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의 충고 만고기담
서신혜 지음 | 인물과사상사
백년 전의 충고 만고기담
서신혜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4년 4월 / 302쪽 / 12,000원
첫 번째 충고 : 인생
인생은 적응하기 나름이다
일본 도쿄(東京)에 사는 개구리가 있었다. 도쿄가 점점 개발되면서 버려졌던 땅이 밭이 되고 밭이 택지도 되며 공장 지대도 되어 살 곳이 점점 좁아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변변히 맛있는 것도 못 먹고 목청껏 소리 내어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괴로웠다. 이때에 한 벗이 교토(京都)라는 지방을 소개해주었다. 기후도 좋고 경치 좋은 곳도 많고 먹을 것도 풍족해 참 지내기 좋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든 교토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살던 곳을 버리고 떠났다. 특별한 탈 없이 한참을 가다가 산 중턱쯤에 이르니 반대편에서 다른 개구리 한 마리가 짐을 지고 오는 것이 보였다. 도쿄 개구리가 그를 만나 말했다.
“험한 산이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오. 잠깐 쉬시지요.”
“이 산은 듣던 것보다 험해서 매우 힘들었습니다.”
“아, 그러셨겠지요. 그런데 실례지만 어디에서 어디로 가십니까?”
“교토에서 도쿄까지 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나는 도쿄에서 교토까지 가는 길입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교토 개구리도 교토가 좋지 않게 되어 도쿄로 이사를 가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서로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 이 산에서 서로 갈 곳을 망원경으로 살펴본 후에 길을 떠납시다” 하며 서로 가방에서 망원경을 꺼내 살펴보았다.“아니, 이거 안 되겠네. 저기도 내가 살던 곳과 똑같네. 교토로 가 봤자구나……. 가지 말아야겠다.”“참, 그렇구려. 도쿄가 좋다고 하더니 교토와 똑같구려. 나도 가지 않겠소.”
두 개구리는 그대로 돌아갔다. 개구리의 눈은 뒤통수에 있는 까닭에 도쿄 개구리는 도쿄를 보고, 교토 개구리도 교토를 본 것이었다. 사람의 사는 것에, 어디 특별히 좋은 곳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기에게 있다.
눈이 뒤통수에 달려서 그 눈으로 보면 지난 길이나 떠나온 세계가 보이는 것을 모르는 개구리가 참 어리석다. 그런 개구리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며 우리는 마음껏 비웃을 수 있다. 하지만 개구리가 비웃음 받을 만하게 내린 결론은 사실 진리에 가깝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말은 지금도 많이 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100년 전 사람도 똑같이 말할까?
고집스레 정말 특별한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100년 전 사람도 똑같이 말하는 것을 보니 이제 고집을 그만 피우고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다. 조금 더 편리한 곳은 분명히 있지만 적응해 살다보면 사람 사는 곳은 대체로 비슷하게 살 만한 곳이다. 좀 더 좋은 곳,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곳은 대개 내 마음이 만들어낸다.선과 악은 함께 있다
“나의 하느님이시여! 어찌하여 이 격렬한 전쟁이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두 개의 사람이 있음을 느낍니다.” 프랑스 시인 라시의 시를 옮긴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탄식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로마서」 7장 18~24절에 나온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선과 악의 싸움 가운데서 매사를 결정한다. 오늘 선을 행했다고 자만할 수 없고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에 맞춰 살며 기뻐하라
새봄이 왔습니다. 큰 나무에 새 잎이 났어요.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이제 조그마한 잎사귀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조그마한 잎사귀가 훌쩍훌쩍 울고 있는 것입니다. 잔가지가 물었습니다. “얘, 잎사귀야! 너 왜 그러니? 왜 그렇게 우는 거야?” “아까 바람이 지나면서 내게, ‘오호! 쪼그만 놈. 조금만 더 커라. 내가 너를 땅에 떨어뜨려 버릴 테니까’ 했어요. 무서워요.” 잔가지가 이 말을 큰 가지에게 전하고, 큰 가지는 나무에게 전했습니다. 나무가 잎사귀에게 말을 합니다. “얘야, 무서워할 것 없단다. 나뭇가지를 꼭 붙잡고 있기만 하면 아무도 너를 억지로 떼어가지 못한단다. 너는 가지에 꼭 붙어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큰 나무를 다시 보니 듬직했습니다. “네.”
이제 잎사귀는 팔랑거리며 노래하면서 하루하루 살게 되었습니다. 살랑살랑 나무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면서 날마다 날마다 살아갑니다. “누가 나를 어찌하리오.” 잎사귀는 흥이 나서 여름부터 가을까지 잘 자라갔습니다. 가을이 되었습니다. 참 맑고 깨끗한 날입니다. 저 멀리 있는 나무까지 너무나 잘 보입니다. 그 조그마한 잎사귀는 문득 동무 잎사귀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것은 노랗게 되었고, 어떤 것은 붉게도 되었습니다. 노란 빛과 붉은 빛이 섞인 것도 있습니다.
“우와, 예쁘다.” 나무에게 물었습니다. “왜 저렇게 된 거예요?” “모든 잎사귀는 어디로 날아가려고 준비한 거란다. 기뻐서 이런 고운 새 옷을 입은 거지.” 이 말을 들으니 잎사귀는 자기도 날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자 마침내 다른 잎사귀처럼 자기도 아름다워지고 빛도 화려해졌습니다. 그때 문득 나뭇가지들의 빛은 그대로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뭇가지님! 나뭇가지님은 왜 색깔이 예쁘게 변하지 않은 건가요? 왜 우리만 변하는 거예요?”
“우리는 아직 여기에서 해야 하는 것을 다 하지 못했으니까 헌 옷을 그대로 입은 거야. 너희들은 일을 다 했으니까 이제 예뻐져서 잘 놀게 된 것이란다.” 마침 그때에 바람이 솔솔 불었습니다. 잎사귀가 무심코 붙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았더니 바람이 잎사귀를 붙들어 가지고 날아갑니다. 오른쪽 왼쪽으로 가볍게 날아가다가 다른 잎사귀들이 많이 쌓인 어느 골짜기에 곱게 내려다 놓았습니다. 잎사귀는 무슨 아름다운 꿈을 꾸나 봅니다. 영원히 깨지 않을 아름다운 꿈!
우리가 잎이라면 그때 우리가 할 일은 가지에 잘 붙어 있는 것이 전부다. 오직 잘 붙어 있으면서 뿌리가 빨아들여 줄기와 가지를 통해 가져다준 양분과 물을 마시고 기뻐하며 살면 된다. 쓸데없이 바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 또 때가 되면 옷을 바꿔 입듯 색이 바뀌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 색깔을 내 것이라 받아들이면 되고, 또 때가 되어 가지가 손을 놓아주면 바람에 몸을 맡기면 된다. 미리 겁내지도 걱정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그때에 맞춰 살며 기뻐하는 것! 그것이 다다. 오직 우리의 할 일은 나뭇가지에 붙어서 기쁘게 살다가 때가 되어 아름다운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사람다워야 귀한 것이다
옛날 인도에 한 유명한 왕이 있었다. 이 왕은 매우 겸손하여 누구를 만나든지 먼저 머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신하와 하인들은 이것 때문에 도리어 왕을 비웃었다. 하루는 어떤 신하가 왕께 나아가서 이렇게 아뢰었다. “사람의 신체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머리입니다. 하물며 왕께서는 온 나라에서 으뜸 되는 분이신데 늘 머리를 숙여 인사하심은 도리어 예의가 아닙니다.” 왕이 이 말을 들은 지 며칠 후, 즉 정원 초하루에 그 신하를 불렀다. “짐이 오늘 그대에게 부탁할 일이 있노라.”
왕은 뼈만 남아 있는 말 두개골과 고양이의 두개골과 사람의 두개골을 하나씩 내어주면서 시장에 가서 팔아오라고 했다. 그 신하는 왕의 명령이라 거역할 수 없어서, 두개골 셋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외쳤다. “사람의 두개골과 말 두개골과 고양이의 두개골을 사시오. 싸게 팔겠습니다.” 마침 어떤 사람이 ‘정원 초하루에 고양이의 두개골을 집에 두면 쥐가 없어진다’는 말을 들었다며 고양이 두개골을 사갔다. 조금 후에 또 어떤 사람이 ‘말의 두개골을 문 위에 달아두면 병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말 두개골을 사갔다. 사람의 두개골만 남았다. 종일토록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두개골을 싸게 팔 테니 누구든지 사가라’고 아무리 외쳐도 ‘정월 초하루 날에 미친놈 나왔다’며 도무지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저녁이 되어 할 수 없이 그대로 왕궁으로 돌아오니 왕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가 전에 사람의 머리가 제일 귀하다 말하더니 지금 보니 사람 머리가 제일 값이 없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머리가 제일 귀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 머리로 선을 생각하고 겸손한 예의를 갖추기 때문이오. 만일 선한 생각, 겸손한 예의가 없으면 저 고양이나 말의 두개골만 못한 것이라오. 이제부터 그대는 더욱 겸손한 예의를 기르도록 하시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고 너무나 당연한 듯 말을 한다. 그런데 실상 왜 가장 귀할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다워야 사람이라는 말을 이 이야기에서 새삼 생각하게 된다.
무조건 남 따라하기의 최후
금강석 하나가 길에 떨어져 오랫동안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어느 장사가 이것을 보고 집어서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은 그것을 사서 황금 사이에 박아 면류관을 꾸몄다. 조약돌이 이 소문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았다. 금강석의 놀랄 만한 팔자 변화가 조약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 것이다.
어느 날 조약돌이 지나가는 농부에게 부탁을 했다. “소원이 있습니다, 영감님! 나를 서울로 데려다 주십시오. 소문을 들으니 금강석이란 놈은 기가 막히게 출세했다던데, 나는 어찌 진흙 속에 있으면서 이런 천대를 받고 고생만 한단 말입니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 놈은 그렇게 귀하게 여겨지는데……, 그 놈은 나와 다름 없는 놈이었는데……, 그 놈은 내 동무였는데……. 나를 좀 데려다 주십시오. 혹시 나도 서울 가면 값이 뛸지 어찌 알겠습니까? 나를 좀 데려다 주십시오.”
농부는 그 조약돌을 덜그럭거리는 자기 수레에 얹어서 저잣거리로 가져갔다. 조약돌은 스스로 ‘이제는 내가 가서 그 금강석 놈하고 나란히 있을 수 있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수레에서 이리 데굴 저리 데굴 했다. 그러나 조약돌은 결국 얼토당토않은 운명에 잡혔다. 물론 조약돌도 쓰이기는 했다. 길 가운데 구덩이를 메우는 데에 쓰였다.
각 존재에게는 각 존재에 맞는 쓰임이 있고, 각 존재에 맞는 자리가 있다. 남이 잘 되어, 그가 내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이 아니다. 각각의 것이 그 성질에 맞는 제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100퍼센트 발휘되는 것이요, 가장 아름다운 것이요, 가장 완벽한 운명을 만난 것이다.
두 번째 충고 : 돈
손해 보면 언젠가 얻는다
영변에 최향소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착한 것으로 유명한 노인이었다. 봄에 어떤 송아지 한 마리가 노인의 집 안뜰에 뛰어들어왔다. 자기 것이 아니었으므로 내쫓았는데, 이 송아지가 채소밭으로 들어가서 여기저기 뛰어다닌 탓에 채소밭에 상당한 손실이 났다. 힘들여서 거기에서도 쫓아냈다. 얼마 안 되어서 그 송아지가 또 안뜰로 들어왔다. 최향소는 자식들에게 “다시 채소밭을 해칠까 걱정되니 잡아서 마굿간에 매어두고 먹을 것을 주어라” 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송아지를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10여 년이나 이 송아지를 기르게 되었다. 그동안 송아지가 소가 되어 새끼를 낳고, 또 새끼가 새끼를 낳고 해서 결국 소가 수십 마리가 되었다. 이 소들을 이웃의 농사하는 사람들에게 거저 빌려주어 농사를 짓게 했다. 해마다 농부들은 감사한 뜻을 담아 최향소에게 떡을 많이 가져왔다.
14년 후 100리 밖에 있는 어느 노인이 찾아와서 묻기를 “이 댁에서 10여 년 전에 송아지 하나를 얻어서 길렀습니까?” 하면서 표적을 말하는데, 그 송아지 주인이 확실했다. 최향소는 기뻐하면서 자식들을 시켜 이웃에 빌려 주었던 소를 다 끌어오게 했다. 그 수가 매우 많았다. 노인에게 재어주며 그 소들을 다 가지고 가라고 하니, 그 노인은 사양하며 말했다. “내가 온 것은 소를 가져가고자 함이 아닙니다. 영감님을 찾아 감사하고 칭찬하는 말이나 하려고 온 것입니다. 10여 년 전에 잃은 송아지 하나로 이제 이렇게 많은 소를 가져가는 것은 천리(千理)를 어기는 것입니다.”
최향소는 “내가 남의 소를 10여 년이나 먹이면서 주인을 찾지 못해 매우 민망했습니다. 이제야 주인을 찾았는데 어찌 이 소를 내 집에 두겠습니까?” 하니, 두 사람 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그 동네 노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여 와서는, 옛 주인 노인은 어미소와 그 첫 번째 새끼를 가져가고, 그 나머지는 최향소에게 붙여두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에게 그대로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최향소가 하루는 장에 가다가 길에서 금이 담긴 주머니를 주웠다. 장에 가지 못하고 그 곁에 앉아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만에 어떤 소년이 와서 두리번거리므로 이유를 물으니 과연 그 주머니를 찾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최향소는 그것을 내어주었다. 소년은 처음에는 기뻐 받더니 곧 이상한 얼굴로 계속 탄식하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 물으니 “금이 본래 닷 냥이었는데 지금은 석 냥밖에 안 됩니다” 하고,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최향소는 그 행동이 괘씸하나 자기 명예를 생각할 때 그런 누명을 쓰기가 싫어 즉시 장터에 들어가 금 두 냥을 사서 소년에게 주었다. 소년은 그 두 냥마저 받아다 자기 주인에게 진 빚을 갚았다.
그 주인이 그 소년에게 빚을 받은 날부터 매사에 실패하여 가산이 기울게 되었다. 주인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누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소년에게 빚을 받은 날부터 손해를 당하기 시작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시 그 소년을 불렀다. “무슨 돈으로 내게 진 빚을 갚았느냐? 바른 대로 고해라.” “어느 해에 금 두 냥을 최향소라 하는 이를 속여 빼앗은 일이 있습니다.” 주인은 즉시 그 날을 기준으로 금 두 냥의 값을 정하고, 날짜를 계산하고 이자를 쳐서 수레에 돈을 실었다. 또 돼지를 잡고, 그 소년을 시켜 사실을 적은 문서를 쓰게 한 후 최향소를 찾아갔다.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돈을 내어놓았다. 최향소는 굳이 사양하다가 나중에는 본전만 받고 도로 보냈다. 이후로 그 주인은 다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많이 얻게 되었다. 세상에는 의리(義理)가 반드시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래 이야기 중에서 긍정적인 부자상을 찾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부자는 매점매석 등의 방법으로 부자가 된 인물들이었다. 긍정적 부자라고 하면 이규상의 『김부자전』에 나오는 김한진이라는 인물, 경주의 최부잣집 정도를 들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 나오는 최향소는 당당히 긍정적 부자의 계열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송아지를 잘 키워 여러 마리의 소를 기르게 된 것은 물론 그 소를 이웃에게 무상으로 빌려주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것은 긍정적 부자상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그밖에 그 인문의 의로움은 더 말해 무엇하랴.
단것과 바꾼 목숨
여름날 꿀을 그릇에 담아 덮개로 덮어두었는데, 꿀이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 있었다. 파리가 단맛 때문에 떼로 몰려왔다. 하지만 먹으려다가 꿀에 붙어 죽은 놈이 여럿이었다. 한 그릇 꿀의 단맛을 탐내 자기의 생명을 버렸으니, 세상 사람이 종종 잠시의 안락 때문에 영원히 생명을 버리는 것과 같다. 참으로 안타깝다.
세상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 사물도 사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양지를 보여주고, 좋은 점을 보여주며 말하거든 거기에 수반되는 음지가 무엇이고 나쁜 점이 무엇인지도 반드시 물어보고 살펴보아야 한다. 위험하고 악한 것은 대체로 매우 매력적이면서도 유혹적이다. 그 양면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직 나에게만은 ‘위험하고 악한 것’은 피해가고 ‘매력적이면서도 유혹적인 것’만 남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다. 다단계 판매에서 누군가가 1억 연봉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많은 수가 오히려 빚더미에 앉는다. 유혹자가 1억 연봉자만을 계속해서 말하면 그에게만 집중하게 하겠지만 빚더미에 앉은 다수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야 하고, 자신이 그 수에 하나 더 얹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나에게만’ ‘좋은 것만’ 오라는 법은 없다.