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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행 50일 인생

홍윤오 지음 | 나눔사



50년 여행 50일 인생

홍윤오 지음

나눔사 / 2015년 8월 / 352쪽 / 15,000원





쿠바



근사한 쿠바산(産) 커피를 공짜나 다름없이

쿠바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미국 달러와 맞먹는 비싼 CUC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내국인들은 CUC에 비해 24분의 1밖에 안 되는 싼 쿠바 페소(MN, 과거 중국의 인민폐와 비슷한 개념)를 사용한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파는 핫도그나 커피 같은 것을 사 먹을 때는 외국인들도 쿠바 페소를 사용할 수 있다. 1페소로 근사한 쿠바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아바나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코펠리아(Coppelia)에서도 두 종류의 화폐가 다 통용된다. 현지인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면 쿠바 페소로 엄청 싼 가격에 큼지막한 아이스크림과 롤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 줄을 서기가 싫다면? 외국인용 좌석으로 가서 비싼 가격의 CUC로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된다.

만식은 당연히 현지인들과 함께 줄 서는 쪽을 택했다. 계산해보니 미국 달러로 10센트도 채 안 되는 가격에 아이스크림을 배불리 먹은 셈이었다. 이런 면에서는 ‘인민의 낙원’임에 틀림없다. 아이스크림이나 길거리 커피를 마실 때만 그렇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지만.

또 한 가지 불편한 점은 통신이 아예 안 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통신기능이 완전히 먹통이라 쿠바에 있는 동안은 마치 유배지에 있는 것과 같았다. 전화나 인터넷이 되지 않으니 바깥세상과 연락이 모두 두절된 것이나 다름없다(미국과 국교 재개를 즈음해 아바나 시내에서도 공공 인터넷이 가능해졌다). 나중에 콜롬비아 보고타 공항에 와서야 비로소 문명세계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남미의 다른 나라에도 있지만 쿠바의 카사(CASA)는 좀 특별했다. 카사는 원래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이다. 쿠바 당국이 비교적 괜찮은 집들을 골라 외국 여행객들에게 숙소로 제공해 영업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국가에서 지정한 민박집이다. 쿠바에서는 값비싼 호텔보다 이런 카사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편리하고 저렴하다.

쿠바에서는 어디를 가나 카사들이 있다. 운이 좋으면 저렴한 비용으로 깨끗하고 넓은 카사에서 지낼 수 있다. 만식도 쿠바에 온 첫날은 미리 예약한 호텔을 이용했지만 다음 날부터는 카사에서 묵었다. 사탕수수 농장과 식민시대 저택들, 양꼰 해변이 있는 트리니다드와 체 게바라가 혁명전투에서 승리한 도시 산타클라라를 방문했을 때도 카사를 이용했다. 나머지 아바나에서의 3일도 마찬가지였다.

쿠바에서는 MSG 즉, 화학조미료를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모든 재료가 유기농인 셈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그 편이 더 나았다. 카사에서는 주인아주머니의 강력한 추천에 따라 바닷가재(lagosta)를 두 번이나 먹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3분의 1도 안 되는 싼 가격이었다.

트리니다드 카사에서는 주인인 로미오가 ‘땅고’, 즉 탱고 레슨을 해주기도 했다. 로미오는 밤에 근처의 탱고 클럽에 가자고 유혹을 했다. 원래 쿠바에서 탱고를 배우면 선생님을 모시고 클럽에도 함께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게다가 예쁜 여자들도 많이 온다는 게 아닌가. 은근히 압력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몸도 피곤했다. 잠이 모자랐고 다음 날도 이른 시간부터 움직여야 한다. 게다가 그 탱고 클럽은 만식이 낮에 슬쩍 보았던 곳인데, 대부분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뿐이었다. 로미오가 말하는 예쁜 여자들이 그 할머니들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자 로미오도 더 이상 강요하지는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쿠바산 크리스탈 맥주를 대접하는 것으로 그날 레슨을 마무리했다.

여행자가 되면 좋은 것 중 하나가

현지의 관습과 문화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눈치를 보아야 하고 남을 의식해야 할 일이 많다.

자기 인생을 사는 건지 타인을 위해 사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 없이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에콰도르



적도공화국(Republic of Ecuador), 에콰도르

쿠바 아바나를 떠나 비행기는 콜롬비아 보고타 공항에 안착했다. 만식은 에콰도르 키토행 항공기로 갈아타기 위해 여기서 몇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역시 처음 가보는 나라, 콜롬비아. 지식이 거의 없었다. 마약, 반군, 강도 등 좋지 않은 이미지들이 많았다. 미국 위주의 외신이나 영화 같은 것들을 통해서만 이 나라를 접해온 탓이기도 하리라.

하지만 보고타 공항의 첫인상은 꽤 좋았다. 우선 스마트폰의 통신신호가 잡히고, 와이파이까지 무료였다. 통신이 먹통이던 쿠바에 있다가 오니까 비로소 문명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면세점들이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오가는 사람들도 상당히 여유가 있어 보인다. 만식은 그동안 확인할 수 없었던 문자와 메일들을 점검하고 약간의 요기를 한 후 키토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저가 항공인 데다 구간이 짧았음에도 커피와 음료까지 나왔다.

만식에게 에콰도르는 쿠바만큼이나 생소한 나라였다. 만식은 커피를 마시며 준비해온 에콰도르 자료를 살펴보았다. 에콰도르는 한마디로 ‘적도의 나라’이다. 적도선이 지나가고 그 표식점이 있는 나라로 유명하다. 영어로 적도가 ‘equator’이고 국가명이 ‘republic of Ecuador’이니 나라 이름 자체가 적도공화국이다. 최대 항구도시인 과야킬이 있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갈라파고스제도가 있다. 면적은 한반도(약 22만km²)보다 조금 넓은 28만km²이다. 원래 좀 더 컸는데 페루와 국경분쟁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국토의 40%쯤 되는 아마존 유역을 페루에 넘겼다.

수도는 키토, 해발 2,850m나 되는 고원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한 시기, 한 도시에 4계절이 모두 있다. 아침, 낮, 저녁과 밤 날씨가 각각 4계절이 뚜렷한 나라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날씨와 비슷하다. 인구는 메스티조와 인디오가 대부분(80%)을 차지하고 있다. 15세기 후반 쿠스코를 수도로 둔 잉카제국의 침략을 받아 복속된 후 잉카 제국이 키토와 쿠스코로 분리되었을 때 다시 각각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세기 초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 에콰도르 공화국을 선포했고, 콜롬비아 연방(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에 통합되었다가 탈퇴해 지금의 에콰도르가 되었다.

미타드 델 문도, 적도선

만식은 키토 시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를 더 달려 적도탑과 적도선을 찾았다. 적도탑은 ‘미타드 델 문도(Mitad del Mundo,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라고 한다. 독일 출신의 지리학자 훔볼트가 19세기에 측정해서 확정시킨 적도선이 지나가는 곳이다. ‘미타드 델 문도’에는 위에 둥그런 공 모양의 돌이 얹혀 있는 오벨리스크 형태의 탑이 있다. 네 군데의 옆면에는 동서남북이 각각 표시되어 있다.

인공위성으로 정확하게 측정한 지리적, 수리적 적도선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티 난(Inti Nan, ‘태양의 길’이라는 뜻)’이란 곳이다. 만식이 놀란 것은 훔볼트도 잘못 측정했던 적도선을 인디오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짜 적도선이 지나는 인티 난은 일종의 민속촌처럼 꾸며 놓았다. 만식은 이곳에서 적도에서만 나타난다는 현상들을 경험했다.

안내인이 통에 물을 채웠다. 물 위에 나뭇잎을 띄워 놓고 통 아래쪽 마개를 뽑으니 나뭇잎들이 전혀 회전하지 않고 그대로 쑥 빨려 내려갔다. 그런데 불과 4~5미터 정도 남쪽, 북쪽으로 옮겨 실험을 하자 나뭇잎이 각각 시계방향,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빨려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적도선 한쪽에는 못이 박혀 있었다. 만식이 안내인의 설명에 따라 못대가리 위에 계란을 세웠더니 똑바로 섰다. 눈을 가리고 적도선을 걸어보니 똑바로 걸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적도선 위에 서서 손가락에 힘을 주었는데 이상하게 힘을 쓸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과학시간에 배운 것들이긴 하지만 그런 현상들을 직접 경험해보니 또 다르다. 세상살이도 그렇다. 아는 것과 겪는 것은 분명 다르지 않은가.

적도에는 작은 투우장과 성당도 있었다. 성당 바닥 한가운데로 적도선이 지나갔다. 한쪽은 남반구, 다른 한쪽은 북반구에서 미사를 보는 셈이다. 만식은 고국에서 만났던 산 성당의 풍경을 떠올렸다. 전북 익산의 금강 가에는 ‘나바위성당’이라 불리는 선교 초기에 지어진 오래된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당시 풍속에 따라 가운데 칸을 막아 남녀 좌석을 분리하고 출입문도 따로 내었는데, 이는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선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남(南)이든 북(北)이든, 남(男)이든 여(女)든 그것을 가르는 것은 한낱 선일 뿐인데. 00°00′00″의 적도선처럼.

1980년대 <적도의 꽃>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주인공 미스터 M은 다섯 번째로 근무하던 회사에 사표를 낸다. 그리고 그는 더는 취업하지 않고, 아버지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생활한다. M은 어느 날, 건너편 아파트에 이사 온 아름다운 여인 선영을 알게 된다. 선영에게 반한 그는 밤마다 몰래 그녀의 아파트를 망원경으로 훔쳐본다.

만식이 새삼 그 영화를 떠올린 것은 어떤 연상 때문이었다고 할까. 미스터 M의 처지에 대한 단순 유사성도 그렇지만 지금 만식이 적도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그랬을 터였다. 예기치 않게 나락이라면 나락일 현실에 내몰려 불현듯 떠나온 길, 그 길의 한가운데서 만난 적도! 이 특별한 공간에서 체험한 어떤 신기로운 현상보다 ‘적도’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과연 00°00′00″의 선상에서 새로운 출발을 꿈꾸어볼 수 있을까.



페루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잉카의 수도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110km, 해발 2,400m에 위치한 공중도시.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 잉카 제국 도시 중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곳이 바로 마추픽추이다. 아구아스칼리엔테스에는 잉카의 젖줄인 우르밤바 강이 힘차게 흐르고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기찻길 양쪽으로는 작은 호텔과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은 마추픽추를 보러 온 전 세계 관광객들로 붐비는 다국적 마을이다.

만식은 아구아스칼리엔테스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마추픽추가 있는 산 정상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봉우리 너머로 사람이 사는 도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과연 ‘공중도시’, ‘잃어버린 도시’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정복자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만식은 서둘러 산 정상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낮 1시가 넘으면 그날 입장은 더 이상 허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차역 부근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한 버스는 뱀처럼 구불구불 급경사로 이어진 산길을 올라간 지 30여 분 만에 드디어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했다. 문을 통과해 100여 미터를 걸었을까. 모퉁이를 돌아서자 돌연 신비로운 광경이 나타났다. 계단식 밭들과 정교한 석재 유적들. 만식이 그동안 동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마추픽추가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다. 유적지 뒤쪽으로는 와이나픽추의 높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사이 만식에게 동행이 생겼다. 조금 전 버스에서 만났던 페루 현지인 알베르토다. 직업은 전기 기사. 그는 리마에서 쿠스코로 전기 수리를 위해 출장 왔다가 짬을 내서 마추픽추 관광을 하는 중이었다. 그 역시 혼자였기에 자연스럽게 만식과 일행이 되었다. 둘은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었다. “페루 사람들에게도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직접 구경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마침 쿠스코로 출장을 온 김에 일을 빨리 끝내고 이렇게 멋진 나 홀로 여행을 하는 거예요.” 자신을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알베르토의 얼굴에는 행복감이 엿보였다.

입구를 통과해 왼쪽 계단을 오르자 지붕이 있는 작은 집터가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당시 망지기의 집이다. 만식은 그곳을 통과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천문관측소, 농경지역, 신전 등 유적지들을 두루 구경했다. 특히 일부 석재 유적지들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정밀하게 석재를 다듬어 쌓아놓았다. 이음새마다 약간의 틈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고도의 손재주와 지극정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종의 미술작품처럼 보였다.

도시 곳곳으로는 수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콘도르가 날개를 펼친 모양의 제단 같은 곳도 있다. 계단식 밭 사이사이로는 야마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야마는 낙타과의 포유류로 원주민들의 의식주를 돕는 만능 가축이다. 북반구 히말라야의 야크나 사막의 낙타 같은 존재다.

이곳은 스페인이 정복한 이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잃어버린 도시’가 되었다. 그러다가 1911년 미국인 역사학자인 하이램 빙엄(Hiram Bingham)이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 알베르토가 현지 안내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만식에게 전해주었다. “왜 이렇게 높은 곳에 도시를 만들었는지, 모두 확실하지 않다고 해요. 아마도 하늘을 관찰하고 농경과 관련된 절기를 파악하는 한편 적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란 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미로 같은 유적지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동안 멀리 산 위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반나절이 흘러 막차만 남았다. 만식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알베르토와 함께 하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언제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식이 20년 전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을 처음 갔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내 평생에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러나 그 후로 만식은 희망봉에 두 번을 더 갔다. 머나먼 지구 저편일지라도 인연이 닿는다면 몇 번이고 더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꼭 한 번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다시는 못 갈 줄 알았는데 또 가게 되는 곳이 있다.

우연한 방문에 뜻밖의 감동을 받는 곳도 있다.

다시 가고 싶지만 한 번 간 그것이 마지막인 곳도 있다.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소와도 있다.





아르헨티나



나이아가라를 초라하게 만든 푸에르토 이구아수

만식이 푸에르토 이구아수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일정상 단 하루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발할 때는 항공편을 이용하고, 당일 저녁 장거리 버스를 타고 되돌아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당 아르헨티나 국적 항공사가 만식이 예약했던 이른 새벽 항공편을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렸다. 승객 수가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황당했지만 남미 지역에서는 흔히 겪는 일이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4시간이나 늦게 출발하게 되었고, 되돌아오는 일정도 다음 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으로 수정해야 했다. 그나마 완전히 취소된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래도 항공사의 일방적인 횡포를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한참을 적극적으로 항의한 끝에 앞쪽의 넓은 좌석으로 업그레이드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는 수밖에.

만식은 푸에르토 이구아수를 가는 동안 팜파스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이구아수 폭포에 관한 자료를 뒤적거렸다. 원주민인 과라니족 말로, ‘이구(Igu)’는 물이라는 뜻이고, ‘아수(Asu)’는 크고 웅장한 것에 대한 경탄, 놀람, 공포를 나타낸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구아수’라고 하면 ‘와! 물이다’ 뭐 이런 뜻쯤 되는 것인데 참 멋진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이보다 더 간결하고 적절한 이름이 있을 수 있을까.

이구아수 하면 흔히 나이아가라 폭포와 비교를 한다. 루즈벨트 전 미국대통령 부인 일리노어 루즈벨트 여사가 이곳을 방문하고 자기도 모르게 “오, 불쌍한 나이아가라!(Oh, poor Niagara!)”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 한마디로 이구아수 폭포의 웅장함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보다 넓고, 북미대륙의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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