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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탄생

케빈 애슈턴 지음 | 북라이프



창조의 탄생



케빈 애슈턴 지음

북라이프 / 2015년 6월 / 416쪽 / 16,800원





창조에 마법의 순간은 없다



창조는 모든 인류의 공통 언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창조의 결과물이거나 창조에 영향을 받았다. 창조 행위가 드물다고 말하기에는 세상에 너무나 많은 창조가 존재한다. 의복, 벽, 창문 같은 창조물이 당신을 따뜻하게 혹은 시원하게 해준다. 사과, 젖소를 비롯한 여러 농축산물처럼 겉보기에는 자연 그대로처럼 느껴지는 대상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거래, 번식, 사육, 양식, 보존 및 운송 혁신의 결과로 탄생한 창조물이다. 또한 당신은 창조 덕분에 태어났다. 태내에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일어나고 임신 과정을 거쳐 당신이 태어나기까지 여러 창조물의 도움을 받았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당신을 죽일 수도 있었던 질병과 위험을 제거했고, 태어난 후에는 예방접종을 받았으며 외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았다. 최근에도 당신은 창조물로 씻고 먹고 갈증을 해소했다. 창조 덕분에 당신은 지금 있는 바로 그곳에 있다.

창조물은 우리 내부와 주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눈만 뜨면 볼 수 있고 귀만 열면 들을 수 있다. 창조물은 우리가 하는 일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그 자체이다. 창조물은 우리의 기대 수명, 신장과 체중과 걸음걸이, 생활 방식, 사는 곳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 전부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기술을 바꾸고 기술이 우리를 바꾼다. 이는 인류가 도구 개선을 생각하기 시작한 이래 2,000세대에 걸쳐 사실이다.

우리가 창조하는 모든 것은 도구, 즉 목적을 가지고 제조한 물건이다. 물론 동물들도 도구를 이용한다. 그러나 확실히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가 더 뛰어나다. 동물들보다 인간이 쓰는 도구가 더 월등해진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가장 초창기 도구들은 끝이 뾰족한 돌이었다. 이후 일부 인류 종족은 섬세한 세공과 거의 완벽한 대칭을 요구하는 양날 주먹도끼를 만들었다. 그러나 사소한 조정을 제외하면 인간이 사용했던 도구는 100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만든 초기 주먹도끼의 디자인은 비버가 만든 댐이나 새가 지은 둥지와 마찬가지로 사고력이 아니라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현생 인류와 닮은 인류는 20만 년 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 인류가 호모사피엔스다. 호모사피엔스가 사용했던 도구도 단순하고 바뀌지 않았다. 그들의 뇌 크기는 우리와 같았고 서로 마주보는 엄지손가락, 감각, 힘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5만 년 동안 호모사피엔스는 동시대의 다른 인류 종족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을 전혀 만들지 않았다. 그러다 5만 년 전, 변화가 일어났다. 호모사피엔스가 사용해왔던 조잡한 석기가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그들의 부모, 조부모가 사용하던 도구와 똑같았다. 도구를 만들기는 했지만 개선하지는 않았다. 그저 진화의 산물이었을 뿐 의식적인 창조물이 아니었다. 그때 인류 역사상 단연코 가장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호모사피엔스 중 한 사람이 도구를 보고 “나는 이 도구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어.”라고 생각한 날이었다. 이 사람의 후손들을 가리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고 부른다. 그들이 우리의 조상이다. 그들은 우리들이다. 그 인류가 만들어낸 것은 창조 그 자체였다.

5만 년 전 어떤 진화상의 불꽃이 혁신에 불을 붙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화석의 기록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다. 뇌의 크기를 포함하여 우리 신체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따라서 유력한 변화 대상은 우리 머리, 즉 우리 뇌세포의 정교한 배열과 뇌세포 간의 연결이다. 아마도 15만 년에 걸친 미세한 조정의 결과로 머릿속의 어떤 구조가 변화한 듯하다. 그 변화가 무엇이었든 이는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현재까지도 사람들 안에 계속 존재한다. 행동 신경학자 리처드 카셀리는 “개인 간에 상당한 질적 및 양적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창조 행동의 신경생물학적 원리는 가장 덜 창조적인 사람부터 가장 창조적인 사람에 이르기까지 동일하다.”라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모두 창조 정신을 지니고 있다.

이를 보면 창조성 신화가 완전히 터무니없는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창조 행위는 희귀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창조하기 위해 태어났다. 우리 중 일부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창조에 뛰어난 듯 보인다면 이는 말하기나 걷기와 마찬가지로 인간다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동등하게 말을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동등하게 창조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창조할 수 있다. 인류가 지닌 창조성은 일부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나뉘어 있다. 인간의 창조물은 참으로 많고 대단하다. 이는 분명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여러 단계에 걸쳐 비롯되었을 것이다. 발명은 사소하고 지속적인 일련의 변화가 서서히 축적되는 과정이다. 그중 일부 변화들은 새로운 기회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는데, 우리는 이를 가리켜 도약(약진)이라고 부른다. 미미한 변화들도 있다.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때로는 한 사람, 보통은 여러 사람 사이에서, 때로는 여러 대륙에 걸쳐 혹은 여러 세대 사이에서, 때로는 몇 시간 혹은 며칠 그리고 가끔은 몇 세기에 걸쳐, 작은 변화가 다른 변화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쇄신의 릴레이를 통해 전해 내려오는 혁신의 바통을 언제나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창조 행위는 공생하고 뒤섞인다. 그 결과, 인간의 생활은 이전에 발생한 모든 인간이 만든 창조물들의 합에 의해 성립한다. 우리 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물체에는 그것이 오래되었든 새것이든 오래전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생각 그리고 용기, 즉 5만 년에 걸쳐 축적된 새로운 창조물이 담겨 있다. 인간의 도구와 기술은 인간성이자 유전적 특성이고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영원히 변치 않을 유산이다. 우리가 만든 물건들은 우리 인류의 이야기이다. 모든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아프리카 말도, 아시아 말도, 유럽 말도 아닌 인간의 말이라는 공통 언어로 쓴 이야기이다.

창조 행위가 인간적이고 선천적이라는 사실에는 수많은 장점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우리 모두가 대략 같은 방식으로 창조한다는 사실이다. 개인이 지닌 역량과 성향 때문에 물론 차이는 있지만 이는 온갖 수많은 유사점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차르트, 아인슈타인과 우리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많다.



역경을 예상하라



창조자를 유혹하는 쥐덫을 피하라



쥐덫은 미국에서 특허 출원이 가장 빈번하고 가장 흔하게 재발명되는 기구 중 하나다. 매년 약 400건에 이르는 쥐덫 특허 출원이 발생한다. 그중 약 40건 정도가 특허를 교부받는다. 지금까지 총 5,000건이 넘는 쥐덫 특허가 발급되었다. 그러나 그중 조금이라도 수익을 낸 특허는 20건이 채 되지 않는다.

각각의 특허는 다양한 방법으로 쥐를 잡았다. 그러나 1880년대 말 일리노이 출신 발명가 윌리엄 후커가 최초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쥐덫을 만든 이후 쥐를 잡는 방법이 바뀌었다. 후커가 만든 쥐덫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쥐가 미끼를 물 때 발생하는 자극에 의해 용수철이 부착된 막대가 움직이는 바로 그 형태이다. 후커가 만든 쥐덫은 몇 년 안에 완벽하게 개선되었다. 이 덫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장 널리 사용되는 디자인이다. 이 덫은 연간 2억 5,000만 마리의 쥐를 잡으며 다른 모든 경쟁 제품을 합친 판매량보다 두 배 더 많이 팔리는 데다 가격은 1달러도 채 되지 않는다. 후커 제품 이후로 만들어진 5,000종의 쥐덫 대부분이 퇴짜를 맞았다.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오자 ‘발명 홍보 회사’라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평가하고 특허를 출원하고 이 제품을 팔아주겠다고 약속하며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에 광고를 낸다. 이런 기업들은 ‘평가’를 명목으로 수백 달러에 달하는 수수료를 부과한다. 평가 결과는 거의 언제나 ‘이 아이디어는 특허를 받을 수 있으며 가치가 있다’고 나온다. 그런 뒤 법무 및 마케팅 서비스 명목으로 또 수천 달러를 요구한다. 발명가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특별하게 선택되었다는 기분을 느낀다. 그들은 발명 홍보 회사가 특허권 사용료 일부를 수익으로 받기 위해 자기 아이디어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줄 것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런 회사들은 모든 수익을 선취 수수료에서 올린다. 발명품 마케팅이나 발명가에 대한 원조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1999년 마침내 미국 연방 정부가 ‘국가의 가장 귀중한 천연 자원인 개인 발명가’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 발명가 보호법’에 서명하면서 법적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연방거래위원회가 전국아이디어센터, 미국발명조합 등과 같은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던 발명 홍보 회사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데이비슨 앤드 어소시에이츠라는 회사는 1,100만 달러를 납부하고 자사 서비스를 거짓으로 전달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연방거래위원회와 분쟁을 해결했다. 이후 이 회사는 이름을 데이비슨 디자인으로 변경했다. 데이비슨 디자인은 펜실베이니아 주 오하라에 있는 사옥에 ‘인벤션랜드(Inventionland)’라는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데이비슨 디자인은 발명품 상당수가 ‘고객 제품’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실은 데이비슨 자신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들이다.

연방거래위원회는 화해 조건으로 데이비슨을 통해 수익을 얻은 고객 수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데이비슨이 발표한 2012년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평균 1만 1,000명이 이 회사와 계약을 맺지만 그들 중 단지 세 명만이 이윤을 냈다. 회사가 설립된 1989년부터 2012년까지 23년 동안 이 회사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얻은 사람은 27명으로 연평균 1명을 간신히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슨이 고객들로부터 수수료 명목으로 받은 총금액은 연간 4,500만 달러에 달한다. 데이비슨이 고객의 발명품 판매로 얻는 수익은 전체 수익의 0.001퍼센트에 불과하며 이는 고객이 받는 특허권 사용료의 10퍼센트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데이비슨은 특허권 사용료로 연간 450달러를 벌고 데이비슨 고객 전체는 연간 이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로 4,500만 달러를 내고 총 4,050달러를 받는다. 즉 투자 금액 1만 달러당 돌아오는 수익은 1달러 미만이다.

유감스럽게도 당신의 아이디어를 처음 듣고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달리 원하는 것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발명을 할 때 예상해야 할 사람들의 당연한 반응은 거부이다. 당신이 아무리 더 좋은 쥐덫을 만들어도 세상이 알아서 당신의 집까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닦아야 한다.

창조의 역경에 제대로 대응하는 법



거부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된 반사 작용이다. 우리가 새것을 처음 보았을 때의 반응은 의심, 의혹, 공포이다. 이는 올바른 반응이다. 아이디어는 대부분 나쁘다. 창조자들은 거부를 예상해야 한다. 거부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어떤 새것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거부는 결코 포기를 위한 입장권도 아니고, 그 작업이 나쁘다는 의미도 아니다. 또한 ‘우리’가 나쁘다는 의미도 아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거부는 정보가 된다. 거부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보여준다. 거부는 핍박이 아니다. 거부에서 독성을 빼내고 나면 남는 부분은 유용할 수도 있다.

자신이 만든 낙하산을 실험하기 위해 에펠탑에서 뛰어내렸던 발명가, 프란츠 라이켈트는 거부 혹은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발명품에 대해 결함을 지적한 전문가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얻은 데이터조차 무시했다. 그는 마네킹을 사용하여 자기가 만든 낙하산을 시험했고 마네킹은 추락했다. 6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는 성공할 때까지 계속해서 자기 발명품을 수정하는 대신 갖가지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아이디어에 매달렸고 자기가 발견한 첫 번째 해결책에서 생각하기를 멈춰버렸다.

위대한 창조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자기가 만든 발명품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창조물은 바뀔 수 있다. 문제-해결 고리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라이켈트의 고리는 시작하자마자 끝났다. 그의 비극은 비약으로 문제를 풀려는 사례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그는 문제를 발견했고 이를 일련의 단계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비약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동일성에 희생된 순교자였다.

실패는 남이 없는 곳에서 했을 때 가장 좋은 일종의 거부이다. 가장 위대한 창조자들은 자기 자신을 가장 혹독하게 비판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기가 한 일을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유심히 살피며 더 정확한 기준과 비교하여 시험한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창조물 대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거부하기 전에 이미 수차례 스스로 거부한다. 세상은 당신을 거부하고자 한다. 따라서 남이 없는 곳에서 할 수 있었을 실패라면 절대 공개적으로 하지 말라. 남이 모르는 실패는 회복하는 데 더 빠르고 더 저렴하며 덜 고통스럽다.

우리 본능은 우리를 돕지 않는다. 애매모호함은 해결책을 빨리 찾도록 우리를 압박하고, 거기서 오는 불편함과 더불어 자존심 문제도 존재한다. 자존심과 그 반대인 수치심은 우리로 하여금 실패를 두려워하고 거부에 발끈하게 만든다. 우리의 자아는 거부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첫 번째 시도에 정답을 내놓고 손쉽게 돈을 벌고 하룻밤 사이에 성공하고 싶어 한다. 천재, 깨달음의 순간, 여러 마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창조성 신화는 노력 없이 이기고, 땀 흘리지 않으면서 얻고,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 안의 일부분에 호소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위대한 창조자들은 가장 훌륭한 전진이란 면밀히 조사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잘못과 오류를 발견하고, 도전하고 변화하기 위한 일보 후퇴일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안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서는 미로에서 탈출할 수 없다.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뒤에 있기도 하다. 거부는 교육한다. 실패는 가르친다. 둘 모두 아픔을 준다. 방심만이 위로가 된다. 그리고 이 중에서 방심만이 파괴로 이어진다.

거부와 실패는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다. 우리가 창조자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요소는 우리가 얼마나 지적인지, 얼마나 재능을 갖췄는지, 혹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가 아니라 창조의 역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세상을 바꾸기가 왜 그렇게 어려울까? 그것은 세상이 변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받지는 못한다



해리엇 효과: 가장 유명한 사람이 더 많이 인정받는다



인간의 게놈 정보가 전부 밝혀진 지금 시대에도 주도권 경쟁은 백인 남성에게 유리하게 기울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해리엇 주커먼이라는 사회학자가 50년 전에 처음으로 증명한 불균형 때문이다. 주커먼은 과학자들이 독자적으로 연구할 때와 집단으로 연구할 때 중에서 어느 때 더 큰 성공을 거두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그녀는 노벨상 수상자 41명을 인터뷰한 뒤 특별한 사실을 발견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많은 수상자들은 연구팀에 들어가기를 꺼려했다. 그 집단이 이룩한 결과에 대해 개인이 지나치게 많은 명성을 얻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 노벨상 수상자는 “세상은 어떻게 ‘공로를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기이한 태도를 취합니다. 이미 유명한 사람에게 공로를 인정하려는 경향을 보이죠. 가장 유명한 사람이 더 많은 공로, 지나치게 많은 공로를 인정받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주커먼 이전에는 학자들 대부분이 과학계는 거의 능력을 중시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주커먼은 과학계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누가 연구를 했는가와 무관하게 저명한 과학자일수록 더 많이 인정받았고 덜 유명한 과학자들이 더 적게 인정받았다. 주커먼의 발견은 “무릇 있는 자는 더 많이 받아 풍족하게 되리라.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리라.”라는 이른바 ‘마태 효과(Matthew effect)’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주커먼보다 훨씬 더 저명한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그녀가 발견한 결과에 붙인 이름이다. 주커먼이 그 효과를 먼저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로는 머튼에게 돌아갔다. 머튼은 전적으로 주커먼의 공로라고 인정했지만 이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주커먼이 예측한 대로 머튼은 이미 인정받고 있었고 따라서 더 많이 인정받았다. 둘 사이에 언짢은 감정은 없었다. 주커먼은 머튼과 공동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이후 두 사람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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