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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박민아, 선유정, 정원 지음 | 한국문학사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박민아, 선유정, 정원 지음

한국문학사 / 2015년 9월 / 392쪽 / 14,500원





‘과학’을 알아야 ‘융합’이 보인다

과학 융합이 대세다. 무늬만 융합이 아닌 진정한 융합을 하려면 먼저 ‘나’에 대해, 즉 과학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여는 첫 장은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과학 하면 수학, 실험, 정확함, 객관성 같은 것들이 연상되는데, 이런 특징들로 인해 과학은 어렵다, 딱딱하다,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과학에 대해 갖는 편견이자 오해다. 과학이 같이 섞여 있던 종교나 철학, 기예로부터 스스로를 구분 짓기 위해 수학과 실험 같은 방법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과학의 실제 모습은 그보다 훨씬 다채롭다. 실험ㆍ수학과 함께 무한한 상상력, 인간과 자연에 대한 공감 같은 요소들도 과학에 포함되어 있다.

과학다운 과학의 등장: [‘과학’은 언제 등장했을까?] 과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과학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하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거의 대부분의 학문의 기원이 그런 것처럼, 과학의 기원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흔히 고대 그리스까지 올라가곤 한다.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즉 자연적인 원인만을 들어 설명하려는 시도를 과학이라고 할 때, 그런 시도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과학의 시작을 19세기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적인 목적이나 형이상학적 목적, 또는 세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의 일부로서가 아닌, 자연에 대한 이해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은 19세기에나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과학인 듯, 과학 아닌 과학] 19세기에 오늘날과 같은 과학이 등장하는 데서 중요했던 변화 중의 하나는 바로 과학의 세속화다. 19세기 과학의 세속화는 과학이 다른 분야, 특히 종교나 철학의 하녀가 아닌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분야로 자리를 잡게 만든 사건이었다. 과학이 독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과학의 실용적 가치가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기술과 결합하면서 과학은 사회에 유용한 실용적 학문으로 사회적 정당성을 얻게 되었고, 그 실용성으로 인해 과학자는 과학을 하는 것만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자연과학의 분류] 19세기에 등장했다는 과학, 과연 어떤 분야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가장 보편적인 분류에 따르면 자연과학은 크게 물리학ㆍ화학ㆍ생물학ㆍ지구과학으로 나뉜다. 여기에 천문학 정도를 추가하면 자연과학의 기본적인 학문 분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과학의 이런 분야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질까? 지난 세기에는 ‘물리’와 ‘화학’이라는 물리과학을 잘 이해하면 기본 물질과 그 변화에 관한 이론을 근간으로 하여, 생명현상과 지구, 천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물리환원주의가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이런 물리환원주의는 각 분야의 개별성과 연구 대상의 독특성을 인정하는 흐름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생명현상은 단순한 물리화학적 현상으로 환원되어 설명될 수 없다는 인식이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각 분야의 개별성과 독립성이 인정받으면서 이 분야들 간의 협력과 융합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자연은 물리ㆍ화학ㆍ생물ㆍ지구과학ㆍ천문학 같은 인위적인 학문 경계를 알지 못하며, 많은 자연현상이 여러 분야가 중첩되는 영역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각 분야들이 특정한 자연현상을 그 분야 특유의 시각과 방법으로 이해한다면, 여러 분야에서 얻은 과학적인 설명들이 융합되었을 때에야 우리는 그 자연현상을 온전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과학에서 과연 융합이 필요할까?: [복잡한 현대과학 속에서 대두한 융합의 필요성] 현대과학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만큼 복잡하고 거대해졌다. 예를 들어 인간게놈프로젝트나 입자가속기 연구와 같은 빅사이언스가 출현하면서, 어느 한 분야의 특정 인물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해야 하는 시스템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면서 현대과학을 이해하려면 단일한 지식이 아닌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고가 요구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융합’이라는 사고 체계가 과학적 이해와 결합하게 되었다. 과학에서 융합이 가장 잘 이루어진 대표적인 예로는 컴퓨터의 개발을 들 수 있다. 컴퓨터 하드웨어 개발에는 회로ㆍ반도체 등 전자전기공학의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컴퓨터의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는 데는 논리학ㆍ수학 등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개발 초기부터 나타난 이런 융합적 특성 때문인지,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IT 업체들은 요즘에도 융합적 연구를 장려하고 있다. 특히 애플이나 구글 같은 선도적인 IT 업체들에서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을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애플의 잡스는 “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애플의 DNA에는 기술과 교양 지식이 결합되어 있고, 기술과 인문학이 결합되어 있어, 그 결과 우리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개발 과정에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사용자가 어떤 시스템ㆍ제품ㆍ서비스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면서 느끼고 얻게 되는 지각ㆍ반응ㆍ행동 등의 총체적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인류학자와 심리학자를 참여시켰고, SNS 기술 개발에는 역사학ㆍ사회학ㆍ철학ㆍ분류학 등을 전공한 인문학자들을 참여시키기도 했다.

[정치적 의도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융합] 그렇다면 ‘융합’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구체적인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하지만 융합이 추구하는 바는 나름 분명해 보인다. 바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과학을 다루고자 한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미래지향적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과거회귀적이기도 하지만, 결론은 역시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융합을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차원에서 지금 융합을 다의적ㆍ다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학의 ‘융합’이 지닌 그 의미의 모호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규정하고자 하는 데서 나타난다.

특히 한국 사회는 정치적 아젠다로서의 융합을 지나치게 이용하고 있다. ‘융합 과제’라는 연구가 넘쳐나면서 연구자 입장에서는 융합과 관련 없는 연구라도 융합을 내세워야 연구비를 탈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순수한 학문적 탐구 과정을 도와야 할 융합이 반대로 학문의 탐구 범주를 좁히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융합은 지금 당장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 새로운 학문과 사회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현대과학이 현재 융합의 모호함이 내포하고 있는 다층적이고 다의적인 부분을 수용한다면, 정치적으로 왜곡된 융합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지평에서 그 필요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치적 의도나 한정된 틀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과학을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새로운 사고 형성에 기여하고자 한다.



과학과 예술의 오랜 동반 관계

과학과 다른 분야의 융합을 강조하는 요즘,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과학 기술과 예술의 융합인데, 이런 융합을 강조하는 추세에 따라 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공동 작업을 통한 작품도 만들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테크닉이 예술에 도입되어 새로운 표현 방법을 제공하기도 하고, 과학 또는 공학의 데이터와 실험 도구가 예술의 소재로 사용되어 과학기술에서는 인지되지 못했던 새로운 미적 가치를 부여받기도 한다. 최근 과학기술과 예술의 이런 협력 관계가 새로이 각광받고 있지만, 사실 둘은 오랫동안 함께해온 동반자였다. 피타고라스, 다 빈치, 브루넬레스키 같은 인물들은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몸소 실천했다.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려는 화가들의 노력은 빛과 색에 대한 뉴턴의 연구로 이어졌고, 아름다운 화음을 내려는 음악가들의 노력은 소리와 파동, 파동들의 겹침과 그것을 인지하는 청각에 관한 연구로 이어졌다. 한편 예술은 때로 과학자와 과학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창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문학작품을 통해서,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과학자의 모습을 보고 과학자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과학과 사회, 교감을 통해 진화하다

과학기술은 때로 기대치 않았던 방식으로, 또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사회를 바꾸어간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개발했을 때 이것이 종교개혁의 불을 타오르게 하는 기름 같은 역할을 하리라 누가 상상했을까. 가정에 도입된 가사 기술이 여성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것이라는 광고 문구와 달리, 그 기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사노동은 줄어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가 예상했겠는가. 이처럼 과학기술이 개발될 때의 의도나 맥락과는 별개로 어느 경우에는 사회 속에서 구현되면서 시대의 새로운 맥락을 만나 기대와는 다른 효과를 내기도 하는데, 그런 효과를 통해 과학기술은 사회를 변화시킨다.

혁명을 일으킨 아이폰, 혁명을 완성한 갤럭시폰: [아이폰이 몰고 온 혁명] 2007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맥월드에서 청바지에 검은 티를 입고 안경을 쓴 유명한 인물은 말했다. ‘우리는 오늘 세 가지 혁명적인 기기를 선보일 것입니다. 첫 번째는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커다란 화면을 가진 아이팟이고, 두 번째는 아주 새로운 휴대폰, 세 번째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기기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세 가지 기기는 각각 다른 기기가 아니라 하나의 기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이폰이라고 부릅니다.’ 잡스의 이 선언에 이른바 ‘애플 팬’과 새로운 기종의 휴대폰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열광했다. 아이폰은 판매 시작과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판매 개시 당일부터 아이폰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가게 앞에 천막까지 칠 정도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8년 3G 주파수가 도입되면서 아이폰은 세계 22개국으로 수출됨과 동시에 스마트폰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아이폰이 이렇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일단 터치스크린으로 구성된 세련된 디자인을 들 수 있다. 잡스는 구상 단계부터 디자인을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여기고 애플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완성하여 출시했다.

다음으로 사용자가 직접 인터페이스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주효했다. 이전까지 핸드폰의 인터페이스는 제조사가 소비자를 고려하여 만든 것이 최선이었지만, 아이폰은 원하는 앱을 다운받아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인터페이스를 구성하게 함으로써 유저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결정적으로 ‘앱스토어’의 존재가 인기의 근원지였다. 앱스토어란 말 그대로 소비자가 앱을 사고팔 수 있는 사이버상의 상점으로, 핸드폰 속 세상의 주도권을 소비자에게 넘긴 것이다. 결국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메신저 기능을 가진 앱만으로 통신이 가능해졌고, 개방된 네트워크를 통해 무료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전통적인 통신 환경의 주도권은 주파수를 보유한 통신회사와 휴대폰 제조업체가 가지고 있었지만, 스마트폰 출현 이후에는 그 주도권이 사용자, 즉 소비자에게로 넘어가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스스로 진화하는 모바일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갤럭시폰의 경쟁 상대는 아이폰이 아니었다] 아이폰이 몰고 온 혁명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 이에 노키아ㆍ모토로라ㆍ삼성ㆍ엘지ㆍ소니 등 기존 거대 휴대폰 업체들은 이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서둘러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하지만 아이폰이 세운 진입 장벽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이 변화를 발판 삼아 일약 휴대폰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기업이 있었다. 바로 삼성이다. 단일 기종만 본다면 아이폰의 판매율이 더 우세했지만, 전체 휴대폰 시장의 기업 점유율은 2011년 이후 삼성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원래 삼성은 기존 피처폰 시장에서도 모토로라와 2, 3위를 다투다가 스마트폰 시장이 생기면서 노키아마저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갤럭시S가 아이폰에 대응할 만큼 월등히 성능이 좋았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럼에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갤럭시S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삼성의 타깃이 아이폰이 아니라 노키아와 모토로라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2009년 아이폰 3가 출시되면서 아이폰 사용자 규모는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아이폰 비구매자들 중에는 아이폰에 대한 구매 욕구가 크지 않아 피처폰을 고수하고 있던 이들이 대다수였다. 즉 당시 스마트폰 시장은 아이폰 사용자와 비사용자로 구분됐는데, 삼성은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잠식하고 있던 비사용자 시장을 노렸다.

먼저 삼성은 갤럭시S에 피처폰 사용자에게도 친숙한 자사 브랜드인 ‘애니콜’의 이름을 붙여 ‘애니콜 갤럭시S’라는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또 피처폰 사용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강한 외장, 빠른 CPU, 메모리 확장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고, 국가별ㆍ통신사별로 사용자가 요구하는 기능들을 조금씩 변형한 형태로 기종을 다양화했다. 가령 한국의 경우에는 지상파 DMB를, 미국의 경우에는 아날로그 라디오 기능을 탑재했다. 이렇게 삼성은 피처폰에 탑재되었던 기능을 대폭 강화하여 ‘하드웨어’가 좋은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전통적인 피처폰 시장을 스마트폰 시장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이는 상상도 못할 상황으로 이어졌다. 수십 년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이끌어온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몰락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스마트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분명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범주에서 스마트폰은 더욱 빨라지고 기능은 더욱 다양화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스마트폰은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바뀐 세상을 다시 한 번 체감하기 위해서는 아이폰과 같이 ‘상상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과학철학자 쿤은 말했다. 세상이 혁명적인 과학을 맞이하려면 지금의 정상과학이 완전히 새로운 정상과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마치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교체되었듯이, 즉 피처폰이 스마트폰으로 교체되면서 세상이 변했듯이 말이다. 따라서 스마트폰 또한 다음 세대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 무언가로 ‘바뀌며’ 사라질지도 모른다.



역사 속의 과학

역사 속에서 과학기술은 정치적 목적이나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 정도에 머무르지 않았다. 과학기술의 역할은 그보다 더 중요했다. 망망대해에서 길잡이가 되어주는 천문학이 없었다면 대항해시대가 가능하기나 했을까? 유럽의 제국주의 팽창에서 과학기술이 단순히 팽창의 수단이 아닌, 서양의 문화적ㆍ정신적 우월성의 상징으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이제 역사의 중요한 변환기를 함께했던 과학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근대화로 향하는 갈림길 - 한국과 일본의 서양 과학의 수용: 한국사람 3명 중 1명이 봤다는 영화 〈명량〉의 백미는 단연코 12척의 배로 330척의 적선을 물리치는 전투신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짜릿함을 주는 전투신의 이면에는 한 가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비롯한 몇몇 장군들이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조선은 명나라가 개입하기 전까지 고전하고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서양식 ‘총’의 존재였다. 일본은 가지고 있었던 총을 왜 조선은 보유하지 못했던 걸까? 이는 조선이 서양 과학을 뒤늦게 수용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일본의 적극적인 서양 과학 수용] 한국ㆍ중국ㆍ일본 동아시아 3국 중 서양 과학을 가장 먼저 접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1543년 포르투갈의 상선이 일본 규슈에 표착하면서 처음 철포가 전해졌다. 철포를 처음 본 가고시마의 영주는 당시 내전이 한창이었던 만큼 즉각 그 기술을 받아들였고, 이를 접한 다른 지역의 영주들 역시 앞다투어 서양 무기를 도입하여 개발했다. 그 결과 종자도총, 일명 조총이 만들어졌고, 일본 전국 시대에는 조총을 앞세운 철포대를 중심으로 내전이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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