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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휴휴명당

조용헌 지음 | 불광출판사



조용헌의 휴휴명당

조용헌 지음

불광출판사 / 2015년 7월 / 352쪽 / 18,000원





남해 금산 보리암_ 이섭대천, 큰 강물을 건너야 삶이 이롭다



귀신, 번뇌, 인연이 끊어진 그곳, 섬

우리나라에서는 3개의 섬을 중시했다. 강화도, 남해, 그리고 제주도이다. 제주도에는 삼신산 가운데 하나인 영주산이 있었다. 바로 한라산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너무 멀었다. 배를 타고 접근하기에는 목숨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위험부담이 적었던 섬이 바로 강화도와 남해였다. 이 두 섬은 육지와 아주 가깝다. 더군다나 남해에는 ‘남해분사도감南海分司都監’이라는 팔만경 제조 분점이 있었다. 강화도가 팔만대장경 제조 본점이라면 남해는 분점이었던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당시 세계 최강국인 몽골이 고려로 쳐들어오자 살아남기 위해 절체절명의 몸부림으로 제작했던 구원의 신물神物이었다. 이 대장경을 만든 장소가 ‘강화도’와 ‘남해’라는 2개의 섬이었으니, 그 의미가 특별하다.

또한 강화도는 임진강, 예성강, 한강 세 강의 기운이 모여 바닷물과 섞이는 곳인 만큼 묘용妙用(신묘한 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남해도 마찬가지이다. 남해를 거치는 섬진강은 바로 지리산을 아래쪽에서 감아 돌아 나가는 강이 아니던가. 지리산의 기운이 남해에 모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섬진강에 뗏목을 띄우면 광양을 거쳐 결국 남해에 도착한다. 그러면서도 육지와 가깝다. 지금은 남해대교가 있어서 육지가 되었지만, 다리가 없던 시절에도 남해는 하동에서 배를 타고 곧바로 건너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남해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과 물을 건너야 도달하는 종교적 이점이 있고, 금산이라는 영적 기운이 강한 산이 있는 영지였다. 강화도에 마니산이 있다면 남해에 금산이 있다. 마니산에는 단군이 제사를 올리던 참성단이 있다면, 금산에는 보리암이 있다.

이성계의 기도터, 남해 금산 보리암

금산의 보리암은 불교의 관음 성지이기도 하다. 동해안에 낙산사 홍련암, 서해안에 강화도 보문사, 그리고 남해에는 금산 보리암이다. 그만큼 영험한 도량이다. 왜 영험한가? 영험은 바위에서 온다. 바위에는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이 광물질은 지자기地磁氣를 지상으로 분출하고 있다. 사람이 이러한 바위에 앉아 있거나 잠을 자면 지자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지기를 받는 것이다. 인체에는 혈액 속에 광물질인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다. 미네랄 가운데 중요한 성분이 바로 철분이다. 인체 내에는 철분이 있기 때문에 바위에 앉아 있으면 지자기가 핏속으로 들어온다. 지기를 많이 받으면 일단 몸이 건강해지고, 그다음에는 영성이 개발된다. 지기가 뇌세포를 통해 뇌신경의 어느 부분을 건드리면 종교체험이 온다.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거나, 산신이 나타나거나 하느님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세계 어디를 가도 바위산에는 수도원이나 종교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더군다나 바위산 주변에 호수나 바다가 있으면 더욱 영험해진다. 바위에서 분출되는 화기와 물에서 나오는 수기가 서로 어우러져 영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역》에서 말하는 ‘수화기제’이며, 남해 금산은 이러한 수화기제의 전형적인 도량이다.

남해는 전라도의 진도와 크기가 비슷하다. 넓은 섬이다. 상당수 인구가 먹고살 수 있는 섬이다. 그런데 남해에는 금산이라는 명산이 우뚝 솟아 있는 점이 아주 이채롭다. 산의 높이가 701m이다. 강원도 같은 산간 지역에서라면 높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바다 해수면 높이에서 701m는 아주 높은 산이다. 게다가 온통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바위의 크기도 큼직큼직하다. 보리암 뒤편을 보면 엄청난 크기의 거암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바닥도 암반이고, 뒤편도 암반이고, 발 아래로 내려다보면 푸른 바다가 보인다. 영지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터인 것이다. 고려가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이곳 남해에서 만들어 낸 이유도 좁혀 들어가면 금산의 영험함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이성계도 조선조 개국을 위해 이 금산에서 기도했을 것이다. 이성계가 기도할 때는 고려 말이다. 고려 말에 이미 기도객들 사이에서는 남해섬과 금산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보리암 종각 옆에는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던 자리가 있다. 전쟁터에서 늘 생과 사를 눈앞에 두고 살았던 무장 이성계는 종교적 영험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원래 죽음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해야만 신비를 인정하는 법이다.

일생 동안 노인성을 3번 보면 100세까지 산다

남해 보리암은 불교의 유적지이지만, 그에 앞서 선가仙家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보리암 암반 사이에 존재하는 해상사호海上四皓의 전설을 통해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무렵 남해에는 4명의 신선이 있었는데 해상에서 주로 머문다고 해서 ‘해상사호’라 불렀다. 천문과 지리, 그리고 병법에 통달했던 해상사오에게 가르침을 받은 3명의 비구니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왔다는 전설이 있다. 선가는 잡배들이 접근할 수 없고, 약간의 먹을 것이 있고, 기운이 강한 섬을 좋아한다. 남해는 선가에서 좋아할 만한 섬이고, 금산은 그 전형이다. 금산은 1년 중에 반절은 항상 운무에 싸여 있으니까 신선들이 종적을 감출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보리암이 선가의 유적지였다는 또 다른 단서는 절 안에 있는 ‘간성각’이라는 이름이다. ‘별을 바라보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왜 별을 바라보는가? 도가(선가)에서는 별을 중시한다. 별에서 에너지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도가는 인체의 기경팔맥奇經八脈에서 돌아가는 운기雲氣를 중시한다. 운기가 잘되어야만 건강하고 무병장수하고 나아가서는 도를 통해 신선이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인체의 운기는 미세한 경지에 들어가면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는다. 바위와 물도 그렇지만, 더 나아가면 별이다. 도교에서 이야기하는 28수도 여기에 해당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1년은 28수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이다. 7개의 별이 칠성인데, 이 칠성이 춘하추동으로 4번 돌면 28개의 별을 회전하는 셈이다. 28수와 북두칠성 다음으로 특별한 별이 삼태성과 노인성이다. 노인성은 겨울에 남쪽 하늘에 뜨는 별이다. 일생 동안 노인성을 세 번만 보면 100세까지 산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노인성은 장수를 상징하는 별이었다.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선가에서는 노인성을 유난히 사랑했다. 옛 그림을 보면 노인성은 머리 위쪽이 불룩 솟은 노인의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나타난다. 남극노인성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노인성은 여간해서 보기 어려웠다. 남해안이나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었던 별이었다. 금산의 보리암도 노인성을 볼 수 있는 뷰 포인트이다.

‘간성각’이란 명칭은 노인성을 보는 선가의 풍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 보리암에서 노인성을 보는 관습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보리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새로 나서 자동차로 상부까지 갈 수 있지만, 과거에는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걸어가는 코스에서 보리암에 접근하다 보면 사람의 두개골같이 보이는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보리암 바로 밑에 있는 이 바위에는 마치 사람의 눈처럼 구멍이 뚫린 두 개의 바위굴이 있다. 보리암에 들어가려면 이 바위굴을 통과해야만 한다. 밑에서 구멍 뚫린 바위를 보면 거대한 해골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두 개의 바위굴을 쌍홍문이라고 부른다. 비범한 장소, 신성한 장소에 진입하려면 이처럼 기이한 지형을 통과해야 한다. 쌍홍문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보리암이 보통 영지가 아님을 말해준다. 신선들이 사는 곳을 동천洞天이라고 하는데, 쌍홍문이 있음으로 해서 보리암 터는 동천의 자격을 갖추었다.

만 권의 책을 읽은 뒤 나서는 첫 여행지, 보리암

무릇 군자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걸은 후에 세상을 논하라고 했다. 보리암은 ‘독만권서讀萬卷書’를 하고 나서 ‘행만리로行萬里路’를 나섰을 때 우선순위로 가 볼 만한 영지이다. 금산에서 바라다보이는 남해바다의 푸름, 그리고 상주해수욕장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면 왜 해상사호가 이 산을 좋아했는지 짐작이 간다. 기도객들의 경험담을 들어 보면 현재 보리암의 석조 관음보살상이 서 있는 지점이 가장 기가 강한 곳이라고 한다. 금산에서 내려오는 바위 기운이 뭉쳐 있는 지점이다. 1년이면 수십만 명이 방문하는 소문난 기도터이면서도, 기운이 크게 오염되지 않는 이유는 해풍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해풍에서 오는 수기와 금산의 화기가 뭉쳐 있는 지점이 바로 관음상 앞이다. ‘주유천하舟遊天下(온 세상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유람함)’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 봐야 한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_ 먼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땅속에서 솟은 혁명불



미륵불 배꼽에 감춰진 혁명의 불씨

동학은 최수운이 경주에서 창시한 민족종교이지만 동학농민 혁명은 1984년 전라도에서 일어났다. 이 사실을 어떤 각도에서 해석해야 할까. 화약이 쌓여 있더라도 이게 폭발하려면 불씨가 있어야 한다. 그 부싯돌 역할을 한 장소가 전북 고창의 선운사 도솔암의 칠송대라는 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이다. 황토빛이 도는 바위벽에 음각과 양각을 혼합해 새긴 약 14m 크기의 마애불이다. 최근 들어서 미술사학자들이 절벽 단애斷崖에 새겨졌다고 하여 미술사적으로 마애불이라고 하지만 마애불은 족보가 없는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미륵불이 맞으며 아마 천 년도 넘게 미륵불이라 불렸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이 검단 선사에게 부탁해 새긴 부처님이라고 한다. 선운사는 백제시대부터 있었던 절인 만큼 검단 선사가 새겼다는 전설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지영의 「동학사」를 보면 도솔암의 미륵불에 숨겨진 비결을 꺼내기 위해서 손화중의 포包에 속한 접주들은 회의를 갖는다. 도솔암 미륵불의 명치 부위에 미래세상의 변화를 예언한 예언서, 즉 비결이 감추어져 있는데 이걸 꺼내는 사람이 새로운 용화세계의 주인이 된다는 전설이 있었던 것이다. 미륵불의 명치부위는 15~16m에 달하는 높은 절벽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위치다. 통상 불상 속에는 복장腹欌이라고 하여, 불상을 처음 조성할 때 다라니 경전이나 금붙이, 또는 귀중품을 불상의 배 안에 넣어두는 풍습이 있다. 바위에 새겨진 미륵불이지만 여기에도 ‘복장’을 넣어 두었던 것이다. 처음 미륵불을 조성할 당시에 미륵불의 오목가슴 부위를 사발만 한 크기로 둥그렇게 파낸 다음, 여기에다가 비결서를 복장 대신 집어넣었다는 이야기가 천 년 넘게 죽 전해 내려왔던 모양이다. 민초들 사이에서는 미륵불의 비결이 꺼내지면 한양이 망하고 새 세상이 시작된다는 믿음도 같이 이어져왔던 듯하다.

미륵불은 새 부처님을 뜻한다. 석가불이 죽은 부처라면 미륵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부처님이었으므로, 미륵불이 출세한다는 것은 곧 낡은 세상이 끝나고 새 세상이 온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미륵불은 곧 혁명하는 부처님, 즉 ‘혁명불革命佛’로 인식된 것이다. 종교적인 구세주가 혁명을 부추기는 지도자가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유교를 정도로 생각했던 조선시대에 불교의 미륵불은 위험한 신앙이요, 정권을 뒤흔드는 반체제의 신념체계였다. 1894년 당시 이남지역에서 동학의 3대 지도자라고 하면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을 꼽을 수 있다. 전봉준은 동학의 얼굴마담이자, 전체 전략을 이끌었던 전략가형 지도자였고, 김개남은 가장 전투적이었던 무장 대원들을 이끌었던 행동 대장형이었고, 손화중은 지역사회의 인심을 얻었던 재력가이자, 조직가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혁명이 되려면 초기 단계에 인원 동원이 필요하다. 사람이 모여야 힘이 생긴다. 주변의 인망을 얻은 손화중에게 사람들이 따랐고, 손화중은 사람들을 도솔암 미륵불 아래로 집결시켰던 것이다.

미륵불의 배꼽에서 발화한 동학혁명

드디어 미륵불의 배꼽에 숨겨져 있는 천고의 비밀을 연다. 이 소문이 고창, 정읍 일대를 진동시켰다. 전화도,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에 입소문으로 전해진 이 빅뉴스를 듣고 적어도 수백 명의 대중이 도솔암 미륵불 아래 모였다. 일설에는 이때 모인 인원이 3백 명쯤 되었다고 한다. 시기는 동학혁명 1년 전인 1893년 가을이었다. 신성한 미륵불의 복장을 털려고 동학도들이 모이니 선운사의 승려들은 신성 모독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동학도들은 승려들을 한 군데로 밀쳐서 새끼줄로 묶어 놓고, 청죽 수백 개와 새끼줄 수십 타래를 가지고 갔다. 이걸로 대나무 사다리를 만들어서 절벽을 올라간 다음, 거대한 미륵불의 명치(배꼽) 부위에 봉인되어 있던 석회 덩어리를 뽑아내었다. 당시에 이 비결서를 꺼내면 벼락이 친다는 속설이 있었다. 18세기에 전라감사를 지냈던 이서구가 미륵불의 배꼽을 열었는데, 거기에서는 책이 한 권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책을 꺼내는 순간 뇌성벽력이 하늘을 찢는 소리가 났고, 혼비백산한 이서구가 다시 책을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이때 이서구가 엉겁결에 본 것은 ‘全羅監司 李書九開坼(전라감사 이서구 개탁)’이라는 글자뿐이었다고 한다.

그 뒤 벼락이 무서워 함부로 미륵불 배꼽을 열지 못하다가, 손화중이 천하의 난세가 다가왔음을 감지하고 다시 한 번 배꼽을 열어 볼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손화중이 배꼽을 열고 과연 어떤 내용의 비결서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손화중이 미륵불의 비결을 꺼내서 입수했다더라. 거기에는 세상이 바뀐다는 내용이 있다더라. 이제 난리가 나는 모양이다더라’ 등의 소문이 호남 일대를 휩쓸었다. 이 사건 이후 수개월 사이에 손화중 포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전봉준은 앞에 내세워진 지도자였지만, 뒤에서 병참 역할을 담당하며 사람들을 얼기설기 조직하는 역량이 탁월했던 지도자는 손화중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동학의 폭발은 미륵불의 배꼽 비결에서 발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 년 넘게 이어져온 호남 지역 미륵신앙이 도솔암 미륵불을 매개로 하여 동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절벽의 거대한 미륵불이 낳은 자식이 동학인 셈이다. 도솔암 칠송대의 미륵불은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부처님이다.

시대적 전환기마다 땅속에서 솟은 혁명불

미륵불과 미륵신앙은 경상도에도 많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전라도의 미륵불에서 혁명에 동참하는 대중들의 동원이 이루어졌을까? 거시적으로 보면 이는 신라의 미륵신앙과 백제의 미륵신앙이 같은 미륵이지만, 신앙형태는 달랐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신라는 통일 전후에 미륵이 집권층과 상류층의 신앙으로 정착되었다. 화랑을 다른 이름으로 ‘미륵선화彌勒仙花’라고 불렀을 정도로, 미륵은 신라의 지배계층을 뒷받침해 주는 체제이념으로 갔다. 이에 비해 백제는 망했다. 미륵이 지하로 내려간 것이다. 핍박받는 민초들의 신앙이 된 것이다. 그래서 옛 백제, 특히 호남지역의 미륵불들은 대개 ‘하체매몰불下體埋沒佛’의 형태가 많다. 돌미륵이 반쯤은 땅에 묻혀 있고, 반쯤은 지상에 드러나 있는 형태인 것이다. 김삼룡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형태의 미륵불은 땅속에서 미륵불이 솟아 나오고 있는 상황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땅은 밑바닥, 민초를 상징하고, 힘겹게 사는 계층과 이미지가 부합되어 호남의 미륵불들은 민초들의 염원을 대변하는 부처님이 되어 버렸다.

호남 미륵신앙의 3대 사찰을 꼽는다면 익산의 미륵사와 김제의 금산사, 그리고 고창의 선운사이다. 세 사찰의 공통점은 쌀 수확이 풍부한 곡창지대에 자리 잡고 있고, 농업용수를 공급할 커다란 호수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호남 ‘3호湖’라고도 부른다. 평야지대의 기준에서 보면 미륵사나 금산사보다 선운사가 약간 떨어지는 조건이지만 줄포만이라는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있다는 점에서는 훨씬 조건이 좋았다. 줄포만은 고대 해상 물류의 요충지였다. 중국과 일본으로 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선운사는 변산반도 일대의 물류가 집중되는 줄포만과 붙어 있다시피 해서 해상세력의 거점 사찰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더군다나 줄포만 일대는 고대의 현금과 같은 역할을 했던 천연 염전지대이다. 선박을 통해서 정보와 돈이 들어오고, 염전에서 돈 들어오고, 육지의 평야지대에서 쌀 들어오던 요충지의 사찰이 바로 선운사였다.

역사적 자료는 없고, 구전으로만 전해져오는 정보에 의하면 선운사는 조선후기 반체제 비밀 결사 승려들의 조직인 당취黨聚들의 거점 사찰이기도 했다. 영광 불갑사 해불암에 주석하던 금화 스님이 당취 대장이었고, 당취들의 훈련도장이 바로 선운사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금화는 전봉준에게 병법을 전해준 스승이기도 하여, 동학 때에도 동학군들이 해불암은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했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선운사는 해상 교통의 요지여서 당취들이 비밀리에 모이기 쉽고, 관군의 공격이 있을 경우에는 신속하게 탈출하기에도 좋은 지점에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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