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마음의 사생활

김병수 지음 | 인물과사상사



마음의 사생활

김병수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6년 1월 / 336쪽 / 15,000원





인생 표준 시간은 없다

시간은 고무줄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은 우주선을 타고 시간이 빨리 흐르는 곳과 천천히 흐르는 곳을 넘나든다. 영화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물리학에서 시간은 질량과 속도에 의해 상대성을 띠지만, 심리적 시간은 주의력과 경험하는 정보량에 따라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아인슈타인도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앉아 있는 남자는 1시간을 1분처럼 느낀다. 하지만 그를 뜨거운 난로 곁에 앉혀두면 1분을 1시간처럼 느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성이다.”

누구나 경험해보았겠지만, 신나고 재미있으면 시간이 빨리 흐르고, 불안하거나 고통스러우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이것은 시간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 차이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시간에 주의를 강하게 기울일수록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 다른 것에 몰입해서 시간 흐름을 알려주는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무시하면, 시간 속도를 빠르게 지각하게 된다. 그러니 괴로울 때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자꾸 시계를 쳐다보지 말고, 일부러라도 다른 데로 주의력을 돌려야 의식에서 지각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기억 속의 시간은 현재 경험하는 시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각된다. 같은 시간이라도 ‘얼마나 많은 정보를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경험 속에 담긴 정보가 많을수록 시간을 길게 인식한다. 반대로 새로운 사건과 경험이 없으면, 그동안의 기억은 짧게 압축되어버린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다. 어린아이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고, 그 속에서 습득해야 할 정보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그때는 시간이 천천히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어제도 오늘과 같고, 내일도 오늘과 다를 바 없어지면 삶이 번개처럼 지나가버렸다고 회상하게 된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다면, 새로운 경험에 자신을 던져 넣어야 한다. 그래야 기억 속에서라도 오래 살 수 있다.

시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 마음속을 흐르는 시간의 성질을 이해하면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간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모든 것이고, 사람은 무가치하다. 사람은 고작해야 시간의 시체일 뿐이다.” 인간이 겪게 되는 모든 문제는 시간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 살면서 경험하는 고통과 치유는 ‘우리가 시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결정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따라서 개인이 가진 시간관을 알면, 심리적 고통의 이유뿐 아니라 인간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개인이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생각과 감정, 행동이 달라진다고 했다. 결국 시간관은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짐바르도는 시간에 대한 관점을 여섯 가지로 구분한다. 과거 부정적, 과거 긍정적, 현재 쾌락적, 현재 숙명적, 미래 지향적, 미래 초월적 시간관이다. 사람들은 이 중 특정한 시간관을 습득해서 과도하게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이 현재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

과거 부정적 시간관에 치우친 사람은 실수나 실패 같은 과거의 부정적 경험에 사로잡혀 산다. 이런 사람은 후회나 원망에 빠져들기 쉽고, 우울증도 잘 걸린다. 과거 긍정적 시간관에 치우친 사람은 행복했던 추억과 향수에 자주 젖어들고, 좋았던 자기 모습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산다. 가족이나 친구와 좋은 관계를 맺고 가까이 지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 쾌락적 시간관에 치우친 사람은 즉각적인 즐거움과 자극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인생을 즐기고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충동적 행동이나 술, 약물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현재 숙명적 시간관에 치우친 사람은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고, 미래도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믿는다. 과거 부정적 시간관에 치우친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취약하다. 미래 지향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은 현재보다 미래 목표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절약 정신이 강해 돈을 잘 모으고, 계획에 따라 살고, 자기 절제에 능하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기 때문에 여유가 생겨도 즐길 줄 모른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미래 초월적 시간관은 종교나 영성에 대한 믿음과 관련된다. 이 시간관이 우세한 사람은 종교에 헌신하기 쉽고 사후 세계에도 관심이 많다.

당신은 과거, 현재, 미래 중 언제 일을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행복한가, 슬픈가? 희망을 갖게 되는가, 두려움을 느끼는가? 어떤 시간관이 우세한지에 따라 이러한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시간관이 우세한 사람인가?”라고 자신의 시간관을 점검해보면 내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행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힌트를 알려주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간관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균형 잡힌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부정적 시간관이 우세한 사람은 후회에 빠져드는 것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이것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재 쾌락적 시간관이 강한 사람은 미래 지향적 시간관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다. 현재를 즐기되, 자신의 삶이 어디로 향하는지 매 순간 자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래 지향적 시간관이 강하다면, 의도적으로라도 현재 쾌락적 시간관을 활용해야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명상처럼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는 훈련을 꾸준히 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활동에 시간을 더 할애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속이며 산다

리플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뜻하는 용어로 미국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라는 소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성취 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회구조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많이 발생한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열등감과 피해 의식에 시달리다가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이를 진실로 믿고 행동하게 된다”고 한다.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의 말과 행동, 태도에는 거짓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중에 거짓이 들통났을 때 다른 사람들이 받게 되는 충격도 그만큼 더 크다.

거짓말은 병도 아니고 심하지 않으면 죄라고 할 수도 없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면서 큰다. 거짓말이 없다면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거짓말은 숨겨진 소망의 반영이기도 하다. 희망을 품는 것은 현실과 다른 자기 모습을 마음속에서 거짓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문제는 자신이 거짓말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거짓을 진실이라고 스스로 철석같이 믿을 때 생긴다. 리플리 증후군이 이슈가 된 것도 거짓말 그 자체보다 거짓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태연하게 진짜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누군가 자신의 기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보아도……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말을 듣고, 우리가 믿는 진실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의 문제를 넘어 의식적 의도성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로 이어진다. 의식적 거짓말과 무의식적 거짓말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또 다른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거짓을 말한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했을까? 아니면 거짓을 진실이라고 확고하게 믿었던 것일까? 만약 거짓말하는 사람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완전히 믿었다면 그 사람이 거짓을 말한다고 비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말한 것뿐 아닌가?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진실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거짓으로 믿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지어낸 거짓말에 스스로 속고 싶어 하는 본성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개념과 자기기만: 우리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며 산다. 자기가 믿고 싶어 하는 것에 맞추어 자신을 속인다. 정당성만 확보되면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한다. 정당한 명분이 없는 상황이라면, 거짓을 진실로 믿어버리기도 한다. 바보처럼 보이는 것보다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당당해지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스스로 만들어낸 거짓을 진실이라고 확고하게 믿게 된다. 속이는 주체와 속는 주체가 같은 경우를 자기기만이라고 한다. 따라서 자신을 속이면서도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야 자기기만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자기기만에 빠진 주체의 이성적 판단 능력이나 현실 검증 능력에는 손상이 없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거짓말은 가장 흔한 방법이다. 그런데 거짓을 말로 하지 않더라도, 남을 속일 수 있다. 진실을 구축하는 정보 중에 중요한 부분을 숨기고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음으로써 속일 수도 있다. 정보를 편향적으로 선택하거나 왜곡하는 방법도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진실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진실에 강한 의혹을 제기해서 거짓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이런 예는 선거철이면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이런 방법들은 자기 자신을 속일 때도 그대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경우에 자기기만에 빠질까? 여러 가지 상황이 있지만, 본질은 하나다. 자기 체면이 심각하게 훼손될 때다. 우리는 자기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정의롭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다, 나는 성실하고 정직하다”처럼 긍정적 자기 개념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사람은 자신이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유능하고, 도덕적이며, 똑똑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긍정적으로 구축해둔 자기 개념이 훼손될 위험에 처하면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자기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은 윤색하고, 아예 없었던 것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변질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어버린다. 자신을 속여버리는 것이다. 반대 증거가 나와도 무시한다. 오히려 증거가 거짓이라며 강하게 저항한다. 이러한 자기기만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 중 하나가 망상이다. 자기 개념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될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누구나 진짜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나는 아무리 체면이 깎이고 자존심이 상해도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한 번 더 속는 것이다(자신을 속이는 것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직관이나 감정에 따라 행동한 후에 이성을 활용해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이 더 보편적이다.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행동한 뒤에, 그 행동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 낼 때가 많다. 정직하지 않은 행동을 한 뒤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자신의 부정직을 그럴듯한 말로 꾸며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죄책감도 덜 느낀다. 마음의 평화도 유지하면서, 자기 개념도 긍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기만을 “자기 자신에게 불리한 사태를 알아차린 한 인간이 어떻게 해서든 반대의 사태를 믿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자기기만은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자기기만은 득도 되고 실도 되기 때문에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자기기만이 있기에 밤에 마음 편히 두 발 뻗고 잠들 수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때는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기 힘들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민낯의 자기 모습을 그대로 마음속에 담아둔 채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기기만이 작동하면 부끄러운 모습은 덮어두고, 이상화된 자기를 실제라고 믿으며 기분 좋게 살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자신감을 유지하기에도 좋다.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을 속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날것 그대로의 세상을 보노라면,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려야 하니, 자신을 속여서라도 희망을 갖는 것이 인간의 생존 방식이다.

사람은 자신을 실제보다 좋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평균보다 유능하고 리더십이 있으며 잘생겼다고 믿는 것이다. 평균적인 사람들조차 자신이 평균보다 좋은 자질과 특성이 있다고 믿는다. 객관적 평가와 상관없이 자기 능력과 자질을 더 좋게 인식하는 것을 자기 고양이라고 한다. 자기 고양은 단순한 허세와는 다르다. 자신의 모호한 특성을 좋게 인식하고, 타인의 부정적 측면은 선택적으로 강조해서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우월하게 지각하는 것이다.

니컬러스 에플리와 에린 위트처치의 연구 결과를 보자. 연구자들은 피험자의 얼굴 사진을 찍은 뒤 사진을 조작했다. 피험자가 실제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게 사진을 조작하기도 하고, 반대로 덜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조작하기도 했다. 사진 조작 정도는 10~50%까지 다양했다. 연구자들은 피험자 앞에 조작되지 않은 사진과 매력적으로 혹은 덜 매력적으로 다양하게 조작한 사진을 내놓고 조작되지 않은 진짜 자기 얼굴 사진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은 자신의 실제 얼굴이 아니라,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10% 조작된 사진을 진짜 자기 얼굴이라고 지목했다. 피험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실제보다 호감 가는 이미지로 지각했던 것이다. 이 연구는 사람들이 거울에 비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더 좋게 상상한 모습을 진짜 자기인 양 믿으며 산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기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낙관주의자는 부정적인 사건을 없는 셈 치는 사람이 아니라, 부정적 사건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낙관주의자는 자기기만을 통해 힘든 상황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본다. 행복 역시 효율적인 자기기만의 결과일지 모른다. 어쩌면 자신을 잘 속일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하다고 느끼며 사는 것일지도 모르고. 사실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항상 나쁜 사람은 없다. 악하면서 선한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 내면에는 옳고 그름으로 쉽게 나눌 수 없는 회색 지대가 있다. 이 영역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넓고 큰데, 검은색으로 쉽게 변한다.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 돈을 더 벌기 위해, 더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사람은 누구나 거짓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나는 검게 변하지 않을래!”라고 아무리 의지를 다잡아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다. 극단적으로 착한 상위 1%의 사람과 극단적으로 부정직한 하위 1%의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98%의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은 평소에는 착하게 살다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면 부정을 저지르고, 거짓말로 자신의 부정직을 정당화한다.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 설명이 진실이라고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정치인이 거짓말을 진짜처럼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며 경악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몇몇 유명인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원래 인과론적 설명을 꾸며내는 재주가 뛰어나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다. “왜 그랬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도 우리의 상상력만큼 다양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뒤에도 “내 잘못이다”라고 인정하기보다 자신을 정당화하기가 쉽다. 잘못을 저지르고 거짓말로 세상을 속여도, 스스로 정당화한 뒤에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면 죄책감 없이 발 뻗고 편히 잠들 수 있다. 이런 유혹은 생각보다 강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한두 번쯤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본질이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