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 사회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독선 사회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5년 7월 / 368쪽 / 15,000원
콤플렉스의 독재
왜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 신화를 포기하지 않는가? - 앨저 콤플렉스
처참한 빈곤의 늪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 토크쇼의 여왕으로 등극한 오프라 윈프리는 1993년 허레이쇼 앨저 상을 받았다. 1947년에 결성된 ‘탁월한 미국인들의 허레이쇼 앨저협회’가 매년 선정하는 허레이쇼 앨저 상 수상자는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rags to riches(누더기에서 부, 즉 자수성가)’를 이룬 사람,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개천에서 난 용’이어야만 한다. 앨저 협회의 회원들은 기금을 마련해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업을 펼치는 등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 신화를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콜로라도 대학 저널리즘 교수 제니스 펙은 『오프라 윈프리의 시대』(2008)에서 “윈프리는 전형적인 ‘역할모델’이다. 그녀는 바닥에서 시작해 성공 신화를 이룬 여자 허레이쇼 앨저라고 할 수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에서 윈프리는 인종, 성별, 계급이라는 장애물을 자기 결단과 개인적인 ‘자구책’을 통해 완전히 극복했다고 풀이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는 커리어를 쌓던 초기 시절부터 ‘인종 문제를 극복하려면 능력을 쌓아라’라는 제시 잭슨의 말을 즐겨 인용했다. 또 1998년 인터뷰에서 ‘여성 인권이나 공민권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일을 잘 해내는 것이다’고 말했다. 역량 강화의 수사학은 윈프리 사업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그녀는 방송을 할 때 ‘사람들에게 능력을 심어주고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이 있게 통찰해 볼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허레이쇼 앨저는 누구인가? 그는 본래 매사추세츠주 작은 마을의 목사였으나 성적 추문(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동성애)으로 인해 교단에서 추방당한 인물이다. 그는 뉴욕으로 이주해 1867년 대표작인 『가난한 딕』을 비롯하여 『구두닦이 톰』, 『빠져죽을 것이냐 수영할 것이냐』, 『비상하라』, 『행운과 용기』 등과 같은 자기계발 소설을 120권 넘게 썼다.
앨저의 책들을 탐독한 덕분에 보험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윌리엄 클레멘트 스톤은 1962년에 출간한 자서전에서 앨저의 책이 적게는 1억 권에서 많게는 3억 권 팔린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당시엔 저작권 개념이 영 신통치 않았던 것 같다. 앨저는 내내 가난에 시달려야 했으며, 자기 집이 아닌 누이 집에 얹혀살다가 죽음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앨저가 쓴 소설들의 제목과 주인공은 달랐지만 이야기 전개와 메시지는 판에 박은 듯이 같았다. 작은 마을 가난한 소년이 대도시로 가서 근면, 노력, 절약, 인내, 정직, 행운 등으로 부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예컨대, 『가난한 딕』에서 휘트니라는 인물은 딕에게 이렇게 말한다. “얘야, 나는 네가 성공하고 출세하기를 바란단다. 이 자유 국가에서 어린 시절 가난은 출세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는단다. 나는 아주 크게 출세하지는 못했지만 웬만큼은 출세했다고 말할 수 있단다. 그런데 나도 너처럼 가난할 때가 있었지.”
역사가 프레더릭 L. 알렌은 “지성적인 독자들은 대개 그의 성공 안내서를 쓰레기 취급했다. 실제로 그가 쓴 글들은 다소 평범하고 단조로우며 비현실적이고 창의력이 떨어졌다”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결코 경제학을 중시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무척 미성숙한 정신의 소유자였지만, 세기의 전환기 무렵 미국 기업가들의 사고에 모든 경제학 교수들을 합친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수많은 미국 소년들에게는 미국의 경제생활에 눈뜬 첫 계기가 호레이쇼 앨저였을 수 있다.”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였지만, 미국인들은 앨저의 소설에 열광했다. 이는 통나무집에서 자란 가난한 아이가 대통령이 된다는 전통과 더불어 늘 미국인들을 매료시키는 신화였다. 그 신화는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앨저는 소설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의인화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 신화가 살아 있는 한 앨저라는 이름은 계속 미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교육학자 로런스 피터는 앨저가 “하면 된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물의 성공 스토리를 창작해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노력의 유용함을 과장하는 심리 상태가 미국인들에게 만연해 있다며, 이를 가리켜 ‘앨저 콤플렉스’라고 했다. 앨저 콤플렉스는 앨저 신화와 아메리칸 드림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그러나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새로운 미국 이야기』(1988)에서 “앨저 신화는 노골적으로 심각한 부의 불균형을 정당화한다. 잘산다는 것을 자기 일에 악착같이 전념해서 돈을 모으고, 약삭빠르게 장사해 주어진 보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예일 대학 법대 교수 할론 돌턴 등을 비롯한 많은 이가 앨저 신화를 비판하고 있으며, 2012년 한 일간지는 「허레이쇼 앨저는 죽었다」라는 헤드라인까지 내걸면서 신분 상승의 종언을 선언했지만, 미국인들의 앨저 신화에 대한 신앙은 요지부동이다.
사회심리학적으로 선의 해석을 해보자면 앨저 콤플렉스는 이른바 ‘생존 편향’의 산물이다. 생존 편향은 생존에 실패한 사람들의 가시성 결여로 인해 비교적 가시성이 두드러지는 생존자들의 사례에 집중함으로써 생기는 편향을 말한다. 언론이나 연구자들의 입장에서도 실패 사례는 기록이 없거나 빈약한 반면, 성공 사례는 풍부한 기록이 남아 있으므로 본의 아니게 성공 사례를 일반화하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데도 사회 전반에 걸쳐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에 따른 열망이 지속되고 이런 열망을 기반으로 한 정책들이 계속 실시되고 있는 건 대중의 앨저 콤플렉스에도 책임이 있다. 사회적 차원의 문제를 모두 힘을 합쳐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각개 약진’의 무한경쟁으로 해결하려는 집단의식이 지속되는 한, 한국인의 행복감은 계속 바닥권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개천의 미꾸라지들이 용이 되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해가야 하지 않을까?
증후군 또는 신드롬
왜 한국의 가족주의를 ‘파시즘’이라고 하는가? - 빈 둥지 신드롬
빈 둥지 증후군, 공소증후군이라고도 하는 빈 둥지 신드롬은 자녀들이 독립을 하는 시기에 부모가 느끼는 슬픔을 의미한다. 주 양육자의 역할을 맡는 여성에게서 주로 많이 나타나지만, 아빠라고 해서 의연할 수는 없다.
그런데 ‘부메랑 세대’의 등장은 빈 둥지 신드롬의 풍경을 좀 바꾸고 있다. 부메랑 세대는 미국에서 독립을 해서 나간 자식들이 경제적 이유로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가리켜 붙인 딱지다. 어렵게 취직은 했지만 초봉에 비해 대도시의 주택 임차료와 생활비는 하늘을 찌르는데 저축해둔 것은 없고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과 카드빚만 잔뜩 쌓여 있는 상황에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기 일쑤라는 것이다. 2008년 조사에 따르면, 18~34세 연령 집단 가운데 부모와 같이 사는 사람의 비율은 10년 전 8퍼센트에서 34퍼센트로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 부모들은 황당할 따름이다.
빈 둥지 신드롬과 부메랑 세대는 한국에선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에 좀 싱거운 이야기다. 자식에게 목숨 거는 부모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 정성훈은 “특정한 조건의 부모가 특히 빈 둥지 증후군에 취약하여 허전해하고, 정체성을 잃으며, 허무감에 빠집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식 양육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부모가 가장 위험하겠지요”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편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는 경우 어머니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아이 양육에 바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배우자 선정에서 결혼반지 고르는 일까지, 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어머니는 그것이 자기 일인 양 마음을 쏟다가 막상 자식이 결혼하여 떠나가면 이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져버리는 것이지요. 허무감이 몰려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떻게 해야 빈 둥지 신드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주형은 『지적인 생각법: 영리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힘』(2014)에서 빈 둥지 신드롬에 빠진 엄마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을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중년 이상의 여성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하면 보통 ‘○○엄마’라고 한다. 그러나 이젠 ○○엄마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처음엔 어색해도 계속 말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점점 당당해진다.” 물론 그런 해법이 필요한 엄마들도 있겠지만, 아예 빈 둥지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엄마도 많다. 즉, 한국에선 자녀가 대학을 가는 건 물론 결혼을 한다 해도 부모에게서 독립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2015년 2월 《중앙일보》가 게재한 ‘반퇴(半退)시대’ 특집 기사들의 내용이 흥미롭다. 이 신문은 「반퇴시대, 자식에만 올인하면 노후가 불행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자녀가 대학에 입학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40대, 50대의 과반수는 성인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취업난으로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늦어져 취업 준비 비용과 생활비를 대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은 중년 세대의 노후는 빈곤할 수밖에 없다. 이미 주변에선 자녀 교육비와 결혼 비용을 대는 데 여유 자금을 다 쓰고 일용직으로 나선 노인 세대를 흔히 볼 수 있다. 마치 부화한 새끼들의 먹잇감으로 자기 몸까지 내어주는 어미거미의 운명과 비슷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빈곤한 노후를 맞지 않으려면 중년 세대는 지출, 특히 교육비를 줄여야 한다. 자녀 교육비를 절약해 생긴 여유 자금은 개인연금이나 자신의 교육비로 투자하는 게 좋다. 자식에 대한 의무감이나 체면 때문에 노후를 위한 최후의 종잣돈을 날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오히려 많은 한국인에겐 빈 둥지 신드롬이야말로 바라마지 않는 축복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부모들이 자녀의 결혼은 물론 결혼 이후 자녀들의 삶에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도 ‘부화한 새끼들의 먹잇감으로 자기 몸까지 내어주는 어미 거미의 운명’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는 걸까? 빈 둥지 신드롬이 사회 문제로 비화되는 그런 행복한 날은 정녕 올 것인가?
능력과 경쟁
왜 성공한 사람들이 자살을 할까? - 지위 불안
최근 10년간 고학력 전문ㆍ관리직 자살자 수는 6배, 이들이 전체 자살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배 가까이 증가했다. 고위 공무원과 기업체 간부ㆍ임원 등 관리직은 2004년 4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2013년에는 그 10배인 414명이 자살을 했으며, 교수ㆍ의사ㆍ회계사 등 전문직의 자살은 2004년 137명(1.2퍼센트)에서 2013년 685명(4.7퍼센트)으로 늘었다. 이렇듯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지위가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즉 이른바 ‘지위 불안’ 때문이다.
불안을 느끼건 공포를 느끼건 그 대상이 되는 지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것이다. 상대적 비교 우위가 무너지거나 기존의 지위가 추락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삶의 의욕마저 잃거나 정체성의 혼돈까지 겪게 된다. 영국 사회학자 돈 슬레이터는 “우리는 친밀한 관계와 사회적 지위와 직업을 갖기 위하여 정체성을 생산해서 여러 시장에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런 상황에선 사회적 지위는 곧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지위 불안은 매우 파멸적이라 우리 삶의 여기저기를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이 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를 당해 그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신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해냈는데, 그건 바로 지위를 소비와 연결시킨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실제적 지위야 어찌 되었건 소비를 통해 그런 ‘중요한 상징’을 획득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런 상징성이 있는 상품들을 가리켜 ‘신분재’ 또는 ‘지위재’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지위재는 학위와 학벌이다. 미국 뉴멕시코 대학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는 “지위재는 흔히 고삐 풀린 지위 경쟁을 불러일으킨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학위가 너무 흔해져서 차별화 배지로 유용하지 않게 되면, 경쟁자들은 눈높이를 올려 아이비리그의 경영대학원, 의학박사과정, 박사과정에 지원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이 다 지위 불안에서 벗어나보려는 몸부림이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불안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대안은 남의 시선에서 독립하는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 이게 바로 우리가 지위 불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공동체와 다양성
왜 독일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는가? - 필수적 다양성의 법칙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제패한 독일의 축구 감독 요아힘 뢰브는 “10년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독일 축구를 세계최강의 ‘스마트 전차’로 거듭나게 한 비결은 피부색과 출신을 따지지 않고 선수를 기용하는 개방성과 그에 따른 다양성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열린 민족주의가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는 말이 나왔다. 독일 언론이 “축구 대표팀은 독일 사회통합의 가장 위대한 동력의 하나”라고 뻐긴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에선 2명의 이민자 후손, 2명의 혼혈인, 2명의 ‘귀국자’가 함께 뛰었다. 부모가 터키 출신인 메주트 외칠과 옛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계 출신인 슈코드란 무스타피는 이민자의 후손이다. 제롬 보아텡과 사미 케디라는 아버지가 각각 가나와 튀니지 출신이지만 어머니가 독일인이다. 루카스 포돌스키는 폴란드인 부모 밑에서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나 조부모가 과거 독일 국적이어서 2세 때 부모와 함께 합법적으로 서독으로 이주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독일계 폴란드인이었지만 8세 때 부모를 따라 서독으로 옮겼다. 바로 이들이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다양성의 힘을 말해주는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을 중단시킨 건 다양성의 힘 덕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이는 영국이 독일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던 이유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시 독일의 암호를 해독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번번이 실패했던 영국 정보부는 궁여지책으로 배경과 직업, 출신이 서로 다른 암호 해독자들로 팀을 꾸렸는데, 이것이 뜻밖에도 성공의 열쇠였다.
다양성이 그토록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다양성이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제임스 서로위키는 『대중의 지혜』(2004)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무 유사한 집단은 새로운 정보를 논의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기 어렵다. 동질적인 집단은 구성원들이 잘하는 일에는 뛰어나지만, 대안을 탐색하는 능력은 점차 떨어지게 된다. 그런 그룹은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데 너무 시간을 많이 쓰는 반면 다른 것을 탐색하는 데는 충분히 시간을 쏟지 않는다. 비록 경험이 부족하고 덜 유능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새 구성원을 조직에 포함시키면 조직이 더 현명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