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했으면 성공하라
조명준 지음 | 성안북스
이혼했으면 성공하라
조명준 지음
성안북스 / 2014년 8월 / 352쪽 / 15,000원
제1부 이혼한다는 것
이혼은 삶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혼한 직후의 정신적 혼란과 무기력함: 이혼하고 나면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해진다. 마음속으로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무능함과 싸운다. 그러면서도 헤어진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속에서 끓어오른다. 한없이 밉다가도 한편으로는 보고 싶다.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동시에 밀려오면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눈을 감아버린다. 어떻게 이혼까지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고 현실로 느껴지지 않아서 마치 남의 일처럼 멍한 생각이 들고 무감각해진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숨쉬기도 힘들다. 며칠을 내리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미친 듯이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끝났다는 것은 창피해서 차마 말도 꺼내지 못한다. 모든 것이 그 사람 때문이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자신이 관계를 망쳤다고 자책하면서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갑자기 자신이 불쌍해지고 불행하다는 피해 의식을 느낀다. 언젠가 이 고통이 사라지더라도 다시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또다시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달려가 매달리고 싶어진다. 머리로는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하면서 정신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는 것이다.
하루하루 공허한 순간을 메우기 위해 방 안에 처박혀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분노하기도 하고 슬퍼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아프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감정이 뒤섞이기 때문에 무엇이 진짜 자기감정인지, 어떤 감정부터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주변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하소연도 해보지만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외로움에 더욱 비참해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럴 때는 차라리 가만히 고통을 겪는 것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된다. 감정이 혼란스럽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 하나하나가 자신의 복잡한 생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하나 둘씩 정리하다 보면 감정 역시 하나 둘씩 정리가 된다. 당장은 너무 아픈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이다.
시간을 갖고 감정을 되돌아보며 정리하기: 왜 이혼하게 되었는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 사람에게는 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왜 그런 사람을 만났는지, 과연 헤어지지 않을 수는 없었는지…. 여러 생각을 진지하게 하면 뭔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관계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배우고 그렇게 되기 위해 나 자신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혼은 삶의 끝이 아니란 것까지 알게 된다. 그렇다고 진지한 고민도 없이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술을 마시고 하루하루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또 무턱대고 친구들이나 가족의 위로나 충고에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런 말들은 그럴듯해 보여도 역효과를 초래하는 일이 많다. 잠시 위안이 될지 몰라도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지금 수많은 감정에 휩싸여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은 아직 최선의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록 그 시간이 비참하다고 해도 올바른 답을 찾을 때까지 겪어내야 한다.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하나하나 적극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인정하게 되고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음으로써 또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전 배우자가 아니라 해도 우리 스스로 사랑을 할 수 있고, 지금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다 해도 가슴속의 사랑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계속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이별이 또 다른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무기력함은 새벽 직전의 어둠일 뿐이다. 곧 새벽이 밝아온다.
제2부 이혼의 함정
이혼은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적절한 죄책감은 감정 치유를 위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혼하게 되면 두 사람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진다. 그래서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다. 결혼 관계가 끝난 것은 어느 쪽에 문제가 더 있었다기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가 잘 맞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이유는 없다. 내 탓도 배우자 탓도 아닌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이혼하고 나서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떠나는 사람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니 당연히 죄책감을 느낀다. 남겨진 쪽도 처음에는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하다가 나중에는 ‘어쩌면 내가 좀 더 잘해줬어야 했을지도 몰라. 내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라고 하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죄책감을 느껴야만 똑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떠나는 사람은 버리고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죄책감에 시달린다. 남겨진 사람은 그 관계를 붙들고 싶어 하는 쪽이다 보니 버림받았다는 의식을 지울 수 없다. 대체로 남겨진 사람들은 이혼하기 전까지 자신의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분명한 것은 이미 그 전부터 이혼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겨진 사람은 그 경고를 무시했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이혼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더군다나 사랑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다면 이혼의 충격은 매우 큰 것이다. 또 떠나는 입장에서는 성급하게 이혼을 결정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오랫동안 고민을 하면서 준비해왔기 때문에 이혼에 대한 충격이 남겨진 사람보다 적다. 그리고 이혼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시간도 훨씬 빠르다. 새로운 연인이 있어서 이혼했다면 그 사람과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죄책감마저 제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아이들 때문에 전 배우자를 보게 된다면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다.
문제는 우리 마음속을 함부로 떠다니는 죄책감이다. 죄책감은 보통 일정한 기준에 맞춰 살지 못했을 때 오는 결과다. 그 기준은 폭이 넓든 좁든 자신의 판단에 의해 조절된다. 그런데 자신의 판단 범위를 벗어나는 기준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사회, 종교의 기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죄책감이라면 그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두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는 결혼 서약을 어겼다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자책하는 경우가 이런 것이다. 또 이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회에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남겨진 사람이 마치 자신에게 이혼의 모든 책임이 있는 것처럼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내가 너무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져서 살아갈 의욕이 없어요.”
사실 이혼 과정에서 자존감은 매우 낮아진다. 사랑에 많은 것을 쏟아부었는데 막상 그 관계가 끝나버리니 자존감이 훼손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비하나 자책감이 많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비하나 자책의 정도가 심하고 그 상태가 지속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체로 어린 시절부터 거부당한 경험이 많아서 자존감이 낮고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거나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죄책감을 극복하는 데는 자존감을 높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혼은 너희 두 사람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어.”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되면 거부당했다는 느낌이 사라지면서 스스로 자책하는 일도 그만큼 줄어든다.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혹은 미숙한 사람이라거나 실패자라는 부정적인 느낌을 안은 채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려고 한다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필을 만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반면에 서로 맞는 상대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애정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관계를 정리했을 때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배필을 찾을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저절로 알게 된다. 죄책감은 우리가 새로운 상대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치유해야 할 감정이 남아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 이혼 후 어느 쪽이든 전 배우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제3부 당신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라
대등하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 그리고 원활한 소통
이혼한 부부들은 흔히 그 이유로 ‘성격 차이’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격’이란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을 때 서로에게 나타내는 반응이다. 자기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성격이 못됐다고 말한다. 또 자기 뜻을 굽히지 않으면 고집스럽다고 말한다. 혼자 너무 밀고 나가면 강하다고 말한다. 무조건 자기 말에 순종하면 착하다고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바보 같다고 무시한다. 어떻게 보면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명령을 따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이 현명한지 여러 자료를 모아놓고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따라주기 바란다. 이런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행동이 일반 가정에서는 하나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관계는 마치 서로 똑같은 크기로 똑같은 무게를 받아야만 유지될 수 있는 두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다리와 같다. 어느 순간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둥의 한쪽만 성장하다 보니 관계라는 다리가 무너진 것이다. 황혼 이혼이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혼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부부간의 문제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며,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했기에 이혼까지 갈 수밖에 없었는지 한번 알아보자. 다음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라.
- 당신과 전 배우자의 관계는 대등했는가, 아니면 의존적이었는가?
- 서로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왔는가? 상대방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는가?
- 서로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는가? 언제 그런 느낌이 들었는가?
- 아이의 성장에 서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가?
-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는가?
이 질문들에 답을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어쩌면 거부감을 느끼는 질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전 배우자나 사회 탓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물론 자신의 탓을 인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관계가 끝나게 된 것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복잡하고 치밀한 분석이 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많이 성숙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 역시 충분하다. 성숙하다는 것은 의존적이지 않고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며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건전한 토대 위에서 서로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제4부 상처가 이혼하게 만들었다
상처가 어떻게 갈등을 만드나?
어릴 적 사랑의 결핍과 자존감: 우리는 자신과 세상, 사랑과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대부분 어린 시절에 습득한다. 이때 우리는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평가할지를 배우고 자존감이 무엇인지도 배운다. 또 세상이 안전한 곳인지 아닌지, 주변 사람들을 믿어도 될지 말지를 배운다.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어린 시절에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면 자존감이 떨어진다. 마치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자신의 가치를 형편없이 낮게 평가한다. 대체로 부모로부터 무시당하고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 어린 시절에 자신이 신통치 않다는 믿음을 내면화하게 되면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세상에 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상처다.
자존감이 낮게 학습된 사람도 마찬가지로 부모에게서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학습된 것이다. 어린 시절에 낮은 자존감을 습득한 사람들은 결혼으로 자존감을 고양시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나칠 정도로 자존심을 내세우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게 되면 몹시 화를 낸다. 바로 내면의 상처 때문이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면 매우 고통스럽다는 경험을 해왔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를 누가 건드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건드릴 만한 말이 나오면 마치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먼저 공격적으로 나온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도 항상 긴장해 있다. 상처를 건드리는 말이 나오면 자존심이 상했다고 화를 낸다.
단순히 대화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신감이 없다 보니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부정적으로 왜곡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남편이 꽃을 선물하면 혹시 이 사람이 뭔가 내게 잘못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자신이 꽃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꽃을 선물하니 뭔가 숨은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전에 자신의 부모가 외도를 했던 것을 떠올리며 혹시 외도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자신의 추측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서 외도를 했다고 확신하기도 한다. 부모 한쪽의 외도로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다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갈구한다. 이런 모순이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감정적인 유대를 유년기부터 학습하지 못한 사람들은 보통 성인이 되어 애정 관계를 맺을 때 그 과정을 완수하려고 한다. 그러나 감정적 유대가 무엇인지 모르는 그들은 자기와 친해지려는 사람과 오히려 이런 식으로 거리를 벌려놓기도 한다. 그들은 친해지기를 원하다가도 막상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친해지려는 사람을 밀어내버린다. 특히 성적 행동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부부가 서로 끌어안고 사랑을 표현하면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부부간의 친밀감도 만들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영향을 치유하려는 시도는 빈번히 이루어지지만 성장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왜곡되어 있다. 사고방식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고 책임감이 부족하면서도 고집스럽다. 어쩌면 지금 이혼한 것도 ‘내면의 아이’가 부모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성숙한 인간으로 바로 서기 위한 욕구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인간이 되는 길에 가까우며, 나 자신이 사랑으로 넘칠 때 비로소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제5부 섹스, 이혼 그리고 그 이후
섹스를 완성시키는 것은 사랑이다
사람은 성적으로 미완성된 존재: 남자들 중에는 ‘아내가 섹스를 너무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성욕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떻게 참고 살라는 말이냐?’고 말하면서 자신의 외도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또 ‘아내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아서 재미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여자들 중에도 ‘남편이 조루라서 섹스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문간만 어지럽혀서 오히려 섹스를 하고 나면 짜증이 난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섹스는 부부간에 욕구 차이가 생기면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궁합’을 말한다. ‘속궁합’이 잘 맞아야만 섹스도 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사람은 분명 성적 동물이다. 하지만 성적으로 완성된 존재는 아니다. 부부란 성적으로 미완성된 사람들끼리 만나서 함께 성적으로 완성시켜가는 사이이다. 그것이 사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