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면 유대인처럼
박기현 지음 | 원앤원에듀
아버지라면 유대인처럼
박기현 지음
원앤원에듀 / 2015년 4월 / 328쪽 / 15,000원
1장 자녀교육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다
어디에서나 꽃이 되는 자존감 높은 아이들
자존감이 낮아서 고민에 빠져 있는 자녀들이 많이 있다. 이는 칭찬을 자주 듣지 못했거나 혹은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 낳은 결과가 대부분이다. 또는 형제나 자매끼리 자주 비교당했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이다.
필자가 아는 한 청년은 잘 생기고 활동적이며 명랑하다. 그런데 대인관계는 의외로 평탄하지 않다. 그는 자신이 회사 안에서 일적으로 남들에게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서류도 사정사정해서 받는다. 감사실에 근무하는 이 청년의 주 업무는 다른 부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 일을 왜 하는지, 회사 사규에 맞게 매뉴얼대로 일을 잘하고 있는지 등을 물어보고 답변 자료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업무를 너무나 힘들어했다. 남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마치 폐를 끼치는 것 같고 미안한 일 같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 청년은 왜 이런 마음을 갖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결과만 보고 함부로 칭찬하지 않는다: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녀가 시험이나 학업, 운동 등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구, 잘했구나! 뭐 사줄까?” 그러나 자녀가 무언가를 못했을 때는 어떤가? 한 학생이 필자에게 상담을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빠는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만 보고 맨날 야단을 쳐요. 그래서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졌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학생은 영어는 잘하는데 국어 성적은 항상 평균 이하였다. 그러니 이 아버지는 자녀가 국어도 영어처럼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잔소리를 한 것이겠지만 학생은 그것이 못내 속상한 것이다. “영어는 참 잘 했네…. 이번 학기에 애썼다. 아빠가 용돈 좀 올려줄게. 그런데 국어는 좀 떨어졌구나. 다음에는 한 10점쯤 더 올려보자. 국어 10점 더 올리면 너 좋아하는 놀이공원 보내줄께!” 이렇게 말하면 좀더 자녀에게 동기가 부여되지 않을까?
사실 부모가 칭찬해주거나 자랑할 일이 없을 정도로 공부나 운동에 재주가 없는 자녀들이 있다. 반드시 있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기 자식은 전부 재주가 있을 거라고 믿어 잔소리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 아버지는 좀 다르다. 그는 성경에서 배운 대로 자녀들을 가르친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 잠언 27장 21절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한다는 말은 무조건 칭찬만 해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칭찬할 것은 칭찬해주고 따질 것은 철저히 따지는 것이 유대인 아버지들이다. 결과만 놓고 함부로 칭찬을 해주다가는 버릇이 나빠질 수도 있다. 유대 사회는 개인주의가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유대인 아버지들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늘 자녀의 자존감을 세워준다: 유대인 아버지들은 칭찬뿐 아니라 꾸중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유대인 아버지는 자녀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에만 야단친다. 누구는 안 그런가 하겠지만 그 기준이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어린 자녀를 꾸짖어야 할 때 자녀가 선한 일을 했는가 악한 일을 했는가에 기준을 두고 있다. 특히 선과 악의 기준을 사람의 도덕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자녀가 남에게 사랑을 베풀고 친절한 행동을 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칭찬해주지만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 즉 십계명을 어기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할 때는 엄하게 야단을 치는 것이다. 그러면서 늘 자녀의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 애를 쓴다. 특히 유대인 아버지들은 자녀들 스스로가 자신들은 ‘하나님이 창조한 선한 창조물이므로 마땅히 자랑할 만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유대인 그들의 자존감 세우기 방법은 좀 독특한데, 이런 식의 대화는 정말로 인상적이다. 간단한 문답을 통해 여호와 신앙을 가르치고 한 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얘들아, 여호와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왜 마지막에 창조하셨는지 아니?”
“사람이 살기 편하라고요.”
“사람이 제일 소중하니까요.”
“그래, 맞았어. 창조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어느 민족이 가장 소중할까?”“그거야 유대인이죠. 하나님께서 우리 유대인을 선민選民으로 택하셨잖아요.”
“맞아.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너희를 내 품에 보내주셨을까?”
“아빠가 우리를 사랑하실 거라고 믿고 보내셨을 거예요.”
“그렇단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소중하고 그 중에서도 제일은 유대민족이며 너희 둘이 유대민족 중에서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란다. 그러니 아빠를 자랑스러워 하고 너희를 자랑스러워 해야 해!”
<유대인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벽에 붙여 두고 읽게 하는 교훈>
? 스스로의 힘으로 안 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 양심에 따라 행동했으면 조금도 후회하지 말라.
?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남도 사랑하지 못한다.
? 내 탓도 하지 말고 남의 탓도 하지 말라.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 남 때문에 벌어진 일을 나 때문이라고 탓하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자다.
? 배우면 배울수록 낮아지게 된다.
? 교육이라는 것은 배우면 배울수록 무지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지혜는 아무런 열매가 없다.
? 돈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만족함이 없다.
? 이 순간만 피하자고 나서면 다음 순간에 또 피할 것이 찾아온다.
? 사람이 하는 거짓말에 3가지가 있다. 하나는 네가 한 거짓말, 둘째는 네가 한 진짜 거짓말, 셋째는 여기저기서 네가 들은 통계들이다. 그러니 입을 다물면 거짓이 줄어든다.
상당수 자녀들이 밖에서 사랑을 받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한 자녀가 밖에 나가 사랑받기란 쉽지 않다. 칭찬과 격려 못지않게 사랑을 많이 나눠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랑은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유대인 아버지처럼 부모가 사랑을 베풀며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줘야 한다.
2장 가족 모두가 아버지만의 권위를 존중한다
모든 권위는 위에서부터!
권위와 질서로 이루어진 유대인 가정 안에는 아버지가 있다. 유대인 사회는 전통적으로 권위를 중시해왔다. 이 권위의 위계를 도식화하면 ‘여호와 하나님 ? 토라(모세오경) ? 탈무드 ? 랍비 ? 아버지 ? 맏아들’ 순으로 나타낼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인의 유일한 하나님이니 맨 위가 당연하고, 토라는 모세가 쓴 오경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았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탈무드는 성경을 바탕에 둔 삶의 지혜와 해석, 실제 적용 가능한 처세법, 우화 등을 담은 교훈집이다. 또 동네마다 마을마다 신앙과 삶의 처세를 지도해온 멘토가 랍비이며, 이 랍비의 지도를 받은 자가 바로 가정의 가장들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즉, 아버지의 지도는 다시 맏아들 장자들에게 전해진다.
유대인 사회가 건설된 이래로 유대인들은 이 전통과 권위를 결코 깨지 않은 채 철저히 지켜왔다. ‘위에서 아래로’라는 질서의 법칙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부부 간에도 적용되며 기업과 학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민족의 우수성: 600만 명으로 1억 명이 넘는 아랍인들과 싸워야 하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에서도, 유대인들은 그들끼리 똘똘 뭉쳐 이스라엘을 지켰다. 나아가 손바닥만 하던 땅덩어리를 키워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영토로까지 확장했다. 이 힘은 모두 권위를 중시한 사회 분위기를 철저히 지켜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게 유대인들은 중근동에서 팔레스타인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왔다. 또한 유럽과 미주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를 독차지하면서 세계의 여론과 경제를 주름잡게 된 민족 역시 유대인이다. 물론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것이 유대인의 탁월한 단결력과 우수성을 부정하진 못한다.
유대인은 바로 이런 민족이다. 필자는 이 민족의 우수성이 아버지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단정한다. 모든 것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즉 우리는 지금 가정교육에 실패해 사회가 혼란해지고 있는 것이며, 유대인들은 가정교육에 성공해 오늘날의 위치에 선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별로 없고,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이건 서구 사회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아버지가 막강한 권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점이 바로 한국 사회와의 차이를 낳는다.
유대인의 이런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문헌이 신약성경에 나타난다. 서기 60년경에 사도 바울이 기록한 신약성경 로마서의 일부분이다. 사도 바울은 순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자였으며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석학이었다. 우리나라에 빗대자면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박사 출신 정도인 것이다. 그가 전한 권위에 대한 기록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해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해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 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 로마서 13장 1~3절
이처럼 권위를 중요시하는 가장 좁은 의미에서의 공동체가 바로 가정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 존재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질서를 가르친다: 유대인 아버지는 가정교육에서 가장 먼저 질서를 가르친다. 아버지, 어머니, 장남, 차남순으로 모든 것을 서열화해 절대 순종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므로 유대인 문화는 평등 문화가 아니라 종속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유대인 가정이 고리타분하다거나, 자녀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살아야 할 정도로 지나치게 권위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훨씬 개방적이고 소통적이다. ‘소통적’이란 말은 어법상으론 틀린 말이지만 이 말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다. 전통적인 유대인 가정에서는 세계 여느 가정보다 대화와 소통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
유대인 가정에 방문해보면 가족들이 쓰는 수저, 수건, 칫솔, 연필 등 생필품조차 서열화해 구분해두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름이 쓰여 있는 경우도 있고 색깔로 구분되어 있기도 한데 어느 것 하나 서로를 침범하는 일이 없다.
유대인 아버지는 가문을 중시하고, 혈연과 뿌리를 철저히 가르친다. 그래서 유대인 아버지의 핏줄 교육은 지나치리만큼 철저하다. 그렇다고 자녀의 위치가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철저하게 보호되고 존중된다. 유대인 아버지들은 자녀가 장년이 된 후부터 축복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산모의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하심에 힘입어 태어나며 하나님이 한평생을 눈동자처럼 보호해주신다고 믿었다. 태아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보호한다는 것은 유대 신앙의 기본이다. 그래서 자녀가 태어나는 것은 큰 축복이요 자녀가 없는 것은 저주라고 여겼으며, 자녀 하나하나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고귀하고 귀중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했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해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 시편 139편 13~16절
유대인의 자녀 출산 과정에 대한 신앙적 논리를 자세하게 정리해놓고 있다. 마치 집짓는 이가 자신이 설계한 집이 어떻게 건축되었는지를 설명하듯 하나님의 설계로 태어난 자식의 출생 과정을 설명하며 하나님의 축복과 간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모든 자녀에 대해 하나님이 이미 설계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 계획대로 쓴다함은 부모에게 있어 자녀에 대한 사랑이 더 깊게 발전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유대인 부모는 자녀의 출생일부터 세례받는 날, 성인식, 입학식, 입대하는 날, 결혼식 등 모든 중요한 행사 일정을 기록해두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권위와 질서를 귀중히 여기셨다. 아버지를 존귀한 위치에 두고 자녀를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로 세웠다. 함께 존중받는 것이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평등해지다 못해 무시당하는 사태가 오늘의 교육대란을 부추긴다. 아버지들이여, 자기 밥그릇을 스스로 챙겨라. 자녀들이여,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그들을 이해해드려라. 그렇지 않으면 가까운 장래에 똑같은 대접을 너희들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법칙이다.
3장 유대인답게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알려준다
베스트가 아닌 유니크한 아이로 키우는 방법
학교에 다녀온 자녀에게 우리나라 아버지들 대부분은 이렇게 묻는다. “학교에서 별일 없었니?” 그러면 곁에 있던 어머니도 끼어들어 이렇게 묻는다. “오늘 선생님께 뭘 질문했니?” 이 간단하지만 극명한 문화적 차이가 오늘의 한국과 이스라엘의 차이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어봐야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사실 필자의 부모 세대만 해도, 아니 필자 세대만 해도 ‘침묵은 금, 웅변은 은’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불필요한 말을 내뱉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아버지는 돈만 갖다주고, 교육은 어머니 혹은 학원 선생님이 맡는 식으로는 자녀를 제대로 키우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말았다. 정보의 홍수 속에 자녀들은 일찌감치 대화의 문을 닫고 휴대폰과 인터넷, 게임기 속에 파묻혀버렸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가족 간 소통 자료를 보면 하루 평균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30분 미만이라는 응답자가 전체의 42.1%였다고 한다. 심지어 6.8%는 전혀 대화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전혀 대화하지 않는다는 응답자의 수치가 사실보다는 축소된 결과라고 본다. 조사를 하니까 마지못해 이야기를 하는 척 응답한 수치도 적지 않게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필자가 만나고 가르치는 학생들의 경우를 보면 대개 식탁에서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때문에 대화가 거의 없다고 한다. 게다가 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가족이 모두 바쁘다 보니 함께 식사하지 못하는 날들이 더 많아 하루에 10분 대화하는 것도 사실상 많이 하는 편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아들과 부지런히 이야기를 나누려고 애쓴다. 가끔씩 아들 침대에 끼어들어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관심사를 털어놓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잔소리 하는 엄마에게 맞서 공동전선을 펴면서 적(?) 앞에 연합군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필자가 아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하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필자의 아버지는 가부장적 권위가 강한 분이셨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싫어하셨고,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펼치는 것을 건방지게 생각하셔서 언짢아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기도 했다. 또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공화당이셨고, 필자는 좌파 민주당이라서 정치적으로 늘 견해가 달라 밥상머리에서 곧잘 싸움이 붙곤 했다. 물론 백전백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말문을 닫게 되었고, 급기야 사회로 나가면서 점점 더 멀어졌다. 철이 들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졌을 때는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소통이 잘 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실어증에 치매까지 겹치면서 도무지 말을 나눌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