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

김원곤 지음 | 덴스토리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

김원곤 지음

덴스토리 / 2015년 6월 / 264쪽 / 13,500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 나이 50에 시작한 4개 외국어 공부



모든 것은 우연히 시작됐다: ‘이제 나이 50인데 더 늙기 전에 외국어라도 하나 더 배워볼까.’ 2003년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영어 외에 새로운 외국어를 배워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나 미래의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는 데에 대한 아쉬움과 막연한 공허감이 더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모처럼 뜻깊은(?) 결심을 하고 나자 다음 단계는 ‘어떤 외국어를 배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언뜻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여러 언어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국 일본어로 귀착됐다.

김 교수의 이중생활: 다음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배울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고민 끝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학원 강좌를 듣기로 했다. 그런데 무작정 학원에 가기보다는 미리 기본 문법 정도는 독학을 하고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너 달 기초 문법을 공부한 다음, 2003년 6월 시사일본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매주 토요일에 3시간씩 수업하는 ‘일본어 기본 문법 정리반’이었다. 두 달 과정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8월부터는 ‘기초 회화반’에 등록했다. 그 과정에서는 중년의 일본인 여자 선생님이 친절하게 한동안 수업을 진행해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강의를 중단하게 됐다. 할 수 없이 10월부터는 같은 토요일에 개설된 ‘청취반’ 강좌에 등록했다.

선생님은 30대 후반의 일본인 남자였는데, 수업 내용은 만족스러웠다. 매주 다른 내용의 청취 교재와 함께 선생님이 직접 꼼꼼히 녹취한 자료를 나눠줬는데 큰 도움이 됐다. “모르는 단어는 절대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 과정을 통해 어휘력은 독해를 떠나 청취에도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내친김에 계속 수강을 했고, 이럭저럭 2004년 3월이 됐다. 그런데 또 선생님의 개인 사정으로 휴강을 하게 되어 새로운 반을 선택해야 했는데, 적절한 주말 강좌가 없어 조금 벅차다 싶었지만 상급 과정인 ‘자유 회화반’을 수강했다. 선생님은 40대 중반의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다행히 처음의 걱정을 접고 곧 수업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6개월쯤 지나니까 약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주말에 더 이상 들을 만한 강좌가 없었다. 그래서 아예 학원을 바꿔보기로 했고, 파고다어학원을 방문해 상담하니 ‘스크린 청취반’을 추천해줬다. 그렇게 수강한 스크린 청취반은 재미있었고, 2년여 동안 꾸준히 공부해나가자 일본어 실력이 착실히 붙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두 해를 넘겨 2005년 초가 됐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 나의 외국어 도전기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또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다.

같은 한자권인데 중국어도 한번 배워볼까?: 일본어 공부를 위해 2년 가까이 학원 주말반에 다니다 보니 더는 들을 만한 강좌가 없었다. 그렇다고 주중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 고민이 깊어졌다. 그런데 문득 발상의 전환을 해보기로 했다. 일본어는 웬만큼 배웠으니 독학으로 실력을 유지하고, 그 대신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어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2005년 5월 시사중국어학원에 등록했다. 토요일에 열리는 ‘기초 중국어’ 강좌였는데, 그럭저럭 두 달째 과정을 마쳤다. 이후 ‘중급 회화’ 과정에 등록했는데, 한 달 만에 강사 사정으로 강좌가 없어졌다. 그래서 다른 강좌를 찾아보니 주말에 들을 거라곤 ‘고급 회화’ 과정밖에 없었다. 무작정 들어가서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몰라 아무래도 망설여졌다. 그러나 한 번 들어본 뒤 힘들면 수강료를 환불해주겠다는 상담원의 부추김에 힘입어 일단 강의를 들어보기로 했다. 과연 고급반은 고급반이었다. 조선족 출신 여선생님의 말 속도도 빨랐고, 학생들의 수준도 중급반과는 달랐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교재를 미리 예습하면 그런대로 따라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자신감도 발동했다. 어쨌든 오기 반 결심 반으로 시작한 그 강좌는 해를 넘겨 2006년 12월 말까지 무려 17개월 동안 이어지게 됐다.

2008년이 되니까 이제 주말반으로는 더 이상 학원에서 들을 만한 강좌를 찾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공부를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평일 저녁 시간에 짬을 내어 주 3일반 과정을 듣기로 했다. 이후 지금까지 주중 저녁 시간을 활용해 시사중국어학원, 이얼싼중국어학원, 파고다어학원 등 주요 학원들을 순례하듯 다니며 다양한 중국어 강좌를 수강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 와인 상표 어떻게 읽지?: 일본어, 중국어를 이미 배우고 있던 상태에서 2006년 나는 프랑스어를 새롭게 시작했다. 프랑스어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소박했다. 평소 와인을 포함한 각종 술을 한 잔씩 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 프랑스 와인이나 치즈에 붙어 있는 상표의 이름들만이라도 제대로 발음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목적으로 기초 프랑스어 책을 구입해 발음 부문을 독학하기도 했으나, 공부할 당시에만 잠시 기억에 남을 뿐 얼마 지나면 다시 원점이 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을 검색하는 중에 우연히 ‘프랑스어 왕초보반’이 일요일에 개설된 것을 발견했다. 신중성프랑스어학원의 강남분원에 개설된 강좌였다. ‘좋다! 가서 발음만 한번 제대로 배워보자!’

그렇게 하여 2006년 5월에 시작한 프랑스어 공부는 신선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수강생은 비록 나와 대입 재수 여학생 2명뿐이었고 아쉽게도 다음 달 여학생이 수강을 포기하면서 강좌도 폐강됐다. 나 역시 애초 발음만 배우겠다는 생각이었기에 프랑스어는 그 정도에서 자의 반 타의 반의 심정으로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왕초보반’ 한 달 과정을 끝내고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던 프랑스어 발음이 2~3개월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8월에 다시 강남 파고다어학원의 ‘기초 회화반’에서 등록했다. 토요일 오전에 프랑스어 강좌를 듣고 점심을 해결한 뒤, 오후에는 중국어 학원으로 가서 수업을 듣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4개월 과정이 끝났고, 2007년 1월부터 강북 신중성프랑스어학원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수업을 듣게 됐다. 강의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렇게 6개월간 수강 후 학원 사정으로 강좌가 폐강된 뒤에는 토요일에 개설된 DELF BI 과정을 듣게 됐다. 그런데 당시 내 수준으로는 이 과정이 꽤 어려웠다. 선생님은 조금만 지나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격려했지만, 공부의 효율상 다른 각도에서 보강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같은 시간대에 개설된 ‘문법 정리반’으로 옮기게 됐다. 그런데 문법 정리반을 듣고 나니 더 들을 만한 강좌가 마땅치 않았다.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좀 더 다양한 상급 과정이 개설돼 있는 평일반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시간을 낼 수 있는 달에는 주 3일반을 선택해 가능한 한 다양하게 프랑스어 강좌를 들으려고 하였다.

‘사서 고생’의 방점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도 모자라 2007년 1월부터는 스페인어를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스페인어를 배우게 된 동기도 단순했다. 프랑스어 강좌를 함께 듣던 많은 학생들이 스페인어는 한국사람 입장에서 발음이 매우 쉽고, 또 프랑스어에 대한 기초 지식만 있으면 두 언어의 문법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추가로 배우기가 매우 쉽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2007년 1월, 레알스페인어학원의 주말 초급반에 등록하고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간의 초급 과정을 끝내고 중급 과정인 회화반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두 달이 채 안 돼 수강생 부족으로 폐강되어, 파고다어학원에 있는 ‘자유 회화반’ 강좌를 듣기 시작해, 2009년 초까지 수강했다.

아무튼 스페인어의 합류로 나는 2007년부터 주중과 주말의 모든 여유 시간을 총동원하다시피 해 4개 외국어를 동시에 공부하는 가시밭길에 들어섰다. 동시에 여러 언어를 공부하다 보니 종종 언어 간에 혼동이 생기는 것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금씩 눈에 띄는 발전이 느껴지면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 과정에서 2010년에는 『50代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라는 책도 냈고, 이후 도전을 계속해 2012년 대장정의 막을 내린 ‘1년에 4개 외국어능력시험 합격하기’도 성공적으로 끝냈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때보다 한 단계 올라선 외국어 실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여대생의 조언: 2010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나는 시사중국어학원의 ‘스캔 중국어’ 강좌를 두 달째 수강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달에는 나를 포함해 수강생이 단 두 명밖에 없었다. 다른 수강생은 중국어를 전공하는 여대생이었다. 어느 날 휴식 시간에 가벼운 잡담을 나누던 중, 그 여학생이 중국어능력시험인 HSK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며, 비록 시험을 준비하고 그 결과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당락에 관계없이 시험을 치르는 과정은 그간 공부한 것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그렇다면 나도 한번 재미로라도 쳐봐야겠네.” 하고 농담처럼 말하자 그 여학생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일단 시험을 보기로 결심이 서자 그다음 시험 준비 과정은 오히려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의 한계를 시험하다 - 1년 안에 4개 외국어능력시험 합격하기



버킷리스트: 처음엔 HSK만 치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4개 외국어로 확장된 데는 또 한 번의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2011년 2월, 한 달 뒤 있을 HSK에 대비해 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 알고 지내는 《신동아》 기자가 이메일로 ‘나의 버킷리스트’에 대한 원고 청탁서를 보내왔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니, 이번 기회에 공개적으로 내가 앞으로 이뤘으면 하는 일들을 표방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약속의 굴레를 씌우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2011년 《신동아》 4월호 별책부록에 나의 버킷리스트가 실리게 됐는데, 간단히 요약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탈의 미학 - 나의 버킷리스트] 첫째, 지금 공부하고 있는 4개 외국어, 즉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의 고급 어학능력 자격시험에 도전하여 모두 합격한다. 둘째, 누드 사진집을 만든다. 이를 계기로 몸을 보다 더 열심히 가꾸어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싶다. 셋째, 술집에서 일주일간 바텐더로 근무해본다. 넷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여행을 할 것이다. 이 항목은 실제 영화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녀와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물론 손자와의 여행도 이에 못지않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첫 관문 중국어시험 HSK: ‘1년에 걸쳐 4개 외국어능력시험 합격하기’의 대장정을 시작하며, 첫 도전 대상은 중국어로 잡았다. 그런데 막상 HSK 준비를 시작하려니 응시 등급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HSK는 시험 전 응시자가 미리 자기 수준에 맞춰 1~6급(6급이 최고 등급) 중 하나를 정한 뒤 응시해야 했다. 고민 끝에 나는 6급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HSK 일정을 알아봤다. 가장 빨리 치를 수 있는 시험이 2011년 3월이었다. 준비 기간이 3개월 주어진 셈이었다. 나는 즉시 주 3일 저녁에 수강하는 ‘HSK 준비반’에 등록했다. 시험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나는 주 3일 저녁 공부에 적응되자, 일요일에도 시간을 내 학원에서 4시간 가까이 관련 수업을 듣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시험에 임박해서는 실력이 꽤 향상된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2011년 3월 13일, 드디어 시험날이 됐다. HSK 6급 시험은 중간 휴식 시간 없이 듣기→읽기→쓰기 순서로 모두 135분간 치러졌다. 나는 가급적 평상심을 유지하며 시험에 임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맨 처음 ‘듣기’ 영역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에서 듣기 공부를 해서인지 교실 스피커를 통해 시험 내용이 흘러나오자 갑자기 멍해졌다. 사실 이런 형식의 듣기 시험은 그 자체가 난생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청취 내용을 하나둘 놓치게 되고, 놓친 것에 미련을 갖고 머뭇거리다 다음 내용도 놓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듣기 영역이 씁쓸하게 끝난 뒤 그나마 희망을 걸고 있는 ‘읽기’ 시험이 시작됐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치렀다.

진짜 문제는 마지막 ‘쓰기’ 영역에서 발생했다. 쓰기 시험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1,000자 정도의 제시 지문을 400자 전후로 다시 요약 정리하는 방식이다. 다행히 지문의 전체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의욕이 과한 나머지 사자성어를 동원해 멋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려다 보니 처음부터 글을 쓰고 지우기를 몇 번 반복하게 됐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다 시계를 보니 이미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뒤늦게 부랴부랴 원고지 칸을 채워나갔지만, 요구하는 400자에는 한참 못 미치는 230자 정도에서 시험 시간이 종료되고 말았다.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 결과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합격자 발표 날짜에 관심도 갖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4월 13일 오전, 학원의 중국인 여강사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공자아카데미’ 홈페이지에 합격자 발표가 떴다면서 시험 결과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옆에 컴퓨터가 있어 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결과를 확인해 봤다. 가장 먼저 내 성적표 우측 아래에 있는 ‘合格’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합격이란 말인가!’ 그 순간 말 못할 희열이 온몸을 감싸고 지나갔다.

두 번째 관문 일본어시험 JLPT: 두 번째 도전은 2011년 7월에 있었던 JLPT였다. 나는 HSK에서 최고 등급에 응시한 경험을 살려 JLPT에서도 최고 등급인 N1 등급에 도전하기로 결정하고, 바로 일본어 자습을 시작하면서 4월에 시작하는 ‘JLPT 준비반’에 등록해 준비해 나갔다. 마침내 2011년 7월 3일, 시험날이 됐다. 1교시에는 110분 동안 언어지식과 독해를 한꺼번에 풀게 돼 있었는데, 언어지식 영역에서는 열심히 공부했던 문법 관련 문제보다 생활일본어에 바탕을 둔 회화 문제가 많이 출제됐고, 독해 영역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으나 언어지식에 비해서는 웬만큼 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12시 35분 1교시가 종료되고, 12시 55분까지 20분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런 다음 2교시에 듣기 시험이 시작됐다. 듣기는 예상보다 더 어렵거나 그렇다고 더 쉽지도 않았다. 시험 후 대충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니, 비록 좋은 점수는 아니더라도 합격에는 큰 문제가 없으리란 자신이 생겼다. 다음 날 아침, 긴장 속에 JLPT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합격’이라는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는 편안한 마음으로 세부 점수 확인에 들어갔다. 총점 119점으로 합격 기준점인 100점을 무난히 넘겼다.

세 번째 관문 프랑스어시험 DELF: 2011년 3월 HSK, 7월 JLPT에 이어 숨 가쁘게 다음 도전 과제인 11월에 있을 프랑스어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현재 국내에서 응시할 수 있는 프랑스어 시험에는 몇 종류가 있지만, 최고 공신력을 가진 시험은 ‘델프와 달프’였다. DELF(프랑스어능력인증시험)와 DALF(고급프랑스어능력인증시험)는 각각 프랑스어 초ㆍ중급과 고급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사실상 한 계통의 시험 체계에 속하는데, 델프에는 초급 과정인 A1/A2와 중급 과정인 B1/B2 등 4단계가 있고, 고급 과정인 달프는 C1/C2 등 2단계로 나뉜다. 나는 숙고 끝에 중간 등급인 ‘B1’으로 결정했다.

이모저모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DELF B1 시험일이 드디어 다가왔다. 첫날 필기시험은 2011년 11월 12일(토) 오후 1시 40분에 시작됐다. 필기시험은 크게 청취, 독해, 작문 세 영역으로 나뉘는데, 평소 청취 영역이 취약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역시 어려웠다. 독해는 2문제가 나왔는데, 무난한 편으로, 어떻게 보면 쉽다는 느낌마저 있었다. 작문 시험은 ‘자기 나라에서 벌어지는 문화 또는 스포츠 행사에 관해 소개하는 글’을 프랑스 신문에 투고한다는 가정하에 쓰는 것이었는데, 나는 주제를 ‘장애인의 날 행사’로 정하고, 글을 써 제출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