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
필립 K. 하워드 지음 | 인물과사상사
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
필립 K. 하워드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4년 12월 / 256쪽 / 13,500원
제1장 상식의 죽음
1988년 뉴욕의 ‘사랑의 선교 수녀회’는 화재로 버려진 건물을 노숙자 보호시설로 개조하려 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수녀회 지도자인 테레사 수녀가 뉴욕 시장을 만나 의견 일치를 본 프로젝트였다. 수녀회는 버려진 빌딩을 뉴욕시에서 양도받아, 50만 달러를 들여서 노숙자들을 위한 4층 건물을 세울 계획이었다. 뉴욕시에 건물 소유권이 있었지만 소유권 이전은 복잡한 관료적 절차를 거쳐야 했다. 수녀들은 1년 반 동안 계속된 공청회에 참가했고, 뉴욕시의 고위 공무원들과 세부 사항을 조정했다.
마침내 1989년 뉴욕시는 계획을 승인했고, 수녀회는 화재로 입은 건물의 피해를 복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의 섭리는 법을 이기지 못했다. 승인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수녀회는 새로 짓거나 개조하는 2층 이상의 건물에는 승강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뉴욕시의 건축 규정을 통보받았다. 수녀회는 수도자적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에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을뿐더러, 설치하는 데 10만 달러 이상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뉴욕시에 설명했다. 하지만 뉴욕시는 법을 예외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테레사 수녀는 노숙자 보호시설을 건설하는 것을 포기했다. 진정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도 아닌 일에 추가 비용을 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수녀회는 그 비용을 수프나 샌드위치 등을 제공하는 데 훨씬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위의 사례처럼 정부의 법은 공익과 관련한 거의 모든 활동을 관리한다. 집 앞 도로에 파인 구멍 보수, 공립학교 운영, 노인 및 육아 시설 규제, 직무 규정, 환경 정화, 그에 더해서 테레사 수녀에게 건축 허가를 내릴지 말지도 결정한다. 테레사 수녀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법이 결정한 것이다. 법의 요구는 때때로 인간의 상식을 거스른다. 노숙자들은 자신이 어느 곳에 기거하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건물에 승강기가 있는지 여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반면 법은 무결점 주택을 제공하겠다는 야심에 가득 차서, 새로운 주거 형태는 중산층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축적해왔다. 법이 모범적인 주거지를 강제하고 안 하고는 어떤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머무를 곳을 마련해주고자 애쓰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법을 적용해야 할까?
오늘날 세세한 규정 만들기는 거의 종교 교리처럼 되었다. 1977년 브루킹스 연구소의 허버트 코프먼은 “정확하고 구체적인 지침만이 비슷한 사례에 대한 해법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1970년 연방 항소법원의 스켈리 라이트 판사는 미국 법률 제도의 취약점으로 관리자의 재량권을 언급하며 “모든 정부 기관이 더 많은 규칙을 만들어 그러한 재량권에 대항하라.”고 촉구했다. 가장 유명한 행정법의 저자 케네스 데이비스는 “행정 입법은 현대 정부의 최고 발명품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세세한 규제를 통해 규정은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문명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우리가 이룩한 법의 거인상을 올려다보라. 미국에서는 숫자를 매긴 수백만 개의 법령이 날마다 불어나고 있다. 법체계는 제품 사용 설명서가 되어 시민과 관료에게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지시한다. 꼬리를 물고 뒤따르는 세밀한 규정은 모든 경우의 수를 다루거나, 관료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다룬다. 정부 기관을 상대할 때마다 짜증이 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1960년대만 해도 정부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세밀한 규칙을 갖고 있지 않아도 여유로웠다. 삼림 감시원들은 규칙 일람표를 셔츠 호주머니에 두고 다녔다. 규칙이 적힌 소책자와 상식적 판단으로 무장했던 감시원들은 별 탈 없이 업무를 수행했다. 지금은 작은 활자로 인쇄된 몇 권의 책을 참고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지나치게 세세하지만 보탬은 되지 않는 최악의 법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다. 구체적인 법령이 정부를 면밀히 통제하고 시민에게 분명한 지침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인간의 판단력을 무시한 인간 활동의 규제라는 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1970년 의회가 직업안전보건법을 제정했을 때, 이 법의 목표는 모든 직장인을 ‘실행 가능한 한도까지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었다. 노동부는 사업장 점검을 위한 안전 규정을 제정하기 위해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을 신설했다. 그 후 25년간 OSHA 직원들은 열심히 일했다. 그들은 4,000여 건이 넘는 세세한 규정을 만들었다. 산업계는 OSHA의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결과는 긍정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보자. 한번은 벽돌 공장을 방문한 OSHA의 검사관이 방진 마스크 아래로 튀어나온 공장 직원의 수염을 보고, 마스크가 얼굴에 딱 맞아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공장에는 먼지가 심하지 않았고, 유해 물질도 없었다. 수염이 있어도 마스크는 주변에 있는 먼지를 대부분 걷어냈다. 하지만 규정은 명확했고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되지 않았다. 그 직원이 아미쉬(기독교 일파로 현대 기술 문명을 거부하고 엄격한 규율을 따름) 교도라 종교적 신념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고려되지 않았다. 결국 종교와 직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직원은 직장을 떠났다. 모든 규칙은 이행되어야 하는 게 목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근로자의 안전이라는 OSHA의 목표가 가려진 것이다.
정확한 법은 훌륭한 지침이 된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사람들은 법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법은 그렇지 않다. 과하게 세세하기 때문이다. 대도시 경찰관의 지침서는 보통 1,100쪽이 넘는데 경찰관들은 범죄자를 검거할 때마다 수시로 바뀌는 헌법상의 제약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법 규정은 공무원들을 속박하고 그들의 분별 있는 행동을 막는다. 세부 조항은 규제 담당자의 직권을 줄이지만 직권 남용의 여지를 남긴다. 당신이 무언가를 요구하면, 그들은 항상 거절할 구실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재량 없는 관료가 법을 지킬 수 없다면 법은 절대 권력이 된다.
예를 들어 자원보전재생법(RCRA)은 유해물질을 처리하는 회사가 컨테이너를 받을 때마다 기록을 한 뒤 물질을 처리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 절차는 복잡하지만 관리 가능하다. 법은 공장에 있는 컨테이너의 정확한 위치를 기록하도록 강제한다. 환경 담당 직원을 별도로 둔 큰 회사라 할지라도 컨테이너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문서를 매번 작성하기는 힘들다. 이런 규정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강탈의 한 종류로 이해된다. 실제로 연방 환경 요원들이 컨테이너가 너무 많아 완벽한 서류 작업을 할 수 없는 기업에 찾아가서, 과징금을 내지 않으면 범법 행위로 기소할 것이라고 협박한 사례가 있다.
합리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 개괄적 원칙으로 구성된 관습법상의 일률성은 일반적으로 상황에 따른 조정을 허용한다. 반면 세세한 규정의 일률적인 적용은 언제나 한 집단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한다. 1979년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모든 화력 발전소의 굴뚝에 스크러버(집진 장치)의 설치를 강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공해 감소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같은 규정을 미국 전역의 모든 발전소에 적용했다. 완벽하게 일률적으로 적용된 이 법의 목적은 동부에 있는 탄광 사업장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동부 지역에서 채굴된 흑탄은 집진 장치가 있어도 불완전 연소되며, 깨끗하게 연소되는 서부 지역의 갈탄에 비해 심한 공해를 발생시킨다. 환경보호국은 석탄 공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동부의 발전소보다 월등히 깨끗한 서부의 발전소에도 집진 장치를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게다가 동부의 발전소가 깨끗한 서부의 석탄을 구입할 수 있는 장려금 제도도 없애버렸다. 그런 조치를 취한 결과는 필요 이상으로 높은 공해 수치와 추가 비용 40억 달러였다.
제2장 계속되는 책임 회피
1992년 4월 시카고강의 강물이 시카고의 중심 상업 지역에 있는 철도 터널을 뚫고 들어왔다. 엄청난 양의 강물이 도심의 빌딩 지하로 들어와 보일러를 강타하고 전기 합선을 일으켰다. 이 사태로 10억 달러를 웃도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 일이 있기 몇 주 전에 시카고 교통국위원회 공무원인 존 라플랜트는 터널에 누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강물이 터널 위를 흐르고 있어서 파열이 일어나면 큰 재앙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는 기술자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물었다. 기술자들이 어림짐작한 비용은 1만 달러였다. 라플랜트와 직원들은 건설업자를 찾았지만 수리비용이 7만 5천 달러라는 말을 들었다. 추정액과 7배의 비용 차이가 나자 라플랜트는 공사를 망설였다. 결국 그는 경쟁 입찰에 부쳤다. 그로부터 2주 후, 공사가 채 진행되기도 전에 터널 천장은 내려앉고 말았다. 이 사례처럼 관료들은 바람직한 문제 해결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보다 일을 ‘어떤 절차로 처리하느냐’가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이다.
세세한 규정이 정확성을 보장하듯, 절차는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호사스러운 옷을 입고 위장을 하고 있다. 바로 우리가 법에 등을 돌린 이유가 규정 때문이듯, 절차에 대한 찬양은 공평한 배려를 배려 없는 관행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는 정부의 관행이 되었다. 라플랜트는 7만 5천 달러를 들여 터널을 수리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모든 절차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예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절차는 존재했다. 세금을 소홀히 다루지 않아야 하고, 개인적으로 아는 건설업자에게 특혜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절차 말이다. 개인의 재량을 저해하도록 설계된 체계 안에서 그는 규정을 따랐다. 그리고 터널의 천장은 내려앉았다.
절차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정해진 절차는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절차는 속임수나 특혜를 막는 수단이기도 하다. 기업에서는 조직을 체계화하기 위하여, 가정에서는 설거지와 쓰레기 배출 등의 집안일을 조정하려고 절차를 활용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위한 형식을 정하는 것과 법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에는 다른 점이 있다. 우리는 절차를 관리의 도구로 이용하기 때문에 절차에 따른 변화나 예외는 항상 합리적 결과를 방해한다. 헌법상의 정당한 절차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절차가 의도하는 바다. 적법한 절차는 정부의 강압에 제약을 가하는 식으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 반면 터널의 누수를 고치는 일은 개인의 자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현대의 절차는 다방면에 걸친 정부의 활동을 서로 구별하지 않고, 모든 결정 사항에 관여하고 있다. 일반적인 결정도 엄격한 절차 아래 있으며, 형사재판에서 적법한 절차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진지하게 다루어진다. 절차에 대한 정부의 집착은 종교적인 수준이다.
마룻바닥이 내려앉았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건물 주인이면 기술자를 불러 조사를 의뢰할 것이다.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면 이름난 기술자 몇 명을 만나 문제를 논의하고 견적을 물어봐서 결정을 내릴 것이다. 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2시간, 길어야 2~3일 걸린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며 공평하게 일을 진행하려면 이보다 힘이 조금 더 든다. 뉴욕시의 방식이 그렇다. 뉴욕시에서 이런 일을 처리하려면 최대 2년 정도 걸린다. 일단 관련 기관 공무원들이 범위 조사 회의를 소집하고, 조달청이 문제점과 정확한 해결책을 논의한다. 계약은 전적으로 입찰로 이루어지며 모든 입찰자를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 작업 계획을 짜는 담당자는 예측 불허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상세한 계획을 세우는 데 3~4개월이 걸리며, 이 작업이 끝나면 관련 기관이 계획을 검토하고 마침내 제안 요청서라는 최종 입찰 서류를 준비한다. 이 또한 여러 차례 자세히 검토한다. 이것은 시작 단계일 뿐이다. 뉴욕시가 기술자를 선정하는 과정은 더 복잡하다. 위원회를 구성하고, 시청의 계약 부서에서 심사하고, 협상을 하고, 회계 검사관과 시장의 승인 같은 단계들을 거쳐야 한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크면 계약 절차는 더 복잡해진다. 어떤 중요한 사안에 209개 단계의 절차가 딸린 차트를 본 적이 있다. 한 보고서는 뉴욕시의 업무 절차를 이렇게 묘사한다. “엄청난 양의 서류로 넘쳐나고, 극단적으로 느리며, 지나칠 정도로 정중하다.”
공무원 사회의 부패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판단력에 대한 혐오감만큼 강하다. 절차상의 모든 공무 행위는 저항하기 힘든 범죄 기회라고 간주한다. 오직 계속되는 절차만이 공무원의 신분을 획득할 때 부여받는 부패라는 원죄를 억누를 수 있다. 절차는 공무원들에게 너희는 신뢰할 수 없다고 계속 말한다. 뉴욕시 광역교통국의 규정 중에는 요금함 투입구에 낀 25센트 주화를 운전기사가 마음대로 빼내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운전기사 쪽으로 튀어나온 동전 쪼가리의 유혹을 누가 알겠는가? 한 미국 대사는 그가 왜 고위 인사들을 관저에 초청해 대접하지 않고, 가격이 2~3배 비싼 레스토랑을 이용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는 대사관저에서의 접대는 악몽 같다고 말한다. 일단 요리에 들어가는 내용물 하나하나에 대한 영수증이 없으면 환급을 받지 못한다. 반면 식당에 가면 카드 명세서를 보내기만 하면 끝이다. 요리사나 대사가 불법 이득을 취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모든 외교 활동이 방해받고 행사 준비는 걱정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체계에서 공익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조달 업무를 예로 들어보자. 잠재적 공급자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구실로 만든 절차상의 관례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한다. 한 소규모 계약업자는 자신이 정부와 일하기를 기피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서류 작업으로 부담이 가중되고, 일련의 규정은 헷갈리거나 종종 앞뒤가 맞지 않으며 공사와 아무 관련이 없어요.” 그는 절차상의 관례를 인내할 수 있는 업체는 “일반적으로 정부와 일을 할 때, 민간 부문에서 비슷한 일을 할 때보다 입찰가를 10~30%가량 높인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서류 작업이 적어도 8배는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건 보통이다. 뉴욕시에서 승강기 설치 작업을 하면 민간 부문보다 3~4배는 돈이 더 든다. 계약가가 7만 5천 달러인 재고 PC 12대를 구매하는 간단한 일을 진행하는 데 진행 비용만 6만 5천 달러가 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971년 대법원은 멤피스의 오버턴 공원의 일부를 통과하는 고속도로 공사 허가 판결을 뒤집었다. 법원은 행정 기록이 너무 불충분해 대안을 찾아와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20년이나 진행되었다. 여기서 정부 기관들은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그들의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접근법은 절차가 아무리 복잡해도 관료들이 철저히 객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결국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기피하는 관료들은 이제 절차적인 공정성을 앞세워 모든 일을 해결한다. 의심이 들 때는 다른 절차를 만들면 된다.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공청회를 열면 된다. 그래도 비판하면 공청회를 다시 연다. 여전히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새로운 연구를 지시하거나 대책위원회를 마련하면 된다. 정부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절차를 따르는 정부가 결코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전적으로 공평하며 흠이 없다고 믿는다.
제3장 적대적인 사람들의 나라
1991년 캐플런 기금이 뉴욕시 도처에 6개의 간이 화장실을 설치하는 시범 사업을 위해 모금을 제안했을 때의 일이다. 화장실 외벽에 광고를 유치하면 예산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뉴욕시는 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간이 화장실 안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뉴욕의 차별금지법은 공공시설에 장애인의 접근을 막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이를 근거로 장애인 압력 단체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의 설치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 결과 하나는 일반용, 다른 하나는 휠체어 사용자 전용에 상근 안내원 1명이 포함된 조건으로, 2개의 간이 화장실을 세 지역에 나누어 설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시범 기간 중에 일반 화장실 이용도는 한 달에 평균 3천 번이었다. 반면 휠체어 전용 화장실은 이용이 거의 없었다. 또한 상근 안내원 급여로 비용이 나갔다. 화장실 설치에 대한 논쟁으로 사람들은 서로 적대적이 되었고 장애인 권익을 위해 싸워온 진보적인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지지자들이 무분별한 과격분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의 모든 정부가 이런 식으로 일한다. 공유재산을 분배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거나, 보조금을 줄 때도 다수를 희생시켜가며 한 집단에 더 많은 혜택을 준다. 사람들은 지도자들이 득과 실을 비교해서 공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뉴욕시는 이러한 능력이 부족했다. 다른 공공의 목적에 우선하여 장애인의 이익을 향상시키고 권리를 보장하는, 안전한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