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후의 미국
박선규 지음 | 미다스북스
미국 이후의 미국
박선규 지음
미다스북스 / 2015년 1월 / 352쪽 / 15,000원
1부 국가와 국민, 우리는 운명공동체
상처 속에서 더 강해지는 사람들
보스턴 스트롱: 2013년 4월, 보스턴 마라톤 대회 결승점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는 참으로 끔찍했다. 보스턴이라는 유서 깊은 도시에서 거행된 평화와 축제의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테러는 끔찍했지만 그 직후부터 보스턴 시민들이 보여준 놀라운 일체감과 헌신, 봉사의 모습은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다음 날 보스턴 레드삭스 운동장에 내걸린 현수막이 인상적이었다. “보스턴은 한 도시가 아니다. 가족이다.” 이 현수막이 모든 상황을 감동적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테러 사건 바로 1년 뒤인 2014년 4월 15일, 외신을 전하는 TV 화면에 시선이 고정됐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에 바로 1년 전 테러의 피해자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BOSTON STRONG’이라고 쓰인 셔츠를 입고 있었다. 맨 앞에는 테러 현장에서 두 다리를 잃은 바우만 씨의 휠체어가 섰고 그 뒤로 의족과 목발에 의지한 다른 피해자들이 따랐다. 또한 ‘4ㆍ15 STRONG 그룹(사고 당시 결승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그날을 잊지 말자고 만든 모임)’ 멤버들이 함께했다. 관중들은 뜨거운 기립 박수로 그들을 맞았다. 경기에 앞서 20분 동안 그들은 관중들과 함께 1년 전 테러로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여 그날을 잊지 말자는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외야 펜스 쪽에는 50개 주에서 보낸 격려 메시지들이 내걸려 있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6개월 전에 슬픔에 잠긴 주민들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기쁨을 선물했었다. 놀랍게도 그 전해에는 리그 최하위에 머문 팀이다. 기적 같은 우승 후 선수들은 “테러로 실의에 빠진 보스턴 주민들에게 용기와 기쁨을 주기 위해, 다시 일어서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단순히 이 지역을 연고로 하는 야구 구단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하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가족임을 분명히 확인시켜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감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우승을 축하하는 퍼레이드 중에도 깜짝 이벤트가 진행됐다. 테러가 발생했던 마라톤 결승선 근처에 차를 세운 그들은 우승컵을 결승선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BOSTON STRONG’이라고 쓰인 야구복을 입혔다. 현장에 있던 수천 명의 주민들은 환호했고
를 합창하며 하나가 됐다. 언론은 “테러의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끔찍한 곳을 회복과 승리의 상징으로 바꾸는 거룩한 의식이었다”고 평가했다.
2014년 4월 15일 오후 2시 49분(현지 시각), 백악관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며 30초 동안 묵념했다. 대통령과 함께 1년 전의 테러를 기억하는 수많은 보스턴 주민, 미국 국민들도 침묵 속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그리고 가는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압력솥 폭탄이 터져 끔찍했던 현장에서는 짧은 기념식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우산도 들지 않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1년 전을 기억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우리는 대처했고 견뎌냈고 극복했다. 결승선은 (테러범들의 것이 아닌) 우리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드발 패트릭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테러는 엄청난 아픔이었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시련을 통해 더욱 결속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왜 강한지 깨닫게 된다. 상처를 피하지 않고 아픈 기억으로 기죽지 않고 오히려 그에 맞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는 모습, 끔찍한 아픔조차 통합과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모습, 대통령부터 지역 주민들까지 하나가 되는 이런 모습에 숙연해지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런 조직이 어찌 강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아프고 부끄럽지만… 바로 세우기 위해 공개한다: 2014년 12월 9일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 상원의 정보위원회가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CIA가 자행한 잔인한 고문 사실을 전격 공개했기 때문이다. 17일 연속 잠 안 재우기, 266시간 동안 관 같은 박스 속에 가둬두기, 항문을 통해 물 주입하기, 눈 가리고 머리에 총구 대기…. 공개된 고문 방식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잔인하고 지극히 반인간적인 행위가 ‘강화된 심문’이라는 이름으로 8년 동안 자행됐으며 최소 39명이 그 대상이었다는 것이 공개된 보고서의 내용이었다. 보고서는 정보위원회가 CIA의 관련 자료 600만 쪽을 5년여 동안 면밀하게 검토해 완성한 것이었다. 공개된 내용 가운데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 외국에 설치된 5개 비밀수용소에 최소 119명 이상이 구금됐으며 수용소 바닥의 쇠사슬에 발이 묶인 채 저체온증으로 숨진 구금자가 있다는 사실도 포함돼 있었다.
고문 내용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그런 고문이 효과도 없었다는 결론이었다. 보고서는 고문을 통해 테러 음모를 막거나 테러 지휘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사실, 그런데도 강화된 심문 기법으로 추가 테러를 막았고 오사마 빈 라덴 등 테러 지휘부를 추적하는 데 성공해 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의회와 백악관에 거짓 보고를 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소재지는 다른 정보기관에서 파악했으며 조작된 기밀정보를 특정 언론에 흘리는 수법으로 여론을 호도했다는 것이 정보위의 결론이었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엄청난 사실의 공개에 미국 내부는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다. 인권을 가장 귀중한 가치로 떠받들어온 미국, 모든 일에 인권을 앞세워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해온 미국의 이중성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당장 전 세계적인 비난과 조롱이 빗발쳤다. 특히 중국은 틈만 나면 중국의 인권실태를 지적한 미국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는 고문 관련자들을 전원 기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이슬람 무장단체와 조직원들은 미국에 대한 피의 복수를 다짐하기도 했다.
많은 나라,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이중성, 부끄러운 모습에 혀를 찼고 미국은 더 이상 매력적인 모범국가가 아니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드러난 사실만 본다면 비난과 질책이 당연했다. 하지만 한 단계만 더 생각하면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오히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왜 미국인지, 미국이 왜 강한지를 확인시켜주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고문 사실을 공개했을까? 그것도 외부의 폭로나 고발이 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조사를 주도한 다이앤 파인스타인 정보위원장의 얘기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CIA의 고문 프로그램은 미국의 가치와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보고서 공개는 미국의 가치를 회복하고 전 세계에 미국이 정의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중요한 조치이다”라고 말했다.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공개했다는 말, 감동적이지 않은가? 국내외에서 닥칠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보고서 공개를 지지한 오바마 대통령의 말도 의미심장했다. “어느 국가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미국을 특별히 강하게 만드는 힘 가운데 하나는 과거를 솔직하게 직시하고 결함을 인정한 뒤 더 좋게 변화시켜나가려는 우리의 의지이다.”
분명 현상적으로 볼 때 미국은 멋진 나라도, 위대한 나라도 아니다.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가장 위험스런 나라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의 미국은 강하다. 불리하다고 숨기지 않고 욕먹을 것이 예상된다고 도망하지 않고 무거운 현실에 맞서는 이런 용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충격적인 고문 사건을 풀어가는 두 지도자의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 속에서, 이 문제를 대하는 미국 사회의 성숙한 분위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미국’의 비결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지도자를 믿고 따르는 국민
‘문제아’ 부시에게 보내는 신뢰: 미국에 있는 동안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볼 때마다 ‘참 여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TV를 통해 보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 속에서 과거 그에게 따라다니던 ‘나쁜 평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술꾼에 한때 마약까지 손댔던 문제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데다 연설까지 잘 못하는…. 지금 나는 그런 모습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나는 부시 대통령을 볼 때마다 정말 연설을 잘한다고 느낀다. 단호한 어투에, 때때로 빙긋이 웃는 그의 얼굴에서는 강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대통령 선거 전의 부시를 지켜봤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엄청나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사람은 분명히 그대로일 텐데 무엇이 그토록 부시를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나는 대통령에 대한 미국 국민의 사랑과 인정이 그를 그렇게 달라지게 만들었다고 나름대로 결론지었다. 부시는 선거 당시 50%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당선된 반쪽 대통령이었다. 그것도 법원까지 동원되는 구차스런 과정을 통해 그리 당당하지 못한 모습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국민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한때 90%가 넘는 국민이 그의 업무 수행에 박수를 보냈다. 거대 기업 엔론과 월드컴이 쓰러지고 기업들의 연쇄적인 회계 부정 사건으로 주식회사 미국이 휘청거리는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나아가 부시 대통령 자신이 과거의 주식 내부자거래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도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65%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9ㆍ11 테러라는 초유의 사태가 부시에게는 오히려 큰 힘으로 작용했고 미국인들에게는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전통이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것을 감안해도 쉽게 이해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의회에서 경험한 두 가지 사건이 나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2002년 3월, 테러와의 전쟁 선포 이후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꺼번에 8명의 미군이 숨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테러와의 전쟁 분위기 속에서 공격 기회를 엿보던 민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상원 리더인 톰 대슐 의원은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잘못 이끌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는 테러와의 전쟁 이후 야당의 첫 번째 공격이었다. 그러나 미군이 희생되는 상황을 이용해 분위기 반전을 노리던 민주당을 국민이 성토하고 나섰다. 힘을 합치지는 못할망정 중요한 시기에 무슨 목적으로 지도자를 흔드냐는 것이 대슐을 향한 국민들의 비난이었다. 같은 당인 민주당 소속 의원들도 국민들 편에 섰다. 결국 본전도 못 건진 그는 일주일 뒤 대통령의 리더십을 칭찬하는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2002년 5월에 발생했다. 당시 언론은 “부시 행정부가 9ㆍ11 테러에 관한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도 대처를 잘못해 비극을 맞은 것일 수도 있다”는 의혹 기사를 경쟁적으로 다루었다. 언론의 논지는 정부가 제대로 했다면 9ㆍ11 테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9ㆍ11 직전 정보기관 책임자들이 현장의 중요 보고 ?수상한 중동 사람들이 비행 훈련을 받고 있다는 등? 를 묵살한 것이 밝혀지는 등 여러 곳에서 구체적인 정황 증거들도 드러났다. FBI와 CIA 두 정보기관의 해묵은 문제, 즉 지나친 경쟁의식이 ‘예방 가능한 일’을 그르친 원인이라는 비판 기사도 줄을 이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을 공격하는 데 이를 적극 활용했다. 처음에는 여론도 민주당 편이었다. 급기야 민주당은 이 문제를 조사할 독립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백악관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론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열흘 이상 계속된 야당의 공세에 여론은 해도 너무하다는 반감을 보였다. 그러자 같은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을 포함한 여러 의원들도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이미 상ㆍ하 양원 합동위원회가 9ㆍ11 테러 전반에 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마당에 무슨 새로운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냐”고 주장했다. 결국 대슐은 이번에도 공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주장의 주류는 “지금은 서로 손가락질하고 비난할 때가 아니라 지도자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의 권위를 존중하는 의식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또 어려울 때일수록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투철해 보였다. 그런 국민의식이 심각한 정쟁으로 흐를 수 있는 상황을 막아냈다. 2002년 11월 공화당이 예상과 전례를 뛰어넘어 압승을 거둔 것은 무엇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외부 요인에 힘입은 바 크다.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미국인들의 의식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2부 원칙 있는 사회, ‘균형감각’ 갖춘 국민
강한 미국을 떠받치는 기둥, 원칙
원칙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 2001년 5월 24일, 버몬트 주의 제임스 제포즈 상원의원이 돌연 공화당 탈당을 발표했다. 제포즈 의원은 “지역구민의 의견과 당의 입장이 너무 달라 더 이상 공화당에 있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탈당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그는 모든 투표에서 당의 입장을 따르지 않는 대표적인 의원으로 유명했다. 탈당 후 그가 민주당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공화당과 부시 행정부는 난리가 났다. 1석 차이로 지배하던 상원을 민주당에 넘겨줘야 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그의 탈당을 막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그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어부지리로 상원을 장악하게 된 민주당은 완전 잔치판 분위기였다. 우선 17개 상임위원장을 임명했다. 의석 비율로 상임위원장을 나누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한다. 여기에 상원의 모든 일정을 조정하면서 부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은 대단한 파워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공화당에서 볼멘소리를 할 만도 한데 이렇다 할 반발이 없었다. 물론 사석에서야 어쨌는지 모르지만 ‘변절자’다 ‘배신자’다 하면서 제포즈 의원을 원망하는 소리가 공개적으로 나도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깨끗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내주고 의사일정과 관련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것이 원칙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결국 이렇게 민주당에 상원을 내준 뒤, 부시 대통령은 고위직 인준 청문회부터 시련을 겪어야 했다. 취임 후 2년이 다 되도록 청문회가 필요한 자리 513개 가운데 99개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부시 대통령이 상원을 잃음으로써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상원에 빨리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이고 채우지 못한 자리를 ‘대행’으로 끌고 가는 것뿐이다. 전체 자리의 약 1/5을 채우지 못하고 있지만 ‘행정공백’이니 ‘국정마비’니 하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모두 “원칙이 그러니까”라고 받아들일 뿐이다.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도 미국의 원칙주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 전역에 산재해 있는 핵폐기물을 한곳에 보관ㆍ처리하기로 하고 적합한 장소를 물색한 결과, 네바다 주의 유카 산맥 지역이 최적지로 떠올랐다. 공화당은 2010년부터 이곳에 핵폐기물을 보관ㆍ처리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네바다 주지사와 주민들 그리고 환경보호단체들은 강도 높은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네바다 주지사는 워싱턴을 방문해 의원들을 설득했고 주민들의 상경 데모도 수차례 있었다. 그러나 거센 반대 속에서도 결국 법안은 일정대로 처리됐다. 반대 의견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계획 자체를 보류하거나 일정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 의회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결국 하원 투표에서 306 대 117로 통과됐고 상원에서도 역시 바로 통과됐다.
원칙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으로, 질서유지를 위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원칙이 수시로 변한다거나 원칙보다 변칙이 더 잘 통하는 곳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미국이 강한 이유는 이렇게 원칙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유리하면 인정하고 불리하면 무시하는 변칙이 아니라 조건에 상관없이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 그것을 쉽게 변해서는 안 될 가치로 존중하는 사회라는 점은 분명히 미국을 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