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 본 기억의 역사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 에코리브르
은유로 본 기억의 역사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에코리브르 / 2015년 9월 / 368쪽 / 17,500원
프로이트의 신비스런 글쓰기 판
1925년 프로이트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나의 기억력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펜과 종이에 의지하면 된다.” 종이의 단점이 있다면, 더 이상 불필요한 기록일지라도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점과 지면이 다 차버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단점이 없는 쓰기 수단으로 서판과 분필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되쓸 수 있는 서판은 기록 용량이 무제한이지만, 새로운 것을 기록하려면 먼젓번 기록을 지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인간의 기억을 대체하는 기억 보조 수단들을 살펴보면, 무제한의 용량과 영원히 남는 흔적은 양립 불가능한 조건인 듯하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 기관은 종이와 서판이 못 가진 바로 그 특성을 지닌다. 우리의 정신은 새로운 지각을 무제한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받아들인 것을 비록 고정불변은 아니더라도 영속적인 기억흔적으로 저장한다.”
이와 관련해, 프로이트는 일찍이 『꿈의 해석』에서 인간 정신 기관의 비범한 기능은 서로 다른 두 체계의 작용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고 밝힌 바 있다. 먼저 ‘지각-의식’ 체계는 지각한 것을 기록하되 영속적인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새로운 경험 앞에서 매번 백지 상태이다. 그리고 지각-의식 체계 뒤에 존재하는 ‘기억 체계’는 우리가 지각한 것의 영속적인 흔적을 저장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두 기능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을까?
프로이트가 이런 생각을 하기 얼마 전, ‘신비스런 글쓰기 판(Mystic Writing-Pad)’이라는 이름의 도구가 출시되었다. 아랫부분에 밀랍층이 있고 그 위를 밀랍 종이 한 장과 투명한 셀룰로이드 한 장으로 덮은 도구였다. 셀룰로이드에 글자를 쓰면 글자가 밀랍 종이에 나타나며, 밀랍 종이를 밀랍층으로부터 떼어내면 글쓰기 판은 도로 백지 상태가 된다. 그러나 밀랍 종이 아래에는 지운 흔적이 계속 보존돼 있다. 밀랍 종이에서만 보이던 것이 밀랍층에 새겨진 것이다. 표면의 종이는 아무것도 쓴 적 없는 듯한 백지 상태로 되돌아가지만, 그 아래에는 모든 것이 보존된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신비스런 글쓰기 판은 서로 별개이면서도 연관된 두 기능 또는 두 체계로 나뉘어 있다는 점에서 기억의 두 기능의 결합 문제를 해결해준다. 이것이 바로 방금 언급한 가설같이 우리의 정신 기관이 지각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자극을 수용하는 층인 지각-의식 체계는 영속적인 흔적을 형성하지 못하며, 기억의 근원은 이와 접속하는 다른 체계에 있다.’ 신비스런 글쓰기 판에서 종이를 밀랍층으로부터 떼어낼 때마다 글자가 사라지듯이, 지각 기관에서도 신경감응의 흐름, 즉 신경충동의 경로가 차단될 때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한편 프로이트는 수사적 표현의 대가였고, 이런 점은 작가로서의 명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1930년 괴테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프로이트가 사용한 은유들은 그러나 단순한 수사적 기능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프로이트는 페렌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과학적 창조성이란 “대담할 정도로 유연한 상상과 혹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비판”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했다. 그러한 상호작용에서 은유, 비유, 유추란 불가피하고도 바람직한 것이었다. “심리학에서는 비유의 도움 없이 무언가를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이는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며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러한 비유를 계속해서 바꿔나가야 한다. 영원히 쓸모 있는 비유란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선 프로이트 자신의 이론에 적용된다. 그의 저작에는 극히 다양한 분야에서 가져온 수많은 은유와 유추가 등장한다. 엘렉트라ㆍ오이디푸스 등 콤플렉스를 명료화하는 데는 신화가 은유를 제공했고, 군사학은 자아(ego)와 무의식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은유를 제공했다. 예컨대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꿈을 통해 자아의 영역으로 들어와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점령군이 점령지의 법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자기들의 새로운 법을 공포하는 것에 비유했다. 자아가 이드(id)의 포위 공격을 견뎌내야 한다거나, 정신분석 치료가 내란에 대한 외국의 내정간섭이라는 비유도 있다. 물리학과 기술 분야에서 온 은유도 있다.
프로이트가 일생에서 두 번째로 열정을 쏟은 고고학 분야 역시 마르지 않는 은유의 원천이었다. 고고학자가 성벽의 파편과 발굴한 조각에서 사라진 건물의 윤곽과 변화를 재구성하는 것처럼, 정신분석학자들도 환자의 기억과 연상의 파편으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히스테리 환자의 경우, 히스테리 증상 아래 묻힌 트라우마가 드러날 때까지 한 층 한 층 파 내려가야 한다. 트라우마적 기억이 완전히 발굴되고 부식이 시작되어야 비로소 히스테리 증상은 사라질 수 있다.
프로이트에게 은유는 수사적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이론을 형성하는 발견적 도구로도 매우 중요했음이 분명하다. 은유라는 도구의 묘한 힘은 어디서 나올까? 신비스런 글쓰기 판 같은 은유는 ‘언어’ 현상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사물과 관련됨에 따라 시각적 이미지의 측면도 지닌다. 신비스런 글쓰기 판이 그러하듯이, 은유는 언어와 이미지라는 두 겹이 합쳐진 도구이다.
발견적 도구로서의 은유: 신비스런 글쓰기 판으로서 기억에 관한 프로이트의 글은 겨우 5~6쪽에 지나지 않는 소론이지만, 축척도처럼 은유에 관한 그간의 수많은 논의를 집약해놓았다. 이 글에 나오는 화제어는 모두 ‘지각 의식’, ‘기억 체계’ 같은 추상적 개념과 관련한 것이고, 매체어는 신비스런 글쓰기 판이라는 구체적ㆍ시각적 도구로부터 나온 것이다. 맥스 블랙의 표현대로 프로이트는 이런 방식으로 한 영역의 연상을 다른 영역의 연상에 투사해, 새뮤얼 존슨이 말한 ‘하나의 대상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을 얻어냈다. 그 결과 어떤 연상은 삭제되고 또 어떤 연상은 강조된다.
따라서 신비스런 글쓰기 판 은유는 필터의 기능을 한다. 커티스와 라이거루스의 분류법에 따르면 신비스런 글쓰기 판 은유는 기능적 은유로 분류될 것이다. 정신 체계의 가설적 관계들이 신비스런 글쓰기 판의 구성요소들과 기능 및 작용면에서 일치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그의 은유에서 의도한 바는 은유의 코메니우스 기능이었다. 이를 위해 프로이트는 신비스런 글쓰기 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되도록 생생하게 묘사했다. 페이비오의 이중부호화 이론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언어적이면서 이미지적인 정보가 제시됨으로써 신비스런 글쓰기 판 각 층 사이의 기능적 관계가 하나의 통합체로서 기억에 저장되고, 정보를 재생할 때는 은유의 매체어가 ‘개념적 실마리’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를 지금 이 시대로 데려와 영원히 남는 기록과 영원히 쓸 수 있는 지면의 신비스런 결합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은유를 사용할 것인지 물어본다면 어떨까. 아마도 프로이트는 이 시대의 신비스런 글쓰기 판, 정보를 받아들이고 지우고 재생하는 준 ‘정신’ 기관인 컴퓨터에 주목할 것이다. ‘정신 기관’에 관한 프로이트의 글을 분석한 에르델리는 신비스런 글쓰기 판 은유를 정보처리에 관한 최근의 은유들과 함께 분류하고자 했다. 에르델리는 단순 기능의 휴대용 전자계산기가 신비스런 글쓰기 판보다 더 나은 은유라고 주장한다. 전자계산기에 정보를 입력하면 정보가 화면 창에 뜬다. 이 정보를 예비기억장치에 저장하면, 화면 창에 또다시 새로운 정보를 띄워도 이전의 정보는 지워지지 않는다. 전자계산기는 이런 식으로 신비스런 글쓰기 판의 본질이자 프로이트가 말한 두 기능의 결합을 보여준다. 게다가 신비스런 글쓰기 판에는 없는 두 가지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신비스런 글쓰기 판은 한번 지워진 기록을 재생할 수 없다. 그러나 전자계산기는 예비기억장치에 저장된 정보를 화면 창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다. 신비스런 글쓰기 판에 없는 두 번째 기능은 영구적인 흔적도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랍층에 한번 새겨진 흔적은 더 보탤 수는 있어도 고칠 수는 없지만, 전자계산기의 경우 예비기억장치에 저장된 정보는 화면 창에 다시 불러내지 않고도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다.
신비스런 글쓰기 판을 ‘컴퓨터 이전의 정보처리들’로 논한다면 이야기를 너무 앞서나가는 셈이 된다. 기억의 은유에 관한 역사는 신비스런 글쓰기 판보다 훨씬 더 오래된 인공기억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억이 인상을 흡수하는 도구라고 생각하게 만든 플라톤 시대의 쓰기 수단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밀랍판이다.
쓰기로서 기억
서구 문명사에서 기억과 쓰기는 늘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라틴어 ‘memoria’는 ‘기억’과 ‘회고록’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지금은 거의 안 쓰지만 예전에는 영어 명사인 ‘memorial’도 ‘기억’과 ‘글로 쓴 기록’의 두 가지 의미로 썼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기억과 그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지식을 기록하려고 만든 수단 사이의 연관성을 뒷받침한다. 밀랍판에서부터 시작해 인간의 기억과 망각에 대한 해석은 인공기억들이 제공한 표현들로 이루어져왔다.
기억으로서 책, 책으로서 기억: 메리 캐루서즈는 저서 『기억의 책』머리말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 두 명, 즉 토마스 아퀴나스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나란히 거론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퀴나스, 아인슈타인과 각각 가까웠던 두 사람이 회고를 통해 그들의 위대함의 근원을 정리한 글을 인용한다. 두 글은 찬탄의 글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지만, 그 찬탄은 각각의 상반된 자질에 주목한다. 찬탄의 대상이 된 아인슈타인의 자질은 독창성과 창의성이다. 글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놀라운 상상력’의 소유자로, ‘미답의 영역’을 직관적으로 탐구해 들어갔고 관습적인 것을 거부했으며 자립의 열망 속에서 ‘고독한 길’을 택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한편 1274년 토마스 아퀴나스가 죽은 직후 시성식의 관례적인 첫 단계로 청문회가 열렸는데, 아퀴나스의 교단 동료들의 증언에서 쏟아져 나온 찬사는 아인슈타인에세 쏟아진 찬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아퀴나스 역시 우수하고 독창적인 지성의 소유자였지만, 그에 대한 찬사는 무엇보다도 그의 기억력에 관한 것이었다. 아퀴나스가 교황 우르바노 4세의 요청으로 4대 복음서의 주석서를 편찬하면서, 다른 수도원 시절에 쓰고 외운 글들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아퀴나스는 엄청나게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로, “한번 읽고 이해한 것은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다”.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퀴나스는 가끔 서로 다른 주제의 내용을 거침없이 구술해 한꺼번에 비서 서너 명이 받아 적게 했고, 또 생각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기도로 묵상한 뒤 책상으로 되돌아가면 “생각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그가 원하는 말들이 마치 책을 찾아볼 때처럼 안으로부터 떠오르곤 했다”. 망각을 모르는 듯한 그의 경이로운 기억력으로 인해 “한 장 한 장 책을 써나가는 것처럼 그의 영혼 속에 영원히 지식이 쌓여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앞의 두 사례가 캐루서즈에게 남긴 인상을 중세식으로 요약하면 ‘상상력’과 ‘기억력’의 대비라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은 과거의 사고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한 직관과 상상력에 기인한 반면, 아퀴나스의 천재성은 지식을 서서히 누적하는 도도한 기억력에 기인한 듯 보인다. 13세기에는 사고의 도구로서 기억의 가치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다. 중세에는 기억력이 영혼이 지닌 최고의 능력으로서 뇌 속 깊숙한 세 번째 뇌실에 있다고 여겼으나, 지금은 중세 사람들이 감각 바로 뒤편의 맨 앞쪽 뇌실에 있다고 여긴 상상력이 가장 가치 있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책의 은유를 고집한 것은 단지 그의 활동 영역에 의거해 그를 묘사하려는 격조 있는 시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아퀴나스의 기억을 책으로 표현한 것은 중세 시대의 책에 대한 높은 존중의 표현이기도 했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산 아퀴나스가 전 세대의 사상가들이 이루어놓은 것들로 자신의 기억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 덕분이었다. 거기에 보태, 아퀴나스 자신의 사상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책 덕분이었다. 아퀴나스의 기억, 그 시작과 끝에는 책이 있었다. ‘책장이 한 장 한 장 늘어가듯이’ 부단히 채워졌던 그의 기억이 결국 책이라는 은유가 된 사실은 아퀴나스에 대한 찬사일 뿐 아니라 책에 대한 찬사이기도 했다.
기억을 지닌 거울
고등 정신작용에 대한 비유를 보면, 눈이 어떤 감각기관보다 중요시됨을 알 수 있다. 고대에 지성은 곧 ‘자연의 빛’이었다. ‘반짝이는’ 생각이 떠오를 때 ‘빛이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많은 언어에서 ‘시각’이란 말은 ‘이해’라는 부차적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이성의 빛이라든가 반짝이는 지성이라는 표현을 쓴다. 문학작품의 한 전형에서 보듯이, 보는 사람(seer 선지자, 현인이라는 뜻이 있음)은 비록 맹인일지라도 현명하다. 문자 그대로 ‘안쪽을 본다’는 의미의 내관도 준시각적 과정이다. 눈은 ‘마음의 눈’이라는 내적인 짝을 가진 유일한 감각기관이다.
라일은 이러한 은유에 대해 ‘의사 시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러한 은유는 의식을 준감각적 상들이 투영되는 유령 극장의 이미지로 만들었다. 시각기억에 관한 이론은 늘 의사 시각적 성격을 띠었다. 망막에 맺히는 상과 시각기억의 저장 사이의 관계에 관한 가설은 훅의 인광체나 각종 광학장치처럼 물리학적으로 알려진 광학적 과정에 착안한 것이었다.
라메트리는 시각기억에 관해 1747년에 펴낸 책에서, 뇌를 “눈에 그려진 대상이 환등기 같은 것에 의해 투영되는 수질(medullary ‘피질’에 반대되는 안쪽 층을 말함) 스크린에 비유했다. 그리고 한 세기 뒤 사진의 발명으로 상을 저장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탄생했다. 19세기 중반 이래 광화학과 카메라 제작의 발전에 따라 선명한 사진이 나오면서, 시각기억에 관한 논문에는 온갖 종류의 사진 은유가 등장했다. 인간의 뇌는 빛에 민감한 감광판으로, 기억은 스냅사진으로 가득 찬 앨범으로, 의식은 다게레오타입ㆍ탈보타입ㆍ암브로타입ㆍ칼로타입의 사진들이 줄지어 전시된 갤러리로 점점 변해갔다. 1895년 영화촬영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사진은 의사 시각에 관한 지배적인 은유였다.
고정불변의 흔적, 얼어붙은 상: 카메라오브스쿠라(‘카메라오브스쿠라’의 형태를 쉽게 설명하자면 한쪽 벽에 구멍을 낸 암실이라고 할 수 있다. 밝은 곳에서 구멍을 통해 들어온 광선이 외부의 상을 맞은편 벽에 투영하는 것이다. 투영된 상은 위아래와 좌우가 뒤바뀐다)로부터 이어진 사진의 발전과 그것이 기억심리학에 남긴 자취를 돌아볼 때, 카메라오브스쿠라의 움직이는 상이 변화와 왜곡을 나타내는 은유였다면, 사진의 상은 고정불변의 기록을 나타내는 은유였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사진의 출현과 더불어 상은 그 두 가지 의미로 고착되었다. 19세기 중엽 광학 기술과 감광 무질의 발전 덕분에 신경학자와 심리학자는 망막에 시각 상이 맺힐 때부터 뇌 안쪽에서 시각기억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억 심상의 불변성까지도 받아들여야 했다. 카메라오브스쿠라 해설자 힐데브란트가 말한 것처럼 마음속에 생기는 그림자와 환영을 다듬고 색칠한다는 비유는 카메라오브스쿠라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카메라오브스쿠라에서는 새로 나타나는 모든 상이 이전의 상을 지웠지만, 사진에서는 흔적이 눈에 보이지 않게 부호화한 형태로 저장되었다가 감광판을 현상하면 다시 눈에 보이는 상으로 나타났다. 감광판에 저장된 상은 ‘에이콘(eikon)’의 흔적처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잠재적인 흔적으로 남았다. 신경학자와 심리학자가 이 은유를 거부할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뇌를 복사물이 아닌 잠재적 인상을 저장하는 도구로 바꿔놓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은유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심상이 고정되고, 가변적인 경험이 부동의 신경흔적으로 얼어붙는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받아들였다.
기억된 상이 움직임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그것이 어떤 기술 덕에 가능했는지는 누구나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앙리 베르그송의 설명을 빌려보자. ‘행진하는 군인들의 움직임을 기록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일련의 스냅사진을 찍어 매우 빠른 속도로 차례를 바꿔가며 영사막에 투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촬영술이다. 고정 자세의 군인 사진으로 행진하는 군대의 움직임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로지 사진만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면 아무리 여러 번 사진을 쳐다본들 움직임을 볼 수는 없다. 사진을 움직이게 하려면 어딘가에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그 움직임은 바로 영화 장치에 존재한다. 한 장면에서 배우들이 계속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영화 필름이 돌아가면서 각 장면에 딸린 서로 다른 사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영화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인간의 기억이란 카메라오브스쿠라와 사진의 신비로운 결합이자, 멈춤과 움직임의 결합인 영화와 같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