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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정리되는 그리스철학 이야기

이한규 지음 | 좋은날들
단숨에 정리되는 그리스철학 이야기

이한규 지음

좋은날들 / 2014년 6월 / 272쪽 / 12,800원





PART 1 철학의 탄생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철학은 기원전 6세기경 이오니아 지방에 위치한 밀레토스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최초의 철학은 밀레토스 출신의 탈레스와 그의 제자인 아낙사고라스 그리고 아낙시메네스로 이어집니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자연이었습니다. 인간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현상이 왜 생겨나게 되는지 그 원인을 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자연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이후 그리스철학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면서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인간과 사회로 탐구의 대상이 바뀌게 되지요.

밀레토스가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사라지게 되자, 밀레토스의 철학은 주변의 도시국가로 퍼져 갑니다. 밀레토스 출신이면서 다른 지역에 최초로 철학의 뿌리를 내린 사람은 피타고라스입니다. 오늘날 ‘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밀레토스의 철학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이해합니다. 또 그는 이집트와 페르시아 지역에서 발전한 종교를 자신의 철학에 접목시킵니다. 피타고라스 이후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는 그리스의 철학적 사고를 한 차원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그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세계를 변화의 관점에서 보았고,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며 세계를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스철학은 왜 일찍부터 발전했을까?

그리스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하여 고대 로마에까지 계승된 철학을 말하는데, 탈레스가 활동했던 기원전 6세기부터 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가 폐쇄된 6세기 초까지 대략 천여 년에 걸쳐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황허처럼 고대 문명의 직접적인 발생지도 아니었던 그리스에서 최초의 철학이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철학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조건을 그리스의 자연적ㆍ정치적 환경, 그리스신화, 시인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영향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자연이 시각의 문화를 만들다: 그리스의 자연환경이 철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그리스의 변화가 많은 지형과 맑고 투명한 날씨는 그리스인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는데, 바로 ‘시각의 문화’입니다. 시각의 문화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말합니다. 시각의 문화는 철학과 과학이 왜 고대 그리스에서 발전했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동트기 직전 어둠이 세상을 감싸고 있을 때, 사물들은 불투명해 그 모습을 잘 볼 수 없습니다. 이윽고 밝은 태양이 떠오르면서 희미했던 사물들은 모습을 드러내어 명확한 자태를 보여 줍니다. 그리스인에게 ‘진리’란 이렇듯 어둠에 숨어 있던 희미함이 빛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았거나 불분명한 것들을 밝혀내려는 기질이 강했습니다. 그 같은 성향이 궁금증을 해결해 내고야 마는 탐구 정신을 낳았고, 과학과 철학을 만들어 내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자연환경이 그리스인들에게 끼친 영향 중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바다입니다. 그리스인에게 바다는 모험과 새로운 삶의 터전이었고, 동시에 주변 민족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이로써 다른 문화, 다른 관습, 다른 종교와 지식을 알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다른 민족들과의 갈등도 생겨났습니다. 다른 문화권의 관습, 정치질서, 이질적인 종교가 섞이게 되면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릴 우려가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그 결과로 자신들이 오랫동안 진리라고 믿어 왔던 것들을 의심하게 되지요. 이와 관련해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클라우스 헬트는 『지중해 철학 기행』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오니아 해안의 주민들에게는 개방적인 환경으로 인해 다양한 경험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서 정치와 개인 생활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이러한 통일성이 위태로운 처지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과 과학을 탄생시킨 근본적인 요인은 동질성을 유지하려는 욕구, 즉 통일된 삶의 토대를 확보하고 모든 당위성에 대해 불거져 나오는 상대적 의문을 방지하고자 하는 소망과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 왔던 질서가 다양한 문화의 도전을 받았기에,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철학과 과학이 등장했다는 것이지요.

도시국가의 개방적인 토론 문화: 고대 그리스인이 철학이라는 학문을 발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정치적인 자유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신전을 세웠는데, 그곳을 ‘아크로폴리스’라고 합니다. 그 아래에는 ‘아고라’라 불리는 장터와 ‘프리타네이온’이라는 시청이 있고, 주변에는 극장과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연무장이 있습니다. 대다수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장도 보고 그날 있었던 이야기도 나누곤 했습니다. 여론이라는 게 이곳에서 생겨났지요.

그리스인들이 장터에서 벌인 토론은 주로 거래를 위한 대화나 서로의 관심사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래나 대화는 지배와 예속의 관계가 아닙니다. 우월적 권위를 지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장터에서 만나 대화를 할 때는 서로 간의 어떤 공통적인 바탕 위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이때 양자의 공통적인 바탕, 즉 너도 가지고 있고 나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로고스(logos)’라 불렀습니다. 로고스는 흔히 진리 혹은 이성을 가리키는데, 본래는 ‘말’이란 뜻입니다. 사람은 말을 통해 생각을 하고 소통을 합니다. 말은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유 그 자체인 것이지요. 즉 ‘이성’을 바탕으로 서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데에서 철학은 싹을 틔우게 됩니다.

철학의 시작, 신화와 서사시: 괴테와 동시대를 풍미했던 독일의 시인 횔덜린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쓴 서사시)는 철학의 발단이며 끝입니다. 미네르바가 주피터(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듯이, 철학은 무수한 신적인 존재에 대한 시적 표현에서 발생했습니다.” 시인다운 표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횔덜린이 말하고자 한 것은 명백합니다. 철학의 시작은 시였다는 것이지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의 힘과 질서 앞에서 두려움과 경이감을 가졌습니다. 매 순간 무엇에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러한 두려움이 지속된다면 사람은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인격성을 부여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그리스인들의 천재성이 돋보입니다. 자연의 힘은 신들의 힘이 되고, 동시에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게 됩니다.

인간과 신의 근본적인 차이는 단지 죽는 존재인가 아닌가에 있지요. 이런 식으로 자연의 힘에 인격성을 부여함으로써 그리스인들은 자연이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안정적 삶을 꾀할 수 있었습니다. 기원전 12세기경 주변으로 퍼져 간 그리스인들은 공동체에 전승된 다양한 신화들도 함께 가지고 갔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들고, 또 다른 이야기와 결합되어 새로운 신화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그리스 신화를 최초로 집대성한 사람이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였습니다.

밀레토스학파, 철학의 씨를 뿌리다

밀레토스 사람들은 부가 쌓이면서 종교적인 신비주의보다는 세속적이고 합리적인 것에 끌리게 되었습니다. 밀레토스를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만든 것은 그들의 실용적인 학문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철학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아르케란 무엇인가?: 밀레토스 출신의 철학자로는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그리고 아낙시메네스가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에 발전한 실용적 과학을 넘어 ‘세계의 근원(아르케)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처럼 다양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세계 뒤에는 질서와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원소’라고 이해했습니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은 그가 처음으로 세계의 근원(아르케)에 대한 물음에 합리적인 대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세상이 물로 이루어졌다니! 오늘날 우리의 과학 지식으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요. 물론 그의 말을 철학적으로 이해해 보면 전혀 우스갯소리는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이라는 책에서 세계의 근원에 대한 탈레스의 주장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철학의 창시자인 탈레스는 그것(아르케)을 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육지가 물 위에 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러한 가정을 하게 된 것은 모든 사물들의 양분이 습기로 되어 있고, 따뜻함 자체도 습기 있는 것으로부터 생기며, 이것에 의해 존속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이 밖에도 모든 사물마다 씨의 본성이 습기를 가지고 있고, 물은 습기 있는 사물들의 본성적 원리라는 사실로부터 그러한 가정에 도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탈레스의 학설이 잘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설명을 부연해 보겠습니다. 탈레스는, 모든 것은 변하지만 그 속에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을 거라는 전제를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은 도대체 뭘까요?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자연의 여러 개별적인 현상들을 관찰하였을 것이고, 물은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요소라는 답을 이끌어 냈던 것입니다.

탈레스는 신화적 설명 방식을 분명히 넘어섰습니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가 그에게 철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주었을 테지요. 그렇다면 세계의 아르케에 대한 그의 철학적 설명 방식은 어땠을까요? 세계는 기체와 액체, 고체로 이루어졌는데, 이들 요소가 변화하는 성질을 가진 가운데 변화하지 않는 것은 오직 물이라는 것입니다. 물에 열을 가하면 기체로, 물이 얼면 고체로 변화하지만, 그 속에는 물의 성질이 고스란히 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근거로는, 모든 생명체는 물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식물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물을 필요로 하고, 인간의 생명도 물(정자와 난자)에서 시작되지요. 생명의 근원인 물이 자연 세계의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은 당시로서는 아주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탈레스는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의 근원을 밝힌 최초의 사람입니다. 현상을 단순화해 자연을 분석하고, 지적 탐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 그의 노력이 철학의 발생을 이끌어 낸 것이지요.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만물이 물로 이루어졌다는 탈레스의 주장에 대해 그가 왜 그렇게 생각했고, 어떻게 그런 결론에 다다랐는지를 헤아릴 수 있다면 여러분도 철학자의 문턱을 막 넘어선 것입니다.



PART 2 그리스철학의 황금기가 펼쳐지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은 기원전 492년에 그리스 본토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공격은 마라톤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기원전 486년에 다리우스 대왕이 죽고, 그리스 정복의 과업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넘어갑니다. 그는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 정벌에 나서 기록될 만한 세 번의 전투를 치릅니다. 테르모필레, 살라미스, 플라타이아이 전투가 그것입니다.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스파르타 전사 300명과 그리스 연합군 4,000명은 그리스로 들어오는 좁은 길목인 테르모필레에서 페르시아 군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그리스인은 모두 전사하고, 페르시아 군대는 그리스 영토 대부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때 아테네 사람들은 배를 타고 도망치지만, 살라미스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 해군을 격퇴시킵니다. 전쟁이 시작된 이듬해에는 반격에 나선 그리스 연합군이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후부터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그리스에서 최고의 군사세력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나 두 패권 국가는 서로 전쟁을 벌여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전쟁에서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하게 되지요. 이 전쟁이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기원전 404)입니다. 우리가 흔히 그리스철학의 황금기라 부르는 시기는 이 두 전쟁 사이에 걸쳐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해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완성된 그리스철학은, 전쟁을 통해 시작되었고 전쟁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소피스트, 아테네 민주주의에 꽃을 피우다

소피스트를 알려면 당시의 시대 상황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테네의 전성기를 이끈 페리클레스는 자신이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신봉하였습니다. 그의 통치하에 아테네 민주주의는 최고로 발전하게 됩니다. 전통적인 토지 귀족들은 점차 쇠퇴해 가고 신흥 중산층이 정치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외되었던 ‘다중(데모스, demos)’이 정치적 발언권을 획득했습니다. 민주주의(demokratia)란 바로 ‘다중(demos)’이 ‘권력(kratos)’을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수의 시민이 주인인 셈이지요. 시민은 누구나 도시국가 안에서 공동의 문제에 관한 발언권과 결정권을 공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권력을 원한다면 누구나 나설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게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또 그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결국,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을 얻을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한 가지뿐임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행동을 보여 그들이 나를 인정하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같은 설득력을 갖추려면 우선 한 가지 능력이 필요합니다. 바로 웅변술입니다. 일반적으로 웅변술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배워서 익혀야 합니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러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시대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교육 방법을 제시하고, 그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시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소피스트라 불리는 교사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을 다니면서 젊은이들을 모아 교육에 관한 강연을 통해 대중 연설의 요령을 가르쳤습니다. 이들 소피스트들에게 가장 중요한 활동 무대는 단연 아테네였습니다. 소피스트들을 단순히 말 잘하는 기술만을 가르친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그들은 유럽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계몽주의자였습니다. 신 중심의 전통적 세계관, 관습에 입각한 사고방식과 사회적 제약에 대해 맨 처음 도전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신지식인들이었지요. 그런 이유로 그리스의 젊은 세대들은 소피스트들에게 열광했습니다.

소피스트의 대명사, 프로타고라스 /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우다: 프로타고라스는 소피스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프로타고라스는 서른 살쯤부터 약 40여 년간 소피스트로 활동합니다. 그는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방문했지만, 활동의 무대는 주로 아테네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페리클레스와 친분을 쌓게 되고, 페리클레스가 추구했던 민주주의 이념을 이론적으로 정립했습니다. 프로타고라스의 핵심 사상은 ‘인간 중심주의’와 ‘상대주의’입니다.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인간의 의식을 넘어서는 객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편 인간은 같은 것에 대해 똑같이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목욕탕의 물이 누구에겐 뜨겁게 느껴지고, 누구에겐 미지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구의 느낌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인간에 비추어 볼 때 지식이란 상대적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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