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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멍청한 세대

마크 바우어라인 지음 | 인물과사상사



가장 멍청한 세대

마크 바우어라인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4년 12월 / 284쪽 / 14,500원





제1장 지식 Knowledge



시청자들은 거리를 걷는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즉석 상식 퀴즈를 내는 <투나잇쇼>의 ‘제이워킹’ 코너를 재미있어한다. 사회자 제이 레노는 “미국 국기에는 별이 몇 개 있을까요?”나 “예수님은 어디서 탄생했을까요?” 같은 질문을 하면서 사람들을 놀린다. 이 코너를 특히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연령대는 20대이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뭔지 기억하나요?”라는 질문에 한 젊은이는 “만화책이요.”라고 대답한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교황은 어디에 사나요?” “영국이요.” “영국 어디죠?” “음… 파리.” 이건 어떤가. “혹시 고전을 읽으시나요?”라는 질문에 참가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짓는다. “찰스 디킨슨의 작품이든 뭐든 읽어본 적 있어요?” 역시 멍한 표정이다. “크리스마스 캐럴 알아요?” “아, 영화로 보았어요.” 이렇듯 응답자들의 무지함은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다.

여기서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포착한다. 우리가 일상적인 대화에서 벗어나면 이런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 못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1776년(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한 해)이 어떤 해인지, 영국 수상이 누구인지, 묵비권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이 모든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려면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시사, 선거,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신경을 꺼야 한다. 신문, 잡지, CNN을 아예 보지 말아야 한다. 책도 읽지 말아야 하며, 정치적 활동이나 공동체 활동 등의 사회활동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젊은이가 현실에 아무 관심이 없으리라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니면 친구, 직장, 옷, 페이스북 같은 눈앞의 현실에 매몰되어 그 너머의 환경은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정보 시민으로서 지식을 보유하지 못했으며, 대량의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정보화 사회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한 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에게 계몽을 일으키고 재능을 북돋아줄 수 있는 자료나 미디어들을 기피한다. 2006년 미국 지리학협회의 청소년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가 지도에서 이라크를 찾지 못했고, 30%가 세계에서 가장 경계가 강화된 국경으로 미국과 멕시코 경계를 선택했다. 지식의 결핍 정도로 따지면 외국어, 종교, 정치 분야 또한 만만치 않아서 무차별적이고 심각한 이 시대 무지의 초상이 더 뚜렷해지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하면 필립 로스가 소설 『휴먼스테인』에서 처음 사용한 ‘가장 멍청한 세대’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한때 전문가들은 요즘 청소년들이 그 어느 때보다 노련하고,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고, 정보가 풍부하므로 학업 성적 역시 높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곤 했다. 2005년 《USA 투데이》는 Y세대에 대한 기사를 실으며 첫 문장에 “그들은 젊고, 영리하고, 자신만만하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지속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는 젊은이들의 학력 평가 결과에 의해 힘을 잃고 있다.

오늘날처럼 젊은이의 삶이 순조로웠던 시대는 없다. 물질적으로 매우 풍요롭고, 학교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손만 까딱하면 손쉽게 오락을 접할 수 있고, 엄청난 자유를 누리고 있다.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얻으며, 세속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는 경향은 점점 낮은 연령대로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은 기적처럼 손쉽고 빠르게 각종 정보와 상품, 오락과 친구를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이에 따라 젊은이의 정신도 자아에 발맞추어 성장해야 하고, 재미와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 만큼 지식에 대한 갈망도 커져야 하지만 계몽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누리는 이익은 지적 수준의 향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지적수준은 쇠퇴하고 있다.

물질적인 축복은 젊은 세대의 지식 부족 문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령 어린 점원이 잔돈 계산에 애를 먹어 동료에게 조롱을 당했다고 하자. 이때 웹상에 올린 그녀의 멋진 사진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학생이 박물관 인턴 자리에 최신 유행의 옷을 걸치고 갔는데 18세기 미술가 이름을 하나도 대지 못하면 합격 가능성이 사라질 것이다. 의상, 물건, 인터넷 성향은 10대 청소년을 이끌며 이곳에서는 주로 팝스타일과 테크노기술이 통용된다. 그러나 그들의 바깥세상, 즉 직장, 대학원, 정치 분야에서는 또래 집단에서 미화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어서 최선의 경우 방해가 될 뿐이고, 최악의 경우 결격 사유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젊은이에게는 배움을 위한 도구와 기회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게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배움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다. 젊은이가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가장 멍청한 세대는 이런 습관을 야단스럽고 지속적인 것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것 같다. 인류 역사상 물질적 조건과 지적 성취 사이에 이토록 깊은 골을 만든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2장 독서 Reading



2004년 나는 메릴랜드 대학에서 젊은이의 독서 현황과 이것이 문화에 시사하는 함의성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250명 정도의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정치, 사회, 역사 분야에는 아무 지식이 없지만, 유명인의 일상이나 팝송 가사는 훤히 꿰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이 미국 하원 의장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가능성보다 최근 <아메리칸 아이돌> 프로그램의 우승자가 누구인지 알 가능성이 6배는 높을 겁니다.” 그러자 청중석에서 조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야 아메리칸 아이돌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 여학생이 옳았다. 그녀가 속한 세계에서는 스타가 강력한 권한을 가진 리더보다 중요했다. 정치인 이름이나 지위를 아는 것은 그녀의 사교적 위치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오늘날 청소년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또래의 유행을 좇아갈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소년이 학교 운동장, 사교 클럽, 매점의 엄중한 패거리 문화에서 성공하려면 최신 유행하는 동영상과 TV 프로그램을 꿰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옷을 어떻게 입는지, 팝송 가사를 어떻게 줄줄 외우는지, 시시덕거리며 무리와 어울릴지 아닐지 보고 서로를 무자비하게 판단한다. 학교 복도는 월스트리트의 거래소보다 치열하고 무자비한 경쟁이 판을 치는 곳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청소년 독서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조차도, 독서 트렌드보다는 일종의 사회 현상으로 구분된다. 이 사건이란 물론 『해리포터』를 말한다. 아이들이 『해리포터』를 읽는 것은 다른 아이가 읽기 때문이다. 『해리포터』는 전개가 빠르고, 결말이 드라마틱하고,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배경이 청소년에게 호소력 있는 기숙학교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엄청난 판매를 이끌어낸 이유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이 책이 청소년 사이에서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소유물이 되어 특별한 사회적 의미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해리포터』는 독서라는 경험과 동기 유발의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해리포터』를 읽는 이유는 또래와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이 시리즈를 읽는 행위는 방과 후 게임, 웹사이트, 클럽 등 놀이 환경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열쇠다. 등장인물과 사건을 모르면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책에도 이러한 열정을 갖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해리포터』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두었지만, 이 시리즈를 제외한 전체 청소년 서적은 판매 부진으로 애를 먹고 있다. 『해리포터』를 향한 맹목적 추종의 안타까운 이면은 청소년이 지속적으로 다른 책을 안 읽게 된다는 현실이다.

「독서의 위기」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1982~2002년 사이에 전 세대에 걸쳐 독서율이 하락했다. 특히 젊은 연령대에서 하락세가 큰 폭으로 일어나 젊은이와 책 사이에서 무언가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했다. 청소년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읽을 만한 책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독서를 할 충분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고 인터넷이나 도서관에는 무료로 읽을 수 있는 책이 넘친다. 학교에는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이 있고, 10대에게 책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인다. 학생들도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독해 능력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청소년은 책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학생이 독서에 관심이 없으며, 이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독서를 하지 않는 것과 반지성적인 태도가 직업적 발전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에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다.

볼티모어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어린 시절 주인이 안주인에게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당신이 저 흑인 노예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친다면 더 이상 놈을 잡아둘 수 없어.” 그는 이 말을 깊이 새겨듣고 글자가 지닌 자유의 힘을 절실히 깨달았다. 후에 미국 흑인 최초의 노예 폐지론자가 된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원대한 희망과 확고한 목적을 지니고 어떤 고난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글 읽는 법을 배우겠다.”라는 맹세를 회고했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1828년 절망적인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몇 달 동안 증세가 더 깊어졌으나 예기치 못한 만남이 그를 구원했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를 읽은 것이다. 워즈워스의 시는 시골의 아름다움과 경건한 동정의 순간을 묘사했고 밀에게 인간의 평범한 운명과 감정을 되찾아주었다. 그는 우울증에서 벗어났으며 그 후 평생 워즈워스의 시를 “내 심리 상태를 위한 약”이라고 칭송했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은 인쇄소 도제와 삼류 작가 생활을 하다가 랄프 애머슨의 연설문와 수필집을 읽고 1855년 시집 『풀잎』의 집필에 몰두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이처럼 위인들은 책을 통해 고통과 무기력에서 구원받았고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하였다. 오늘날의 청소년도 이들처럼 우울감, 괴롭힘, 불안감 등으로 괴로울 것이다. 천재여야 책을 통해 위안을 얻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지금 세대가 독서를 통해 성장한 위인을 보며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그들의 개인적인 명석함이나 작품 선택이 아니다. 그들이 종이에 적힌 글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제3장 영상 Media



미국에서 8~18세를 대상으로 이들이 미디어 콘텐츠에 소비한 시간을 조사한 적이 있다. TV 시청 3시간 18분, 비디오 게임 49분, 온라인 접속 48분을 더하면 스크린 시청 시간이 하루 295분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도출된다. 오늘날 가정에서 아이들 방은 멀티미디어 센터가 되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6시 프로그램을 보며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자기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틀고 숙제하는 동안 아이튠스를 돌린다. 거기에 싫증이 나면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비디오로 영화를 본다. 아이들이 침실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으니 대부분의 부모가 이런 생활 방식을 저지하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를 TV 앞에 앉혀놓는 이유는 요리, 청소, 휴식을 위한 자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DVD, 컴퓨터 게임을 TV에 더하면 어른의 자유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부모가 아이를 진정시킬 방법이 많아질수록 아이가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에 비례해 점점 더 증가한다.

요즘 청소년에게 디지털 장비는 생활 양식 변화나 또래 집단의 반항적 관습, 개인적 취향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가진다. 디지털 습관은 이미 그들의 대뇌를 점령했다. 이들은 스크린을 응시하면서 숫자 세는 법과 철자, 잘라서 붙여넣기, 정보 관리, 다른 이들과의 관계, 지식을 구축하는 방법을 배운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능력을 일깨웠고, 청소년의 방에는 디지털 장비 세트가 포진해서 끊임없이 다양한 자극을 제공하며 동시다발적 커뮤니케이션을 유도한다. 비디오 게임은 공간지각력을 빠르게 발전시켰고, 위키피디아 같은 공동 노력과 리얼리티 게임은 집단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었다. 이렇게 테크놀로지에 둘러싸여 자란 개인들은 이전의 세대와 다른 행동 양식을 개발했다.

스크린 시청은 학습 자체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특정한 학습 방법을 제공할 수는 있다. 전반적인 독해, 작문 능력이 아니라 ‘시청각 이해 능력’만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멀티태스킹에는 도움이 되지만 단일 활동을 집중하는 데는 맞지 않으며, 한 가지 텍스트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스크린적 사고방식은 10시간에 걸쳐 300쪽의 소설을 천천히 숙독하지 말고 검색 엔진을 사용해서 20개의 웹사이트를 클릭하라고 장려한다. 이러면 정보는 빠르게 검색할지 몰라도 인내심이 부족해져서 사실과 이야기, 원리를 장시간에 걸쳐 이해하기 어렵다. 기술은 편리함과 접근성을 찬양하고 청소년은 여기서 교훈을 얻는다. 5초면 키보드를 두드려서 이름, 날짜, 사건, 정의를 확인할 수 있는데 어째서 이런 것을 기억하려 애쓰겠는가? 수년간 스크린에 노출된 청소년은 멀티태스킹과 상호작용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는 청소년의 시각적 예리함을 향상시키고, 빠르게 쏟아지는 이미지와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받아들이게 해준다. 하지만 영상 이외의 경험을 쌓는 데는 적용할 수 없으며 특히 지식을 쌓고 구술 능력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정신적으로 영민해 보이지만 동시에 문화적으로 매우 무지하다. 시각적 문화는 추상적 공간감각과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켜 주었지만 다른 지능을 구축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청소년들은 매일같이 3개의 미디어와 2개의 청각 기기에 빠져 살지만, 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기질적인 것이다. 느리고 단일한 독서는 그들에게 어울릴 수 없는 낯선 것으로 다가온다. 소설은 읽는 데 시간이 걸리고, 역사책을 읽으려면 너무 많은 맥락과 지식이 필요하고, 과학적인 사실을 알려면 전문 도서보다 인터넷을 찾아보는 편이 훨씬 빠르다. 서적 혐오는 일종의 사회적 증후군이다. 이들은 이베이(ebay) 중독자가 소매상점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책을 거부한다.



제4장 학습 Learning



2006년 교육시험서비스(ETS)는 6,3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정보통신 기술 이해력을 측정하는 시험을 시행하였다. 여기에는 웹사이트의 목적에 대한 판단, 주어진 조건에 맞는 웹사이트 순서 맞히기, 이메일과 파일에 폴더를 분류하는 과제가 포함되었다.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된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다. “핵심적인 정보통신 기술 이해와 사용능력을 보여준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학업과 직장에서의 성과는 신뢰할 수 있는 자료 출처를 찾아내고, 적합한 정보를 선별하고, 이를 명쾌하게 분석하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로 가공하는 능력에 달렸다. 대부분의 학생에게 이런 과제는 능력 밖의 일이었다.” 이 보고서의 제목은 「대학생들은 테크노 바보인가?」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디지털적인 영감을 받아 학생의 재주와 지성이 높아졌으리라는 일반적인 기대를 철저히 배신한다. 학생들은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놀 수는 있지만, 자신이 처리하려는 자료에 대학이나 직장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지적이고 전문적인 평가는 내리지 못했다. ETS의 수석과학자 어빈 카츠는 지적한다. “오늘날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은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줄 압니다. 그렇지만 테크놀로지가 제공하는 콘텐츠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행동에 대한 지지자들은 게임, 블로그, 위키피디아 등이 인지적 습관과 비판적 사고력을 쌓아주며 이를 통해 정보가 풍부한 소비자를 양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이런 활동이 사고가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영감을 주고 뛰어난 안목을 길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적성을 파악하기 위한 대규모 테스트에서 학생들은 낙제점을 받았다. 일반적인 웹 소비를 통해 테크놀로지 사용 능력이 향상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웹 콘텐츠가 학생들의 정신 성장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는 안타깝게도 어긋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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