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 소울메이트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소울메이트 / 2014년 11월 / 244쪽 / 13,000원
1장 화는 왜 인간에게 불필요한가?
화라는 감정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다
인간의 본성이 정상인 상태에서는 무엇보다 자애로운 태도를 보인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고려해본다면 ‘화’라는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아닌지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 화보다 더 잔인한 것이 어디 있으랴? 인간만큼 타인에 대한 애정이 강한 생명체가 어디 있겠는가? 반대로 화보다 더 극악무도한 감정은 또 어디 있을까? 인간은 본래 상호 간에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태어났고, 화는 서로를 파멸로 이끌기 위해 태어났다. 인간은 협동을 원하고 화는 불화를 즐긴다. 인간은 선을 행하고 싶어 하지만 화는 해를 끼치고자 한다. 인간은 낯선 사람조차 도우려고 하지만 화는 가장 소중한 친구까지 공격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화는 타인을 위험에 빠트리기 위해서 스스로 구렁텅이로 뛰어든다. 이렇듯 잔인하고 파괴적인 악덕을 가장 뛰어나고 정제된 인간의 본성이라고 여기는 사람보다 더 무지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누차 강조했다시피 화는 가차 없는 응징을 지향한다. 그런 갈망이 인간이 타고난 평화로운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상호이익과 조화 그리고 다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굳게 화합하려는 본성 위에 존재한다.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화라는 감정은 불필요하다
<반론> “하지만 우리가 적과 맞설 때만큼은 반드시 화가 필요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화라는 감정은 불필요하다. 적과 맞설 때는 절대로 무질서해서는 안 되며 절제하고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육체적으로 강한 검투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화가 나지 않았을 때는 뛰어난 기술로 자기 몸을 지키지만 화가 났을 때는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성만 가지고 충분히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면 굳이 화라는 감정이 필요할 일이 있을까? 사냥꾼이 화가 나서 짐승을 잡아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짐승과 맞닥뜨려서 짐승의 공격을 받은 후 사냥꾼이 달아나는 짐승을 뒤쫓는 것은 화가 아니라 온전히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로마의 장군 파비우스가 불안정하던 로마의 상황을 어떻게 제자리로 돌려놓았는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사람이라면 파비우스처럼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서 상황을 지연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화라는 감정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더라면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은 일찌감치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파비우스는 로마에 닥친 심각한 문제를 놓고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지 가늠해보았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모든 걸 잃게 되리라는 점을 깨달았다. 마침내 그는 슬픔이나 복수 같은 잡념들은 한쪽으로 접어두고 자신이 가진 기회들을 어떻게 하면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결국 파비우스는 한니발을 굴복시키기 전에 자신의 화를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의 경우는 어떠한가? 오랜 심사숙고 끝에 한니발과 카르타고 군대, 또한 그의 화를 돋울 만한 것들을 뒤로하고 아프리카로 건너가지 않았던가? 그는 자신의 적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치스럽기 짝이 없고 게으른 사람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의 아들 스키피오 2세 또한 누만티아를 정복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투자했다. 과거 카르타고가 누만티아를 정복했을 때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자 사람들이 스키피오와 그의 조국을 힐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차분하게 그러한 비난을 이겨냈다. 결국 누만티아에 갇혀 있던 적들은 스키피오의 기나긴 포위 공격과 물 샐 틈 없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화들만 봐도 화는 전쟁터 혹은 싸움에서 전혀 유용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화가 나면 성급해지기 쉽다.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려고 하다 보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상대와 함께 위험에 빠진다. 가장 신뢰할 만한 미덕은 오랫동안 주의 깊게 살펴보고 스스로를 제어하면서 천천히 신중한 태도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2장 화라는 감정의 실체를 알자
화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된 복잡한 감정이다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화라는 감정이 신중한 선택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충동으로 인한 것인지 깨닫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행동이 자기 의지에 의한 것인지,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처럼 아무 자각 없이 이루어지는지 규명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로 상처를 입었을 때 화라는 감정이 야기된다는 점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문제는 상처를 입었을 때 곧바로 화가 나는 것인지, 아니면 먼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 후에 화가 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일반적인 견해는 화는 그 자체로 야기되지 않으며 마음의 동요가 있어야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뭔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인지하고 난 후 그 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는 말이다. 즉 누구도 부당한 일을 겪어서는 안 되며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반드시 복수를 해야 마땅하다는 2가지 명제까지 더해진다. 그렇다면 마음의 동요 없이 그저 충동만으로 화가 야기되기는 힘들 것이다. 충동은 단순한 행동에 불과하지만 화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된 복잡한 감정이다. 어떤 부당한 일을 겪으면 먼저 그 위협에 분개하고 다음으로 부당한 일이라 규탄하는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는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다.
인간의 온갖 감정들이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거라면 그건 제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문제다. 머리 위로 찬물이 쏟아질 때 온몸이 떨리는 것이나 뭔가에 부딪혔을 때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저속한 단어를 들었을 때 얼굴이 붉어지고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볼 때 아찔함이 느껴지는 것도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이성으로도 제어할 수 없다. 또한 뭔가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오싹한 기분은 화와는 전혀 무관하다. 가끔은 노래를 들으면서 흥분하기도 하고 박자가 빠른 리듬이나 전쟁터에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에 가슴이 뛰기도 한다. 또한 충격적인 그림이나 끔찍한 고문의 현장을 목격했을 때도 누구나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다른 사람이 미소 짓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애도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며 슬픈 감정을 느낀다. 이런 감정들은 화라고 보기 힘들다. 이는 마음이 동요하여 발생하는 격정이 아니라 그저 격정으로 접어드는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화는 이성을 뛰어넘어 저 멀리까지 돌진한다
자연스러운 마음의 동요에서 비롯되는 반응은 격정이라고 보기 힘들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마음이 그런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반응을 보이면서 마음이 고통받는 것이다. 격정이란 눈앞에 벌어지는 특정한 장면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격렬한 감정을 촉발시킬 수 있도록 자신을 놓아주고 그 감정에 따를 때 발생하는 것이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고 욕정을 느끼고 깊은 한숨을 쉬고 순간 눈빛이 번뜩이는 것 같은 일시적 반응들을 격정이라고 본다면, 그건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자동반사적인 신체의 변화일 뿐이다. 아무리 용맹하기로 소문난 장수라도 갑옷을 걸치면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진격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면 무릎이 떨리는 증상을 보인다. 제아무리 뛰어난 지휘관이라고 해도 적군과 격돌하기 직전에는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고, 가장 뛰어난 달변가도 연설을 시작하기 직전에는 손발이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지곤 한다.
이에 반해 화라는 감정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정해진 틀을 뚫고 나가려는 강한 반동과 같다. 이는 마음의 동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성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복수를 하거나 처벌을 감행할 수 없다.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그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는데 이성이나 다른 이유로 복수를 접고 마음이 안정되었다면 그건 화라고 볼 수 없다. 그건 이성이 지배하는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마음의 동요를 느꼈던 것뿐이다. 화라는 감정은 이성을 뛰어넘어 저 멀리까지 나아가려고 하는 맹렬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뭔가 부당한 일을 겪었다는 생각 때문에 일시적으로 마음이 동요하고 복잡하다면 그건 화가 아니다. 화는 그 일시적 동요 이후에 벌어지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며, 그저 생각에 그치지 않고 복수를 결심하고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이를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화는 개인의 선택에서 시작되어 결연한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두려움은 회피하려는 마음을 낳고, 화는 돌진하려는 마음을 가져온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화만큼 격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격정도 없다
화를 제외한 다른 격정들은 잠시 미루어둘 수 있고 시간이 흐른 뒤에 치유가 가능하지만, 화는 능동적이고 자멸적인 폭력성을 지니고 있어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다. 화는 시작과 동시에 최고조로 올라가서 끝까지 거침없이 나아간다. 다른 악덕들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에 그치지만 화는 우리 마음을 송두리째 낚아챈다. 특히 자제심이 부족한 사람들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고통을 준다. 화는 정해진 목표만을 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해진 목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들을 모조리 공격한다. 다른 악덕들은 마음을 흔드는 것에 그치지만 화는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격정을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잠시 멈출 수는 있다. 하지만 화가 점점 더 커지고 강해질수록, 번개나 허리케인처럼 스스로 멈출 수 없으며 무작정 목표를 향해서 돌진한다. 다른 악덕들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만 화는 온전한 정신을 뒤흔든다. 다른 격정들은 서서히 다가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커져가지만 화는 인간의 마음을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화만큼 자기 파괴적인 격정도 없다. 일단 화를 내는 것에 성공하면 의기양양해하지만 실패하면 광기에 미쳐 날뛴다. 실패했을 때조차 화는 지치지 않으며, 만약 화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상대가 달아나버리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제 살까지 뜯어먹는다. 화는 그 강렬한 기운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개의치 않으며 매우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어 저만치 높은 곳까지 솟아오른다.
화는 그 어떤 격정보다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화는 어떤 격정보다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날카롭고 거친 얼굴, 피가 요동치다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바뀌고, 어느 순간에는 온몸의 피가 얼굴로 쏠려서 피를 철철 흘리듯 붉게 물든다. 시선을 잃은 불안한 눈동자는 금방 튀어나올 것 같다가 어느 순간 저만치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날카로운 엄니를 가는 멧돼지처럼 금방이라도 씹어 먹을 기세로 이를 바드득바드득 갈거나, 손가락을 비틀며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고, 답답한 듯 가슴팍을 쿵쿵 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온몸을 늘어트리거나 버럭 말을 뱉거나,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가 파르르 떨며 씩씩거리는 소리를 낸다.
헤라클레스의 말처럼 굶주림에 지치거나 사냥꾼의 창에 급소를 찔려 죽어가면서 마지막 공격을 하는 짐승들조차 분노에 휩싸인 인간보다 추악하지 않다.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고뇌에 쌓인 인간이 하는 말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들어보라! 과거 우리가 저지른 악행이 바로 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누구나 화를 잠시 미루어두고 싶지 않을까? 이런 조언을 해보면 어떨까? 화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은 그가 아무리 최고의 권력을 가졌어도, 그 막강한 힘의 원천이 화라고 해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잔뜩 화가 나서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자기 힘을 과시하고 싶어도, 이를 최고의 특권이라고 여긴다 해도 그저 화의 노예에 불과하다. 인간의 다른 악덕들은 성품이 형편없는 인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만, 화는 교양 있고 아무 흠잡을 데 없는 사람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파고든다. 그런데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자신이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심지어 자기 속내를 그대로 보이는 것을 천성이 착해서라고 착각한다.
3장 화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법
화내지 말고 진실을 알 때까지 적당한 시간을 가져라
우리는 악덕의 근본적인 원인과 맞서 싸워야 한다. 화는 내가 상처를 입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잘못된 믿음에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받은 상처가 너무 확연해 눈에 띄더라도 절대 분노하지 말라. 때로는 잘못된 믿음이 진실인 양 위장하고 있기도 하니까. 진실을 알 때까지 적당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모략을 일삼는 목소리에 쉽게 귀를 기울이지 말라. 우리가 타고난 결함에 맞서며 진실을 알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간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으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분노에 휩싸이곤 한다. 중상모략과 미심쩍은 행동에 마음이 흔들려서 악의 없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사람을 오해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눈앞에 없는 사람이라도 가급적 감싸주고 화내는 것은 잠시 뒤로 미뤄두는 편이 좋다. 죄를 캐묻고 처벌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되지만 한 번 처벌을 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
뛰어난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내란에서 승리한 직후 정복자로서 자비로운 태도를 실천한 바 있다. 그는 폼페이우스 앞으로 배달하려던 편지 뭉치가 자신의 수중에 들어왔지만 내용을 읽지도 않고 그대로 불태워버렸다.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둘 중 어느 편도 아니거나, 주로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는 자들이었다. 물론 가끔은 화를 낼 때도 있었지만 그는 되도록 화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타인의 잘못을 속속들이 캐묻지 않는 것이 최선의 용서라고 여긴 것이다.
난 잘못이 없다는 착각에서 화는 시작된다
온갖 세상사를 자로 잰 듯이 공정하게 재판한다면 그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분노는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그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믿고 싶은 것뿐이다. 그래서 처벌을 받거나 질책을 받았을 때는 곧바로 반감부터 품는다. 본래 저지른 잘못에 고집과 오만함까지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 누가 자신은 어떤 위법 행위 하나 저지르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런 자가 있다고 해도 그저 법이라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지켜야 할 적법한 행동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인 법의 범주를 한참 넘어서는 것이다. 효심, 친절함, 자애로움, 정의로움, 명예로움 같은 감정들은 한낱 법령 속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장 제한적인 법의 범주 안에서도 완벽히 무죄라고 주장하기 힘들다. 정말 법을 어겼을 수도 있고, 법을 어기려고 생각만 했거나 혹은 이를 바랐을 수도 있으며, 타의에 의해 충동을 느꼈을 수도 있다. 또는 자신이 의도했던 일이 성공하지 못해 결백한 상태로 남았을 수도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죄를 저지른 타인들을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고의 복수는 복수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반론> “하지만 화라는 감정 자체에는 짜릿한 쾌감이 있습니다. 당한 만큼 되갚아주면 후련한 기분이 들거든요.”그렇지 않다. 은혜를 갚는 것이라면 몰라도 내가 당한 만큼 되갚아준다는 것은 전혀 명예로운 행동이 아니다. 선의에 굴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악의에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복수하고 앙갚음을 하는 것은 아무리 정당한 상황이라도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고통받은 만큼 고통을 주었다는 구차한 변명거리만 늘어놓을 뿐이다. 언젠가 공중목욕탕에서 로마의 정치가 마르쿠스 카토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이 그를 실수로 쳤다. 마르쿠스를 알고도 그런 실수를 저지를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나중에 그 사람이 사과를 하자 마르쿠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맞은 기억이 없소.” 마르쿠스는 복수를 하는 것보다 그냥 모르는 척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