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씨의 위험한 고민
권복규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호모 사피엔스 씨의 위험한 고민
권복규 외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15년 11월 / 336쪽 / 15,000원
21세기 과학 ‘최악’의 시나리오: 포스트 아포칼립스_ 원종우
21세기 과학 최악의 미래, 아포칼립스: 21세기 안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가장 안 좋은 사건들 중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게 ‘종말’입니다. 수많은 휴거설과 염세주의에 가까운 세계 멸망 이야기가 등장했지만 20세기에는 다행히 종말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종말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합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과학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에 다들 공감할 것입니다. 그 양날의 검이 치명적으로 날카로워진 계기는 핵무기의 출현입니다. 핵무기의 출현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의 비밀 가운데 하나를 인류가 알아낸 것이죠. 작은 물질이라도 핵분열을 하게 만들면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알아낸 것입니다. 이 법칙에서 아주 간단하게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이렇게 핵기술이 발전해왔고, 폭탄도 만들어서 실제로 민간인에게 딱 두 번 사용했습니다.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케네스 베인브리지는 핵실험이 성공한 후 “이제 우리 다 개새끼가 됐어”라고 자책했습니다.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우리 인류는 자기 자신을 비롯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위대한’ 생물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으로 향하는 시계의 시침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사람을 죽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맨손이나 창과 칼로 사람을 죽이려면 살해 대상에게 매우 가까이 가야 하고 상대를 마주해야 합니다. 아무 원한도 없는 상황에서 상대를 응시하며 찔러 죽여야 하는 게 인류 살해 역사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핵무기 내부부터 발사 버튼에 이르는 연결을 과학이 해줍니다. 총책임자가 손가락만 움직이면 전쟁이 나고, 수십만 명이 증발하고, 인류가 멸망으로 치닫게 됩니다.
무기처럼 파괴적인 목적을 위한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화석연료에서 에너지를 얻어내서 부강해지려는 노력이 기후변화를 초래했습니다. 병을 이겨 많은 생명을 구한 항생제가 거꾸로 더 강력한 세균을 만들어냈죠. 산업을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던 노벨은 그것이 무기로 쓰이자 좌절했습니다. 좋은 일을 위해서 만들었던 과학기술이나 의학에도 위험이 숨어 있습니다. 원인은 커져버린 책임에 있습니다. “큰일에는 큰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인류를 구한 한마디, “컴퓨터의 오류인 듯하다”: 전 세계를 핵전쟁의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스타니슬라프 예브그라포비치 페트로프라는 소련군 소령입니다. 그의 임무는 소련의 최신식 핵미사일 탐지 위성으로 미국에서 핵을 쏘는지 감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상 징후가 발견되거나 핵미사일이 포착되면 상부에 보고를 하고, 핵미사일 발사 결정권자는 페트로프 소령의 보고에 따라 발사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1983년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는 사상 최악이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했고 한국의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이 벌어졌습니다. NATO는 전면적인 핵공격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었고 소련의 최고 지도자였던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지병으로 누워 있어서 전 소련군은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1983년 9월 26일 자정. 페트로프 소령이 근무하던 관제센터에 핵전쟁 경보가 울렸습니다. 인공위성으로부터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한 발을 발사했다”는 메시지가 전송되어 왔습니다. 그 직후 인공위성은 ICBM의 숫자를 5기로 재차 보고했고 관제센터는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소련의 핵미사일 발사대에 비상이 걸렸고 페트로프 소령은 졸지에 핵전쟁을 시작할 권한을 떠맡았습니다. 미국의 ICBM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은 극도로 짧았습니다. 페트로프 앞에서 핵전쟁 시작 버튼이 깜빡이기 시작했습니다.
페트로프는 소련의 대도시 다섯 개가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생각했습니다. ‘미국이 정말로 핵공격을 하려 했다면 모든 핵미사일을 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다섯 개밖에 안 쐈을까?’ 실제로 핵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ICBM 수천 개로 선제공격을 하여 상대를 초반에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핵미사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섯 발만 쐈다가는 똑같이 핵미사일로 보복을 당해 패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페트로프 소령은 핵전쟁 취소 코드를 입력하고 상부에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컴퓨터의 오류인 듯하다.” 후에 이 사태는 ‘인공위성이 태양빛을 미국의 ICBM 발사 섬광으로 잘못 해석하여 보고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페트로프 소령은 미국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가능성보다는 이전부터 문제가 있었던 핵미사일 탐지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자칫 전 세계가 구석기 시대로 퇴보할 뻔한 위기에서 전 인류를 구한 영웅입니다.
1983년 9월 26일 이후의 모든 인간은 페트로프 소령 덕분에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이 일화는 1998년에야 외부에 알려졌고 페트로프 소령은 세계 시민상과 UN의 표창장 등을 수상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페트로프 소령처럼 합리적인 선택과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이 일화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인간은 결국 인간 전체를 파멸시킬 힘을 만들어냈지만 그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도 인간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문명의 종말은 질병의 창궐과 세계경제의 붕괴로 시작되기도 합니다. 만일 미국 맨해튼에 적당히 큰 소행성 하나가 떨어진다면 미국의 증권시장이 붕괴될 것입니다. 사망자는 만 명밖에 안 될지 몰라도 세계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물론 세계경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붕괴한다고 해서 당장 문명이 종말을 맞이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의 탄생 배경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치와 같은 극우주의와 전쟁은 언제나 경제의 붕괴 후에 모습을 드러냈고, 대중을 포섭해 전쟁으로 내몰았습니다.
문명의 종말은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갈등에서 시작될 위험이 다분합니다. 석유 고갈이 언제 시작될지, 혹은 언제 석유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석유 고갈까지 앞으로 100년이 남았는지, 200년이 남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문제는 생산량이 멈추거나 하락할 경우 물가가 폭등하고 곧 식량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고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지나치게 석유에 의존하는 현대 문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석유가 없었다면 피를 흘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탄식이 훗날 후손들의 입에서 흘러나올지도 모릅니다.
과학과 휴머니즘의 해후_ 이명현
로봇은 인간의 조력자인가, 준비된 배신자인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기사를 많이 쓰는 기자는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인공지능 컴퓨터입니다. ‘워드 스미스’라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1년에 몇십억 개의 기사를 쓰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특히 경제 데이터 요약에 큰 강점을 보입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정서적인 부분에도 인공지능 로봇이 닿아 있습니다. 2015년 6월, 경복궁 앞 현대 미술관에서 <로봇 에세이>라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을 스케치한 그림을 전시해놓았죠. 최첨단의 기계가 인간을 관찰하고 예술가 수준으로 만들어서 전시한 것입니다. 작곡은 더 쉽습니다. 그림보다 음악 작곡이 더 쉽습니다. 그리고 ‘스토리 헬퍼’라는 이름으로 스토리를 분석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이 만연한 세상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인공지능을 만들어서 아기처럼 기르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은 세상의 환경으로부터 배워 나가는 습득 속도가 매우 빨라질 겁니다. 이는 한 명의 아이가 커가는 과정인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도래를 두려워하고 있는데 인공지능은 이미 이 지점에 와 있는 거죠. 스티븐 호킹도 인공지능 개발은 인류의 멸망을 불러올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로봇을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고 까불면 전기 플러그를 뽑아서 멈추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봇이 점점 자의식을 갖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전기 콘센트를 뽑으려고 하면 로봇이 못하게 하는 겁니다. 이제는 로봇도 감정을 갖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겁니다.
과학의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이 두 사람은 젊었을 때부터 라이벌이었습니다. 늙어서도 라이벌로 남았고요. 스티브 잡스는 “현대 제품들에 기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리버럴 아츠(liberal arts)’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이때의 ‘리버럴 아츠’를 어떻게 번역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리버럴 아츠’를 한글로 옮기면 ‘휴머니즘’이 알맞을 겁니다. 인문학은 인간을 위한 학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이야기되는 인문학은 이전부터 다뤄졌던 좁은 의미의 인문학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문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만큼 현실을 반영해서 인간을 대해야 합니다. 결국 인문학이란 우리가 놓인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SE존스 대학은 수강신청이 없습니다. 수업 대신 4년 내내 고전 120권을 원어로 읽습니다.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어로 읽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어를 배워야 하겠죠. 이런 기본적인 언어를 배우고 매주 두 번씩 모여서 토론을 하고 발표를 합니다. 문학 분야만 하는 게 아니라 과학 분야,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불완전성 원리 등을 다룬 책도 원문으로 읽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거야말로 정말 인문학입니다. 지식의 근원을 건드리는 작업이거든요.
리버럴 아츠를 인문학이라고 좁은 의미로 번역하면 안 되고, 넓은 의미로 봐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건 핵심 교양이라고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핵심 교양이라는 단어는 세상을 살 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칭하는 겁니다. 스티브 잡스는 ‘리버럴 아츠’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을 기계에 융합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인문학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핵심 교양이라고 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은 전 시대를 통틀어서 진리로 칭해지는 절대 진리와는 다릅니다. 핵심 교양은 그 시대를 포함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핵심 교양은 무엇일까요. 저는 시대의 인문학에 과학적 인식론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이건 비판적 사고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과 다르더라도 어떤 객관적인 결과가 있으면 과감하게 그쪽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이며 세상을 논리적ㆍ상식적ㆍ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태도입니다. 제 결론은 지금 시대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상생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학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는 세상을 등지거나 거스르거나 수용하는 등의 여러 가지 대안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시작점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과학적인 부분이 필요합니다. 핵심 교양이라는 말로 통용되었으면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핵심 교양은 과학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아이는 과학자의 본성을 갖고 태어난다.” 모든 사람은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탐구하는 본성이 있다는 겁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현대의 교육은 이런 것을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현대 교육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집단적인 근대 교육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시민들을 양산해내기 위해 행해졌던 것이 지금의 교육 체계입니다. 현실에서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한데 근대 교육 방식으로는 그런 인재를 키워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희망적인 부분은 아이들에게 창의성이 보인다는 겁니다. 이걸 키워줘야 합니다.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고전적인 의미의 천재와는 다른 부류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잘 연결시킨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 마우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원래 마우스는 한 연구소에서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당시 마우스 한 개 가격이 1000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잡스는 이 마우스를 가져와서 5000원이라는 가격을 붙여서 판매를 했습니다. 개발해낸 과학자들이 마우스를 1000만 원짜리 연구의 성과물로 보고 있을 때 잡스는 모든 사람들이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는 5000원짜리 물건으로 본 겁니다. 이게 바로 연결 짓는 천재의 예시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 시대의 인문학은 이런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겁니다.
안드로이드 하녀를 발로 차는 건 잔인한가? _ 정지훈
인간은 인권을 요구하는 로봇을 걷어차지 않을 것인가: 인공지능에서는 ‘왓슨’이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사건이 유명합니다. 왓슨은 <제퍼디>라는 유명한 퀴즈쇼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퀴즈쇼는 보통 세 사람이 나와서 경쟁하는데, 2011년 2월에는 사람 두 명과 왓슨이 각각 대결했습니다. 한 사람은 67주 동안 1위를 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도 그에 못지않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프로그램이 이들과 맞수를 둔 겁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에서 누가 이겼을까요? 왓슨이 1등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실상 인공지능이 급부상하게 됩니다.
그러자 미국의 암 센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왓슨은 세계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암 센터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로봇이 점점 할 것이 많아지는 거죠. 몇 년 뒤에는 의사를 대체할 수도 있을 정도로 결과가 잘 나오고 있습니다. 이 병원에서는 왓슨이 진료를 하고 있다고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공지능의 세 가지 한계를 왓슨이 극복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첫째, 왓슨이 어떤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과가 없고 또 그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광고를 낼 수 없겠죠. 그리고 두 번째는 병원 내에서 왓슨을 사용하는 데에 큰 저항이 없고, 또 그 사실을 알리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의료진에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의사 로봇’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전에는 ‘의사 로봇’은 위험하다는 여론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왓슨은 아직 인간과 가까워지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인간 4000명이 쓸 에너지를 왓슨 한 대가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인간의 뇌와 비슷한 구조를 갖도록 제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은 쥐의 지능 정도까지는 올라왔습니다. 이것을 쌓아서 3D로 만들면 인간의 뇌와 비슷한 칩 세트를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의 뇌처럼 형태를 변형시키거나 혈액을 순환시키게 만드는 것을 ‘뉴로모픽 컴퓨팅’이라고 칭합니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생물학자ㆍ재료공학자ㆍ인지공학자ㆍ컴퓨터공학자ㆍ기계공학자 등이 함께 팀을 짜고 작업합니다. 융합연구가 필요한 분야인 거죠.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는 이러한 융합연구가 필요합니다.
기계와 기를 쓰고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기계는 창의적인 생각을 해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실수를 하죠. 그러니까 이 둘로 팀을 짜면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왓슨이 있는 암 센터에서 최고 실력을 가진 건 누구일까요? 왓슨과 전문 의료진이 함께하는 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기계와, 혹은 로봇과, 인공지능과 경쟁을 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인공지능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고 인간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는 겁니다.
요즘에는 햄스터 한 마리를 못살게 굴어도 뭐라고 합니다. 잘못해서 알려지면 대중들에게 비난을 받을 겁니다. 이건 동물의 권리입니다. 이렇게 되기 시작한 게 얼마나 됐을까요? 우리나라는 채 10년도 안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은 개보다는 못해도 햄스터보다는 인간의 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로봇에 대해 햄스터보다 못한 취급을 한다는 게 정당할까요? 이것이 문제의 시발점입니다. 제 전망으로는 곧 로봇 권리 운동가들이 생겨날 겁니다. 그리고 로봇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주장을 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로봇 권리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일반화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