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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의 정치 썰전

이철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이철희의 정치 썰전



이철희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5년 11월 / 308쪽 / 15,000원





제1장 왜 정치는 우리 삶을 바꾸지 못하는가?



세월호 참사가 한국 정치에 묻는다



유ㆍ무능의 프레임으로 보면 한국 정치는 낙제점이다: 명(名)은 좋으나 실(實)이 없는 말 중에 하나가 진정성이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갖는지를 따지는 게 진정성이다. 그런데 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진정성은 단언컨대 허망한 담론이다. 일종의 가식적 현학이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본질을 가리면서 엉뚱한 데 초점을 맞추도록 하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종일관 매달린 게 바로 4대강 사업이다. 그의 진의가 문자 그대로 4대강을 살리는 것이었다면, 그 사업이 낳은 폐해를 용서할 수 있나? 다른 예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FTA에 대한 찬반을 그의 진정성으로 판단해도 되나? 아무리 좋은 선의를 가지고 있더라도, 또 그 선의로 어떤 정책을 추진했더라도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정치인으로서 무능이란 딱지를 피할 수는 없다. 사과나무는 사과의 맛으로 평가해야 하듯이 정치인도 그 선의가 아니라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이른바 유능 대 무능의 프레임이다.

원칙과 소신 뒤에 가려진 무능한 행정: 원칙과 신뢰는 정치인 박근혜의 트레이드마크다. 정치인으로서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자산이고, 게다가 스스로 얻어낸 자산이니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하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게 따져보면 원칙과 신뢰 역시 일종의 진정성 담론이다. 원칙을 지키고, 신뢰를 유지해서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킨다고 해서 좋은 결실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 원칙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원칙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원칙 고수가 유능함은 아니다. 아름다운 원칙과 무모한 아집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원칙 고수는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동서 냉전의 와중에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는 대결 원칙을 버리고 중국과 수교했다. 구소련을 악의 축이라고 비판했던 로널드 레이건도 압박 원칙을 버리고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거래했다. 원칙의 한계를 말해주는 반증 사례들이다.

가끔 원칙 고수는 무능을 숨기는 좋은 커버(cover)로 기능한다. 정치에서 협상이나 타협은 어렵고, 대결이나 비판은 쉽다. 협상이나 타협을 위해서는 자기 진영을 설득해야 하고, 상대방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때문에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정치 방식이다. 그런데 어느 나라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정치적 계기는 대개 타협에 의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유능한 정치인이라면 타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치인에게 부여된 일종의 숙명이고 천형(天刑)이다. 그래서 막스 베버도 정치에선 신념 윤리가 아니라 책임 윤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처럼 타협이 불가피하나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타협을 거부하는 것도 하나의 정치 방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과 신뢰 담론은 자신의 소신을 고집하는, 그럼으로써 대화와 타협보다는 긴장과 대립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말이 좋아 원칙 고수지 실상 타협을 만들어낼 실력이 없는 걸 숨기는 허울일 뿐이다.

2014년 4월 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침몰 사고는 원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안전을 국정의 기본 원칙으로 제시해왔다. 그 원칙이 원칙다우려면 예산과 인력으로 안전 행정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 문자 그대로 명실상부한 지침이 된다. 그런데 말로만 내세운 원칙은 실행의 무능으로 나타났다. 안전 예산은 되레 줄어들었고, 재난 전문가는 한직으로 밀리고, 안전 관련 자리는 기피 부서가 되었다. 재난 대비 훈련도 구두 회의로 대체되었다. 박근혜 스타일의 안전은 종이호랑이라는 말처럼 허상에 불과했던 셈이다. 세월호 참사는 기업(청해진해운)의 탐욕이 빚어낸 인재(人災)로 시작해 행정의 무능이 대형 참사로 이어진 관재(官災)를 거쳐 언론의 윤리적 해이로 국민적 분노를 증폭시킨 언재(言災)로 나아갔다.

사고의 원인으로 볼 때 행정의 책임이 절반이라면 사고 후의 혼란은 온전히 행정의 무능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진 원칙 이미지 때문에 가려져왔던 무능한 행정가라는 실체가 세월호 참사로 드러났다. 게다가 자신이 임명한 사람을 나무라면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은 남 탓으로 돌리는 ‘구름 위의 심판자’ 모습도 결국 무능을 숨기기 위해 정교하게 기획된 전략적 태도인데, 이 또한 원칙 이미지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원칙을 지키는 데 너희들은 왜 안 지키느냐는 태도는 행정권이 없는 영국 여왕의 어법이란 지적이나,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 질책이 아니라 대책이 필요합니다”라는 피켓의 문구는 핵심을 정확하게 짚는다.

2001년 9ㆍ11테러가 발생한 다음 조지 부시 대통령은 살아났다. 50퍼센트 언저리에 머물던 지지율이 급등했다. 대통령으로서 엄청난 재난을 수습하는 데 제법 유능했다. “세계의 악당들을 조지고 부수는 것만 좋아했던 미국의 43대 대통령인 조지 부시였지만 9ㆍ11 테러 당시 그의 리더십은 어쩔 수 없이 칭찬하게 된다. 테러가 일어난 그날에만 대통령 담화가 3번 발표되었다. 사건의 성격 규정, 국민의 단결 호소, 새로운 전쟁에 대한 전 세계의지지 확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발표된 담화였다. 이후로도 사흘간 총 11번의 대통령 담화가 있었다. 같은 기간 각 부처 장관들의 브리핑은 총 50회가 넘는다. 먼지가 자욱한 테러 현장에서 소방관과 함께 서서 이 대형 재난을 조속히 극복하자는 대통령과 정부의 결의가 과시되자 부시의 지지율은 치솟았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강한 의지는 위기의 순간에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었고, 국민은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으로 이에 화답했다.” 군사평론가 김종대의 지적이다.

이뿐 아니다. 부시는 9ㆍ11 테러를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새로운 국정 어젠다로 제기했고, 결과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재난으로 일어선 부시가 몰락한 것도 재난이었다. “2005년 8월 말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하면서 뉴올리언스 지역의 제방이 무너져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물에 잠겼고 사망ㆍ실종자만 2,541명에 달하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정부의 사전 대처 소홀과 늑장 대응을 비난하는 여론이 확산된 가운데 부시 대통령의 소극적 처신도 문제가 됐다.” 《중앙일보》 김정하 기자의 정리다. 엄청난 재난의 현장을 부시는 비행기를 타고 휙 둘러보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이를 계기로 그는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고,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때 생겨난 말이 ‘카트리나 모멘트(Katrina Moment)’다. 정권이나 지도자의 명운을 결정짓는 사건이나 시점, 계기를 말한다.

조지 부시가 9ㆍ11 테러 때는 성공했는데, 카트리나 때는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9ㆍ11 테러에서는 알카에다라는 명확한 적(target)이 있었기에 국민적 분노의 화살이 날아갈 과녁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연 재난은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재난을 대비해야 하는 정부가 얼마나 준비에 철저했는지, 또 재난 후에 얼마나 대응을 잘했는지가 초점이 될 수밖에 없다. 조지 부시는 카트리나가 초대형 허리케인이 될 것이라고 미리 보고를 받았지만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 피해 예상 지역 주민을 미리 대피시키지도 않았다. 인사 실패도 있었다. 결국 부시 행정부의 무능이 자연 재해로 드러난 셈이다.

세월호 참사가 천안함 사태처럼 책임을 물을 외부의 적이 없다는 점에서 카트리나를 닮긴 닮았다. 또 인사 실패도 비슷하다. 총리는 허망했고, 해양수산부 장관은 무능했고, 안전행정부 장관은 방심했고, 교육부 장관은 무심했다. 게다가 대통령은 내내 차가웠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정부나 대통령에게 ‘카트리나 모멘트’가 될지는 미지수다. 물론 그가 내건 원칙과 신뢰 담론, 태도가 결코 좋은 결실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박근혜 대통령이 행정가로서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리더십은 없고 스타십만 있는 야당: 상대가 있는 게임이 정치다. 특히 선거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 상대가 못하는 것 때문에 이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야당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실력으로 승리하기보다는 여당의 실정(失政) 때문에 이기는 게 상례다. 한국처럼 한 표라도 더 얻은 정당이나 세력이 모두를 차지하는 승자 독식의 정치 구조 하에서는 반사이익은 야권 부활의 필수조건이다시피 하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 때문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2012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는 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까? 2012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 지수는 매우 높았다. 정권 교체의 필요조건은 충족된 셈이다. 하지만 당시 야당에 대한 호감 지수는 상당히 낮았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이전 정부와 다른 사회경제적 해법을 보여주지 못한 데다, 정권을 잃었음에도 ‘낡은 민주당’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사이익을 반대투표(punishment voting)로 전환시키지 못했다는 말이다.

여당에 대한 반감을 투표에서 응징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대안성을 갖춰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야당의 대응은 무기력했다. 초기 대응이 부실하고, 안전 행정이 사실상 부재했다는 점은 야당이 지적하지 않아도 생방송을 통해 충분히 확인되는 사실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반복해서 외치는 것보다는 수권 정당답게 구체적인 사실을 찾아내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공감을 일으키는 활동으로 신뢰를 확장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의 관재 측면이 드러난 것은 희생자와 실종자 유가족의 항의와 희생된 어린 학생들의 휴대전화 동영상이었다. 사고 초기 이 문제를 정쟁의 소재로 삼는 모습은 피했어야 하지만,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처하다 보니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국의 9ㆍ11위원회와 같은 조사 기구를 국회 차원이나 당내에 만드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안전을 새정치민주연합의 강점 어젠다로 만들어내야 했다.

성패를 가르는 것은 병력의 수가 아니다. 대오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심리적 안정과 역할 분담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마련한 리더십이 요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의원 개개인이 부족을 대표하는 추장처럼 행사하면서 느슨하게 한 울타리에서 지내는 호족 연합체나 프랜차이즈 정당 같다. 이를 혁파할 리더십은 아직 부재하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는 몇 명 있지만, 조직을 단합시켜 미래를 개척할 지도자는 없다. 스타십만 횡행하고 리더십은 형성되지 못하는 정당은 결코 집권할 수 없다.



제2장 누가 우리 정치를 죽이는가?



인사 실패와 대통령의 선택



인사 실패가 인사청문회 탓일까?: 한국 정치의 특징 중 하나는 불리하면 제도를 탓하고 바꾸려 하는 것이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정당이 지금의 새누리당이다. 인사청문회 도입이 민주주의의 질적 진화라고 본다면, 그 공은 상당 부분 새누리당의 몫이다. 그 새누리당이 총리 후보자가 연거푸 낙마하자 인사청문회를 손보자고 한다. 자기부정이다. 그들이 내거는 명분은 이렇다. ‘황희 정승이라도 지금의 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도 어렵다고 한다. 궁색한 논리다. 그런 분들에게 이런 말을 해드리고 싶다. ‘지금의 인사 검증이라면 이완용도 문제없이 통과한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특유한 제도다. 대통령제는 삼권분립, 그중에서도 특히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을 특성으로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모두 선거로 선출되었으니 양자 간의 정통성이 경쟁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하에서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대표적 수단이 바로 인사청문회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제하에서 권한이 막강한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다. 인사 과정은 청와대가 추천 받거나 자체 발굴한 인사를 검증해 대통령이 지명하면, 언론과 여론에 의한 평가와 논의가 이루어진 다음, 국회 청문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5단계를 거친다. 행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검증이 엉성한 탓에 부적격한 인물이 후보로 제시된 것이 문제이지 인사 청문 절차가 까다로워서는 아니다. 한국의 인사 청문 절차는 미국에 비해 훨씬 느슨하다. 인사 실패가 반복되는 것은 임명권자, 즉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과 그에 따른 부실한 검증 시스템 때문이다. 결국 인사 실패는 제도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 때문이라는 말이다.

인사 실패의 화근은 대통령: 결국 인사 실패의 책임은 대통령 탓이다. 대통령이 특정 인물에 호의를 드러내면 검증 라인에서 제대로 검증하기란 쉽지 않다. 아래로부터의 추천 인사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하명 인사에 길들여지면 나쁜 흠도 어떻게 해서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천주교에서는 성인을 추대할 때 악마의 대리인(devil’s advocate)을 둔다. 반대 논리를 충분히 검토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후보자의 부족한 부분과 잘못된 측면을 집요하게 짚어내고 까칠하게 따지는 게 모든 인사 검증의 필수다. 그러나 대통령의 하명 인사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아무리 신임이 깊은 참모라도 주저 없이 ‘그건 안 됩니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높은 자리에 앉으면 칭찬에 익숙해지고, 아부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오’라고 말하는 참모가 없으면 아무리 현명한 리더라고 할지라도 오류를 범하기 마련이다.

그의 속내를 촌탁(忖度)하기는 어려우나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충고를 무시하는 것 같다.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恨)이다. 또 하나는 비선 조직이다. 마침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인터뷰를 통해 이런 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박 대통령 인사는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배신하지 않을 사람인가’에서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는 최측근에게 총을 맞았다.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할 때 가까이서 자신을 모셨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심지어 아버지 추모식조차 제대로 못 했다. 가슴에 깊은 한이 맺혀 있다. 그것이 ‘수첩인사’로 나타난다.

박 대통령이 사심을 갖고 인사를 하는 것은 분명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내가 믿는 사람, 아는 사람만 찾는 경향이 있다. 내부적으로 박 대통령이 가깝게 의논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말하긴 좀 그렇다. 공식 채널이 아닌 소규모 비선 라인을 통해 상당히 얘기를 많이 듣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말에 따르면, 한을 품고, 비선 조직에 의존해 하명 인사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저지르는 인사 실패의 근본 원인이다. 결국 화근(禍根)은 대통령 자신인 셈이다.

새누리당에 닥쳐올 위기와 파국의 가능성



마이웨이 대통령은 여당에 재앙이다: 한국에서 여당의 지위는 좋을 게 없다. 심지어 재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 민주화의 차원에서 대통령이 당의 총재나 대표직을 내놓았지만, 여당을 이끄는 주인은 당 대표가 아니라 대통령이다. 여당이 대통령을 보필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다. 이 때문에 언제나 여당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진다.

사실 우리의 헌정 체제는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갈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행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이라도 입법권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면 사실상 반(半)통령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의 전형인 미국도 입법부와 행정부 간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로 다른 정당이 입법부와 행정부를 각기 장악할 경우 첨예한 갈등이 표출된다. 미국은 입법부와 행정부 간 대립 때문에 생기는 교착상태를 고려해 대통령에게 행정명령권을 부여하고 있다. 정책명령권은 일종의 우회 입법권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통령에게는 이런 행정명령권이 없다. 대신 법안제출권이 있다. 그런데 이 법안제출권도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면 대통령의 힘은 제왕적 대통령제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허약하다. 이런 구조적 약세를 일거에 반전시키는 것이 바로 여당에 대한 대통령의 지배다. 여당의 실질적 주인으로서 의회 운영에 오너십을 발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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