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아닌 선택
디오도어 루빈 지음 | 나무생각
절망이 아닌 선택
디오도어 루빈 지음
나무생각 / 2016년 4월 / 461쪽 / 17,000원
절망을 뿌리치는 선택
몇 년 전에 나는 크나큰 개인적인 실패와 그에 따른 심각한 자존심의 상처로 인하여 아주 고통스러운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특히 밤이면 더욱 심해 악몽에 계속해서 시달리고는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내 아내는 연민과 사랑으로 나를 보살펴주었다. 나를 맡았던 정신분석가도 훌륭한 인간성을 가졌을 뿐 아니라 투쟁 정신과 연민도 풍부하게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그 두 가지 능력을 모두 동원했으며, 내가 지녔던 자기증오와 용감한 싸움을 벌였다.
결국 우리들은 승리했다. 어느 날 밤, 그가 보여준 물러설 줄 모르는 자비로운 확신이 나의 내면에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그것이 나 자신 속에서 잠들어 있던 공감의 바탕을 흔들어놓은 다음에, 기막힌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날 밤 잠을 자려고 하기 전에 나는 만사를 순리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자고, 그냥 두고 보기만 하자고,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자고, 나 자신을 짜증스럽게 만드는 짓은 그만두자고, 책임을 지려고 나서는 태도를 버리자고, 흩뜨려놓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자고,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그냥 받아들여야겠다고 (머리로서가 아니라 나의 존재 전체와 모든 감정을 동원하여) 결정했다.
이처럼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치료 효과를 내는 요소는 관용이다. 반면 인간에게 치료 효과를 저해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자기증오다. 한편 절망은 자기증오를 위해서 사용된 정력이나 본질과 정비례한다. 그리고 파괴적인 내면의 혼란으로부터의 상대적인 자유와 정신적인 행복은 관용의 실천을 위해 사용된 정력이나 본질과 정비례한다. 우리들 가운데 인간의 성장과 내적인 평화의 촉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런 힘들을 검토하고 이해하는 일이 필수적인 여건이다. 이것이 자기증오를 무너뜨리고, 관용을 발동시키고, 내적인 절망을 경감시키기 위한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이 책의 첫 부분은 자기증오에 대한 토론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책의 중간 부분에서 나는 자비와 자비로운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토론을 전개한다. 마지막 부분인 〈인간적인 조건〉에서는 가장 파괴적인 문화적 가치관에 대한 공감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진다. 이 가치관을 이해하고 바꿔놓으면, 자기증오와 상호 간의 증오를 감소시키고, 궁극적으로 보다 공감하는 사회의 건설에 기여할 것이다.
자기증오
자기증오의 형성 과정: 자기증오의 감정들이나 행위들이 따로 분리된 요소처럼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은 항상 진행되는 계속적인 과정에서 한 부분을 이룬다. 그 과정은 불만이라는 가벼운 감정으로부터, 경멸과 혐오감과 반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를 포함한다. 그 과정은 방해하겠다는 결정과, 실질적인 자신에게 불리한 행위와 활동,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살까지도 포함한다. 여기에서 얘기하는 ‘실질적인 자신’이란 우리들이 누구라거나 아니면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자신에 대한 뒤틀린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들 자신을 의미한다. 앞에서 얘기한 관념들 그 자체는 자기를 증오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비하를 시키든 이상화를 하든 어떤 식으로든 자아를 왜곡시키는 행위는 실질적인 자아를 거부하는, 즉 결과적으로 자기를 증오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장된 견해들은 자기증오와 마찬가지다. 자신의 능력을 극소화시키거나 무시하는 행위도 그보다 덜 심하지도 않고 더 심하지도 않은 자기증오다. 자아에 관련된 현실을 거부하면, 그 형태가 어떠하거나 간에, 그것은 항상 자기증오다.
어린 시절 이후에는 자기를 증오하는 작용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고 능동적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가장 소극적이라고 여겨지는 자기증오의 양상이 흔히 가장 만성적이고도 나쁜 결과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만성적인 자기증오와 열등감의 결과는 당장 빤히 드러나지는 않을지 몰라도, 집요하고도 널리 파급된다. 자신이 가치가 없고 부족하다는 일반화한 감정은 모든 면에서 철저히 파탄을 일으키는 생활 방식을 예외 없이 파생시킨다. 그런가 하면 노골적으로 자아를 파괴하는 행위들은 뻔하게 드러나기는 하지만, 흔히 그 행위들이 야기하는 전체적인 피해를 관찰하는 정도로 제한되고 거기에서 차단된다.
나의 여성 환자 한 사람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휴가를 어떻게 해서든지 꼭 망쳐놓는 버릇을 키웠다. 그녀는 자신을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기계라고 비현실적으로 보는 관점을 믿는 까닭에, 휴가를 가는 자신을 미워한다. 따라서 그녀는 휴가 때를 맞으면 병이 나거나, 가까이 지내면 참을 수가 없는 그런 ‘친구’들하고 같이 가거나, 발목을 삐기도 하고 손을 베이는 따위의 사소한 사고를 일으키거나, 도저히 충족시키지 못할 기대를 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자신이 실망과 불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나머지 삶은 대부분 다른 방법으로 살아서, 그녀는 비교적 충만하고 보람찬 생활을 영위하며, 인간관계도 훌륭하고,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제법 행복을 즐길 만한 능력을 갖춘 여자다.
어떤 경우든 자기증오는 그것이 어떤 사람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또는 적은 부분을 잠식해버렸느냐 하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항상 자동적이고도 활동적인 작용의 한 부분이다. 그 작용과 결과들 사이의 관계가 한눈에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그것들은 항상 존재하고, 필연적으로 파괴 기능을 발휘한다.
직접적인 자기증오의 형태: 자기증오는 어떤 형태를 취하거나 간에 자아에 대한 공격들로 이루어진다. 다음에 열거한 내용은 내가 접해온 가장 흔한 형태들이지만, 변형된 수많은 형태도 존재하고, 교묘하고도 독특한 조작 형태도 얼마든지 발견된다. ① 자기조소 -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로 하는 말과 생각들의 형태를 취한다. 예로 “나는 어리석다.”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른다.” 등이다. 그런데 이렇듯 비웃고 자아를 말살시키는 표현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어린 시절로부터 기원하며, 때로는 그 표현들이 실제로 사용되었던 어휘들로서, 부모들이 현재의 희생자뿐 아니라 그들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사용했던 바로 그 표현이었으며,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인 경우도 적지 않다.
② 자기를 징벌하는 비판 - 이것은 건설적인 가치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 그런 비판이다. 자신을 향상시키겠다는 피상적인 목적이 이런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이유로 동원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실질적인 동기는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다. ③ 자기비하 - 이런 형태는 결실을 맺어주거나 발전을 뒷받침하는 참된 자질과 가능성을 소홀히 하고, 그것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적극적인 과정을 유발시킨다.
④ 우울증 - 우울증은 마취제처럼 반가운 여유를 마련해주는 효과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목적을 달성한다. 그것은 또한 한 사람의 내적인 정신적 삶 속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부조화의 강력한 상징이기도 하며, 비록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누적된 분노를 발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울증의 궁극적인 기능과 결과는 자신을 고통받는 상태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우울증이란 자기증오와 두드러진 요인이다. ⑤ 자살 - 이것은 자기증오의 궁극적인 방편이다. 그러나 자신을 말살하는 이 궁극적인 표현에서까지도 자기증오의 다양한 정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무척 증오하는 자신에 대해서까지도 거의 마지막으로 고려하는 방법만큼은 비교적 편안하고 고통이 없는 쪽을 선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철저히 사라져버리는 그런 방법을 선택한다. ⑥ 술ㆍ마약ㆍ담배ㆍ음식 - 이런 것들은 아마도 직접적인 자기증오를 해소하는 수단으로써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증오를 피하기 위해서 더욱 자기증오 속에 스스로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⑦ 살인 - 내가 보기에는 살인이란 빗나가고 객관화한 자기증오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여겨진다.
⑧ 죄의식, 불안한 예감, 부적절하고 지나친 걱정 - 자기를 증오하는 이런 행동들은 흔히 미덕이라고 취급되고 넘어가는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시험이나 법정 출두 같은 그런 시련을 예상하고 느끼는 불안감을 현실적인 연습이라고 하며, 죄의식은 책임감과 도덕성에 대한 높은 인식이라고 하며, 가당치도 않은 걱정을 인간적인 배려라고 하는가 하면, 심한 근심은 순교자의 거룩한 성품과 연결 짓는다. 그러나 이런 양상들은 사실상 모두가 자기증오에 기여하는 기능을 지닌 수단에 불과하다. ⑨ 도박 - 충동적인 도박은 희생자로 하여금 만성적인 자기혐오와 상실감의 상태에 빠져 살아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중독성 질병이어서, 약과 술과 과식에 의한 중독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런 모든 증후군에서의 일차적인 중독은 자기증오에 의해 이루어진다.
간접적인 자기증오의 형태: 급성으로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기가 보통인 직접적인 자기증오와는 달리, 간접적인 자기증오는 그 효과가 만성적이고 장기간 지속된다. 또 널리 침투하고, 전체적이고, 악성적인데, 이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언제나 파악하기가 어려우며, 아래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① 환상 - 대부분의 환상은 아마도 그 가장 초기의 시작이 어린 시절의 평범한 공상에서 연유한다고 여겨진다. 이 공상들은 계속해서 보완되고, 우리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문화에 의해 마련된 자료의 광범위한 기초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유지되고 성장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거의 언제나 실질적인 자아로부터 괴리된 채 내재하는 자기증오와, 환상 속에 내재하는 자아에 대한 부수적인 피해를 의식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환상과 자기증오를 동일시하려는 데 대해서 엄청난 저항감을 느낀다. 그런 동일시는 환상의 종말의 시작이고, 환상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들의 반발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참고로 가장 흔하고 커다란 환상은 우리들이 아무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착각이다.
② 자아와 관련된 환상들 - 어떤 경우에든 착각은 현실을 약화시키는 이상의 효과를 일으켜서, 그것은 나약함을 증가시키고, 실망과 자기증오의 가능성을 늘린다. 그리고 지배, 완벽성, 용감성, 용기, 전지, 전능, 위대한 천재성, 무적(無敵)의 경지에 얽힌 화려한 환상들은 질투와 위선과 시기와 모방과 소유욕과 거짓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으며, 희생을 당하고, 자비롭고, 핍박을 받고, 헌신하고, 순수하고, 성자 같고, 이해심이 많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아끼고, 영원히 멋진 남자가 된다는 환상보다 덜 섬세하기는 해도, 그에 못지않게 심한 파괴력을 지닌다.
한편 해방되기 위한 시도로서, 현실로부터 멀리 떠나가는 과장된 탈선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런 초라한 관점에서 우리들 자신을 보게 만드는, 실질적인 자아를 비하시키는 환상들은 어떠한가? 자신을 조롱하는 이런 환상들과 느낌들을 치료하다 보면, 흔히 어린 시절의 모욕적인 환경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것들은 많은 경우에 부모의 무관심과, 과잉보호와, 지나친 관용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과잉보호로 인해서 질식당하는 결과적인 현상들은 무기력과, 무능력과, 의존이라는 미래의 환상들을 키우는 무수한 씨앗과 뿌리를 마련한다. 다음에 이것들은 보상을 받기 위한 화려한 환상들로 이어지고, 그 보상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부수적으로 실망과 직접적인 자기증오의 공격들이 뒤따른다. 그 모두가 실질적인 자아로부터의 이탈이고, 따라서 실질적인 자아에 대한 증오를 나타낸다. 의존의 환상은 지극히 흔한 경우다. 나는 ‘실질적인’ 무기력과 의존심을 ‘무기력과 의존심의 환상’으로부터 구별하는 관점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③ 권태 - 권태는 우리들 자신에게서 성장하지 못하고 동경하는 면모들을 일부러 그리고 흔히 무의식적으로 소홀히 하고 거부하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 불가능한 대상을 원하고 가능한 대상을 거부함으로써 굶주림을 야기하는 현상이 권태의 실체다.
관용
관용의 작용: 관용이란 자기증오에 대한 하나뿐인 해독제이며, 신경증적인 절망이 아닌 인간의 유일한 선택이요 특권이다. 관용은 실질적인 자아의 이익을 도모하는 모든 생각과, 느낌과, 기분과, 통찰과, 행동이다. 여기에는 실질적인 자아를 보호하고,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모든 기능이 포함된다. 여기에는 또한 어떤 면에서라도 자기증오를 감소시키고 파괴하며, 그 결과로 인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자아를 받아들이고 더욱 자신을 존중하게 만드는 모든 기능도 포함된다.
궁극적으로 관용이란 자비심이 가장 높은 곳에서 다스리는 마음의 상태며, 우리들 자신에 대한 은총의 경지가 이룩된 상태다. 은총의 경지란 자기증오의 촉진과 상반되는 상태다. 은총의 경지에서는 모든 상황하에서 자아에 대한 충실함이 인간의 가치 체계에서 가장 손꼽히는 중요성을 지닌다. 한편 나는 인간의 통찰력과, 노력과, 투쟁들은 관용의 뒷받침이 없으면 기껏해야 지적이고 피상적인 최소한의 가치밖에 지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장 나쁜 경우에는 그것들은 왜곡되어 자아증오와 불행을 초래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아무튼 상대적인 정신적 평화는 관용적인 정서의 풍토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성은 정서적인 양식을 필요로 하며, 이것은 자비롭지 못하도록 몰아대는 모든 내적 및 외적인 힘에 대항하여 우리들 자신에게 관용을 베풀게끔 하려는 투쟁으로부터 생겨난다.
관용의 뿌리: 자신과 타인들에 대해서 비교적 관용을 보이는 성향이 인간으로서는 자연스러운 본능이요 습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만일 우리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성향을 파괴하는 힘과 압력에 어쩌다가 종속이 되어버렸다는 이유 때문이다. 한편 인간의 아기는 자아와 상당히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자신을 좋아하는 능력을 대단히 많이 지니고 태어난다. 따라서 관용에 대한 가르침은 자비로운 가정에서 가장 잘 배우게 된다. 그런 가정에서는 식구들이 저마다 자신에 대해서 비교적 자비로우며, 예외 없이 다른 가족들 사이에서도 관용이 생겨나게 된다.
직접적인 관용의 형태: 직접적인 관용은 실질적인 자아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직접적인 자기증오에 대항하여 우리들이 취하는 직접적인 조처들로 이루어진다. 직접적인 관용을 형성하는 데는 특별한 현상을 인식하고, 봉쇄하고, 포기하는 세 가지 중대한 단계와 조처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나는 실질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간단한 과정인 직접적 관용의 3단계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다.
① 나는 내가 점점 더 침울해지고 초조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면 나는 과거에 내가 저질렀던 실수들을 돌이켜 생각해보고, 다른 방법으로 같은 일을 했다면 어떻게 그런 실수들을 피할 수 있었을까 추측해보는 제2의 선택 놀이를 시작하는데 나는 이 과정을 직접적인 자기증오의 공격이라고 간주한다. ② 나는 그 과정을 더 이상 지속시키지 않고 중단하기 위해서, 이른바 실수라는 상황들에 대한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 가기를 거부하기 위해서, 가상적인 상황들과 자책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그 과정을 봉쇄하는 수단이라면 무엇이라도 당장 취한다.
예로 나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영화를 보자고 시간 약속을 한다. 약속 시간이 될 때까지는 한참 동안 활기차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이에 ‘과거의 잘못들’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면, 나는 ‘대표이사’이기 때문에 내가 내 시간과 정력과 사고 활동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해서 많은 발언권을 행사하며, 그래서 나는 자신을 책망하기를 거부한다. 그 대신에 나는 과거에 겪었던 즐거운 일들과 과거의 만족감들, 그리고 페달을 밟을 때의 내 근육의 움직임과, 내가 지나치는 나무들과, 내가 보는 얼굴들 따위의 현재의 만족스러운 사물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친구하고 같이 영화를 보고 나중에 그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될 기쁨을 미리 예상해본다.
③ 나중에, 이를테면 이튿날 아침에, 나는 침울함이라든가, 불안감이라든가, 나 자신에 대해서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는 전반적인 감정 따위, 자기증오의 공격과 그 가장 초기의 증상들에 앞서 나를 찾아왔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기억해내려고 애쓴다. 내가 이런 식의 경험을 적어도 어느 정도나마 과거에 거쳤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나 자신의 편을 들어 무슨 결정을 내렸던 적이 있는가? 과거에는 그것을 이기적인 행위라고 간주했을지도 모르고, 최근에 와서야 자신을 구제하는 행동이라고 파악하게 된 사실이지만, 나에게, 오직 나에게만 완전히 충실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나는 하나라도 했던가? 나는 사실상 아주 힘들고 심지어는 고통스러웠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