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오락
허경태 지음 | 큰나무
고전오락
허경태 지음
큰나무 / 2015년 11월 / 288쪽 / 14,000원
제1장. 세상을 통찰하는 즐거움
염량세태(炎凉世態) | 뜨겁고 차가운 세태
국어사전을 보면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여 좇고, 권세가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의 인심”을 염량세태라 정의하고 있다. 한자대로 풀이하면 “뜨겁고 차가운 세태”로 쓸 수 있는데 세상을 살다 보면 남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남이 힘들어할 때 내가 도움을 주었지만 정작 내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는 외면을 당하는 경우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흔히 “갓끈 떨어지면 끝”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권세가 있고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영합하고 온갖 아첨을 하다가도, 권세가 떨어지거나 돈이 없어지면 순식간에 냉정하게 변하는 게 세상인심인 것이다. 이처럼 사람 마음이 순식간에 더웠다 식었다 해서 염량세태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염량세태와 관련된 고사 중에는 맹상군의 일화가 유명하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권력가인 맹상군은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린 사람이었다. 맹상군은 막강한 권력으로 세도를 부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선비나 기거할 곳 없는 지사, 재주 있는 자를 모두 받아들였다. 또한 신분에 개의치 않고 융숭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다. 제나라의 임금은 그의 위세가 날로 커져가는 것에 불안을 느껴 그의 자리를 빼앗고 나라 밖으로 추방해 버렸다. 그러자 그간의 대접을 받았던 식객들은 의리도 없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
나중에 제나라 임금이 잘못했다면서 맹상군을 다시 불러들여 복권시키자 떠나갔던 식객들이 다시 모여 들었다. 맹상군은 황당해서 ‘아니, 이자들이 무슨 염치로 다시 찾아오는 것이지?’ 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한 핵심 참모가 이렇게 말했다. “주군, 사람들이 아침이면 시장으로 모여들고 저녁이면 모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가는 것은 사람들이 특별히 아침 시장을 편애하고 저녁 시장을 유달리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저녁에는 필요한 물건이 다 팔리고 없는지라 떠나갈 뿐입니다. 주군이 권세를 잃자 떠나간 것이고 다시 되찾아 모여든 것뿐이니 이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속으로 원망은 되겠지만 저들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모두 주군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맹상군은 꾹 참고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속의 경박함, 염량세태는 최근에 와서 더욱 심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채근담》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육친 사이에는 정의가 두터워서 서로 사랑하고 동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도리어 질투와 시기가 남보다도 더 심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까닭이 없는 말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남보다는 친족 사이에 처신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평정한 기운과 냉철한 마음으로 이 같은 세상 인정에 대응해서, 심한 감정 대립을 피하고 모든 일에 원만하게 처세하여야 한다.” 이처럼 살아가면서 한때의 섭섭함으로 상처를 입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현명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종수곽탁타전(種樹郭?駝傳) | 나무 심는 법을 정치로 옮기면 백성을 기를 수 있다
《고문진보》는 명나라 때 민간에 많이 보급되었고 청나라 때 종적을 감췄다고 하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계속 많이 읽혔다고 전해진다. 중국의 좋은 시와 좋은 문장을 송나라 학자 황견이 엮은 책으로 전집에서는 명시를, 후집에서는 명문장을 담고 있는데 당송시대의 대문호들이 쓴 글이 많다. 그중에 당송팔대가 유종원의 《종수곽탁타전》은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곽탁타는 처음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곱사등이여서 혹이 솟아나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니 낙타와 비슷하였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타(駝)’라고 불렀는데,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참 좋다. 나에게 꼭 알맞은 이름이구나!” 하며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탁타(駝)’라 불렀다. 탁타는 나무 심는 것이 본업이니, 장안의 권세 높은 양반들과 부자들 중에 나무를 완성하거나, 과일을 사려는 사람은 모두 앞다투어 그를 맞아들여 돌보게 하였다. 탁타가 나무를 가꾸거나 혹은 옮겨 심으면 죽는 일이 없으며 언제나 잎이 무성하고, 다른 나무보다 일찍 열매를 맺고 또 많았다. 다른 사람이 가만히 엿보아 배워서 그대로 해 보곤 했지만, <탁타가 가꾸는 것과는> 같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으니, <탁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나무를 오래 살게 하고 잘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가 지닌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그의 본성을 다하도록 돌보아줄 뿐입니다.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는 바르게 뻗으려 하고, 북돋움은 고르길 바라고, 그 흙은 옛것이고 싶어 하고, 뿌리 사이를 꼭꼭 다져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다음에는 건드리지 않고 걱정하지 말며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내버려두어, 처음 심을 때는 자식과 같으나 심은 다음에는 아주 내버린 것처럼 하면, 나무의 본성이 온전히 보존되어 그 본성에 따라 잘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무의 성장을 해치지 않을 뿐이지, 나무를 크고 무성하게 하는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열매를 맺는 것을 억눌러 손상시키지 않을 뿐이지, 일찍 맺게 하고 많이 맺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략) 다만 그뿐이니, 내게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물었던 사람이 다시 물었다.
“그대의 나무 가꾸는 법을 <백성을> 다스리는 데 이용하면 좋지 않을까요?”
탁타가 대답하였다.
“나는 나무 가꾸는 법만 알 뿐이요, 다스리는 일은 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고향에 있으면서 번거롭게 명을 내리기를 좋아하는 수령을 보았습니다. 그는 백성을 가엽게 여겼으나 결과적으로는 화가 되었습니다….”물었던 사람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나무 가꾸는 법을 물었다가 사람 돌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후세에 전하여, 관리들이 지켜야 할 계칙으로 삼고자 합니다.”
위에서 보듯이 나무의 생장을 제대로 돕는 것은 타고난 나무의 본성을 그르치지 않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승의 역할도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타고난 재능을 제대로 끄집어내 북돋워주며, 학생들이 말에 오르기 쉽게 받치는 노둣돌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둔 부모도 매한가지다. 아이의 개성을 살려 자연스럽게 커 가도록 도와주면 될 일을 지나친 과잉보호로 학교생활에서나 또래의 문화에서 소외시켜 오히려 잘못되게 만드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 또한 다르지 않다. 자신을 다스리는 법이나 타인을 다스리는 법이 다르지 않듯이, 인간의 타고난 선한 본성을 북돋워 국민이 스스로 지도자를 따르도록 하는 정치를 하면 되는 것이다. 인위적인 힘에 의한 정치보다 세상의 이치로 교화하는 자연스런 인성에 의해 다스릴 때 국민을 위한 나라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물과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물은 누구의 말에도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흘러간다. 물과 같이 흐르는 인간의 심성을 빨리 귀담아들을 수 있어야 유능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정원사 곽탁타와 같이 국민의 본성을 다독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모든 사람들이 곽탁타 이야기를 통해 어떤 일에 대해 너무 조급해하거나, 지나치지 않는 지혜를 배운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윤택해질 것이다.
제2장. 지혜를 얻는 즐거움
미생지신(尾生之信) | 미생의 믿음
미생지신이란 말은 《사기》와 《장자》에 나오는 말로, 글자대로 풀이하면 ‘미생의 믿음’이란 뜻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약속을 굳게 지킴’을 비유하며, 또 하나는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한다. 똑같은 말을 두고 이렇듯 뜻을 달리하는 이유는 가치 기준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미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미생은 정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에 약속 장소로 나갔으나 웬일인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전국시대에 종횡가로 유명한 소진은 연나라 소왕에게 설파할 때 신의 있는 사나이의 본보기로 미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같은 전국시대를 살다 간 장자의 견해는 그와 반대로 부정적이었다. 장자는 유명한 도둑 도척의 입을 통해 미생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인간은 책형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간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명목에 구애되어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자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 나름대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미생의 고사를 두고서도 견해가 분분할 것이다. 어떤 이는 소진의 말에 동의할 것이고, 어떤 이는 장자의 말에 수긍할 것이다. 우리의 삶도 미생지신의 고사와 같이 어느 한쪽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만일 누가 나에게 “소진과 장자의 말 중에서 어느 쪽을 따를 것인가?” 하고 질문한다면 나는 소진의 말을 따를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신의를 지키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믿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고사 중에 《한비자》에 나오는 ‘증자의 자녀 교육’일화가 있다. 하루 세 가지를 반성한다는 증자는 늘 믿음을 지켰는지 되돌아봤다. 하루는 증자의 아내가 시장을 가는데 아이가 울면서 따라오자 무심코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내가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주마.”라고 말했다.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와 보니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내가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뿐인데 정말 돼지를 잡으면 어떻게 해요?”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증자는 “거짓말로 어린아이를 속이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속임수를 가르치는 것이요. 어머니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어머니를 믿지 않을 것이요.”라며 기어코 돼지를 잡아서 삶았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과 만나면 “약속은 깨기 위해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약속은 서로의 신뢰에서 나오는 소중한 것이다. 부귀와 입신출세, 눈앞에 보이는 사소한 이익을 위해서 국민들과 한 약속도 순간순간 말 바꾸기 하는 소인배들이 들끓는 요즘 세태에도 미생과 증자와 같이 믿음과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 믿음으로 인해 세상이 유지되고,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줄 사람이 많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비읍불우(悲泣不遇) | 출세할 기회를 얻지 못해 슬피 운다
인간이 자신의 시대적 상황을 벗어날 수 없듯이 학문 또한 그 시대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 후한시대에 살았던 사상가 왕충이 쓴 《논형》에 비읍불우의 고사가 나온다. 비읍불우란 “제도가 여러 번 바뀌는 통에 평생 동안 출세할 기회를 얻지 못해 슬피 운다”는 뜻이다.
한 헐벗은 노인이 길가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있었다. 길을 가던 나그네가 그에게 물었다.
“노인은 왜 그렇게 슬피 울고 계시나요?”
“내 신세가 너무나도 한심해서 그런다오. 백발이 되도록 한 번도 출세할 기회를 만나지 못해….”“한 번도 기회를 못 만났단 말입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젊었을 적에는 글을 배웠소. 공부를 마치고 과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나이 든 사람이 존중을 받았지요. 젊은 사람은 아무리 학식이 있어도 무시했기 때문에 쓰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 뒤 나이 든 사람을 존중하던 임금이 죽고 새로 임금이 들어섰는데, 그는 무예를 숭상했소. 그래서 나는 글을 버리고 무예를 배웠지요. 무예를 익혀서 막 벼슬길로 나가려는데 이번에는 무예를 숭상하는 임금이 죽고 젊은 임금이 들어섰지요. 그 젊은 임금은 자기처럼 젊은 사람을 중용했소. 젊었을 때는 나이 든 사람을 중용했기 때문에 출세를 못하고, 학문을 익혔을 때는 무예를 숭상했기 때문에 출세를 못하고, 늙어서는 젊은이를 중용했기 때문에 출세를 못한 겁니다.”
이 고사는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중대한 교훈을 준다. 세상에 나를 맞추면서 산다면 불우한 생애를 보낸 이 노인처럼 후회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반대로 시류에 잘 대처하여 나름대로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펙을 쌓고 학벌을 쌓는 시대의 조류를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노하우와 실력을 쌓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고유의 능력이 있다. 미인은 생김새가 다르나 모두 자기만의 아름다움이 있고, 작가나 음악가도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기에 나름의 마니아들이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학문하는 것이 나이가 들어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농사를 짓는 것도 때가 있듯이 공부도 마찬가지다. 세상 모든 일에는 해야 할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친다면 후회할 수밖에 없다. 물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결과나 그로 인한 순간의 고통이나 슬픔은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신을 다독이며, 자신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라. 그러다 보면 새 길이 보이게 될 것이다. 시대의 조류에 따를 것인가,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것인가. 이는 순전히 각자의 몫이다.
제3장. 고통을 극복하는 즐거움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
‘마부작침’이란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참고 계속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룰 수 있음을 말한다. 끈기 있게 학문이나 일에 힘씀의 비유로 쓰이는 이 고사는 이태백이 겪은 일에서 유래되었다.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당나라 시인 이백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임지인 촉 땅의 성도에서 자랐다. 그때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에 들어가 수학을 했는데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자 그는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집을 향해 걷고 있던 이백이 계곡이 흐르는 냇가에 이르렀을 때,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백이 할머니에게 물었다.“할머니,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다.”
“그렇게 큰 도끼가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말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이백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여기서 생각을 바꾼 그는 노파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그 후 이백은 마음이 해이해지면 바늘을 만들려고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던 그 노파의 모습을 떠올리며 분발했다고 한다.
성공한 자와 성공하지 못한 자의 차이는 재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끈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옙스키는 나이 여든에 《아라비안나이트》를 원문으로 읽기 위해 아랍어를 공부해서 읽었다고 한다. 사람의 몸은 나이가 들수록 자연현상에 따라 점차 쇠약해지지만, 지식은 쌓을수록 정신에 싱싱함을 더한다. 몸은 나이를 먹지만 정신은 절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문 연마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들었다. 이제는 그 길을 찾고,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착벽투광(鑿壁偸光) | 벽을 뚫어 불빛을 훔치다
중국 전한 때 재상을 지낸 유학자 광형은 본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는 가난한 탓에 낮에 일해서 모은 한 푼, 두 푼의 돈으로 책을 사서 밤늦게까지 읽었다. 그런데 등불을 켤 기름이 없었다. 생각 끝에 이웃집 벽에 몰래 작은 구멍을 뚫어 새어 들어오는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었다. 한편 그 동네에는 글자를 하나도 모르면서 책만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가 있었다. 광형은 짐을 꾸려 그 집에 머슴으로 들어갔다. 날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한밤중까지 일했지만 전혀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주인이 무얼 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당신 집 안에 있는 책을 읽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주인은 매우 감탄하여 책을 빌려주었다. 광형은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어 나중에 한나라 원제의 재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