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립다
유시민 외 지음 | 생각의길
그가 그립다
유시민 외 지음
생각의길 / 2014년 5월 / 254쪽 / 15,000원
정여울 - 뚫고 싶다 : 오랜 자폐를 털고
날씨를 피할 수 없듯이, 민주주의의 가뭄을 피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저는 당신이 떠나신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숨어 살면 될 줄 알았습니다. 추위를 피해 집 안에만 웅크리고 있는 게으른 아이처럼요. 저도 민주주의의 한파를, 민주주의의 가뭄을, 민주주의의 고사 상태를 피해 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겁 많고 소심하며 ‘정치의 정’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저 같은 사람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요.
저는 얼마 전에 생활 속의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아주 무서운 힘을 휘두르는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저에게는 ‘어떤 글감을 찾는가’가 가장 소중한 자유임을 깨닫게 해 준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저는 한 도서관 소식지에 영화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청소년들을 주요 독자로 삼는 잡지였습니다. 저는 고심 끝에 <변호인>을 택했지요. <변호인>을 통해 저는 제가 살아 보지 않은 세상까지도, 제가 겪어 보지 않은 고통까지도, 생생하게 지금 이 순간의
저 자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변호인>에는 당신은 물론 당신이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미소와 피땀이 가득 담겨 있어 도저히 짧은 글 한 편으로는 그 메시지를 담아낼 수 없었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 글쓰기였지요. <변호인>을 관람한 후 지금까지 제게 용기가 없어서, 혹은 제 스스로의 준비가 부족해서 말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터졌습니다. 편집 작업까지 모두 끝나 이제 잡지가 곧 나오겠구나 짐작하고 있었는데, 원고 ‘게재 불가’ 메일이 온 것이었습니다. 잡지 관계자들이 영화 <변호인>은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 잡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15년 동안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오면서 제 원고가 이런 식으로 반려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약간의 수정 요청이 들어왔을 때는 있었지만, 이미 편집 작업까지 끝난 원고가 관계자들의 반대로 실리지 못하게 된 경우는 처음이었지요. 편집자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제 글을 아껴 주신 분이었고 저를 그 잡지의 필자로 연결해 주신 분이기도 했으니까요. ‘좀 더 밝은 내용의 작품, 청소년들에게 맞는 작품’을 선정해 달라는 것이 ‘관계자’의 요청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관계자’라는 명목 뒤에 숨어서 타인의 글쓰기를 쥐락펴락하려는 사람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변호인>이라는 영화 안에 담긴 그 무엇이 그 사람을 불편하게 혹은 두렵게 했던 것일까요. 분명 ‘15세 이상 관람가’로 상영되는 이 영화가, 도대체 어디에 ‘청소년에게 맞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일까요.
몇 번의 고통스러운 의견 조율 끝에 저는 도저히 그 잡지에 제 글을 실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제안하는 작품마다 그들은 퇴짜를 놓았고, 결국에는 ‘아무런 갈등요소가 없는 밝고 유쾌한 내용’만을 원하는 잡지에 제 글이 실릴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어둠 없는 빛을 믿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세상을 밝고 명랑하게만 그릴 수 있을까요. 세상은 결코 그렇지 않은데요. 제가 글을 쓰고 싶은 대상을 스스로 고를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구속이고 억압이었습니다. 아주 당연해 보이는 권리를 얻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데, 밝고 단순한 이야기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원치 않는 진정한 ‘보수’가 아닐까요.
영화 <변호인>을 보며 저는 제목이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이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작품 초반 송우석 변호사는 돈도 잘 벌고 이름도 날리는 ‘유능한 변호사’이긴 했지만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변호인’은 아니었지요. ‘변호사’가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를 강하게 환기한다면, ‘변호인’은 누군가의 억울함을 대신 말해 주는 사람이라는 윤리적 책무를 떠오르게 합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진정한 ‘변호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은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가 아니라, 성공한 변호사로서 승승장구하며 야망을 키울 때가 아니라, 어느 날 느닷없이 실종된 자식을 찾기 위해 시체 안치소까지 찾아 헤맨 어미의 찢어지는 가슴을 이해하는 순간, 그리고 그 아들의 억울한 사연을 감싸 안고 스스로 그 어려운 사건의 변호인이 될 것을 선택하는 순간이었지요.
“그날 부산 지역 142명의 변호사 중 99명이 변호인으로 출석했다.”라는 자막이 뜨는 순간, 수많은 관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참았던 흐느낌을 쏟아 냈습니다. 저는 그 흐느낌들 한가운데 녹아 있을 저마다의 분노, 슬픔, 설움의 결들을 상상하며 함께 울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이 눈물은 단지 당신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분노와 공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요. 모두들 왠지 후련하게 울음을 터뜨리지 못했습니다. 저마다 갑갑함을 한 아름 안고서 울음 뒤끝이 길게 회한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런 울음을 울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자폐증에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작은 커뮤니티 안에 웅크린 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또한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지 않기를 빌며 조용히 엎드려 살아야지 했습니다. 세상이 무서울 때마다, 사람들이 무서울 때마다, 더 깊이 저만의 누에고치 속으로 숨었던 저는 잊고 있었지요. 겁 많고 소심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민주주의,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 지켜야 할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 저는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 내기 위해 아주 작은 용기부터 내 볼 작정입니다. 제게는 부당한 일을 당하면 마치 그 일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떻게든 잊으려고 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지요. 이제는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상에 알리려고 합니다. 여전히 민주주의가 안타까운 숨소리로 연명하며 ‘희망’이라는 가녀린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지금, 저 또한 작은 힘을 보태어 그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도 아닌, 민주주의의 변호인이 되고자 합니다. 영화 속의 당신처럼, 아니 수십 년 전 당신이 냈던 그 용기를 떠올리며 말이지요. “제가 하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이제 겁 많고 소심하고 힘없는 사람들조차 민주주의를 변호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 내고, 고통 받는 이웃을 배려하는 세상, 약자가 약자를 돌보고 그럼으로써 더 이상 약자에 멈춰 서지 않는 그런 세상이 와야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저처럼 겁 많고 소심한 사람은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처럼 겁 많고 소심한 사람에게는 더 뜨거운 민주주의, 더 깊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마이크가 앞으로 와도 제대로 할 말을 못 하고, 남들 앞에서 말을 하기가 무서워 결국 글쓰기로 도피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두 다리 뻗고, 할 말은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세심한 민주주의가, 더 다정한 민주주의가, 더 따뜻한 민주주의가 필요할 테니까요. 그곳에서도 들리시지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가요. “저도 할게요. 변호인, 저도 같이 하겠습니다.”
정철 - 꺾고 싶다 : 날개에 대한 지나친 고찰
왜 내 몸엔 날개가 달려 있을까? 양쪽 어깨에 붙은 이 한 세트의 용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느님 성격에 쓸모없는 물건을, 그것도 두 개씩이나 붙여 놓았을 리는 없고, 분명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을 텐데 그게 뭘까? 아래로 빨리 움직여 볼까? 퍼덕거려 볼까?
만약 새들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질문을 하지 않았으니 답도 찾지 못했겠지. 답을 찾지 못한 새들은 날개를 손이라 결론 내렸겠지. 손가락이 없어 조금 섭섭한 손이라 생각했겠지. 때론 먹이를 주고받고, 때론 박수치고, 때론 턱을 괴고 사색하는 데 이 두 개의 날개를 사용했겠지. 날개를 단정히 접고 두 발로 걷는 자신이 인간과 가장 닮은 동물이라 믿었겠지. 날개의 용도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으니 모든 새들이 땅 위를 아장아장 걸어 다녔겠지.
도로는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새들로 북적거렸겠지. 참새! 짹짹! 같은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면, 노란 옷을 입은 참새들이 한쪽 날개를 위로 치켜들고 줄지어 길을 건너고 있었겠지. 하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이 새의 안전 따위를 걱정해 자동차라는 물건은 포기할 리는 없었겠지. 타조의 보폭을 따라가지 못한 참새들이 건널목을 한 번에 건너지 못해 자동차에 자꾸 당했겠지. 도심에는 참새구이집이 늘어났겠지. 참새들은 목숨을 건 집단시위에 나섰겠지. 물대포는 사람들을 제압하는 데 써야 하니 그것으로 참새들을 겨냥할 수는 없었겠지. 급한 대로 전투경찰 옷을 입힌 허수아비 몇 개를 동원했겠지. 하지만 그것으로 참새들의 분노를 막을 수는 없었겠지. 결국 참새용 신호등이 따로 세워졌겠지. 몸집이 작은 뱁새나 동작이 느린 오리도 그들만의 신호등을 얻어 냈겠지.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땅 위에서 바글거렸을 테니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겠지.
어떻게든 교통이 되게 하려고 세상의 땅 90퍼센트를 도로로 흡수했겠지. 강이란 강은 다 매립해 그곳에도 도로를 냈겠지. 강 낚시가 사라졌겠지. 도로가 늘어 그럭저럭 교통은 됐겠지만 주거 공간이 크게 줄었겠지. 내 집 한 칸 갖기는 더 어려워졌겠지. 로또가 시들해지고 주택복권이 다시 전성기를 누렸을 것이고, 주택은행이 다시 제 이름을 돌려받았겠지. 아파트는 도로의 압박 때문에 위로, 위로 향했겠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800층, 900층까지 치솟았겠지. 100층짜리 아파트는 저층아파트라 불리었겠지. 63빌딩은 아이들 장난감이 되었겠지. 잠실 제2롯데월드는 쪽팔려서 공사를 포기했겠지.
가끔 900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겠지. 퇴근한 엄마, 아빠가 걸어서 900층까지 올라가면 초인종 누를 새도 없이 다시 출근해야 했겠지. 귀가를 포기하는 주민들이 늘어났겠지. 그들을 잡아먹으려고 1층에서 100층까지는 호텔이 들어섰겠지. 집을 머리 위에 두고 호텔에 묵어야 하는 사람들이 울상을 지었겠지. 엘리베이터 고장에 한두 번씩 당한 중국집이나 피자 가게도 배달을 집어치웠겠지. 청년들도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어 울상을 짓고 다녔겠지. 오토바이 공장도 하나둘 문을 닫았겠지. 타이어 공장도 문은 닫았겠지. 고무 공장도 문을 닫았겠지. 거리는 실업자들로 넘쳐 더 복잡해졌겠지.
우리 정부는 위기는 기회다,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겠지. 일자리 만든다고 호들갑을 떨었겠지. 옷 잘 입는다는 이유 하나로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복지부 장관이 앞장서서 팔을 걷어붙였겠지. 걷어붙인 그녀의 팔뚝엔 ‘복지부동’이라는 문신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겠지. 대책 없는 대책들을 쏟아 냈겠지. 대통령은 각료 회의 때마다 누군가 적어 준 복지부 칭찬을 그대로 읽었겠지. 한 번은 영어로, 한 번은 불어로, 또 한 번은 중국어로 읽었겠지. 모든 부처가 복지부를 부러워했겠지. 모든 부처가 복지부를 흉내 내기 시작했겠지. ‘교육부동’, ‘노동부동’ 같은 문신들이 공무원들의 팔뚝을 장식했겠지. 조폭들의 고민이 깊어졌겠지. ‘一心’이라는 문신을 이젠 지워야 할 것 같은데, 대신 새겨야 할 문장을 찾지 못해 회의를 했겠지. ‘주먹부동’, ‘선빵부동’, ‘사시미부동’ 같은 낱말들이 쏟아져 나왔겠지. 한자로 새겨야 유식해 보일 텐데, 주먹이나 선빵, 사시미를 한자로 쓸 수 없어 고민했겠지. 한자 좀 안다는 일본 야쿠자나 홍콩 조폭의 자문을 구하자는 의견이 나왔겠지. 비행기가 없으니 자문단은 일본에서 홍콩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겠지. 그들을 기다리느라 회의가 길어졌겠지. 지금도 하고 있겠지.
기업에서도 학교에서도 실력과 감각을 모두 갖춘 문신사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쳤겠지. 문신사라는 일자리 하나는 엄청나게 늘었겠지. TV 뉴스 앵커는 단군 이래 일자리 창출에 성공한 최초의 정부라는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했겠지. 대통령 하나 잘 뽑아 마침내 국운이 상승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엉엉 울면서 반복했겠지. 침도 마르고 눈물도 말랐겠지. 하지만 조금만 더 침과 눈물이 마르면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도 힘들지 않았겠지. 대통령 곁에 바짝 붙어 앉아 뉴스를 보던 복지부 장관은 일기예보가 나올 때쯤, 복지부 장관이야말로 진정한 일자리 장관이라는 대통령의 칭찬을 들었겠지. 이번에 새로 맞춘 한복 단정히 차려입고 들었겠지. 두 한복이 나란히 서서 사진도 한 장 찍었겠지. 복지부 장관이 알아서 조금 앞으로 나가 대통령의 얼굴을 작게 만들어 줬겠지.
대학에선 문신학과가 인기를 끌었겠지. 노량진 학원들은 죄다 문신학원으로 바뀌었겠지. 초등학생들에게 꿈을 물으면 하나같이 문신사라고 대답했겠지. 문제는 한자 공부를 소홀히 한 일부 성균관 유림들이었겠지. 이들은 배를 툭 내밀고 길거리를 몰려다니며, 역시 문신이 이 나라를 구한다고 떠들었겠지. 다시는 이 나라가 무신의 총칼에 놀아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거침없이 떠들었겠지. 성균관 훈장님들이 그 문신이 그 문신 아니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쫓아갔겠지만 때는 늦었겠지. 이미 그들의 목소리가 대통령의 귀에 들어갔겠지. 난리가 났겠지. 이 나라는 5ㆍ16혁명 이래 무신이 키운 무신에 의한 무신을 위한 무신의 나라라는 신념을 지닌 대통령은 본능적으로 어떤 위기감 같은 것을 느꼈겠지. 갑자기 문신이라는 말이 두려워졌겠지. 문신의 힘이 더 커지기 전에 조기 진압에 나섰겠지.
먼저 문신금지법을 선포했겠지. 선포일은 가능하면 10월이 좋았겠지. 문신금지는 헌법과 정면충돌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법학자들은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겠지. 복지부 장관은 그날부터 각료회의 때마다 한쪽 구석에서 두 손 들고 서 있었겠지. 결국 문신파동은 찬란한 유신 역사의 재방송으로 이어졌겠지. 문신학과와 문신학원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겠지. 문신사들도 작업실 문을 닫고 대학로로 몰려나왔겠지. 길거리에 의자 하나씩 달랑 놓고 화가인 척하며 연인들의 얼굴을 그렸겠지. 이미 팔뚝에 문신을 새긴 사람들은 여름에도 긴팔을 입어야 했겠지. 참았겠지. 참지 않으면 팔뚝이 잘려 나갈지도 모르니 도리가 없었겠지. 국민의 불만이 갈수록 높아졌겠지. 이 땅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가 함성이 되었겠지. 그 함성을 그대로 보도한 신문이 있었겠지. 물론 그런 신문을 그대로 두지 않았겠지. 신문을 뒤집으면 문신이라며, 일보 아닌 신문들은 모조리 폐간시켰겠지. 세상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이렇게 일보 세 개만 살아남았겠지. 동문신년회, 남대문신사, 주문신속배달 같은 아무 상관없는 용어들도 그 속에 문신이라는 단어가 간첩처럼 몸을 숨기고 있다며 금지어가 되었겠지.
문신의 인기가 오히려 무신 우상화의 빌미를 주었겠지.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몇몇 무신의 동상이 세워졌겠지. 하지만 800층, 900층 하는 아파트숲 속에 솟은 동상은 소꿉놀이 같았겠지. 무신 선배들을 하느님과 동격으로 생각하는 대통령이 이를 그냥 두지 않았겠지. 1천 층 높이의 동상 설립 5개년 계획이 세워졌겠지. 팔순 예비군이 또 호출되었겠지.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노래를 부르며 공사현장으로 달려가야 했겠지. 하지만 국민의 불만은 1천 층 높이를 뚫고 하늘에 닿았겠지. 일자리 달라는 불만, 숨 좀 쉬고 살자는 원성이 하느님의 귀에 닿았겠지. 낮잠 자던 하느님이 깜짝 놀라 깼겠지. 당신이 너무 오래 낮잠 잤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를 긁적거렸겠지.
새들이 ‘왜?’라고 묻지 않았다면 세상은 이렇게 뭐가 뭔지 모르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고, 하느님까지 머리를 긁적거리게 하는 사태를 초래했겠지. 우리가 그나마 숨이라도 쉬며 살고 있는 건, 순전히 새들이 ‘왜?’라고 물었기 때문이지. ‘왜 내겐 앞다리 대신 날개가 달려 있을까?’ 물으며 수없이 지붕 위에 올라 뛰어내렸기 때문이지. 그런데 ‘왜?’라는 이 질문. 어깨 축 늘어뜨리고 한숨이나 주고받으며 이 시대를 살아 내고 있는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이 아닐까? 왜 우리는 지쳤는지, 왜 희망은 보이지 않는지, 왜 그들은 그렇게 강고한지, 왜 우리끼리 손가락질하며 살아야 하는지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 물어야지. 종교인은 기도로 물어야지. 교육자는 칠판에 물음표를 그려 가며 물어야지. 시인은 송곳처럼 날카로운 단어로 묻고, 소설가는 아주 깊게 물고 늘어지며 물어야지. 영화인은 대사로 묻고, 음악인은 가사로 묻고, 무용가는 온몸으로 물어야지. 정치인도 물어야지. 다만 정치인은 자기가 묻고 자기가 대답하는 이제까지의 그 빤한 방법 버리고 새로운 방법으로 물어야지. 그게 뭔지 모르겠다면 어제까지 했던 방법과 정반대로만 하면 되지. 나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묻고, 너는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묻고,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치열하게 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