다. 참고로 특정 문화권의 야금(冶金) 문화는 질이 매우 좋은 강철을 만드는 것으로 정평이 났고, 그런 문명은 번성했다.

어느 날, 공학자 헨리 베세머는 강철을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선언했다. 베세머의 공정은 아주 간단했다. 용해된 철에 공기를 불어넣는 과정을 포함시킨 것이다. 공기 중의 산소가 철 속 탄소와 반응하면 이산화탄소 기체가 된다. 이 방법으로 베세머는 철 속의 탄소를 제거할 수 있었다. 이 공정은 화학지식 덕분에 가능해졌는데, 이로써 강철 제조 공정은 과학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었다. 더구나 산소와 탄소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고 열을 많이 발생시켰다. 이 열은 강철의 온도를 올려서 뜨거운 액체 상태로 유지시켰다. 이 공정은 정확했고, 산업적인 규모로도 활용될 수 있었다.

그런데 베세머 공정의 유일한 문제는,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된다는 점이었다. 베세머는 이 공정이 왜 어떨 때는 되고 어떨 때는 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기술을 계속 연구했고, 영국의 야금학자 로버트 포레스터 무세트의 도움으로 기술을 개선했다. 강철을 생산할 때 탄소를 딱 맞는 양, 그러니까 1% 정도만 남을 때까지 제거하는 게 까다로운 문제였는데, 무세트는 아예 모든 탄소를 없애 버린 뒤 1%의 탄소를 다시 넣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 방법은 잘 통했고, 반복해서 같은 결과를 얻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는 기계 시대를 열어젖혔고, 물론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한편 20세기까지 강철 면도날과 외과용 칼은 매우 비쌌다. 최고급 강철을 이용해 수제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철은 공기와 물이 있으면 부식하기 때문에, 면도칼을 씻는 것은 날을 무디게 만든다. 따라서 수천 년 동안 면도 의식은, 날을 가죽에 앞뒤로 문질러서 갈아 날카롭게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1903년에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의 사업가인 킹 캠프 질레트가 베세머 공정을 도입해 값싼 산업용 강철을 제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일회용 면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날을 아주 싸게 만들어서 무뎌지면 그냥 버리게끔 했다. 질레트의 사업모델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영리했다. 이유 중 하나는 면도날이 면도 행위 자체로는 무뎌지지 않는다 해도 녹 때문에 빠르게 무뎌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질레트로 하여금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 주목할 만한 점이 있었는데, 혁신이 엉뚱할 만큼 단순했고 우연히 발견됐다는 점이다. 1913년, 유럽의 강대국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무장에 한창이었는데, 헨리 브리얼리는 총의 몸통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금속 합금을 조사하고 있었다. 브리얼리는 강철이 철과 탄소의 합금이라는 것을 알았고, 특성을 증가시키거나 없애기 위해 강철에 다른 많은 원소를 추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되는지 아무도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브리얼리는 시행착오를 통해 강철을 녹이고 다른 성분을 넣어 효과를 알아냈다. 어느 날은 알루미늄을 넣었고, 다른 날은 니켈을 넣었다. 천재적인 발견은 한 달 뒤, 그가 연구실에 들어가 녹슨 강철 덩어리 더미에서 빛나는 것을 보는 순간 일어났다. 그는 녹슬지 않은 금속을 집어 들었고, 곧 중요성을 알아챘다. 세계 최초로 녹슬지 않는 강철(스테인리스 스틸)을 손에 쥔 것이다. 우연히 탄소와 크롬이라는 두 합금 성분의 비율이 딱 맞았던 덕분에, 그는 철 결정 사이에 탄소와 크롬이 들어간 결정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보통 강철이 공기와 물에 노출되면 표면의 철이 반응해 흔히 녹이라고 부르는 붉은 광물인 산화철(Fe2O3)을 이룬다. 그런데 이 녹이 벗겨지면 다시 새로운 강철층이 드러나면서 부식된다. 이 때문에 강철 구조물에서는 늘 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크롬이 들어가자 다른 일이 일어났다. 크롬은 주인인 철 원자가 산소와 결합하기 전에 먼저 반응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산화크롬은 투명하고 단단하며 철과 아주 잘 달라붙는 광물이었다. 다시 말하면 크롬이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보호막을 강철 표면 전체에 씌운 것이다. 더구나 이 보호막은 손상됐을 때 스스로 치유되는 능력도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이 긁혀서 보호막이 망가졌다 해도, 이 합금은 다시 막을 만든다.

이후 브리얼리는 세계 최초의 스테인리스 스틸 칼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곧 문제에 부딪혔다. 새로운 금속은 날카로운 날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지가 않았고, 금세 무뎌져 ‘자를 수 없는 칼’이 됐다. 단단한 성질이 없다는 이유로, 브리얼리는 스테인리스 스틸이 총에 사용할 수 없는 합금이라고 일찌감치 퇴짜를 놨다. 그러나 이 합금은 한 세기 뒤에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됐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복잡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었고, 덕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의 조각품 중 하나가 됐다. 오늘날 이 조각품은 모든 집에 하나씩 있다. 바로 주방의 싱크대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현대의 화신이다. 깨끗해 보이고 빛나며, 부서지지 않게 생겼다. 그리고 10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스테인리스 스틸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가까운 금속이 됐다. 우리는 이 금속을 매일 입안에 넣는다. 왜냐하면 브리얼리가 스테인리스 스틸로 나이프와 포크 등 식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산화크롬으로 된 투명한 보호막 덕분에 우리는 스푼에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다. 혀는 금속에 닿지 못하고 타액도 반응하지 못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식기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만드는 문제를 풀면서, 야금학자들은 무의식중에 면도날의 녹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세계가 그때까지 갖지 못했던 가장 날카로운 날을 창조해냈고, 수많은 얼굴과 몸의 외양을 바꾸어 놓았다. 부주의하게도, 면도의 가정 내 보급은 길거리 범죄의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까지 만들었다. 면도날은 내구성이 좋고 값이 싸며, 무엇보다 매우 날카로워서 여러 층의 가죽과 울, 면 그리고 피부를 자를 수 있다.

나는 브라이언과 함께 그가 고안했다는 새로운 스테인리스 스틸 면도날 가공 공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모든 사실을 떠올렸다. 스테인리스 스틸처럼 단단하고 질기며, 날카로우면서도 물과 공기를 통과시키지 않는 강철은 지난 수천 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창조됐다. 누군가, 그것도 과학의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우연히 면도날을 다시 날카롭게 하는 공정을 우연히 찾아낸다는 것도 전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재료의 미시적인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하기 때문에 전체의 아주 작은 영역만이 탐구됐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유리(glass)

모래를 잘 살펴보면, 이 돌들 중 상당수가 이산화규소의 결정형인 석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계에는 석영이 많은데, 지구 지각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 두 가지가 바로 산소와 규소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서로 반응해 이산화규소 분자(SiO2)를 이루는데, 석영 결정은 SiO2의 통상적인 배열이다. 석영을 가열하면 SiO2 분자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분자는 진동한다. 하지만 어느 온도에 이르기 전까지는 분자를 서로 이어주는 이웃 분자와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고체가 갖는 핵심 속성이다. 만약 당신이 고체를 가열한다면, 진동은 언젠가 한계(이것이 녹는점이다)에 다다를 것이고, 이때 분자는 결합을 끊고 무질서하게 돌아다닐 만큼 에너지를 얻는다. SiO2는 액체가 된다.

액체 상태의 물은 차가워지면 다시 쉽게 결정을 이뤄서 얼음이 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게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SiO2는 다르다. 액체 상태였다가 식을 때, SiO2 분자는 다시 결정을 이루는 데 애를 먹는다. 마치 어떻게 결정을 이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에 어떤 분자가 가고, 이 분자 다음에 어떤 분자가 와야 하는지 같은 문제가 SiO2 분자에게는 난제다. 액체 상태에서 점점 차가워짐에 따라, SiO2 분자는 점점 에너지가 낮아지고, 움직이는 능력도 줄어들어 간다. 그 결과 분자는 결정구조를 이루기 위해 딱 맞는 위치로 이동하지 못하고, 결국 혼란스러운 액체의 분자구조를 간직한 고체 재료가 된다. 바로 유리다. 그러니까 유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는 결정구조를 이루는 데 실패하는 것뿐이다. 아마 매우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막의 모래에 불을 붙이고, 불꽃을 키우기 위해 바람을 많이 불어넣어보자. 온도가 충분히 높아지고, 모래가 녹아 반투명하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될 것이다. 이 액체가 식으면 단단해지면서 유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유리는 그 안에 녹지 않은 모래를 잔뜩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금세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이런 방식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대부분의 모래가 질 좋은 유리를 만들기에 적합한 광물 조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융제(flux)라고 부르는, 탄산나트륨 등의 첨가물을 넣으면 유리가 좀 더 잘 만들어지지만, 대개는 잘 안 된다. 모래는 대부분 석영으로 돼 있지만, 안타깝게도 바람에 딸려오는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두 번째 문제는, 모래가 적절한 화학 조성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을 녹이기 위해서는 1,200℃라는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반적인 불의 온도인 700~800℃보다 훨씬 높다. 번개라면 이런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 번개가 사막에 내리치면 모래를 녹이기에 충분한 온도 10,000℃를 넘어서며, 섬전암(풀규라이트)이라고 하는 기다란 유리를 만들어낸다.

섬전암의 색은 만들어진 모래의 성분에 따라 달라지는데, 석영 사막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검은 회색부터 반투명한 색까지 다양하다. 한편 리비아 사막에는 유독 순도가 높은 흰색 모래로 된 지역이 일부 존재하는데, 이런 곳에서는 지저분한 섬전암이 아니라, 오늘날의 유리처럼 보석 같은 투명함을 지닌, 매우 드문 형태의 유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사막 유리 조각은 투탕카멘의 미라에서 발견된 화려한 스카라베(부적 등으로 쓰인 돌)의 핵심을 이룬다. 오늘날 우리는 이 사막 유리가 고대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연도를 측정해 보니 2,600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리 가운데 이런 것은 트리니티 유리밖에 없다. 트리니티 유리는 1945년 미국 네바다의 화이트샌즈에서 이뤄진 트리니티 핵실험에서 만들어졌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