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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4년 8월 / 248쪽 / 13,000원





제1장 싸가지란 무엇인가? - ‘싸가지 없는 진보’의 시장 논리



“넌 착한데 싸가지가 없어”?

싸가지는 ‘싹수(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의 방언(강원, 전남)이다. 국문학자 정민의 자상한 해설을 들어보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처음 나온 새싹은 연둣빛으로 파랗지만 새싹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움터 나오는 새싹의 여린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싸가지가 없으면 기르나 마나다. 곡식도 싸가지가 있어야 하지만 사람도 싸가지가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싸가지가 없으면 커서도 알곡 없는 쭉정이가 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싸가지는 국어사전의 품 안을 벗어났다. 오늘날엔 ‘가능성’이나 ‘장래성’보다는 주로 ‘예절’이나 ‘버릇’의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iN’에 “친구들이 ‘넌 착한데 싸가지가 없어’ 이러는데요, 이게 무슨 말인가요?” 등과 같은 질문을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싸가지는 ‘예절’이나 ‘버릇’의 의미로 쓰이긴 하지만, ‘예절’이나 ‘버릇’이라는 단어만으론 포착할 수 없는 독특한 뉘앙스를 담고 있는 말이다. 싸가지는 주로 인간관계나 집단에서 잘났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에게 쓰이는 말이다. 또 일반적인 공중도덕과 관련된 ‘예절’이나 ‘버릇’이라기보다는 인간관계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거나 그 밖의 무례, 독선, 오만, 도덕적 우월감 등을 지적할 때에 많이 쓰이는 말이다.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착하면서도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듣는 게 얼마든지 가능해지는 것이다.

“‘싸가지 있는’ 정치를 위하여”

2006년 11월 2일 열린우리당은 의원총회를 갖고, 지금의 여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재창당을 할 것인지, 또 이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관한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양승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목사가 똑같은 성경 보고 설교한다. 그런데 목사가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신도가 몰리고, 목사가 ‘싸가지’ 없으면 신도가 떨어져 나간다. 태도도 중요하다. 의총 10시에 한다고 하면서 10시에 시작한 적 한 번도 없다. 말로 100번 반성해도 ‘싸가지’ 없으면 안 된다.” 2007년 9월 13일 언론인 고종석은 「‘싸가지 있는’ 정치를 위하여」라는 《한국일보》 칼럼에서 “옳은 소리든 그른 소리든, 공인의 말투는 싸가지가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실 ‘싸가지 없다’는 말도 싸가지 없는 말이다. 뜻이 고스란히 포개지지는 않겠지만, 지금부터 ‘기품 없다’나 ‘예의 없다’로 바꾸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장판의 싸움에서야 기품 없는 게 무기일 수 있다. 기품 찾고 예의 찾다보면 약하게 보이고 사기도 꺾인다. 그러나 문명사회의 정치판에서까지 기품 없음이 무기가 된다면 그건 슬픈 일이다. 정치도 그 본질이 싸움인데 기품 찾다 지느니 기품 없이 이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따지면 대답이 좀 궁색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슬픈 일임에는 변함이 없다. 기품 없음이 무기가 되면, 싸움이 진행될수록 당사자들은 점점 더 기품이 없어진다. 그래서 점점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 가장 모자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2012 대선의 ‘싸가지 논란’

2012년 12월 4일 대선 TV 토론에서 통합진보당 후보 이정희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나왔다”고 말한 것과 관련,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김대호는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하면 크게 마이너스인데, 이정희는 해서는 안 될 말을 너무 많이 했다. ‘OO년’ 하는 노골적인 욕설과 머리끄덩이만 잡지 않았을 뿐 할 수 있는 무례는 다 했다고 보아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명한 것은 이정희는 박근혜에 대한 분노, 증오심으로 이를 가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고, 역사 지식이 거의 제로인 20대 일부에게 과거사 공부를 좀 시켰을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진보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분명하다. 이정희의 품격은커녕,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망동으로 인해, 문재인 후보는 선뜻 야권연대에 손을 내밀지 못하고, 보수 지지층은 이정희를 보면서 ‘저런 놈들이 설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아무리 박근혜가 미워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보수 후보를 당선시켜야겠다’는 마음을 굳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얘기다.”

‘싸가지 없음’의 원조는 좌파 진보

싸가지의 문제는 민주당이나 그 지지자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며, 오히려 그 원조가 좌파 진보라는 데에 눈을 돌려야 하는 게 아닐까? 노동당 당원 남종석의 다음과 같은 자기비판이 좌파 진보 진영에도 필요한 게 아닐까? “좌파들 중에 논쟁으로 정파 싸움하면서 허송세월하는 사람들 아직도 많아요. 조금 차이 나면 싸우고 논쟁하고 상대를 기회주의자라고 규정하고. 가치를 위한 운동을 하니까 그래요. 그러면서 민주노총도 갈라졌지요. …… 이제 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욕만 하고 사는 존재 같아요.” 정의당 당원 이창우의 성찰도 감동적이다. “진보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존재하는데, 정작 원조 진보정당들은 전멸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유권자들이 진보에 의지하려고 하면서도 진보정당에게 ‘너희가 제대로 된 진보냐?’고 되묻는 것과 같아요. 과격하기만 한 진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진보가 아니라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을 책임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진보를 원하는 겁니다. 진보정당이 분열과 반목을 일삼는 모습이 국민들 눈에 함량 미달로 보이는 거죠.”

그렇다. 스스로 잘난 척하는 우월감이 문제다. 우월감이야말로 ‘싸가지 없는 진보’의 동력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 입당한 열성당원이기도 했던 영화감독 박찬욱은 2003년 《월간 말》 인터뷰에서 진보 진영에 대한 쓴소리를 주문하는 기자에게 긴 시간 침묵을 지키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낸 적이 있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혼란스럽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혼란이 점점 더한 건 과거 사악한 집단으로 여겼던 자본가나 기득권층이 직접 만나보면 상당히 젠틀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때다. 화가 나서 미치겠다. 문제는 지금 그들이 창업자나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아니라 2세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꼬인 게 없는 자들이다. 그래서 착하다.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다. 예전엔 못 가지고 무식한 사람들이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는 것. 빈부의 격차가 인격이나 인성마저도 그렇게 비틀고 있다. 어떻게 이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참 답답하다. 《말》지를 보면 운동권 내부에도 참 비리와 문제가 많은 것 같고…… 참으로 진실이 뭔지 혼란스럽다.”

많은 경우 일부 운동권의 ‘꼬임’은 도덕적 우월감과 독선에서 비롯된다. 그런 기질은 발생론적으론 타당한데, 현실은 늘 발생론적 기원을 배반한다. 이타적인 정의감 하나로 운동에 뛰어든 것은 숭고하지만, 오랜 세월 고난과 시련을 겪다보면 이타적인 정의감을 압도하는 다른 부정적 행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는 아무리 감안된다 해도 제값을 다 못 받는 법이다. 숭고한 동기로 시작한 일이라도 사람들은 그런 과거보다는 현재 보이는 부정적 행태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압도적 우위 앞에서 과거에 대해 ‘쿨’해질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그게 영 뜻대로 안 되는 걸 어이하랴. 안타깝고도 가슴 아픈 일이다.



제2장 진보의 진보 비판은 ‘비겁함’ 또는 ‘무지’ 때문인가? - 싸가지 있는 비판을 위하여

김어준ㆍ조기숙ㆍ강기석의 반反비판

한국에서 내부 비판은 금기시되거나 정략의 수단으로만 이용되고 있으며, 그런 풍토와 인식이 고착되다 보니 내부 비판을 금기시하는 건 물론이고 내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 2011년 8~10월 진보 진영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곽노현 사건’이 좋은 사례 연구가 될 수 있다. 당시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진보 진영 일각의 곽노현 비판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제가 《딴지일보》를 무려 14년간 해오면서 수많은 진보적 글쟁이들, 혹은 진보 인사들을 만났기 때문에 그분들의 심리를 잘 압니다. 어떤 심리가 있냐면 ‘나는 같은 편도 비판할 만큼 공정하다, 합리적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뭔가 잘못이 나오면 진보 매체, 가장 진보적인 진영이 먼저 공격을 해요. 이런 심리를 더 들여다보면 사실은 굉장히 비겁한 겁니다. 도망가는 거예요. 같은 편이라고 편들어줬다는 소리 들으면 어떻게 하지? 편들어줬다가 뭐가 나오면 어쩌지? 그러니까 교과서에 나오는 원론을 이야기하는 거죠.”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과 조기숙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소위 진보언론인과 지식인들은 이념적으로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논평이 가능하면 공정해 보이길 바란다. 그것이 논평의 생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같은 편이 잘못하면 더 추상같이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공정성을 증명하고자 한다. …… 진보언론이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빠져드는 이유는 이들 논객이 무엇이 우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계산할 정치적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된장과 똥도 구분할 줄 모른다. 정당이든 언론이든 논객이든 적절한 무지는 자기애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또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강기석은 “왜 진보적 인사들이 때때로 곽노현 등 자기 진영 인물들의 ‘혐의’에 대해 오히려 조중동보다 더 가혹하게 공격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 후 이런 답을 내놓았다. “현재의 주류 근처에서 놀고 싶어 하는 적당히 진보적인 인사들은 수구언론보다 더 곽노현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한편, 진보세력의 수호자임을 내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안티조선 운동의 왜곡

한때 안티조선 운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으로서 진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조중동 프레임’의 오남용은 조중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정치적ㆍ정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 언론발전에 오히려 역행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안티조선 운동과 관련해 가졌던 가장 큰 문제의식은 ‘투표와 여론의 괴리 현상’이었다. 이는 대통령 선거 시의 투표 행위는 그 어떤 시대정신이라거나 큰 정치적 바람에 의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언론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반면, 대선 후의 국정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상적 여론은 언론의 영향력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괴리 현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김대중ㆍ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대부분도 신문은 보수신문을 구독한다는 것이다.

보수신문의 색깔에 맞는 사람만 보수신문을 이용하고 구독한다면 보수신문 탓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보수신문도 자기 분수를 알고 조금은 더 겸허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분열과 증오’가 크게 약화될 것이다. 내 딴엔 이런 비전을 갖고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운동’으로 안티조선 운동을 했지만, 내가 가슴 아프게 확인한 것은 독자들의 완강한 신문구독 행태였다. 즉, 김대중ㆍ노무현의 열성 지지자일지라도 그건 그거고 일상적 삶에서 보수신문을 구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일정 기간 무료구독, 경품, 주류의 시각과 라이프스타일, 유익한 재테크ㆍ생활정보 기사, 광고 정보와 묻혀 들어오는 전단지 등)을 포기할 뜻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겼고, 오히려 그런 삶의 태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젠 ‘안티’보다는 진보언론을 키우려고 애쓰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진보는 걸핏하면 진보언론에 대해 불매운동이라는 협박 카드를 꺼내들고 그걸 관철시키는 아주 못된 버릇을 갖고 있다. 어떤 기사나 논평이 마음에 안 들면 반론을 쓰면 될 일조차도 사과문을 싣게 한다는 것이다. 정말 ‘싸가지 없는 진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행태다. 같은 맥락에서 2012년 대선 패배 직후 진보 진영이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변명을 내놓은 것도 문제가 있다. 운동장이 진보세력에 불리하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공을 차는 선수로서는 상대편을 이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두 번의 정권 창출은 어떻게 할 수 있었단 말일까? 이런 변명은 엄격한 자기 성찰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이른바 ‘자기 열등화 전략(self-handicapping strategy)’의 일상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기성찰과 개혁을 위해 애쓰는 게 좋지 않을까?

왜 강남좌파는 ‘왕싸가지’가 되었나?

강남좌파의 문제는 곧 민주당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동권 출신이라고 해서 가난하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재산공개 때 막상 까보면 부자가 왜 그리 많은지 놀라는 사람이 많다. 지금 그게 잘못되었다는 비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성으로 대처하고 싶지만, 유권자들이 감정으로 대처하는 현실을 더는 외면하지 말고 ‘이성과 감정’의 괴리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상쇄할 수 있는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강남좌파의 진짜 문제는 그들의 경제적 계급이라기보다는 문화적 계급이다. 강남좌파는 대부분 학력과 학벌이 좋은 이른바 ‘인지적 엘리트층(cognitive elite)’이다. 거의 비슷한 뜻이니, 그냥 ‘지식 엘리트’로 부르기로 하자. 민주당은 물론 좌파정당을 보더라도, 맹활약을 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명문대 출신들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운동권 내부의 학벌주의가 바깥세상의 학벌주의보다 지독하기 때문에, 이름 없는 대학의 운동권은 정치판에 명함 내밀기가 힘들다.

진보적 지식 엘리트는 자신의 학벌 자본을 이용해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린다. 당위만을 놓고 보자면 진보가 보수에 비해 멋져 보이는 데다 그럴듯한 ‘도덕 자본’까지 누릴 수 있으므로 지식 엘리트의 이념 구성은 현실세계와는 달리 진보 지향성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미국에서 ‘진보가 장악한 학술문화계’ 운운하면서 보수-진보 간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에선 소설가 이문열이 이 분야의 대표 논객인데, 그는 “일반 국민은 보수와 진보가 50대 50인데 문화 쪽은 진보가 거의 98%까지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과장일망정, 문화계의 보수-진보 비율이 한국 전체의 보수-진보 비율과 큰 차이를 보인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보수는 이런 현실에 대해 반감을 찾고 있지만, 실은 환영하고 축하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이게 자주 진보주의자들에게 착시(錯視) 현상을 불러일으켜 민심을 진보 위주로 오판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 엘리트’의 속성은 자신의 비교 우위가 지식ㆍ지성ㆍ비전에 있다는 걸 거의 본능 비슷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타인과 세상에 대한 ‘계몽 욕망’으로 충만해 있다. “우리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니 우리를 따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선거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유권자가 욕망에 투항했다”는 식으로 싸가지 없는 진단을 내놓는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재산을 까보면 욕망에 투항했다는 유권자들의 평균보다 훨씬 많다. 이런 현실이 막연하지만 강력한 느낌과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뇌리에 자리 잡으면서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고정관념을 만든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보=도덕’을 ‘개 풀 뜯어먹는 소리’로 규정해버리고 나면 쓸 수 있는 카드가 사라지고 만다. 이 문제는 진보는 왜 ‘감정’에 무능한가 하는 물음으로 바꿔서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제3장 왜 진보는 ‘감정’에 무능한가? - 진보의 ‘이성 중독증’



우리는 모두 ‘이중개념주의자’다

‘이중개념주의자(biconceptualist)’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진보적인 사람일지라도 강한 보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람보 영화에 공감하고 박수를 칠 수 있으며, 그건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일이다. 특히 중간파에 속하는 유권자들은 어떤 이슈들에 대해선 보수, 다른 이슈들에 대해선 진보의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우리가 정치 영역에서 특정 이념이나 노선을 택하면서 가급적 일관된 성향을 보이고자 하는 건 학습의 결과다. 이론으로든 실천으로든 정치를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이념의 포로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중개념주의’에 관한 레이코프의 다음 세 진술을 음미해보면서, 우리의 진영논리와 편 가르기가 이대로 좋은지 성찰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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