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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줄리언 바지니, 안토니아 마카로 지음 | 아날로그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줄리언 바지니, 안토니아 마카로 지음

아날로그 / 2014년 9월 / 300쪽 / 14,800원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에게



심리학자: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노력이다

요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떤 방식으로든 깊이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자기계발 서적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계발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책은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는 그 방법이 명확히 제시되기도 했다. 1859년에 출간된 『자조론』의 저자 새뮤얼 스마일즈에 따르면 자기계발이란 근면, 끈기, 검소함 등의 고귀한 소양을 기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의 사정은 다르다. 도처에 계발해야 할 것들이 널려 있다. 심지어 와인 음미법을 배우는 일조차 자기계발의 방법 중 하나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우리는 왜 완벽에 집착할까?: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욕구는 물론 존중할 만하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부분도 있다. 아마도 가장 나쁜 선택은 완벽에 대한 지나친 집착일 것이다. 완벽에 집착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이란 이런 생각이다.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만 하려 들게 되고, 결국 만사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안일주의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정반대의 의문도 생길 수 있다.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높은 기준과 목표를 세워놓고 그걸 달성해보겠다고 평온해야 할 내 삶을 제물로 바치는 것 또한 과연 가치 있는 일일까?’ 더 나아가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반드시 이 둘 중 하나의 경우에만 속해야 하는가?’ 어쩌면 완벽이 아니면 평범이라고 보는 이분법적 사고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즉 최고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삶 외에는 다 실패한 삶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이 쉽게 빠지는 오류: 스토아학파는 몇 가지 유용한 조언을 남겼다. 그들은 활쏘기를 예로 들어 논지를 펼쳤다. 활을 쏠 때 우리는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뛰어난 활솜씨를 보여주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과녁의 정중앙을 꿰뚫으리라는 확신이 서는 것은 아니다. 물론 활을 잘 쏘고 못 쏘고는 우리의 능력 안의 일이지만, 확실히 시위를 떠난 뒤의 일은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노력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의 결과까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역설적이게도 자기 향상을 위해서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해야 하며 실패를 견딜 줄 알아야만 한다. 이런 능력이 완충 역할을 해주지 못하면 자기 향상에 대한 관심은 결국 자아도취에 빠지게 되거나 자아비판적인 완벽주의로 전락하기 쉽다. 또 다른 잠재적인 위험은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너무나 많은 책임을 지려 한다는 것이다. 오해하지는 말라. 책임을 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책임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발판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전후 맥락은 따져보지도 않고 모든 일을 자신이 책임지려 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일이 된다.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다: 마지막 얘기를 해보자. 우리는 실패한 것, 즉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자기계발이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포괄할 수는 없다는 사실, 또 어떤 잠재 능력을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다른 능력을 잃게 되기 마련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며, 자신의 에너지를 모든 일에 동등하게 쏟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크게 성공한 사람들 중 다수는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친구 혹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런 점은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인생의 모든 측면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다. 이 또한 인간의 조건이 갖는 여러 측면들 중 하나이다.

한 방면에서의 상실은 다른 방면에서의 획득을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가 꾸준히 노력하여 어떤 능력을 향상시켰다고 해보자. 그것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고 대신 특정한 능력을 개발하는 일에 자신의 잠재 능력과 열정을 집중시킨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감안하여 어디에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투자해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이런 조언들을, 목표를 이루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자신을 변명하는 수단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관대할 수 있다.

가장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 결국 우리는 스스로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리타 치료법’의 창시자인 일본의 정신의학 전문의 쇼마 모리타는 이러한 생각과 관련된 조언을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표현한 바 있다. “당신이 될 수 있는 가장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 두려움, 불안 등의 감정을 극복 대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대상으로 봤던 모리타 박사답게 자신의 부족함 역시 인정할 것을 권한다.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 잠재 능력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느낌은 쉬이 누그러지지 않고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잔소리처럼 우리를 따라다닐 수도 있다. 이러한 ‘잔소리’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관련된 암시로 해석할 줄 아는 건설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그 ‘잔소리’는 이제까지 자신의 삶에서 간과해왔던 특정 부분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이 잔소리에 힘입어 또 다른, 그리고 좀 더 성숙하고 충만한 길로 방향을 전환해 나아갈 수 있다. 물론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도착점보다는 여행의 경로가 더 중요하다.

철학자: 내가 살아 온 삶이 곧 나 자신이다

1920년대에 프랑스 심리학자이자 자기암시요법의 창시자인 에밀 쿠에는 사람들이 약의 내용물보다는 포장이나 광고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최면술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마침내 우리의 생각이 눈앞의 현실을 만들어낸다는 골자의 자기암시요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나는 나날이, 그리고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주문을 외운다면 자기 암시의 힘에 의해 실제로도 눈에 띄게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기법이 효력을 발휘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만약 효과가 있다면 굉장한 일임에 틀림없다.

훌륭하게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의 차이: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여기는 삶과 잘 사는 것이라고 여기는 삶의 차이를 떠올려보자. 도덕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은 타인을 좀 더 잘 대우하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잘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생활이 더 나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건강해진다거나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는 것, 혹은 좀 더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도덕적 향상이 아닌 생활의 향상만 추구하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이득을 남기는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에만 집중하는 행동에도 이타적인 면모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내게는 그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들에 따르면, 더 잘 살게 된다는 것은 곧 타인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고 더욱 친절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좀 더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싶어 하게 될 것이므로 더 잘 산다는 것 자체에 이타적인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삶의 목표 중 가장 이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개인의 행복에조차 이타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 타인에 대해 관대하고, 공감할 줄 알며, 배려도 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그 증거로 제시하려 할 것이다. 이 말은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이다. 대개의 경우 도덕성은 삶의 자양분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언제나 함께 간다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순진한 생각이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행복한 사람도 있으며, 자신의 건강과 재산을 고귀한 가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성인군자도 있다. 자기 향상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행위는 순전히 이기적인 의미의 발전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될 위험성이 있다. 또 도덕적인 차원을 무시하게 되는 부수적인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어긋난 초점을 제조정하기 위해서는 ‘자기’라는 단어를 빼야 한다. 그리고 쿠에의 주문은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한다. “나는 나날이, 그리고 의미 있는 측면에서 좀 더 바르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잠재 능력에 대한 오해: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우리가 향상시키려고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 얼마나 향상시켜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이 잠재 능력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잠재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여긴다. 더 나아가 타인의 잠재 능력까지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잠재 능력이란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우리 안의 어떤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잠재 능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그것을 계발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므로 아직 계발되지 않은 잠재 능력을 현실화시키는 문제를 전제할 때 여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불확실성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장 폴 사르트르의 비판에 따르면, 잠재 능력은 상황만 달랐더라면 어떤 일을 해낼 수도 있었을 거란 착각을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거짓된 위안을 준다. 사르트르는 “믿을 수 있는 것은 실재뿐이며 꿈, 기대, 희망이라는 말은 그저 거짓된 꿈, 실현되지 않은 기대, 무산된 희망을 통해 한 사람을 정의 내리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철학자들이 표현을 절제하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사르트르가 꽤 과장된 표현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 혹은 될 수 있었는지를 우리 스스로 잘 안다고 쉽게 가정하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는 측면만 놓고 보면 그의 주장은 옳다. 그 누구도 미래를 내다볼 수 없으며, 과거에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길이 어느 곳으로 이어졌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계발하려 하지 않았던 잠재 능력이란 어쩌면 정말로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가상의 능력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자기 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은 결과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다. 잠재 능력에 대한 자아도취적인 생각이나 착각에 빠지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다면 자기 향상을 위해 우리는 얼마만큼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까? 완벽주의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긴 하지만 불가능한 이상을 향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생각은 사실 칸트가 제시했던 원리를 반대 방식으로 차용한 것이다. 칸트의 원리에 따르면 ‘당위는 능력을 함축한다.’ 달리 말해, 그만한 능력을 갖지 못했는데도 어떤 것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단체에 백만 파운드를 기부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칸트의 주장은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 사이먼 크리칠리의 얘기를 듣고 난 뒤의 내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르면, 윤리학에서는 당위가 불가능을 함축한다. 우리는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기준과 목표를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동에 만족하는 순간 길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계명에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 말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이 말이 전형적인 완벽주의자들이 하는 말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성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이 의미를 갖는 경우는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전이 이루어질 때이다. 당신이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가기 원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단순히 그 목적지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해서 딱 절반만큼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무용한 논리이다. 반면 당신이 이 나라 최고의 우쿨렐레 연주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결국 동네 최고의 연주자 정도 되는 데 그쳤다면 어떨까? 그것은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완벽주의자의 첫 번째 문제점은 대개 차선의 결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완벽주의자들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극복하거나 스스로에게 부과한 당위가 자신이 가진 실제 능력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불가능한 것은 진정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헛된 갈망으로 인해 자칫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가능한 일임에도 할 수 있다고 우기면서 노심초사하다가 결국 불만족스럽고 불행한 삶을 사는 자신을 비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완벽해지려고 애쓴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완벽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 책임감 있게 살아가고 싶은 당신에게

철학자: 책임감을 느끼는 기준의 차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곧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책임감’이란 말은 모호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당신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범위가 확실한 것이다. 즉, 자신이 통제할 수 있었던 어떤 것을 통제하지 않음으로 인해 초래된 결과에 대해 당신은 책임이 있다. 또한 당신이 합리적으로 사고했을 때 발생할 것이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한 행동 때문에 발생한 결과뿐 아니라 당신이 소홀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발생한 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책임이 있다. 어린아이를 학대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린아이를 돌보는 데 소홀히 한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책임의 복잡한 양상: 그러나 책임에 자유의지의 문제를 끌어들이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철학적 논쟁은 마치 전혀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불치병 같은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그 문제에 집착하거나 얽매이다 보면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다. 게다가 이런 형이상학적 난제가 우리의 실제 삶에 미치는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세계에서 책임의 문제가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내 생각에 거기에는 심리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동 결과에 대해 얼마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는 그가 그 행동 결과에 대해 얼마만큼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느냐에 비례한다는 원칙은 자명한 이치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이와 같지 않다. 그 정도가 정확히 동일하며 행동의 결과도 거의 똑같은 두 상황을 놓고서도 우리는 칭찬과 비난에 매우 상이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70파운드짜리 신발이 망가지는 게 싫어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면 도덕적 태만의 죄를 묻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반면, 모금함에 50파운드의 돈을 기부하는 것을 거부한 경우를 보자. 이 돈을 기부함으로써 열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더라도 기부를 거부한 행위에 대해 책임감 문제를 들어 비난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돈도 적게 들고 행동하기도 쉬운 경우임에도 말이다. 물론 결과의 확실성 여부를 제기하며 위의 주장을 반박할 수도 있다. 즉, 기부를 거부한 행위는 의도한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지 않은 반면, 아이의 목숨을 구하는 행위는 의도한 대로 그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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