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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저항의 한 방식, 페멘

페멘 지음 | 디오네
분노와 저항의 한 방식, 페멘

페멘 지음

디오네 / 2014년 6월 / 296쪽 / 15,000원





4인방



사람들은 흔히 우리를 두고 ‘4인방’이라 부른다. 우리는 인나 셰브첸코, 사샤 셰브첸코(우크라이나에서는 워낙 흔한 성(姓)이라 우연히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지 친인척 사이는 아니다), 옥산나 샤츠코, 안나 훗솔을 말하는데, 페멘을 결성한 다음부터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중 셋, 즉 안나와 옥산나, 사샤는 모두 우크라이나 서부에 있는 크멜니츠키라는 도시 출신이다. 바로 그곳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그들은 나중에 키예프로 옮겨 왔다. 인나는 오데사 근처에 있는 케르손이라는 도시에서 키예프로 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머지 세 명의 페멘 창립멤버를 만나 이 단체를 떠받드는 네 번째 ‘기둥’이 되었다.



페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우크라이나는 매음굴이 아니다”

처음 시작은 온화했다: 2008년 봄, 안나는 키예프에서 알게 된 여학생 몇 명과 함께 자신의 아파트에서 회합을 열기 시작했다. 사샤와 옥산나는 처음에는 크멜니츠키와 키예프를 오가며 활동했다. 그런데 신윤리라는 우리 단체 이름이 너무 학구적인 느낌이 든다는 의견이 있어서 안나가 새로운 이름을 찾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터넷에서 페멘(Femen)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사샤와 옥산나는 이 이름에 결단코 반대하며, ‘아마조네스(Amazones)’라는 이름을 제안했지만 한 달 간 논의를 거듭한 끝에 최종적으로 페멘을 새 이름으로 낙점했다.

페멘 창설 초기까지만 해도 우리는 남성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다 부정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우리의 사고가 성숙해지면서, 우리의 적은 구체적인 남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진짜 적은 바로 가부장주의라는 체제였다. 사실 남성 중에도 좋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한편 우리가 기획한 초창기 시위에는 연극적인 요소가 많았다. 가령, 지구의 날 행사 때에는 장밋빛 조끼를 입고 장밋빛 풍선 서른 개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당시에는 이를 취재하러 온 언론 매체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지하철 안에서 비극적인 자살 사건이 2건이나 발생하는 일이 생겼다. 이에 우리는 ‘긍정적인 지하철(positive metro)’를 만들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2008년 7월, 우리는 풍선을 불고 사탕을 사고 작은 포스터를 만든 다음, 지하철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행동하자고 호소했다. 그리고 임산부와 아이를 동반한 여성을 위한 전용 칸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이 같은 활동은 페미니즘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처음으로 언론에서 관심을 보이고 취재를 했다. 안나가 키예프 지하철 경영진과 우리의 이동경로에 대해 사전에 합의해서, 우리가 환승하는 역의 지하철 직원들이 나와서 우리와 동행해주었다. 이렇게 시위가 잘 기획되고 원활하게 진행되면서 우리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전원 물속으로 돌격”: 그 후, 우리는 페미니스트의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우리의 여성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시위 일주일 후, 우리는 한여름에 학생 기숙사를 포함한 키예프 전 지역에 온수 급수가 중단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게 되었다. 우리의 슬로건은 ‘수돗물이 나오지 않으니 독립광장 마이단 광장으로 나가서 목욕하자!’였다. 날씨는 푹푹 찌는데 물은 단수가 되었다. 이에 목욕 날짜를 2008년 7월 15일로 잡았다. 일종의 번개 모임이었는데, 현장에는 60여 명이 모였다. 우리는 대야와 스펀지, 샤워 젤을 가져왔고, 제대로 된 데이터베이스도 없었지만 몇몇 기자도 불렀다. 그런데 약속된 시간인 12시 15분이 되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우크라이나 언론뿐만 아니라 로이터나 AP 같은 통신사에서도 취재하러 왔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기자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때 안나가 소리쳤다. “전원 물속으로 돌격!” 우리는 분수대로 뛰어들었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 원피스를 입은 사람 등 천차만별이었지만, 우리는 몸을 흔들고 소리치고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기자 중에서도 우리와 합세해서 물속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었으니, 완전히 축제 분위기 그 자체였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 이런 퍼포먼스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기자들은 놀라고 어리둥절해하면서 잔뜩 질문을 퍼부어 댔다. “당신들은 누군가요? 댄스 그룹? 합창단? 누가 리더인가요? 재원은 어디서 마련합니까?” 페멘의 배후에 있는 스폰서나 지도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스워 보였다. 어찌 되었건 우리가 발견한 사실은 여성들의 시위도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 언론의 관심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이란 눈길을 끄는 기삿거리만 찾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캔들이나 섹스, 사망 따위의 기삿거리로 먹고 산다. 그런데 언론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뉴스에 보도되지 않으면 우리가 벌인 시위도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되어 그냥 사라져 버리고 만다. 불행하게도 대다수의 비정부기구(NGO) 활동이 이렇게 묻혀 지나가 버린다. 한 행사에 무게를 실어 주는 것은 미디어 권력의 힘에 달렸다.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섹스 사파리: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매음굴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나긴 투쟁의 길에 나선 것이다. 그러니까 친절하고 유희적인 성향의 단체에서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단체로 진화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성매매와의 전쟁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생겼다. 사람들이 우리를 성매매 여성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로 남성들이 그랬지만, 종종 여성들도 이런 오해를 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을까? 어느 날, 토론을 하다가 누군가 질문을 하나 던졌다. “여러분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문젯거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길을 가다가 터키 남자들이 치마를 잡아당기면서 접근했던 일, 유럽 남자들이 순진한 젊은 여성을 유혹하려고 클럽에서 칵테일을 사 주는 일 등이 화제에 올랐다. 가난한 터키남자들은 요행을 바라며 길거리에서 아가씨들한테 접근한다. 반면 이탈리아나 미국, 독일, 프랑스 남자들은 호텔에서 여자를 고르거나 성매매 업소를 찾아간다. 외국 남성들은 우크라이나에 가면 섹스 산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곳을 찾는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제2의 태국이 되었으며,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섹스 관광에 반대하는 첫 번째 시위는 목욕 퍼포먼스를 벌인 지 한 달 후에 일어났는데, 키예프의 번화가 크레샤티크에서 시행되었다. 우리가 시위를 벌이기 전까지 우크라이나 언론은 태국에서 성행하던 섹스 관광 스캔들을 규탄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우크라이나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고위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이 막대한 섹스 서비스가 제공되는 클럽과 성매매 업소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카: 인나는 2009년 여름에 우리와 합류했다. 우리는 오래된 터키식 목욕탕 안에 있는 찻값이 싼 카페 방카에서 모였다. 이곳에서 여학생 40여 명이 차는 딱 석 잔만 주문해 놓고, 홀짝홀짝 마시면서 몇 시간이고 앉아서 토론을 벌였다. ‘우크라이나는 매음굴이 아니다’ 시위는 인나가 참가한 첫 번째 활동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길거리 연극 형태로, 키예프 중심가에서 경쾌한 혼란을 일으키려고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대략 70여 명, 아니 아마도 그 이상의 젊은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패션쇼, 댄서, 인형, 과격파 그룹 등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인형처럼 꾸미고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단 여성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나타냈다. 실제로 이들은 인형이나 마찬가지로 사고파는 대상이다.

인나가 속했던 과격파 그룹은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 리본을 꿰매어 달았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매음굴이 아니다”라고 소리쳤다.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되어서 아직은 이를 두고 진정한 저항 행위라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우리가 내세우는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성매매 여성처럼 보이는 젊고 예쁜 여성들이 겉보기와는 달리 ‘나는 매춘부가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섰다.

처음에 우리는 모든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성매매 여성으로 생각하는 인식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젊은 우크라이나 여성이 서방국가에 비자를 신청하면 십중팔구 발급이 거부된다. 인나 역시 열아홉 살 때 페멘 회원으로 독일에 초대되었을 때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 그때 영사관에서는 인나의 귀에다 대고 방문 목적이 의심스럽다고 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독일인들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존엄성을 존중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방문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성매매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크라이나 정부에 분노와 역겨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성매매 금지를 요구하기로 했다. 법적으로 성매매는 금지되어 있으며, 섹스 산업도, 섹스 비즈니스도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떠한가? 만약 경찰서 옆에 성매매 업소가 있더라도 경찰은 이 업소에 단속을 나가지 않고 오히려 보호할 것이다. 혹시나 경찰이 성매매 여성을 체포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는 그 여성이 도망가려 해서 포주가 경찰에 요청했거나, 아니면 경찰 측에서 ‘세금(포주나 성매매 여성이 경찰에 상납하는 금품을 가리킴)’을 올리려고 그러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비즈니스는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연구하며 고민했다. 그 결과 스웨덴 모델이 매우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스웨덴에서는 성매매 고객의 행위를 범죄로 보고 이를 처벌하는 법을 도입했다. 늘 피해자 입장에 있는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 늘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포주가 아니라, 이 업계의 발전을 촉진하는 사람, 즉 고객을 처벌하는 것이 그 골자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성매매를 줄이는 데 한 걸음 크게 다가설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단체는 섹스 비즈니스의 고객을 형사처분할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라다(Rada) 소속 한 국회의원은 우리의 제안을 기초로 해서 법안을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우리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협회나 비정부기구가 아니다. 당국이 우리 단체의 등록을 항상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우리가 발의한 제안을 중요한 고려 대상으로 삼았으며, 우리의 기획안이 각 부처와 의회, 정치 토크쇼 등 모든 곳에서 논의되었다!

페멘, TV스튜디오 무대에 오르다: 2009년, 우리는 사비크 슈스터가 진행하는 TV 토크쇼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는 섹스 산업 고객을 형사처분하는 법안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네스토르 슈프리치라는 국회의원이 함께 출연해서 “아가씨들, 저를 믿으세요. 하늘에 맹세코 다음 회기에 의회에서 이 법안을 채택할 겁니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날이 2009년 10월 2일이었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법안은 나흘 뒤에 국회 표결에 부쳐져야 했다. 그러나 그 뒤로 한 달 이상 지났지만, ‘우리의’ 법안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때의 그 슈프리치가 11월 27일에 다시 한 번 ‘슈스터 라이브’에 초대 손님으로 출연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사샤가 스튜디오 침입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사샤의 말을 들어 보자.

“제가 스튜디오를 기습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스튜디오 입구에서 지난번 출연 때 이름을 알게 된 올레시아라는 프로그램 공동 제작자를 전화로 불러 달라고 경비원에게 부탁했어요. 그런 다음 전화로 횡설수설 둘러대서 어떻게든 그 제작자가 밑으로 내려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기억나세요? 페멘이에요. 전에 슈스터의 초대 손님으로 나왔었지요. 그때 슈프리치가 성매매 금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했지요. 그러니까 중간 광고 시간 정도에 그와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그 제작자는 저를 출연자 대기실까지 올라가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잠시 기다리다가 곧 스튜디오 무대를 찾아 나섰어요.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우크라이나는 매음굴이 아니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플래카드를 둘둘 말아서 들고 있었지요. 아직 페멘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서 사람들은 저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조금도 수상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방송 시작 1분 전에 무대로 올라가는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관중석과 무대를 연결하는 통로에 위치한 카메라맨과 거대한 장비 때문이었어요.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눈에 진행자가 옆쪽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얼른 따라가 봤더니, 무대 대기실이 나왔습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지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느님, 진실이 밝혀질 순간이 다가왔군요.’ 그때 무대 위에서는 다른 도시를 연결해서 이원 방송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몹시 흥분한 상태로 작은 커튼 뒤에서 준비해 온 플래카드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생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무대 가운데로 뛰어들어 가면서 “이 거짓말쟁이의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라고 외쳤어요. 제가 들고 있던 플래카드에는 ‘거짓말 생방송 중(Lies Live)’이라고 적혀 있었지요. 현장에 있던 모두가 충격을 받았지만, 카메라는 계속 돌아갔습니다.

용감하게도, 저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작은 슈스터가 제 손을 잡더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저는 슈프리치가 5223호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는 못 참는다. 정치인들이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런 다음 분노가 폭발하여 슈프리치 쪽으로 뛰어가 플래카드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장면이 고스란히 촬영되었지요! 하지만 그는 잠자코 있다가 눈썹을 찡그리더니 “젊은 아가씨, 진정하세요, 진정”이라고 했습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여성 국회의원은 격분한 나머지 “젊은 아가씨, 연극은 이제 그쯤이면 충분하네요!”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저는 플래카드를 슈프리치의 얼굴에 던진 다음 조용히 촬영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당시는 야누코비치가 정권을 장악하기 전이라서 사소한 일로 사람을 잡아가지는 않을 때였습니다. 물론 그 법안은 영원히 통과되지 않았답니다.

섹스 비즈니스: 처음에는 성매매에 반대하는 시위를 한두 번 정도만 기획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워낙 여파가 커서 성매매 반대 시위가 우리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렸다. “아, 그래. 페멘이라고 하면 우크라이나가 매음굴이 아니라고 하고 다니면서 성매매와 전쟁을 벌이는 단체지”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결국 첫 번째 성매매 반대 시위 이후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해서 캠페인을 벌이게 되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섹스 산업 고객의 형사처분에 관한 법안 5223호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에 항거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나흘간 시위를 벌였다. 우리는 성매매와 섹스 관광 광고를 하는 사이트를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상에서도 캠페인을 벌였다.

우리가 성매매와 섹스 관광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 재임 기간 중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 시기 동안 율리아 티모셴코에게 가졌던 우리의 환상도 깨져 버렸다. 당시 총리로 있었던 티모셴코에게 우리는 정부의 수반이자 여성으로서 우리의 호소를 들어주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를 지지해 주거나 우리의 요구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좋을 것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권력과 사회의 철저한 무관심에 부딪혔다.

어쩌다 우리가 상의를 벗어 던지게 되었을까?: 상의 탈의(topless) 아이디어가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는 딱히 정해진 행동 모델 없이 활동을 했다. 매번 시위 때마다 새로운 요소들이 도입되었다. 신선한 콘셉트가 나올 때도 있고, 플래카드 색깔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하기도 하고, 그래픽을 새롭게 혁신하기도 했다. 슬로건을 외치는 방식도 그때마다 달랐고, 회원들이 취하는 포즈도 각양각색이었다. 매번 시위가 끝나면 우리는 시위 장면을 찍은 사진과 비디오를 분석하여 ‘그래, 저 제스처가 효과적이었으니 저렇게 하자’ 이런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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