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읽는 인문학 클래식
이현성 지음 | 스타북스
교양으로 읽는 인문학 클래식
이현성 지음
스타북스 / 2015년 4월 / 352쪽 / 15,000원
제1장 정치와 외교
‘정관의 치’라는 평온한 시기를 이룬 정치의 요체 『정관정요』
당나라의 역사가 오긍이 저술한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당(唐) 왕조의 2대 황제인 태종(太宗)과 그를 보좌한 명신들의 정치 문답집으로, 오래전부터 제왕학의 대표적인 교과서로 꼽혔다.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부친인 고조(高祖)를 보좌하여 당 왕조를 건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고조의 뒤를 이어 626년 즉위하여 649년 서거할 때까지 23년간 재위하며 당 왕조 300년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태종을 보좌한 인재로는 재상에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 간의대부에 위징(魏徵)과 왕규(王規) 등 실력 있는 인재들이 많았다. 태종은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나라를 다스렸으며, 그가 재위하는 동안 중국은 평온하고 안정된 시기를 맞았다.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한 이 시기를 태종의 연호를 따서 ‘정관(貞觀)의 치(治)’라 부른다. 『정관정요』에는 태종과 명신들 간의 문답을 통하여 ‘정관의 치’라는 평온한 시기를 이룬 정치의 요체가 담겨 있다.
수성 시대의 제왕학: 그렇다면 『정관정요』에서 말하는 제왕학의 요체는 무엇일까? 바로 수성(守成) 시대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이다. 『정관정요』에는 “창업이 어려운가, 수성이 어려운가?”라는 유명한 문답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수성’이란 완성된 것을 지킨다는 뜻이다.
어느 날, 태종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나라를 세우는 일이 어렵겠소, 지키는 일이 어렵겠소?” 재상 방현령이 대답했다. “나라를 세울 때는 사회가 혼란스럽고 여기저기에서 뛰어난 영웅들이 나타납니다. 천하를 통일하려면 이들과의 패권 다툼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세우는 일이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위징이 반론을 제기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천자의 자리는 하늘이 정하고 백성들이 주는 것이므로 얻기 어렵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천하를 얻으면 마음이 해이해지고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 생깁니다. 평온하게 살길 원하는 백성들의 바람과 달리 징집이 끊이지 않고 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이는데, 제왕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위해 점점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입니다. 그러니 나라가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지키는 일이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듣고 태종은 말했다. “방현령은 짐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고 갖은 고생 끝에 지금에 이르렀소. 그의 처지에서 보면 나라를 세우는 일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오. 반면 위징은 짐을 도와 천하의 안정을 도모해 왔소. 지금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분명 나라의 존속이 위험해질 거라고 늘 걱정하고 있소. 그러니 나라를 지키는 일이 어렵다고 한 것일게요. 나라를 세울 때의 어려움은 이미 지난 일이니, 앞으로는 그대들과 함께 전력으로 나라를 지킬 것이오.”
태종은 이러한 생각으로 나라를 평온하게 다스렸고 훌륭한 군주로 오랫동안 존경받았다. 『정관정요』에는 이러한 태종의 고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다음으로 태종이 군주로서 어떤 점에 고심하고 주의를 기울였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부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라: 군주는 간언을 하는 충신은 멀리하고 입에 발린 소리만 하는 간신들을 가까이 하기 십상이다. 중국의 역대 황제 가운데 당의 태종만큼 간언을 좋아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관정요』를 보면 그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중신들에게 간언을 구했는지 알 수 있다.
하루는 태종이 중신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옛날부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제왕이 많았소. 기분 좋을 때는 공도 없는 사람에게 상을 내리고, 화가 날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도 했소. 그래서 대란이 끊이질 않았소. 짐도 그들과 같은 길을 걸을까 두렵소. 그러니 짐이 그럴 경우 부담 갖지 말고 말해 주시오. 또한 그대들도 부하의 간언을 기쁘게 받아들이시오. 의견이 다르다고 거부해서는 안 되오. 부하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윗사람에게 간언할 자격이 없소.”
그로부터 꽤 세월이 흘러,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요즘은 의견을 말해 주는 사람이 통 없으니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폐하는 신하들의 간언을 아무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다들 침묵을 지키고 있고 그 이유는 서로 다릅니다. 의지가 약한 사람은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어도 말을 내뱉지 못합니다. 평소에 모시던 분이 아닌 사람에게는 미움을 살까 두려워 좀처럼 말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위에 집착하는 사람은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힘들게 오른 지위를 빼앗길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들 침묵을 지키는 이유이옵니다.” 이 말에 태종은 대답했다. “과연 그대 말이 옳소. 신하가 군주에게 간언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오. 이는 사형장에 끌려가거나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가는 것과 같소. 두려움 없이 간언하는 신하가 적은 까닭은 이 때문일 것이오. 짐은 앞으로 겸허한 자세로 그대들의 간언을 받아들일 생각이오. 그러니 그대들도 괜한 걱정하지 말고 거리낌 없이 의견을 말해 주시오.”
위징의 대답은 부하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군주가 간과하기 쉬운 점까지 지적하고 있다. 한편 태종은 평생 겸허한 자세로 신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정관정요』에서 배울 수 있는 제왕학의 첫 번째 조건일 것이다.
자신을 먼저 다스려라: 『논어』에는 “윗사람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아랫사람은 행하고, 그 몸가짐이 부정하면 빌고 호령하더라도 아랫사람은 따르지 않는다”라는 명언이 있다. ‘행동이 바른 사람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부하가 따르나, 행동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명령을 해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태종은 꾸준히 자신을 경계하고 행동을 삼가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어느 날, 태종이 중신들에게 말했다. “군주는 항상 첫 번째로 백성의 생활이 안정되도록 힘써야 하오. 백성이 땀 흘려 모은 돈을 갈취하여 혼자서만 호화스런 생활을 누리는 것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는 것과 같소. 배를 다 채웠을 때는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되오. 나라가 평온하기를 바란다면 우선 스스로 바르게 행동해야 하오. 그래서 짐은 항상 욕망을 절제하려고 노력해 왔소.”
당의 태종은 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렸으며, 백성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하다는 불안을 느낀 태종은 위징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짐은 항상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해 왔소.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옛날 성인들을 따라갈 수가 없소.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까 두렵소.”
그러자 위징은 말했다. “옛날, 노나라의 애공이라는 자가 공자에게 ‘세상에는 건망증이 아주 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사 갈 때 부인을 깜빡 잊고 데려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하자, 공자는 ‘그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폭군이었던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은 자기 부인뿐만 아니라 자신조차 잊었으니 말이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도 절대로 자신을 다스리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점만 명심하신다면 적어도 후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징의 말에 태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자가 모범을 보여 자신을 올바르게 다스리면 부하는 지도자를 본받아 자신을 정비하고 조직은 체계가 잡힌다. 이것이 바로 제왕학의 두 번째 조건이다.
초심을 유지하라: 중요한 임무를 맡거나 지도자가 되면 누구나 결의를 새롭게 다지고 긴장하며 모든 일에 임한다. 그러나 그 긴장감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2, 3년이 지나 일에 익숙해지면 점차 긴장감이 풀리고 만다. 『정관정요』에서는 긴장감이 풀린 사람은 지도자로서 실격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 태종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나라를 평화롭게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소, 아니면 쉬운 일이겠소?” 그러자 위징이 대답했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종이 되물었다.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나라를 다스린다면 쉽지 않겠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 않소만.” “지금까지 선왕들이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가 위태로운 때는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나라를 다스렸지만, 어느 정도 나라의 기반이 잡히면 처음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마음이 해이해집니다. 신하들은 군주의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 군주에게 잘못이 있어도 함부로 말씀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라는 점차 혼란스러워지고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옛날부터 성인들이 평화로운 때일수록 위험에 대비하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나라가 평온할수록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연유로 어렵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해 실패한 대표적인 인물로 당의 현종(玄宗)을 들 수 있다. 그도 즉위했을 당시에는 긴장감을 갖고 정치에 전념하여 ‘개원의 치’라 불리는 태평천하를 이룩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정치에 싫증을 느끼고 양귀비에게 빠져 마침내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현종과 같은 사례는 3000년 중국 역사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어 왔다. 태종은 선왕들의 과오에서 깨달아 ‘정관의 치’라 불리는 태평천하를 이룬 후에도 절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제왕학의 세 번째 조건이다.
겸허하게 행동하고 신중하게 말하라: 우리 모두 겸허하게 행동해야 한다. 특히 지도자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항목이다. 당 태종은 이러한 면에서도 스스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어느 날 태종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흔히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고 하오. 그러나 짐은 늘 하늘을 두려워하고, 그대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며 겸허하게 행동해 왔소. 황제가 겸허함을 잊고 거만한 태도를 취하면,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해도 잘못을 지적해 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오. 짐은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반드시 하늘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지, 그대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자문하며 신중을 기해 왔소. 이는 하늘은 저렇게 높은데도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신하들은 항상 군주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래서 짐은 항상 겸허하게 행동하고 말과 행동에 잘못됨이 없는지 반성을 게을리 않는 것이오.”
이에 위징이 한마디 거들었다. “옛날 군주 중에도 처음에는 나라를 잘 다스리다가 마음이 해이해져 나라를 위기로 몰고 간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폐하께서도 하늘과 백성을 늘 두려워하시어 항상 겸허하게 행동하고 스스로 경계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시면 나라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번영할 것이며, 혼란에 빠질 일도 없을 것이옵니다.”
중국 고전에 ‘임금의 윤언은 땀과 같다’는 말이 있다. ‘윤언(綸言)’이란 천자의 말을 뜻한다. 땀은 한 번 몸 밖으로 배출되면 몸속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천자의 말도 그와 같아서 일단 입 밖으로 나오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태종은 이를 절실하게 깨달은 군주였다. 겸허한 태도와 신중한 발언은 제왕학의 네 번째 조건이다. 당 태종은 위의 네 가지 조건을 갖추고 실천하여 역사에 남을 명군으로 칭송받았다.
책사들의 언론과 행동을 대표하는 ‘응대사령’의 학문 『전국책』
『전국책(戰國策)』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국시대의 책략을 기록한 책이다. 주로 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책사들의 언론 활동과 술책이 담겨 있다. 『전국책』에는 패권을 다툰 진(秦), 제(齊), 초(楚), 한(韓), 위(魏), 조(趙), 연(燕)의 7강(强)과 더불어 동주(東周), 서주(西周), 송(宋), 위(衛), 중산(中山) 등 12개 나라별로 구성되어 있다. 원저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한의 유향(劉向)이라는 학자가 궁중의 장서를 교정할 때 ‘국책(國策)’, ‘국사(國事)’, ‘단장(短長)’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되었던 여러 자료를 정리하여 33권으로 재편집하고 『전국책』이라 이름 지었다. 비교적 짧은 일화로 구성되어 있어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응대사령의 보고: 중국의 고전은 특히 ‘응대사령의 학문’이라 할 만하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책이 『전국책』이다. ‘응대사령(應待辭令)’이란 설득이나 교섭 또는 부하를 부리는 방법 등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모든 방법을 의미한다. 『전국책』은 가히 응대사령의 보고(寶庫)와 같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중국은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천하 통일을 두고 피비린내 나는 무력 항쟁이 벌어지는 한편으로 활발한 외교교섭을 펼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외교교섭을 담당하는 이들을 가리켜 ‘유세객’ 또는 ‘세객’이라고 불렀는데, 유세객들은 각국의 왕의 신임을 얻어 등용되어야만 비로소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또한 기회를 잡더라도 교섭에 실패하면 바로 물러나야 했다. 따라서 지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교섭에 성공해야만 했다. 전국시대에 세 치 혀로 혼란한 세상을 누비고 다니던 유세객들의 말에는 상대를 매료시키는 박력 넘치는 설득력이 있었다. 『전국책』은 바로 그들 몇천 명의 활약상을 기록한 것이다.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려던 때의 일이다. 소대(蘇代)라는 세객이 연나라 임금의 명령을 받고 조나라 왕을 설득하러 갔다. 소대는 조나라 왕을 설득하고자 말했다. “오는 길에 이수(易水) 강을 건너왔습니다. 강을 건널 때 가만히 보니 모래 위에 조개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때 도요새가 날아와서 그 살을 쪼아 먹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조개는 벌렸던 입을 꽉 다물어 도요새의 주둥이를 물었습니다. 도요새가 ‘이놈아, 이삼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넌 죽고 말걸’ 하고 소리치자 조개도 지지 않고 소리쳤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대로 있으면 그전에 네가 먼저 끝장날걸’이라고 받아쳤습니다. 쌍방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그 순간 어부가 다가와 둘 다 잡아가 버렸습니다. 조나라는 지금 연나라를 공격하려고 합니다. 전쟁이 길어져 국력이 쇠퇴하면 이웃에 있는 진나라가 이득을 볼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러니 부디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나라 왕은 소대의 말을 듣고 “과연 그대의 말이 옳구려. 잘 알겠소”라며 연나라를 공격하려던 계획을 중지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어부지리(漁父之利)’라는 말이 유래했다. 교섭에 능한 사람은 상대에게 이익이 될 만한 부분을 부각시켜 상대가 스스로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유도한다. 『전국책』에는 이러한 응대사령의 요령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설득법: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 중 하나로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방법이 있다.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로 관심을 유발한 후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방법은 설득하기 까다로운 상대에게 효과적이다. 유세객들은 자주 이 방법을 사용하여 목적을 달성했다.
위나라의 안희왕(安釐王)이 이웃에 있는 조나라를 공격하려던 때의 일이다. 위나라에는 계량(季梁)이라는 세객이 있었는데 그는 자주 다른 나라로 유세 활동을 떠나 본국에 없을 때가 많았다.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와 왕을 찾아갔다. 계량은 반드시 이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설득에 능한 사람이라 처음에는 절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안희왕을 만나자마자 다음의 비유를 들어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 전 돌아오는 길에 한 사나이를 만났는데, 마차를 북쪽으로 몰면서 초나라로 간다고 하더군요. 초나라는 남쪽에 있는데 어째서 반대쪽으로 가냐고 물었더니 자기의 말은 천하의 명마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명마일지는 모르겠으나 길을 잘못 들었다고 말하자, 여비도 넉넉하게 있으니 걱정 없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그래도 길을 잘못 들었다고 말하자, 이번에는 좋은 마부가 있으니 상관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었지만 목적지와는 점점 멀어져 갈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