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농반X의 삶
시오미 나오키 지음 | 더숲
반농반X의 삶
시오미 나오키 지음
더숲 / 2015년 11월 / 254쪽 / 14,000원
제1장 풍요로운 삶의 터전, 시골로 가자!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분 좋은 삶 - 반농반X의 진수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살 수 있는 사회, 과연 가능할까
‘작은 생활’과 ‘보람찬 사명’ - 이것이 반농반X다: 반(半)은 자급적인 농업에 종사하고 나머지 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는 삶. 이것이 내가 주장하는 반농반(半農半)X다. 이는 쌀과 채소 등 주요 농작물을 직접 길러 안전한 식재료를 확보하는 한편, 자신의 개성을 살린 자영업에 종사함으로써 일정한 생활비를 벌어들이는 균형 잡힌 삶을 말한다. 돈과 시간에 쫓기지 않고 다시금 사람답게 살려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소위 친환경적 농경을 기반으로 천직과 보람을 추구하는 삶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이 ‘천직’과 ‘보람’이라는 말에 사회적 의미까지 포함시켰다. 다시 말해 반농반X는 ‘하늘의 뜻에 따르는 지속가능한 작은 생활(소규모 농업)’의 기반 위에서 ‘타고난 재주(X)’를 세상에 활용하여 사회적 사명을 실천하고 전파하며 완수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작은 생활이란, 손바닥만 한 시민 농장, 주말 농장, 또는 베란다 텃밭이라도 좋으니 그것으로 식량을 자급하는 단순한 생활을 말한다. 그리고 X는 사명으로, 자신의 개성, 특기, 장점, 소임을 살려 사회에 공헌하는 직업을 말한다. 즉 좋아하는 일,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사회에 도움을 주고 돈도 벌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교토 시내에 살다가 1999년에 고향인 교토 부 아야베 시로 돌아왔고, 아내, 딸, 아버지와 함께 가족이 먹을 농작물을 자급하며, 나 자신의 X 그리고 반농반X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이다. 현재 나의 X는 개인과 기초자치단체의 X를 지원하는 ‘미션 후원’이다. 인구가 줄어들어 점차 고령화되는 아야베 시에 활기를 더하고, 이곳을 사람들에게 매력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도 나의 X 중 하나다.
제2장 작은 생활, 큰 꿈 - 전원생활의 즐거움
: 물욕을 줄이고 건강에 힘쓰며 가정을 회복한다 - 반농의 의미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반농이 꼭 필요한 이유
먹고산다는 것에 대하여: 식생활의 관점에서, 환경 문제의 관점에서, 자연과의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자연 속에서 하고 싶어서 등등 반농반X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작가 겸 번역가 호시카와 준 씨는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다. 만약 내가 1995년에 호시카와 씨가 자신의 삶을 ‘반농반저(著)’(친환경적 생활을 기반으로 저술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삶의 방식)라고 표현한 것을 『에콜로지란 무엇인가』에서 보지 못했다면, 지금의 반농반X 사상은 없었을 것이다.
호시카와 씨는 야쿠시마에 이주하면서 2,400여 평이나 되는 감귤밭을 관리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영리 농업을 시작했다. 동시에 자급용 쌀과 채소도 재배했다. 처음부터 영리 농업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감귤밭을 넘겨주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영리 농업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내 감귤밭 관리와 유지의 어려움, 농업을 지탱할 체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는데, 그는 반농에 관한 저서 『지구 생활』에서 그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규모가 식량을 자급할 정도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영리를 고려한 규모라면 상당히 무리가 따를 것이다. 지구에 농약이라는 독을 퍼뜨리는 짓은 절대 안 하겠다는 결심은 가까스로 지켰으나 결국은 기계의 힘을 빌리게 되었고, 대출금의 압박, 정신없는 생활은 더더욱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반농을 추천한다. 백 가지 작물을 재배하는 ‘백성’이 되거나 농업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전업 농부가 될 필요는 없다. 하루 여덟 시간을 일한다면 그 절반은 자신의 먹을 것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재배하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은 무언가 수입이 되는 일에 할애하면 된다. 내 경우에는 그런 삶을 ‘반농반저’로 표현할 수 있다. 또 그 시간을 엄격히 5 대 5로 나누기보다 4 대 4 정도로 나누고, 나머지 2는 마음껏 놀거나 자연을 가까이하는 데 쓰면 좋을 것이다. 그런 어중간한 방식으로 먹고살 수 있겠느냐고 질책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야쿠시마에 온 뒤 십수 년 간, 하루 네 시간 일해서 번 수입으로 세 가족을 충분히 먹여 살려 왔다.”
벼의 상황에 맞출까, 사람의 상황에 맞출까: 나는 1996년 봄, 집을 아야베의 본가로 옮기고 교토 시의 회사로 출퇴근하며 자급 농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9년에 아예 자급 농업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땅 900평 중 600평에서는 벼농사를 하고, 겐탄 정책(일본 정부가 쌀값 유지를 위해 실시한 생산량 조절 정책)으로 벼농사를 못하게 된 300평은 밭으로 만들어 고구마와 콩(누에콩, 대두, 검은콩)을 심었다. 단, 육아 시간을 고려하여 애시 당초보다 규모를 약간 축소한 상태에서 쌀과 주요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내기 시기도 빨라지는 추세라서 회사 근무를 병행하는 농가의 경우 공휴일이 많은 5월 연휴에 모내기가 거의 끝나 버린다. 즉 벼의 상황이 아니라 사람의 상황에 맞춰 농사를 짓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들 수확량과 효율을 우선하여 논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논에 오래 머문다. 또 우리 집은 옛날만큼은 아니어도 주변보다는 늦게 모내기를 한다. 벼농사는 벼의 상황에 맞춰야 한다는 조상의 가르침에 따라, 되도록 절기에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뺄셈의 생활 - 반농의 원칙
생활 수입이 적어도 마음의 수입은 넉넉하다: 전원에서 반농 생활을 하려면 ‘생활 수입은 적게, 마음의 수입은 넉넉하게’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 예로, 여기 아야베에서는 성인 한 사람이 한 달에 10만 엔만 있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 생활이 축소되면 힘들 것 같겠지만, X가 있어서 마음은 항상 넉넉하다. 그 진정한 기쁨은 생활 규모가 축소되는 아쉬움을 충분히 덮고도 남는다. 특히 우리 집은 큰 길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우리 가족은 쇼핑을 자주 가지 않는다. 쇼핑 횟수가 줄어들면 지출액과 쓰레기 발생량도 줄어든다. 게다가 휘발유 사용량도 줄어들어 공기 오염이 방지된다. 만들어 쓰기, 이웃 사람들과 나누어 쓰기, 물물교환을 통해 자연스럽게 절약도 하게 된다. 그 효과는 참으로 크다. 지구 환경까지 보호되니 말이다.
필요한 것만 채운다 - 쇼핑의 판단 기준: 회사를 다니고 있던 1990년 즈음, 집에 물건이 없는 것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생활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새삼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쓸데없는 물건이 너무 많았다. 그때 마침 『덧셈의 시대, 뺄셈의 사상』을 읽게 되어 ‘뺄셈의 생활’을 강하게 의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편리함, 쾌적함을 추구한 결과 인간은 과연 행복해졌는가?’ 물론 우리가 추구한 편리함은 인간의 행복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문제들을 초래했다. 자원 낭비, 환경 문제, 식량 부족, 인간성 상실 등등. 세계적 문제인 빈부 격차, 과도한 교육열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편리성과 효율을 추구하려는 욕심이 낳은 결과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면 과연 편리함만 추구하며 살아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피어오른다.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낭비를 철저히 막고 소위 불편한 생활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또 원리주의자처럼 한 가지 가치관을 고집할 생각도 없다. 일례로 우리 집의 소비 생활은 ‘즐겁고, 필요한 것만 채우면 된다’는 원칙을 따른다. 즉, 만족을 알라는 것이다.
뺄셈의 생활에는 큰 더하기가 있다
가족은 베이스캠프 같은 것: 우리 집은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여섯 살인 딸도 주말에 만화를 보는 정도다. 저녁 식사를 여섯 시(빠를 때는 다섯 시 반)에 하고 여덟 시면 잠자리에 드니 볼 시간도 거의 없다. 딸은 TV 시청보다는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종종 아이와 함께 바닥에 누워 그림책을 읽는다. 나는 아이와 함께 잠들었다가 새벽 세 시에 일어난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는 여섯 시 반까지가 나만의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나는 주로 독서와 사색, 글쓰기, 이메일과 편지에 답장하는 일을 한다. 나는 이 시간을 ‘천사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나의 X를 찾으려면 이런 고독한 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아내도 마찬가지며, 아내는 나와 딸이 잠든 후 열한 시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한편 딸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우리는 대망의 야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 활동은 전원생활과는 다른 자극이 많아서 꽤나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역시나 집 밖에서 잠을 자는 캠핑이다. 처음으로 가족 캠핑을 갔을 때가 생각난다. 잠자리에 막 들려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텐트에 부딪혀 툭, 툭 소리를 냈고 멀리서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하늘에서 빗방울과 함께 ‘가족이란 베이스캠프와도 같다’는 생각이 뚝 떨어졌다. 가족들은 아마 각자 다른 산을 향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베이스캠프에 모여 서로 돕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서로의 목표를 응원할 것이다. 내가 첫 캠핑에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을 가족들은 모른다. 하지만 그 후로 캠핑을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소중한 생명을 중시하는 식생활
화로 요리의 결정판 - 아내와 딸의 X: 2002년 여름, 유치원 방학을 맞아 아내와 딸은 가게 놀이를 시작했다. 아내가 “무슨 가게를 할까?”라고 묻자 딸의 눈이 빛난다. 둘이서 가게 이름을 정해서 달력 종이 뒤에 간판을 그린다. 그리고 정원에 화로를 가져와 숯불을 피운다. 거기에 간장을 잔뜩 찍은 주먹밥을 굽기 시작한다. 구수한 냄새가 바람에 떠다니며 이웃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기다리던 주먹밥집이 드디어 문을 연 것이다. 아내와 딸은 손수 만든 대나무 꼬치에 빵 반죽을 꿰어 숯불에 구워 파는 빵집과 꼬치경단 가게도 열었다. 창업 의욕이 넘치는 딸은 나중에 도넛 가게를 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그림일기에 쓸거리가 넘치는 방학을 보냈다. 요즘 아내의 관심사는 화로로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것이다. 아내는 화로의 매력을 철저히 활용해 보고 싶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화로에 구운 꽁치는 정말 맛있다.
농사는 인간 교육의 장이다!
가족은 어떤 역할을 할까: 옛날 시골에서는 어린아이도 귀중한 노동력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자신이 가족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고, 가족애는 그렇게 자라났다. 한편 옛날 부모들은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다양한 임무를 부여했다. 예를 들면 닭을 돌보는 일이 있다. 부모는 무리 중 약한 놈에게 모이 먹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닭을 밖에 풀어 놓았다가 닭장에 넣을 때는 대장 격인 놈을 먼저 몰아넣어야 한다는 요령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아이는 이런 가르침을 나름대로 궁리해 가며 체득한다. 아이의 지혜는 이런 생생한 체험을 통해 자라는 것이다. 가족애, 가족의 협동으로 식량을 자급하고 생명을 이어 나간다. 이것이야말로 생명을 기반으로 한 생활인 것이다.
제3장 꼭 찾아내자! ‘나’라는 매력 넘치는 원석
: 좋아하는 일과 쓸모 있는 일의 조화 - 반X의 방향성
없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있는 것 찾아내기로
70세의 나이에 농가 민박을 시작하다 - 행복한 일 1: 타인의 X를 지원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나의 권유에 따라, 넓은 집에 혼자 살던 시바하라 기누에 씨는 농가 민박 운영이라는 커다란 X를 실천하게 되었다. 시바하라 씨는 현재 70세이며, 민박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된 지금도 사토야마네트 아야베의 홈페이지에는 그녀의 민박 이야기를 입소문으로 듣고 신청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시바하라 씨는 자신의 민박집에 ‘지금 그대로’라는 간판을 써 달았다. 이 명칭에는 ‘당신의 있는 그대로가 좋으니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라’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민박집 ‘지금 그대로’는 아야베의 북동단 산골짜기의 이이즈미 마을에 있다. 이곳에는 반딧불이는 물론, 도롱뇽까지 있다. 게다가 지명이 이이즈미(五泉)가 되었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물이 솟아난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밥을 먹으며 시바하라 씨와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의 생활, 자연과의 공생, 환경 문제에 대한 이야기, 심지어는 인생 상담으로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시바하라 씨와 더 이야기하고 싶어 다시 방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토야마네트 아야베에서 아야베의 시 승격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야베의 마음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수필을 모집한 적이 있다. 그때 시바하라 씨도 응모했는데, 나와의 인연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인상적인 글을 쓴 시바하라 씨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에 내가 집으로 찾아갔다. “이 넓은 집에 혼자 사니, 도시 사람들이 놀러 오면 좋을 텐데”라고 시바하라 씨가 무심코 흘린 말에 내가 농가 민박을 권했다. 그래서 아야베의 첫 상설 농가 민박이 탄생하게 되었다.
시바하라 씨는 넓고 낡은 집, 시골의 자연환경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교적 성격 등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하여 도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즉 새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자원을 X로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보람을 창출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바하라 씨의 삶이야말로 고령사회에서도 행복감, 충족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반농반X의 표본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지 않을까? 상설 농가 민박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그리고 내 X는 아야베에 그런 곳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인생을 차분하게 돌아보거나 점검할 기회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고 싶다.
제4장 하고 싶은 일인가, 해야 할 일인가? -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자
오키나와로의 대거 이주 현상이 시사하는 점
발리 섬에서 이상적인 생활 방식을 발견하다: 나는 1995년에 호시카와 준 씨의 책 『에콜로지란 무엇인가』에서 반농반저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이는 농사짓는 생활, 즉 친환경적 생활을 기반으로 하면서 사회에 글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호시카와 씨에게는 집필, 번역이라는 재주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이렇게 느낀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자신의 X를 찾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반농반저의 ‘저’를 빼고 X를 넣어 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난제로 고민하는 인류 전체가 활용할 수 있는 데다, 21세기의 삶에 꼭 필요한 공식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속가능한 생활을 가능케 하는 작은 농업 그리고 타고난 재주를 활용하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X. 우리가 만들어 낸 다양한 난제를 해결하려면 이 둘이 동시에 필요했던 것이다. 그 이후 발견한 것이 ‘발리 섬 모델’이다. 이는 뉴욕이라는 극도로 문명화된 곳에 살며 과학, 인간, 자연의 공생을 추구했던 작가 미야우치 가쓰스케 씨와 시인 야마오 신세이 씨의 대담집 『우리의 지혜가 다하기까지』에 등장하는 사회 모델로, 내 반농반X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발리 섬의 사회 형태에 푹 빠져 있다. 발리 섬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물 댄 논에서 일하고 더운 낮에는 쉬었다가 저녁이 되면 예술가로 변신한다. 그리고 매일 밤 마을의 집회 장소에 모여 음악과 춤을 연습하거나 그림과 조각에 영혼을 싣는다. 또 열흘에 한 번은 축제가 열리므로 거기서 각자의 재주를 펼치다가 다 함께 집단 최면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똑같이 논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예술가가 되었다가 다시 열흘 후에는 집단 최면에 빠진다. 마을 사람 모두가 농민이고 예술가이며 신의 사제인 것이다. 이들 모두가 ‘완전한 실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 발리 섬 모델을 인류 사회의 모델로 삼을 수는 없을까? 과거로 돌아가기보다 이 섬의 모델을 미래 사회와 연계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