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소시오패스
M. E. 토머스 지음 | 푸른숲
나, 소시오패스
M. E. 토머스 지음
푸른숲 / 2014년 6월 / 384쪽 / 16,000원
나는 소시오패스다, 당신처럼
소시오패스는 누구인가
나는 소시오패스다. 유전자와 환경의 기묘한 조합으로 심리학자들이 흔히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고 부르는 그 병을 달고 산다.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MD)에서는 이 병을 ‘타인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광범위한 패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병의 여러 특징 중에서도 중요한 핵심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거짓말이나 사기에 대해 편집증적 기호가 있으며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성공한 변호사이자 법학과 교수로 법률 저널에 규칙적으로 칼럼도 쓰고 다양한 법학 이론도 발표한다. 수입의 10퍼센트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매주 일요일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한다.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 이건 마치 내 얘기 같은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어쩌면 당신 역시 소시오패스일지도 모른다. 스물다섯 명 중 한 명은 소시오패스라는 얘기다. 이것은 거식증이나 자폐증 환자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자신이 범죄자가 아니므로 소시오패스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소시오패스는 대부분 교도소에 있지 않다. 과묵한 대다수의 소시오패스는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도 꾸리며 자유롭게 살고 있다. 그들은 소시오패스를 괴물로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며 잘 살고 있다.
만약 나를 만난다면 당신도 나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을 만큼 적지 않은 사람을 만났지만, 내 매력에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지을 법한, 다시 말해 현실에서 보기 드문 상냥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당신이 여봐란듯이 전처의 결혼식장에 데려가고 싶을 만한 상대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되 똑똑하고 성공한 나는 당신의 부모님이 반색하며 환영할 만한 예비 며느릿감이다.
내가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는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그런 시선을 가리켜 ‘포식자의 눈빛’이라고 하는데, 소시오패스의 눈빛은 대부분 그렇다. 소시오패스는 아무리 오랫동안 시선이 부딪쳐도 동요하지 않는다. 공손히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거만하거나 공격적인 사람으로, 때로는 도발적이고 포악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선은 한눈에 반한 것 같은 긴장감을 흉내 낸 것이므로 상대방은 그 시선에 마음이 설렌다.
혹시 누군가를 이용하고 싶은데 딱히 묘수가 떠오르지 않아 자신의 매력과 자신감을 이용해본 적은 없는가? 이것을 ‘조종’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저 신이 준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이 소시오패스의 특질을 사악하다고 인식하는 때가 그 ‘조종’ 능력을 발휘하는 시점이지만, 나는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조종은 일종의 교환이다.
공감자들의 세상에서 나는 별난 사람
단순히 ‘소시오패스’라는 말로는 나를 정의하지 못한다. 여러 면에서 나는 지극히 평범하다. 지금 나는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용한 중소도시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게는 수면 장애가 있지만 주말이면 상점이 늘어선 번화가로 볼일을 보러 나가고 늘 바쁘게 일한다.
사실상 소시오패스와 다른 사람들을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우리의 강박과 유인 그리고 우리가 내면의 존재와 나누는 이야기다. 소시오패스의 머릿속 플롯에는 죄책감이나 도덕적 책임감이라는 요소가 없다. 오로지 이기심과 자기 보호 본능만 있을 뿐이다. 나는 내 선택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며 단지 비용-효율만 따진다. 실제로 소시오패스는 하나같이 권력에 집착하고 승부욕이 강한 데다 권태를 견디지 못하고 쾌락을 추구한다. 내 플롯은 내가 얼마나 똑똑한지 또는 내가 상황을 얼마나 잘 요리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의 조사에서 사람들은 도덕적 판단을 할 때 주로 감정과 직관에 의지하며 감정의 합리화는 그 후에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의 뇌는 일종의 신념 공장이다. 그 공장의 역할 중 하나가 도덕적 감정을 합리적으로 정당화하는 일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반드시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는 것은 아니지만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도 마찬가지다. 소시오패스든 공감하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도 범죄 독점권은 없다.
사람들은 흔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척’이라도 하라고 요구한다. 내가 보기에 이 요구에는 오류가 있다. 그러면서 소시오패스가 거짓말쟁이라고? 어불성설이 아닌가? 소시오패스가 진짜 자기감정(혹은 감정이 없음)을 보여주거나 마음속 생각을 보여줬을 때, 단지 다수의 세계관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여생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한다거나 반사회적인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등 부정적인 결말로 끝난다면, 소시오패스에게는 정말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공감자들의 세상에서 살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별난 사람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존 스타인벡은 소설 『에덴의 동쪽』에서 캐시라는 인물을 통해 소시오패스를 묘사한다.
“그녀가 어린아이였을 때조차 사람들은 그녀를 한 번 보고 무심코 눈길을 돌렸다가 뭔가 생소한 느낌에 당황해서 다시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 그녀의 눈빛은 방금 전의 그 눈빛이 아니었다. 소리 없이 걸었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방에 들어오면 누구나 금세 알아챘다.”
가끔 나는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실수를 하거나 징조를 보여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흉내 내는데, 그건 그들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내가 사람들 틈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숨는 이유는 소시오패스라는 것이 탄로 나면 경멸의 의미가 잔뜩 담긴 병명 탓에 예측불허의 부정적 결과가 튀어나올 수 있어서다. 나는 단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직업을 잃고 싶지도 않고 학생들과 이별하는 것도, 시설에 수감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사회가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까닭에 나는 숨는다.
그렇다고 나를 가학성애자(사디스트)로 볼 필요는 없다. 때에 따라 작정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어디 나만 그런가? 그래도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내 날카로움을 가능한 한 누그러뜨리려 노력한다. 언제나 그들의 이용 가치를 조심스럽게 가늠하고 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꽤 신경을 쓴다. 그런 식으로 가늠하는 것을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친구들 심지어 가족도 내 못된 행동에 한없이 관대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뒤로 물러선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단련했다.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할지, 언제 상대방이나 세상에 대한 그들의 경망한 생각에 맞장구를 쳐야 할지 알아야 하니 말이다. 물론 적에게는 무자비하지만 이것 역시, 어디 나만 그런가?
소시오패스라는 진단
고칠 수 없는 별난 구석
오랫동안 자기분석을 한 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몹시 교묘한 수완가라는 사실을,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관계를 맺는 교활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권력에 집착하고 출세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기꺼이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아 나는 그런 기질을 억누르고 통제하려 했다. 그때는 ‘소시오패스’라는 말도 몰랐을 뿐더러 내가 그중 한 사람일 거라는 예감도 없었다. 몇 년 후 로펌에서 일하는 동안 동료 하나가 그 가능성을 지적할 때까지는 그랬다. 그 동료와 나는 하계 인턴사원으로 함께 일했는데 일이 너무 따분했다. 나는 그 동료가 입양아이며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순전히 호기심으로 그녀의 삶을 캐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적 호기심이 강했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열린 자세를 보였다. 내가 합리성이라는 무정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데 반해, 그녀는 감성이 충만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이타심에 대해 얘기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받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토론했다. 나도 그런 상황이라면 위로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대답에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곧바로 혹시 스스로를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내게 물었으니 말이다.
나는 소시오패스가 무엇이고 또 그녀가 왜 나를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소시오(socio)는 사회적(social) 혹은 사회(society)라는 뜻이고, 패스(path)는 병적인 고통이나 증상이라는 의미다. 결국 소시오패스란 사회적인 분별력에 장애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내게 고칠 수 없는 별난 구석이 있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미 익숙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보통 사람은 단지 만족감이나 쾌락을 얻기 위해 일이나 사람을 계산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나는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보통 사람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 내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어떤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몇 년 동안 나는 그런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해봤지만 단 한 번도 그 감정을 실제로 느낀 적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동료는 알고 지내던 남자가 소시오패스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했다. 동료는 사기꾼 같은 그 남자의 손아귀에 잡혀 애꿎은 희생자가 된 게 아니라 오히려 오랫동안 그 남자와 깊은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소시오패스라고 확고히 믿었음에도 나를 평범한 인간으로 대해준 그녀의 의지 덕택에, 나도 이해받을 수 있고 또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인정받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품은 것 같다. 그녀는 양심적이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 중에도 나와 같은 존재를 혐오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준 산증인이었다.
박사와의 면담
소시오패스라는 자가진단을 내리고 심지어 소시오패스를 위한 블로그를 시작하고도 몇 해가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정식으로 진단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내가 내린 자가진단을 믿었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진단을 받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설득력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 내가 모두가 혐오스러워하는 가장 열등한 부류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기꺼이 드러내면 사람들이 내 말을 더 신뢰하지 않을까?
나를 진단한 존 에덴스 박사는 소시오패스 연구 분야에서 선도적인 사람으로 최근 《뉴욕타임스》와 NPR(국영라디오방송)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출연하고 있다. 에덴스 박사는 내가 받을 검사가 사이코패스 범죄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로버트 헤어 박사의 ‘소시오패스의 범죄 성향 모델’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걱정했다. 내게 범죄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다소 모호할 수도 있고, 실제 소시오패스적 기질 수준이 과소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PCL-R(Psycopathy Checklist-Revised) 검사의 스크린 버전인 PCL:SV 검사를 받았다. PCL:SV는 범죄 이력과 광범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PCL-R 검사보다 간단하지만 역시 사이코패스적 특징을 평가하는 검사다. PCL:SV는 열두 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항목에 0점에서 2점까지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를 합해 0점에서 24점까지 총점을 낸다. 검사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파트 1에서는 양심의 가책이나 타인에 대한 공감 부족처럼 소시오패스의 대표적인 특징, 속임수, 허풍 등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행동을 평가한다. 파트 2에서는 무책임, 충동성, 성인의 반사회적 행동같이 사회적으로 비정상적인 태도나 행동을 평가한다.
내 검사 점수는 24점 만점에 19점이었다. 진단의 절댓값은 없지만 매뉴얼은 18점 이상을 ‘사이코패스라는 강력한 지표’로 간주한다. 나는 성격을 다룬 파트 1에서는 12점을, 반사회적 행동을 다룬 파트 2에서는 7점을 받았다. 에덴스 박사는 “이 검사의 파트 1에서 최고점인 12점을 받았다는 것은 사이코패스적인 사람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뚜렷한 정서적, 대인관계적 특징이 있다는 의미다”라고 기록했다.
에덴스 박사는 내게 소시오패스적 인격을 관찰하기 위해 고안된 몇 가지 다른 검사를 더 실시했다. 소시오패스에게 가장 특화된 검사는 아마 정신병질적 성격 질문지 개정판(PPI-R, Psychopathic Personality Inventory-Revised)일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사이코패스적 인격을 암시하는 다양한 특징을 평가하기 위해 고안한 자기 보고 형식의 설문 검사다. 이 검사의 총점으로 세계적인 지표에 준한 사이코패스적 특질 수준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덟 개의 상세 항목으로 좀 더 특정한 특질도 평가할 수 있다. 에덴스 박사는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연령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PCL-R 검사 표준 자료 내의 어떤 하위 표본과 비교해도 토머스 씨의 검사 결과는 99 백분위수를 벗어난다는 사실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는 사이코패스적 인격 구조와 일치한다”고 썼다.
마찬가지로 자기 보고 형식의 설문지인 NEO 성격 검사 개정본을 비롯해 다른 몇 가지 검사 결과에서도 에덴스 박사는 내 프로파일이 “여성 사이코패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인격적 특질”과 판박이라고 적었다. 최종적으로 검사한 성격 평가 질문지에서도 나는 자기중심적, 감각 추구적 성향, 대인관계에서의 지배욕, 언어 폭력성 그리고 과도한 자부심 같은 특질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 공포성, 외상성 스트레스 요인, 우울증 등의 부정적인 감정 경험과 대인관계에서의 배려 혹은 일상적인 사건에 대한 스트레스 수준에서 점수가 매우 낮았다.
에덴스 박사는 나 때문에 괴로운 듯했다. 아마 ‘소시오패스’라는 진단이 내 삶에 미칠 영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작 나는 그런 진단 따위는 걱정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에덴스 박사도 아마 내 생각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박사와 나는 제 발로 진단을 받겠다고 찾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 걸맞은 검사법이 별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에덴스 박사는 몇 번이나 행여 내가 실제보다 더 중증 소시오패스 진단을 받기 위해 박사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자기 강화를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 역시 소시오패스의 대표적인 특질이다. 나는 그를 속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속여서 진단을 받는 것은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나는 진심으로 해답을 원했고 세 시간짜리 상담을 통해 박사에게 얻어낼 수 있는 모든 통찰력을 얻고 싶었다.
일반인 코스프레하는 외계인
소시오패스의 감정 세계
내게는 감정의 방향 감각이 없다. 그렇다고 감정을 아예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여러 감정을 느끼지만 그중에는 내가 분간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내 감정에는 전후 맥락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한 번에 한 쪽씩 책을 읽지만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는 느낌이랄까. 이해를 도와줄 단서는 있지만 일관된 논리가 없어 내가 느끼는 모호한 불쾌감과 ‘어떤 것 때문에 슬프다’는 식의 인식 사이에서 명확한 인과관계를 추론하기가 힘들다. 스스로의 감정에도 맥락을 정하기 어려운 마당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란 꿈도 못 꿀 일이다.
런던 킹스 칼리지 정신분석 연구센터의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소시오패스 범죄자의 뇌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백질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보통 사람의 뇌와 달리 소시오패스의 뇌가 죽음, 강간, 암 같은 단어에 감정적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그런 단어에도 우리는 ‘의자’ 같은 단어와 비슷한 수준의 감정적 반응을 한다. 소시오패스의 뇌에는 감정 조절, 위협 처리, 의사결정 촉진을 돕는 전전두엽 피질과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 사이의 연결 부위가 적다는 것을 밝힌 연구도 있다. 이는 소시오패스가 반사회적 행동을 하면서도 그런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연구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